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inition | 전라남도 장흥군 부산면 호계리에서 매년 [정월대보름](/topic/정월대보름)에 모시는 [마을](/topic/마을)제사. 장흥호계리별신제는 고문서와 더불어 2008년 4월 11일에 ‘전라남도 민속자료 제43호’로 지정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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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korname | 나경수 |
정의 | 전라남도 장흥군 부산면 호계리에서 매년 [정월대보름](/topic/정월대보름)에 모시는 [마을](/topic/마을)제사. 장흥호계리별신제는 고문서와 더불어 2008년 4월 11일에 ‘전라남도 민속자료 제43호’로 지정되었다. | 정의 | 전라남도 장흥군 부산면 호계리에서 매년 [정월대보름](/topic/정월대보름)에 모시는 [마을](/topic/마을)제사. 장흥호계리별신제는 고문서와 더불어 2008년 4월 11일에 ‘전라남도 민속자료 제43호’로 지정되었다. | 참조 | [장흥 호계리 동계문서](/topic/장흥호계리동계문서) | 참고문헌 | 전남 장흥군 부산면 호계리 별신제 조사 연구 (나경수, 민속학연구 10, 국립민속박물관, 2002) 호계리의 삶과 앎 (나경수 외, 심미안, 2005) | 참조 | [장흥 호계리 동계문서](/topic/장흥호계리동계문서) | 참고문헌 | 전남 장흥군 부산면 호계리 별신제 조사 연구 (나경수, 민속학연구 10, 국립민속박물관, 2002) 호계리의 삶과 앎 (나경수 외, 심미안, 2005) | 역사 | 현재 전해지고 있는 [마을](/topic/마을)의 고문서를 보면 1702년에 대동계가 만들어지고, 이와 더불어 별신제가 모셔지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이들 고문서와 함께 별신제를 모실 때 사용하는 [축문](/topic/축문), 홀기 등을 저술한 만수재(晩守齋) 이민기(李敏琦, 1646~1704)는 이 지역의 대표적인 유학자로서 학문을 연찬(硏鑽)한 사람으로 잘 알려져 있다. | 형태와 내용 | 1. 별신제를 모시는 장소와 신격 : [마을](/topic/마을) 북쪽을 따라 넓은 [제방](/topic/제방)이 쌓였으며, 제방 너머 호계(虎溪)가 흐른다. 호계는 깊지 않은 개천으로, 주변에 자갈밭이 넓다. 별신제는 그곳 자갈밭 위 일정한 곳에 자리를 잡아 지낸다. 이곳 자갈밭에서 지내는 제사를 ‘별신제’라고 하며, 마을 사람들은 ‘천제(天祭)’라고도 부른다. 별신제의 신은 모두 3위(位)로서 천(天), 지(地), 인(人)을 신격으로 하여 모신다. 메와 탕은 [제상](/topic/제상)에 올리지 않지만 떡이나 술은 모두 3의 숫자를 맞춰 올린다. 2. 제터의 준비 : 자갈밭의 일정한 곳에 제터를 잡으면 음력 정월 열나흗날 오전에 생대나무를 세우고 주변에 [금줄](/topic/금줄)을 친다. 대나무는 28개를 세우며, [제관](/topic/제관)들이 드나들 수 있도록 한 곳만 남기고 둥그런 형태로 대나무를 세워 빙둘러 금줄을 친다. 금줄은 왼새끼를 쓰며, [한지](/topic/한지)를 잘라 새끼 사이사이에 끼운다. 대나무 28개는 하늘의 28수(宿)를 뜻한다고 한다. 제장 주변에는 제관들이 머물면서 그날 사용할 [축문](/topic/축문)을 베껴 쓰도록 하기 위하여 차일을 가설한다. 