definition | 무라야마 지준(村山智順, 1891~1968)이 1930년대 일제의 조선통치정책 중 하나로서 심전개발(心田開發)정책을 추진하는 가운데 조선인들의 심리 저변에 있는 신앙적 태도를 조사한 성과물의 하나로 1938년에 발간된 조사보고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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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korname | 최석영 |
정의 | 무라야마 지준(村山智順, 1891~1968)이 1930년대 일제의 조선통치정책 중 하나로서 심전개발(心田開發)정책을 추진하는 가운데 조선인들의 심리 저변에 있는 신앙적 태도를 조사한 성과물의 하나로 1938년에 발간된 조사보고서. | 정의 | 무라야마 지준(村山智順, 1891~1968)이 1930년대 일제의 조선통치정책 중 하나로서 심전개발(心田開發)정책을 추진하는 가운데 조선인들의 심리 저변에 있는 신앙적 태도를 조사한 성과물의 하나로 1938년에 발간된 조사보고서. | 내용 | 무라야마 지준은 1916년부터 1919년 7월까지 도쿄제국대학 문학부에서 사회학을 전공한 후 졸업과 함께 조선총독부의 촉탁이 되었다. 1941년 일본 국내의 조선장학회(朝鮮奬學會) 주사로 자리를 옮기기까지 조선에서 정열적인 조사활동을 하였다. 그는 조선인들의 의식을 조사하기 위하여 조선의 민간신앙에 큰 관심을 가졌다. 그 결과 민간신앙 4부작을 남겼는데 1929년에 『[조선의 귀신](/topic/조선의귀신)(朝鮮の鬼神)』을 시작으로 1931년『 조선의 [풍수](/topic/풍수)(朝鮮の風水)』, 1932년 『[조선의 무격](/topic/조선의무격)(朝鮮の巫覡)』, 1933년에 『조선의 점복과 예언(朝鮮の占卜と豫言)』을 펴냈다. 당대 일본에서 비교종교를 중심으로연구활동을 하던 김효경(金孝敬)은 무라야마에 대한 서평에서 『조선의 귀신(朝鮮の鬼神)』이 조선의 민간신앙의 ‘서론’(저류로서 토대)에 해당되는 것이라면 『조선의 무격(朝鮮の巫覡)』과『 조선의 풍수(朝鮮の風水)』는 그 ‘본론’(2대조류)에 해당하고, 『조선의 점복과 예언(朝鮮の占卜と豫言)』은 그 ‘결론’(2대 나무 위에 핀 總果) 부분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았다. 무라야마의『 석전ㆍ기우ㆍ[안택](/topic/안택)』에 대한 본격적인 해제는 그동안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에 발표된 주영하 교수의 해제인「 조선의 제사와 사회교화론 - 무라야마 지준의 『석전·기우·안택』연구」가 처음이 아닐까 한다. 이는 무라야마의 다른 조사보고서에 대한 해제도 그렇게 다르지 않은 상황임을 말해 준다. 주영하 교수는 『석전·기우·안택』의 집필 의도가 궁극적으로 생활개선운동의 전개를 위해 석전·기우·안택의 사회교화적 기능을 강화할 목적에 있었다고 보았다. 즉 “석전을 통해서 양반의사상을 살피고, 기우제를 통해서 농사에 대한 관민의 공통된 의식을 파악하고, 안택을 통해서 가족 중심의 가족주의를 살핀다”는 의도였다는 것이다. 『석전·기우·안택』의 집필 의도는 크게 두 [가지](/topic/가지)로 볼 수 있다. 지방의 생활개선과 ‘내선일체화의 촉진’이다. 이는 이 보고서가 발간된 시점이 일본이 처한 국내외 위기극복과 일정한 관계가 있다고 생각된다.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정책적 의도가 그 보고서의 집필 방향과 목적을 결정한 정치적 배경이었다. 무라야마는 향토제사 중 가장 완비된 석전과 풍흉의 키가 되어 조선에서 관민 모두의 중대관심사였던 기우제, 가족중심주의와 가정중심주의의 생활을 지지해 왔던 안택 각각을 조선향토제사를 대표하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에 한 권의 보고서로 묶었다. 