차일은 금줄 밖에다 친다. 삼면은 막고 앞쪽만 트인 채로 하여 제관들이 앉아 있을 정도의 높이이다. 차일 옆에는 당일 오전에 준비한 [장작](/topic/장작)을 놓아둔다. 제사를 지내기 위해 제관과 풍물패들이 제장에 도착하면 장작더미에 불을 지핀다. 3. 회의와 제관 선정 : 별신제를 위해 매년 음력 초이렛날에 마을회관에서 마을 회의가 열린다. 한 가정에서 한 사람이 참석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이날 회의는 별신제를 지낼 사람들을 뽑기 위한 것으로, 마을 이장이 주관한다. 마을에 내려오는 『별신제향제관망정(別神祭享祭官望定)』에는 제사를 지낼 사람들의 역할을 구분하여 적어 놓았다. 제관은 이에 따라 대개 21명 정도가 이날 선정된다. 이들을 선정할 때에는 특별히 [생기복덕](/topic/생기복덕)을 보지 않지만 집안에 유고가 없는 깨끗한 사람만을 뽑는다. [상복](/topic/상복)을 입고 있는 가정과 아기를 낳은 가정을 가장 큰 부정이 있는 집으로 생각하며, 정월 들어 개고기를 먹은 사람이나 정월에 집안에서 기르는 [가축](/topic/가축)이 죽은 사람도 제외된다. 특히 제물을 장만하는 장찬(掌饌)의 경우 가장 깨끗해야 할 사람으로 생각하며, 가능하면 혼자 사는 여노인을 가장 선호하고 젊은 사람은 피한다. 이날 뽑힌 사람들은 궂은 곳이라고 생각되는 장소에는 일절 [가지](/topic/가지) 않는다. 예를 들어 초상이 난 집이나 산고(産故)가 든 집은 절대 가린다. 마을에 초상이 나더라도 별신제는 모시지만 별신제를 지낼 사람은 초상집에 가지 않으며, 초상집에 다녀온 사람은 별신제에 참여하지 않는다. 뽑힌 사람들에게는 글로 써서 각각 통문을 돌린다. 풍물을 칠 사람은 따로 뽑지 않고 유고가 없는 사람들이 참여하여 굿을 친다. 4. 당샘 준비 : 제사에 참여할 사람들이 정해지고 나서 초열흘날쯤에 당샘을 판다. 요즈음은 집집마다 수돗물을 쓰기 때문에 따로 당샘을 파지 않지만 예전에 마을 사람들이 쓰는 [우물](/topic/우물)물은 여러 사람이 쓰기 때문에 부정을 탈 수도 있어 따로 샘을 팠다. 별신제를 지낼 냇가 자갈밭의 깨끗한 곳을 골라 조금만 파면 물이 나온다. 주변에 금줄을 쳐서 다른 사람의 접근을 막고 단지 제물을 장만하는 장찬만이 그 물을 사용한다. 장찬은 당샘물을 맨 처음 길어다 제주(祭酒)부터 안친다. 그리고 매일 목욕을 할 때 이 물을 길어다 쓴다. 5. 제물 준비 : 제물 준비를 맡은 장찬은 별신제를 지낼 제물을 장만한다. 그리고 수탉의 다리와 날개를 묶어 제장에서 희생으로 쓰도록 준비한다. 예전에는 돼지 한 마리를 사서 제장에서 모가지를 잘랐다고 하는데 경비가 많이 들어 닭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살아 있는 수탉을 제상 밑에 두었다가 제사가 끝나면 모가지를 잘라 그 주변에 피를 뿌리고 머리는 땅에 묻는다. 피는 악마를 쫓기 때문에 목을 잘라 피를 뿌리는 것이라 한다. 6. 제사 준비 : 제사를 지낼 사람들은 각 가정에서 저녁식사를 마치고 마을회관에 모인다. 풍물을 치는 사람들은 [[농악](/topic/농악)기](/topic/농악기)를 이때 손보기도 한다. 이때 특별히 하는 것은 없으며, 제사를 모실 시간까지 함께 모여 잡담을 나눈다. 밤 10시쯤이 되면 제관들은 [제복](/topic/제복)으로 갈아입는 등 제장으로 향할 준비를 하고, 풍물을 치는 사람들 역시 풍물 복장을 하고 대기한다. 