따라서『조선의 향토신사』의 제1부로서『[부락제](/topic/부락제)』, 제2부로서『석전·기우·안택』을 발간한것이다. 『석전·기우·안택』은 2편으로 공동제와 개인제로 구성되었다. 제1편은 공동제(共同祭)를 문묘제, 사원제(祠院祭), 기우제, 수호제(守護祭), [방역](/topic/방역)제(防疫祭), 시장제(市場祭)로 나누고 그 가운데 수호제는 [장군](/topic/장군)제, 수구신제(水口神祭), 탑신제(塔神祭), 정주제(井主祭), 수신제(水神祭), 성황제, 부군제, 불신제로 분류하였다. 제2편은 개인제(個人祭)로 [가신](/topic/가신)제와 함께 안택과 [고사](/topic/고사) 외에 [용왕제](/topic/용왕제), [풍신제](/topic/풍신제), 산신제, 성황제, 국사제(國師祭), 제액제(除厄祭), [향산제](/topic/향산제)(香山祭), 성공제(誠貢祭), [칠성제](/topic/칠성제)(七星祭)를 다루었다. 마지막에 문헌편을 붙여 향토신사 관련 문헌을 시대에 따라 상대, 고려, 이조(조선)로 정리하고 지리지에 나오는 자료들을 정리하였다. 문묘제례는 1937년 2월 그 제일(祭日)을 양력으로 고쳐 봄에는 4월 15일, 가을에는 10월 15일로 정하고, 지방문묘에서는 만약 그날이 그 지방 신사(神社)의 제전일(祭典日)과겹치는 경우에는 적당하게 그 이전 혹은 이후로 해도 좋다고 정했다. 봄 석전제일을 4월15일로 정한 배경에는 각 학교의 신입생들을 그 제사에 참석시켜 성인의 덕화(德化)를받도록 하자는 의도가 있었다. 그리고 종래에는 석전제일 행사 시간이 그 전날 밤부터 그날 아침까지였으나 1910년부터 그것을 낮에 거행하는 쪽으로 변경하였다. 1938년 1월 말 현재 지방문묘와 폐지문묘 일람표를 제시하면서 그 연혁(예를 들면 창립, 폐지 혹은 복설)을 병기하고 있어 당시 지방문묘 현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지방문묘 중 전남광주문묘, 평남중화문묘, 전남순창문묘의 제의 절차 등을 소개하고 있다. 전국의 사우와 서원을 합친 사원(祠院)에 대해서는 그 유래뿐만 아니라 전국적인현황과 지방 중 대표적으로 전남 광주서원제, 황해 황주서원제, 전북 완주영당제(靈堂祭), 경남 동래서원제를 소개하고 있다. 기우제에 대해서는 충남 은산, 경남 창원, 경북 경산, 경북 선산, 경북 영덕, 경북 영일, 경남 울산, 경남 의령, 강원도, 황해도 신천에서 이루어지는 기우제를 자세하게 소개하고 이와 함께 각 도 지방별로 간략하게 기우제의 특징을 소개하면서 제의와 행사로서 분화(焚火), 현병(懸甁), 급수(汲水), 이시(移市),조룡(造龍), [줄다리기](/topic/줄다리기), 부정화(不淨化), 암장 아바키를 제시하였다. 부정화는 기우제가 이루어지는 제장 또는 용신이 산다고 믿는 청정한 장소에 가장 불결한 짐승이라는 돼지와 개 등을 도살하여 그 생피를 뿌리고 신성한 곳을 더럽히는 것에 의하여 강우를 요구하는 것이다. 암장 아바키란 암장한 묘를 파헤쳐 그 시체를 노출시켜 정화를 위한 부정화를 감행하여 부정한 시체를 흘러가게 하여 산신 또는 천신에게 강우를 비는 부정화행사의 일종이라고 한다. 수호제 가운데 장군신을 [마을](/topic/마을)의 수호신으로 하고 있는 장군제에 대해서는 그것을 행하고 있는 지방과 함께 그 특색을 소개하고 있다. 지방 가운데에서도 경북 경산 자인의 단오제, 충남 부여군 은산의 별신제, 전북 군산 장군제, 전남 해남의 수호간(竿), 전북 고부의 오간(烏竿), 경남 군북의 시장간(市場竿)의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산간마을의 입구는 계[곡물](/topic/곡물)을 끼고 있는 지형에 있는데 이곳을 수구라고 하며, 마을 방위라는 측면에서 중요한 지점이 되는 수구신(水口神)에 대한 제사를 충북 청주지방을 사례로제시하고 있다. 