밤 10시 30분쯤이 되면 마을회관에서 풍물패가 풍물을 울리기 시작하여 [마당](/topic/마당)에 모여 계속 풍물을 치다가 제장으로 향한다. 이들을 뒤따라 제관들 역시 제장으로 자리를 옮긴다. 제장에 도착하면 풍물패는 주변을 돌면서 계속 풍물을 치고, 제관들은 축문을 쓰는 등 준비에 들어간다. 축문은 아래와 같다. | 연번 | 문서명 | 연도 | 크기(㎝) | | -------- | -------- | -------- | -------- | | 1 | 大洞禊案(甲寅二月十五日) | 1734 | 44×29 | | 2 | 大洞刱契(第一 肅宗四十一年乙未) | 1715, 1721 | 35×30 | | 3 | 虎溪村中執綱案(第二) | 1752~1777 | 34×28 | | 4 | 虎溪村中執綱案(第三) | 1781~1831 | 35.5×25.5 | | 5 | 大洞契村案(第四 壬辰二月初一日) | 1832~1858 | 34×26 | | 6 | 虎溪里執綱案(第五 戊午十二月 日) | 1858~1873 | 35×27 | | 7 | 虎溪里執綱案(第六 甲戌正月十五 日) | 1873~1894 | 31.5×29 | | 8 | 虎溪大洞案(第七 乙未正月十五 日) | 1895~1932 | 30.5×28.5 | | 9 | 虎溪大洞中(第八 歲癸酉正月十五日) | 1933~1953 | 38×27 | | 10 | 虎溪洞案(戊戌年正月 日) | 무술 | 32.5×28 | | 11 | 虎溪洞案(丙申春正月小望) | 병신 | 23×25.5 | | 12 | 虎溪洞中金鼓扶儀冊(庚寅正月初六日) | 1890 | 31×27 | | 13 | 祭官錄(戊午歲首旣望瞻書) | 경진 | 30×26.5 | | 14 | 別神祭祭需傳掌記(西紀一千九百二十一年辛酉正月) | 1921 | 20×21 | | 15 | 虎溪大洞別神祭笏記(幷祝文) | | 25× 9.5 | | 16 | 上書 1(龍溪面虎溪里居化民李奎精安東岳李憲徵等) | 정미 | 59×93.5 | | 17 | 上書 2(龍溪面虎溪里居化民李奎精安東岳李憲徵等) | 무신 | 58×100 | | 18 | 節目(龍溪面香徒除減節目) | 갑술 | 113.5×48 | 장흥호계리동계문서 목록 7. 별신제 모시기 : 밤 11시 30분쯤이 되면 풍물패와 제관 일행이 제물을 장만하는 장찬 집에 이르러 제물을 제장으로 옮긴다. 제물을 진설하고 나면 홀기를 읽는 집례가 [초헌](/topic/초헌)관부터 차례로 호명을 하고, 호명된 사람은 금줄 안으로 들어와 선다. 호명을 모두 마치면 홀기에 맞추어 초헌관부터 잔을 올리고 제사를 시작한다. 집례는 한문식의 홀기를 부르다가 제관들이 알아듣지 못하면 쉬운 말로 설명도 한다. 사신배를 끝으로 제사를 마치면 제상 밑에 놓아둔 닭의 모가지를 자른다. 자른 닭머리는 땅에 묻는다. 8. 소지와 [음복](/topic/음복) : 초헌관, [아헌](/topic/아헌)관, [종헌](/topic/종헌)관의 순서로 한지를 한 장씩 나누어 들고 소지를 올리면서 소리내어 구축(口祝)을 한다. 주로 국태민안, 소원성취, 농사풍년 등을 비는 내용이다. 소지가 모두 끝나면 제상 위에 올린 제물을 조금씩 떼어내 일곱 장의 [백지](/topic/백지)로 싸서 자갈밭에 묻고 난 다음 음복을 시작한다. 제상 위에 있는 과일과 떡을 나누어 먹고, 제주(祭酒)도 한 잔씩 나누며, 제상 한쪽 밑에 놓아둔 무를 쪼개 무사태평할 거라면서 조금씩 나누어 먹는다. [철상](/topic/철상)을 하고 나서 손궤에 제기와 남은 제물을 담고 풍물패를 앞세워 장찬 집으로 향한다. 풍물패와 제관 일행은 장찬 집에 도착하면 제물을 내려놓고 한참 동안 [마당굿](/topic/마당굿)을 한다. 마당굿을 마치면 장찬이 [안방](/topic/안방)에 마련한 상에 둘러앉아 술과 안주를 나누면서 정담을 나누다가 각 가정으로 돌아간다. 9. 별신제 결산 : 별신제를 지내고 나서 음력 [정월대보름](/topic/정월대보름)날에 마을 사람들이 모여 결산을 한다. 이장이 별신제와 관련하여 수입과 지출에 대한 보고를 하고, 마을 사람들 가운데 의문이나 의견이 있는 사람은 이때 말한다. 장찬 집에서 준비해 온 안주와 음식을 놓고 마을 사람들이 술을 한 잔씩 하면서 별신제와 관련된 이야기도 나눈다. 본래는 대동계로 불리는 마을총회를 별신제를 마치고 하였으나 생활의 대부분이 양력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지금은 대동계를 양력 12월 25일에 한다. 대동계에서는 마을의 제반사를 논의하고 이장의 선출이나 품삯을 결정하는 등 중요 사안을 다룬다. 10. [영험담](/topic/영험담) : 마을에서는 별신제와 관련하여 갖가지 영험담이 전승되고 있다. 이 마을에서는 군대에 가서 죽은 사람이 아직 없다고 한다. 이는 모두 별신제를 잘 지내왔기 때문에 그 덕택으로 별 사고가 없다고 믿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별신제 제물을 준비하다가 맛을 본 적이 있었다. 그런 후 그 사람은 몸에 열이 나고 견딜 수가 없어서 개인적으로 따로 제물을 준비해 별신제를 지내자 그때서야 몸의 열이 식었다고 한다. 또 별신제를 지내는 사람이 금기 기간에 부인과 동침을 했다. 아침에 인기척이 없어 어머니가 방문을 여니 둘이 붙어서 아[무리](/topic/무리) 용을 써도 떨어지지를 않았다. 비가 올 때 소에게 씌우는 소어치([부리망](/topic/부리망))를 씌우고 무당을 불러 굿을 하고 나서야 떨어졌다고 한다. 예전에 닭을 희생으로 쓰기 전에는 산 돼지의 모가지를 잘라 머리를 땅에 묻었는데 어떤 배고픈 사람이 그것을 파내 먹었다고 한다. 그 즉시 그 사람은 천병에 걸렸다고 한다. 이 밖에도 희생을 할 돼지나 닭을 제상 밑에 따로 묶지 않지만 그것들은 마치 죽은 듯이 숨을 죽이고 엎드려 있다고 한다. 그것은 신이 엄해서 꼼짝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 제사가 끝나고 나면 제상에 올린 [오곡](/topic/오곡)을 그대로 놓아 두는데 오래되도록 새들도 침범하지 않는다고 한다. 별신제가 끝나면 제장을 만들기 위해 가설한 대나무나 금줄, 호리상 역시 다음에 홍수가 나서 떠내려가 없어지도록 그대로 둔다. 손을 댔다가는 화를 입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라고 한다. | 역사 | 현재 전해지고 있는 [마을](/topic/마을)의 고문서를 보면 1702년에 대동계가 만들어지고, 이와 더불어 별신제가 모셔지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이들 고문서와 함께 별신제를 모실 때 사용하는 [축문](/topic/축문), 홀기 등을 저술한 만수재(晩守齋) 이민기(李敏琦, 1646~1704)는 이 지역의 대표적인 유학자로서 학문을 연찬(硏鑽)한 사람으로 잘 알려져 있다. | 형태와 내용 | 1. 별신제를 모시는 장소와 신격 : [마을](/topic/마을) 북쪽을 따라 넓은 [제방](/topic/제방)이 쌓였으며, 제방 너머 호계(虎溪)가 흐른다. 호계는 깊지 않은 개천으로, 주변에 자갈밭이 넓다. 