또한 마을 어귀의 빈 공간에 살기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고탑 또는 석퇴(石堆)의 탑을 설치하는데 이 역시 마을 수호신으로 보고 제사를 지내는 마을로서 충북 옥천, 전남 함평, 전북 부안을 사례로 들고 있다. 그리고 [우물](/topic/우물)제사, 수신제, 성황제, 부군제 외에 경남 동래군 구포(龜浦)에서 행해지는 불신제를 소개하고 있다. 무라야마는 조선에서는 이전부터 중농억상(重農抑商)정책으로 인하여 상업의 발달이 늦어져 마을 근처에 물물교환 시장이 형성되어 이 시장에서 이루어지는 제사가 시장제인데, 남쪽 지방에서는 별신제라고 하고 서쪽 지방에서는 단굿이라고 불렀다. 충주, 경주, 경북 김천 남면 및 개령(開寧)의 별신제와 함께 마산의 성신제(星神祭)를 소개하고 있다. 무라야마는 부록으로서 전국의 공동제라고 할 수 있는 것을 기우제, 수호신, 전염병제, 문묘서원제, 기타로 나누어 정리한 표를 제시하고 있다. 제2편 개인제(個人祭)에서 무라야마는 1936년에 행한 조사 결과를 토대로 다음과 같이 그 범주를 정하였다. 즉 조상제례 이외에 가신(家神)을 대상으로 하는 고사, 안택 등 가신제 20종, 용왕제, 풍신제, [농신제](/topic/농신제) 등과 같이 각지에 공통적으로 보이는 공통제 7종, 그 외 개인이 생각에 따라 제사를 지내며 비교적 그 분포가 넓지 않은 개인제 13종으로 총 40종을 다루고있다. 이와 같은 통계는 전국에 걸친 조사대상 중 191개 지방에서 나타난 513개 제사에 대해서 통계 처리한 것이다. 그는 이를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분류하였다. 1. 가신제 : 고사, 안택제, [지신제](/topic/지신제), 토사(土祀), [조왕제](/topic/조왕제)(竈王祭), 성조제, 대감제, 제석제, 세존제, 지운제(地運祭), 토주제(土主祭), 삼신제, 성주제, 당상제, 산양제(産養祭), 복락제(福樂祭), 도신(禱神), 천신제(薦新祭) 2. 공통제 : 용왕제, 풍신제, 농신제, 산신제, 성황제, 국사제(國師祭), 제액제(除厄祭) 3. 기타 개인제 : 향산제(香山祭, 단군제), 성공제(誠貢祭), 노신제(路神祭), 칠성제, 영산제, 백일제(百日祭), 목신제(木神祭), 석신제, 마을제(馬乙祭), [미륵제](/topic/미륵제), 일제(日祭), 군웅제, 독치성(獨致誠) 위에서 분류한 제사 가운데 가신제가 가장 많이 나타난 지방은 경상남도이며 그다음은 평안북도였다. 공통제의 경우는 경상남도가 압도적으로 많았으며 기타 개인제는 평안북도가 가장 많이 나타났다. 총계적으로 보아도 경상남도가 위에서분류ㆍ제시된 제사를 가장 많이 행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그리고 가신제, 공통제, 기타 개인제 가운데에서도 가신제가 전체 513종 가운데 301개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다. 무라야마는 조선에서의 개인제가 가지는 특성을 다음과 같이 파악하였다. 첫 번째 특징은 개인제가 개인 각자의 목적 달성에 있지만 간과해서는 안 되는 점이 있는데, 기원하는 바가 순수하게 개인적인 이익이 아니라 가족의 이익이며 가족의 안전과융성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앞의 통계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고사와 안택제가 가신제로서 가장 많은 비율을 나타내고 있는 것에서 조선의 가신제의 중요성을 파악하였다. 무라야마는 가신제를 비롯한 개인제들은 궁극적으로 개인보다는 사회적 성질을 가진 것이라는 점에 착목하여 두 번째 특징을 개인제의 제신 간에는 상하 혹은 주종관계가 있다는 점으로 보았고, 세 번째는 개인제를 주관하는 제주(祭主)는 전국적으로 보아 주부 또는 노모인 경우가 가장 많고 그다음으로 무녀가 많았다는 점을 특징으로 보았다. 