별신제는 그곳 자갈밭 위 일정한 곳에 자리를 잡아 지낸다. 이곳 자갈밭에서 지내는 제사를 ‘별신제’라고 하며, 마을 사람들은 ‘천제(天祭)’라고도 부른다. 별신제의 신은 모두 3위(位)로서 천(天), 지(地), 인(人)을 신격으로 하여 모신다. 메와 탕은 [제상](/topic/제상)에 올리지 않지만 떡이나 술은 모두 3의 숫자를 맞춰 올린다. 2. 제터의 준비 : 자갈밭의 일정한 곳에 제터를 잡으면 음력 정월 열나흗날 오전에 생대나무를 세우고 주변에 [금줄](/topic/금줄)을 친다. 대나무는 28개를 세우며, [제관](/topic/제관)들이 드나들 수 있도록 한 곳만 남기고 둥그런 형태로 대나무를 세워 빙둘러 금줄을 친다. 금줄은 왼새끼를 쓰며, [한지](/topic/한지)를 잘라 새끼 사이사이에 끼운다. 대나무 28개는 하늘의 28수(宿)를 뜻한다고 한다. 제장 주변에는 제관들이 머물면서 그날 사용할 [축문](/topic/축문)을 베껴 쓰도록 하기 위하여 차일을 가설한다. 차일은 금줄 밖에다 친다. 삼면은 막고 앞쪽만 트인 채로 하여 제관들이 앉아 있을 정도의 높이이다. 차일 옆에는 당일 오전에 준비한 [장작](/topic/장작)을 놓아둔다. 제사를 지내기 위해 제관과 풍물패들이 제장에 도착하면 장작더미에 불을 지핀다. 3. 회의와 제관 선정 : 별신제를 위해 매년 음력 초이렛날에 마을회관에서 마을 회의가 열린다. 한 가정에서 한 사람이 참석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이날 회의는 별신제를 지낼 사람들을 뽑기 위한 것으로, 마을 이장이 주관한다. 마을에 내려오는 『별신제향제관망정(別神祭享祭官望定)』에는 제사를 지낼 사람들의 역할을 구분하여 적어 놓았다. 제관은 이에 따라 대개 21명 정도가 이날 선정된다. 이들을 선정할 때에는 특별히 [생기복덕](/topic/생기복덕)을 보지 않지만 집안에 유고가 없는 깨끗한 사람만을 뽑는다. [상복](/topic/상복)을 입고 있는 가정과 아기를 낳은 가정을 가장 큰 부정이 있는 집으로 생각하며, 정월 들어 개고기를 먹은 사람이나 정월에 집안에서 기르는 [가축](/topic/가축)이 죽은 사람도 제외된다. 특히 제물을 장만하는 장찬(掌饌)의 경우 가장 깨끗해야 할 사람으로 생각하며, 가능하면 혼자 사는 여노인을 가장 선호하고 젊은 사람은 피한다. 이날 뽑힌 사람들은 궂은 곳이라고 생각되는 장소에는 일절 [가지](/topic/가지) 않는다. 예를 들어 초상이 난 집이나 산고(産故)가 든 집은 절대 가린다. 마을에 초상이 나더라도 별신제는 모시지만 별신제를 지낼 사람은 초상집에 가지 않으며, 초상집에 다녀온 사람은 별신제에 참여하지 않는다. 뽑힌 사람들에게는 글로 써서 각각 통문을 돌린다. 풍물을 칠 사람은 따로 뽑지 않고 유고가 없는 사람들이 참여하여 굿을 친다. 4. 당샘 준비 : 제사에 참여할 사람들이 정해지고 나서 초열흘날쯤에 당샘을 판다. 요즈음은 집집마다 수돗물을 쓰기 때문에 따로 당샘을 파지 않지만 예전에 마을 사람들이 쓰는 [우물](/topic/우물)물은 여러 사람이 쓰기 때문에 부정을 탈 수도 있어 따로 샘을 팠다. 별신제를 지낼 냇가 자갈밭의 깨끗한 곳을 골라 조금만 파면 물이 나온다. 주변에 금줄을 쳐서 다른 사람의 접근을 막고 단지 제물을 장만하는 장찬만이 그 물을 사용한다. 장찬은 당샘물을 맨 처음 길어다 제주(祭酒)부터 안친다. 그리고 매일 목욕을 할 때 이 물을 길어다 쓴다. 5. 제물 준비 : 제물 준비를 맡은 장찬은 별신제를 지낼 제물을 장만한다. 그리고 수탉의 다리와 날개를 묶어 제장에서 희생으로 쓰도록 준비한다. 예전에는 돼지 한 마리를 사서 제장에서 모가지를 잘랐다고 하는데 경비가 많이 들어 닭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살아 있는 수탉을 제상 밑에 두었다가 제사가 끝나면 모가지를 잘라 그 주변에 피를 뿌리고 머리는 땅에 묻는다. 피는 악마를 쫓기 때문에 목을 잘라 피를 뿌리는 것이라 한다. 6. 제사 준비 : 제사를 지낼 사람들은 각 가정에서 저녁식사를 마치고 마을회관에 모인다. 풍물을 치는 사람들은 [[농악](/topic/농악)기](/topic/농악기)를 이때 손보기도 한다. 이때 특별히 하는 것은 없으며, 제사를 모실 시간까지 함께 모여 잡담을 나눈다. 밤 10시쯤이 되면 제관들은 [제복](/topic/제복)으로 갈아입는 등 제장으로 향할 준비를 하고, 풍물을 치는 사람들 역시 풍물 복장을 하고 대기한다. 밤 10시 30분쯤이 되면 마을회관에서 풍물패가 풍물을 울리기 시작하여 [마당](/topic/마당)에 모여 계속 풍물을 치다가 제장으로 향한다. 이들을 뒤따라 제관들 역시 제장으로 자리를 옮긴다. 제장에 도착하면 풍물패는 주변을 돌면서 계속 풍물을 치고, 제관들은 축문을 쓰는 등 준비에 들어간다. 축문은 아래와 같다. | 연번 | 문서명 | 연도 | 크기(㎝) | | -------- | -------- | -------- | -------- | | 1 | 大洞禊案(甲寅二月十五日) | 1734 | 44×29 | | 2 | 大洞刱契(第一 肅宗四十一年乙未) | 1715, 1721 | 35×30 | | 3 | 虎溪村中執綱案(第二) | 1752~1777 | 34×28 | | 4 | 虎溪村中執綱案(第三) | 1781~1831 | 35.5×25.5 | | 5 | 大洞契村案(第四 壬辰二月初一日) | 1832~1858 | 34×26 | | 6 | 虎溪里執綱案(第五 戊午十二月 日) | 1858~1873 | 35×27 | | 7 | 虎溪里執綱案(第六 甲戌正月十五 日) | 1873~1894 | 31.5×29 | | 8 | 虎溪大洞案(第七 乙未正月十五 日) | 1895~1932 | 30.5×28.5 | | 9 | 虎溪大洞中(第八 歲癸酉正月十五日) | 1933~1953 | 38×27 | | 10 | 虎溪洞案(戊戌年正月 日) | 무술 | 32.5×28 | | 11 | 虎溪洞案(丙申春正月小望) | 병신 | 23×25.5 | | 12 | 虎溪洞中金鼓扶儀冊(庚寅正月初六日) | 1890 | 31×27 | | 13 | 祭官錄(戊午歲首旣望瞻書) | 경진 | 30×26.5 | | 14 | 別神祭祭需傳掌記(西紀一千九百二十一年辛酉正月) | 1921 | 20×21 | | 15 | 虎溪大洞別神祭笏記(幷祝文) | | 25× 9.5 | | 16 | 上書 1(龍溪面虎溪里居化民李奎精安東岳李憲徵等) | 정미 | 59×93.5 | | 17 | 上書 2(龍溪面虎溪里居化民李奎精安東岳李憲徵等) | 무신 | 58×100 | | 18 | 節目(龍溪面香徒除減節目) | 갑술 | 113.5×48 | 장흥호계리동계문서 목록 7. 별신제 모시기 : 밤 11시 30분쯤이 되면 풍물패와 제관 일행이 제물을 장만하는 장찬 집에 이르러 제물을 제장으로 옮긴다. 제물을 진설하고 나면 홀기를 읽는 집례가 [초헌](/topic/초헌)관부터 차례로 호명을 하고, 호명된 사람은 금줄 안으로 들어와 선다. 호명을 모두 마치면 홀기에 맞추어 초헌관부터 잔을 올리고 제사를 시작한다. 집례는 한문식의 홀기를 부르다가 제관들이 알아듣지 못하면 쉬운 말로 설명도 한다. 