네 번째는 개인제이기 때문에 옛 제사의 모습을 가지고 있고, 이를 통해서 이른 시기 일본, 조선, 만주 및 시베리아 일대를 ‘샤먼권(圈)’이라고 명명하고 이 문화권에서는같은 신사(神事)를 행하고 있었던 것 같다고 보았다. 일본에서는 외래 종교의 영향으로 그와 같은 흔적을 찾기 힘들게 되었지만, 같은 외래 종교의 영향을 받았지만 조선의 민간신앙은 질적으로 그렇게 변하지 않은 것으로 보았다. 즉 사적인 무가 아니라 공적인 무의 활동이 활발한 결과라고 보았다. 그리고 일본과 중국, 만주 등에서 문화적으로 공통적인 측면에 착목하였다. 가신제의 대상 중 가장 상위에 있는 신은 하위의 가신들을 총괄하는 성주(城主)신, 이를 성조대감또는 상량신이라고도 한다. 제석신은 집안 사람들의 수명을 관장하는 신으로 세존이라고도 한다. 십이신장 등과 같은 방위신인 신장(神將), 지방관 또는 사절 및 무장의 신령인 군웅, 관서장의 영인 부군이 있다. 무라야마는 안택고사에 대해서는 천안과 함경도 지방을 사례로 제시하고 있으며 삼신제에 대해서는 경북 경주와 김천, 경남 마산, 충남 천안, 강원 울진을 사례로 제시하고 용신제에 대해서는 전북 무주, 경남 합천, 풍신제에 대해서는 경남 마산, 경북 경산과 경주, 제주도, 농신제에 대해서는 경북 안동, 평남 덕천, 평북, 산신제에 대해서는 평북, 성황제에 대해서는 강원 철원, 강릉, 국사제에 대해서는 경기 양주, 평북, 제액제에 대해서는 경남 하동, 전남 삼음을 각각 사례로서 제시하고 있다. 향산제 등 기타 개인제에 관해서는 성공제는 평안남북도만 있는 기자제(祈子祭)를 예로 들고 있으며 칠성제에 대해서는 전북, 충북, 전남, 함북의 예를 들고 있다. 그리고1936년 5월 현재 전국의 개인제 개황을 제명(祭名), 제신(祭神), 제주(祭主), 제물(祭物), 제장(祭場), 제사방식, 목적, 시기로 나누어 표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놓고 있다. | 참고문헌 | 心田開發に關する講演集 (조선총독부중추원, 1936) 구한말·일제강점기 민속문헌 해제 (국립문화재연구소, 2006) 제국일본이 그린 조선민속 (주영하 외, 한국학중앙연구원, 2006) | 내용 | 무라야마 지준은 1916년부터 1919년 7월까지 도쿄제국대학 문학부에서 사회학을 전공한 후 졸업과 함께 조선총독부의 촉탁이 되었다. 1941년 일본 국내의 조선장학회(朝鮮奬學會) 주사로 자리를 옮기기까지 조선에서 정열적인 조사활동을 하였다. 그는 조선인들의 의식을 조사하기 위하여 조선의 민간신앙에 큰 관심을 가졌다. 그 결과 민간신앙 4부작을 남겼는데 1929년에 『[조선의 귀신](/topic/조선의귀신)(朝鮮の鬼神)』을 시작으로 1931년『 조선의 [풍수](/topic/풍수)(朝鮮の風水)』, 1932년 『[조선의 무격](/topic/조선의무격)(朝鮮の巫覡)』, 1933년에 『조선의 점복과 예언(朝鮮の占卜と豫言)』을 펴냈다. 당대 일본에서 비교종교를 중심으로연구활동을 하던 김효경(金孝敬)은 무라야마에 대한 서평에서 『조선의 귀신(朝鮮の鬼神)』이 조선의 민간신앙의 ‘서론’(저류로서 토대)에 해당되는 것이라면 『조선의 무격(朝鮮の巫覡)』과『 조선의 풍수(朝鮮の風水)』는 그 ‘본론’(2대조류)에 해당하고, 『조선의 점복과 예언(朝鮮の占卜と豫言)』은 그 ‘결론’(2대 나무 위에 핀 總果) 부분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았다. 무라야마의『 석전ㆍ기우ㆍ[안택](/topic/안택)』에 대한 본격적인 해제는 그동안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에 발표된 주영하 교수의 해제인「 조선의 제사와 사회교화론 - 무라야마 지준의 『석전·기우·안택』연구」가 처음이 아닐까 한다. 이는 무라야마의 다른 조사보고서에 대한 해제도 그렇게 다르지 않은 상황임을 말해 준다. 주영하 교수는 『석전·기우·안택』의 집필 의도가 궁극적으로 생활개선운동의 전개를 위해 석전·기우·안택의 사회교화적 기능을 강화할 목적에 있었다고 보았다. 즉 “석전을 통해서 양반의사상을 살피고, 기우제를 통해서 농사에 대한 관민의 공통된 의식을 파악하고, 안택을 통해서 가족 중심의 가족주의를 살핀다”는 의도였다는 것이다. 『석전·기우·안택』의 집필 의도는 크게 두 [가지](/topic/가지)로 볼 수 있다. 지방의 생활개선과 ‘내선일체화의 촉진’이다. 이는 이 보고서가 발간된 시점이 일본이 처한 국내외 위기극복과 일정한 관계가 있다고 생각된다.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정책적 의도가 그 보고서의 집필 방향과 목적을 결정한 정치적 배경이었다. 무라야마는 향토제사 중 가장 완비된 석전과 풍흉의 키가 되어 조선에서 관민 모두의 중대관심사였던 기우제, 가족중심주의와 가정중심주의의 생활을 지지해 왔던 안택 각각을 조선향토제사를 대표하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에 한 권의 보고서로 묶었다. 따라서『조선의 향토신사』의 제1부로서『[부락제](/topic/부락제)』, 제2부로서『석전·기우·안택』을 발간한것이다. 『석전·기우·안택』은 2편으로 공동제와 개인제로 구성되었다. 제1편은 공동제(共同祭)를 문묘제, 사원제(祠院祭), 기우제, 수호제(守護祭), [방역](/topic/방역)제(防疫祭), 시장제(市場祭)로 나누고 그 가운데 수호제는 [장군](/topic/장군)제, 수구신제(水口神祭), 탑신제(塔神祭), 정주제(井主祭), 수신제(水神祭), 성황제, 부군제, 불신제로 분류하였다. 제2편은 개인제(個人祭)로 [가신](/topic/가신)제와 함께 안택과 [고사](/topic/고사) 외에 [용왕제](/topic/용왕제), [풍신제](/topic/풍신제), 산신제, 성황제, 국사제(國師祭), 제액제(除厄祭), [향산제](/topic/향산제)(香山祭), 성공제(誠貢祭), [칠성제](/topic/칠성제)(七星祭)를 다루었다. 마지막에 문헌편을 붙여 향토신사 관련 문헌을 시대에 따라 상대, 고려, 이조(조선)로 정리하고 지리지에 나오는 자료들을 정리하였다. 문묘제례는 1937년 2월 그 제일(祭日)을 양력으로 고쳐 봄에는 4월 15일, 가을에는 10월 15일로 정하고, 지방문묘에서는 만약 그날이 그 지방 신사(神社)의 제전일(祭典日)과겹치는 경우에는 적당하게 그 이전 혹은 이후로 해도 좋다고 정했다. 봄 석전제일을 4월15일로 정한 배경에는 각 학교의 신입생들을 그 제사에 참석시켜 성인의 덕화(德化)를받도록 하자는 의도가 있었다. 그리고 종래에는 석전제일 행사 시간이 그 전날 밤부터 그날 아침까지였으나 1910년부터 그것을 낮에 거행하는 쪽으로 변경하였다. 1938년 1월 말 현재 지방문묘와 폐지문묘 일람표를 제시하면서 그 연혁(예를 들면 창립, 폐지 혹은 복설)을 병기하고 있어 당시 지방문묘 현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지방문묘 중 전남광주문묘, 평남중화문묘, 전남순창문묘의 제의 절차 등을 소개하고 있다. 전국의 사우와 서원을 합친 사원(祠院)에 대해서는 그 유래뿐만 아니라 전국적인현황과 지방 중 대표적으로 전남 광주서원제, 황해 황주서원제, 전북 완주영당제(靈堂祭), 경남 동래서원제를 소개하고 있다. 기우제에 대해서는 충남 은산, 경남 창원, 경북 경산, 경북 선산, 경북 영덕, 경북 영일, 경남 울산, 경남 의령, 강원도, 황해도 신천에서 이루어지는 기우제를 자세하게 소개하고 이와 함께 각 도 지방별로 간략하게 기우제의 특징을 소개하면서 제의와 행사로서 분화(焚火), 현병(懸甁), 급수(汲水), 이시(移市),조룡(造龍), [줄다리기](/topic/줄다리기), 부정화(不淨化), 암장 아바키를 제시하였다. 부정화는 기우제가 이루어지는 제장 또는 용신이 산다고 믿는 청정한 장소에 가장 불결한 짐승이라는 돼지와 개 등을 도살하여 그 생피를 뿌리고 신성한 곳을 더럽히는 것에 의하여 강우를 요구하는 것이다. 암장 아바키란 암장한 묘를 파헤쳐 그 시체를 노출시켜 정화를 위한 부정화를 감행하여 부정한 시체를 흘러가게 하여 산신 또는 천신에게 강우를 비는 부정화행사의 일종이라고 한다. 수호제 가운데 장군신을 [마을](/topic/마을)의 수호신으로 하고 있는 장군제에 대해서는 그것을 행하고 있는 지방과 함께 그 특색을 소개하고 있다. 지방 가운데에서도 경북 경산 자인의 단오제, 충남 부여군 은산의 별신제, 전북 군산 장군제, 전남 해남의 수호간(竿), 전북 고부의 오간(烏竿), 경남 군북의 시장간(市場竿)의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산간마을의 입구는 계[곡물](/topic/곡물)을 끼고 있는 지형에 있는데 이곳을 수구라고 하며, 마을 방위라는 측면에서 중요한 지점이 되는 수구신(水口神)에 대한 제사를 충북 청주지방을 사례로제시하고 있다. 또한 마을 어귀의 빈 공간에 살기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고탑 또는 석퇴(石堆)의 탑을 설치하는데 이 역시 마을 수호신으로 보고 제사를 지내는 마을로서 충북 옥천, 전남 함평, 전북 부안을 사례로 들고 있다. 그리고 [우물](/topic/우물)제사, 수신제, 성황제, 부군제 외에 경남 동래군 구포(龜浦)에서 행해지는 불신제를 소개하고 있다. 무라야마는 조선에서는 이전부터 중농억상(重農抑商)정책으로 인하여 상업의 발달이 늦어져 마을 근처에 물물교환 시장이 형성되어 이 시장에서 이루어지는 제사가 시장제인데, 남쪽 지방에서는 별신제라고 하고 서쪽 지방에서는 단굿이라고 불렀다. 충주, 경주, 경북 김천 남면 및 개령(開寧)의 별신제와 함께 마산의 성신제(星神祭)를 소개하고 있다. 무라야마는 부록으로서 전국의 공동제라고 할 수 있는 것을 기우제, 수호신, 전염병제, 문묘서원제, 기타로 나누어 정리한 표를 제시하고 있다. 제2편 개인제(個人祭)에서 무라야마는 1936년에 행한 조사 결과를 토대로 다음과 같이 그 범주를 정하였다. 즉 조상제례 이외에 가신(家神)을 대상으로 하는 고사, 안택 등 가신제 20종, 용왕제, 풍신제, [농신제](/topic/농신제) 등과 같이 각지에 공통적으로 보이는 공통제 7종, 그 외 개인이 생각에 따라 제사를 지내며 비교적 그 분포가 넓지 않은 개인제 13종으로 총 40종을 다루고있다. 이와 같은 통계는 전국에 걸친 조사대상 중 191개 지방에서 나타난 513개 제사에 대해서 통계 처리한 것이다. 그는 이를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분류하였다. 1. 가신제 : 고사, 안택제, [지신제](/topic/지신제), 토사(土祀), [조왕제](/topic/조왕제)(竈王祭), 성조제, 대감제, 제석제, 세존제, 지운제(地運祭), 토주제(土主祭), 삼신제, 성주제, 당상제, 산양제(産養祭), 복락제(福樂祭), 도신(禱神), 천신제(薦新祭) 2. 공통제 : 용왕제, 풍신제, 농신제, 산신제, 성황제, 국사제(國師祭), 제액제(除厄祭) 3. 기타 개인제 : 향산제(香山祭, 단군제), 성공제(誠貢祭), 노신제(路神祭), 칠성제, 영산제, 백일제(百日祭), 목신제(木神祭), 석신제, 마을제(馬乙祭), [미륵제](/topic/미륵제), 일제(日祭), 군웅제, 독치성(獨致誠) 위에서 분류한 제사 가운데 가신제가 가장 많이 나타난 지방은 경상남도이며 그다음은 평안북도였다. 공통제의 경우는 경상남도가 압도적으로 많았으며 기타 개인제는 평안북도가 가장 많이 나타났다. 총계적으로 보아도 경상남도가 위에서분류ㆍ제시된 제사를 가장 많이 행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그리고 가신제, 공통제, 기타 개인제 가운데에서도 가신제가 전체 513종 가운데 301개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다. 무라야마는 조선에서의 개인제가 가지는 특성을 다음과 같이 파악하였다. 첫 번째 특징은 개인제가 개인 각자의 목적 달성에 있지만 간과해서는 안 되는 점이 있는데, 기원하는 바가 순수하게 개인적인 이익이 아니라 가족의 이익이며 가족의 안전과융성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앞의 통계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고사와 안택제가 가신제로서 가장 많은 비율을 나타내고 있는 것에서 조선의 가신제의 중요성을 파악하였다. 무라야마는 가신제를 비롯한 개인제들은 궁극적으로 개인보다는 사회적 성질을 가진 것이라는 점에 착목하여 두 번째 특징을 개인제의 제신 간에는 상하 혹은 주종관계가 있다는 점으로 보았고, 세 번째는 개인제를 주관하는 제주(祭主)는 전국적으로 보아 주부 또는 노모인 경우가 가장 많고 그다음으로 무녀가 많았다는 점을 특징으로 보았다. 네 번째는 개인제이기 때문에 옛 제사의 모습을 가지고 있고, 이를 통해서 이른 시기 일본, 조선, 만주 및 시베리아 일대를 ‘샤먼권(圈)’이라고 명명하고 이 문화권에서는같은 신사(神事)를 행하고 있었던 것 같다고 보았다. 일본에서는 외래 종교의 영향으로 그와 같은 흔적을 찾기 힘들게 되었지만, 같은 외래 종교의 영향을 받았지만 조선의 민간신앙은 질적으로 그렇게 변하지 않은 것으로 보았다. 즉 사적인 무가 아니라 공적인 무의 활동이 활발한 결과라고 보았다. 그리고 일본과 중국, 만주 등에서 문화적으로 공통적인 측면에 착목하였다. 가신제의 대상 중 가장 상위에 있는 신은 하위의 가신들을 총괄하는 성주(城主)신, 이를 성조대감또는 상량신이라고도 한다. 제석신은 집안 사람들의 수명을 관장하는 신으로 세존이라고도 한다. 십이신장 등과 같은 방위신인 신장(神將), 지방관 또는 사절 및 무장의 신령인 군웅, 관서장의 영인 부군이 있다. 무라야마는 안택고사에 대해서는 천안과 함경도 지방을 사례로 제시하고 있으며 삼신제에 대해서는 경북 경주와 김천, 경남 마산, 충남 천안, 강원 울진을 사례로 제시하고 용신제에 대해서는 전북 무주, 경남 합천, 풍신제에 대해서는 경남 마산, 경북 경산과 경주, 제주도, 농신제에 대해서는 경북 안동, 평남 덕천, 평북, 산신제에 대해서는 평북, 성황제에 대해서는 강원 철원, 강릉, 국사제에 대해서는 경기 양주, 평북, 제액제에 대해서는 경남 하동, 전남 삼음을 각각 사례로서 제시하고 있다. 향산제 등 기타 개인제에 관해서는 성공제는 평안남북도만 있는 기자제(祈子祭)를 예로 들고 있으며 칠성제에 대해서는 전북, 충북, 전남, 함북의 예를 들고 있다. 그리고1936년 5월 현재 전국의 개인제 개황을 제명(祭名), 제신(祭神), 제주(祭主), 제물(祭物), 제장(祭場), 제사방식, 목적, 시기로 나누어 표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놓고 있다. | 참고문헌 | 心田開發に關する講演集 (조선총독부중추원, 1936) 구한말·일제강점기 민속문헌 해제 (국립문화재연구소, 2006) 제국일본이 그린 조선민속 (주영하 외, 한국학중앙연구원, 20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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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대학교 석사학위논문 | 동해안 탈굿의 변화양상과 축제성 | 김신효 | 20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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