사신배를 끝으로 제사를 마치면 제상 밑에 놓아둔 닭의 모가지를 자른다. 자른 닭머리는 땅에 묻는다. 8. 소지와 [음복](/topic/음복) : 초헌관, [아헌](/topic/아헌)관, [종헌](/topic/종헌)관의 순서로 한지를 한 장씩 나누어 들고 소지를 올리면서 소리내어 구축(口祝)을 한다. 주로 국태민안, 소원성취, 농사풍년 등을 비는 내용이다. 소지가 모두 끝나면 제상 위에 올린 제물을 조금씩 떼어내 일곱 장의 [백지](/topic/백지)로 싸서 자갈밭에 묻고 난 다음 음복을 시작한다. 제상 위에 있는 과일과 떡을 나누어 먹고, 제주(祭酒)도 한 잔씩 나누며, 제상 한쪽 밑에 놓아둔 무를 쪼개 무사태평할 거라면서 조금씩 나누어 먹는다. [철상](/topic/철상)을 하고 나서 손궤에 제기와 남은 제물을 담고 풍물패를 앞세워 장찬 집으로 향한다. 풍물패와 제관 일행은 장찬 집에 도착하면 제물을 내려놓고 한참 동안 [마당굿](/topic/마당굿)을 한다. 마당굿을 마치면 장찬이 [안방](/topic/안방)에 마련한 상에 둘러앉아 술과 안주를 나누면서 정담을 나누다가 각 가정으로 돌아간다. 9. 별신제 결산 : 별신제를 지내고 나서 음력 [정월대보름](/topic/정월대보름)날에 마을 사람들이 모여 결산을 한다. 이장이 별신제와 관련하여 수입과 지출에 대한 보고를 하고, 마을 사람들 가운데 의문이나 의견이 있는 사람은 이때 말한다. 장찬 집에서 준비해 온 안주와 음식을 놓고 마을 사람들이 술을 한 잔씩 하면서 별신제와 관련된 이야기도 나눈다. 본래는 대동계로 불리는 마을총회를 별신제를 마치고 하였으나 생활의 대부분이 양력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지금은 대동계를 양력 12월 25일에 한다. 대동계에서는 마을의 제반사를 논의하고 이장의 선출이나 품삯을 결정하는 등 중요 사안을 다룬다. 10. [영험담](/topic/영험담) : 마을에서는 별신제와 관련하여 갖가지 영험담이 전승되고 있다. 이 마을에서는 군대에 가서 죽은 사람이 아직 없다고 한다. 이는 모두 별신제를 잘 지내왔기 때문에 그 덕택으로 별 사고가 없다고 믿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별신제 제물을 준비하다가 맛을 본 적이 있었다. 그런 후 그 사람은 몸에 열이 나고 견딜 수가 없어서 개인적으로 따로 제물을 준비해 별신제를 지내자 그때서야 몸의 열이 식었다고 한다. 또 별신제를 지내는 사람이 금기 기간에 부인과 동침을 했다. 아침에 인기척이 없어 어머니가 방문을 여니 둘이 붙어서 아[무리](/topic/무리) 용을 써도 떨어지지를 않았다. 비가 올 때 소에게 씌우는 소어치([부리망](/topic/부리망))를 씌우고 무당을 불러 굿을 하고 나서야 떨어졌다고 한다. 예전에 닭을 희생으로 쓰기 전에는 산 돼지의 모가지를 잘라 머리를 땅에 묻었는데 어떤 배고픈 사람이 그것을 파내 먹었다고 한다. 그 즉시 그 사람은 천병에 걸렸다고 한다. 이 밖에도 희생을 할 돼지나 닭을 제상 밑에 따로 묶지 않지만 그것들은 마치 죽은 듯이 숨을 죽이고 엎드려 있다고 한다. 그것은 신이 엄해서 꼼짝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 제사가 끝나고 나면 제상에 올린 [오곡](/topic/오곡)을 그대로 놓아 두는데 오래되도록 새들도 침범하지 않는다고 한다. 별신제가 끝나면 제장을 만들기 위해 가설한 대나무나 금줄, 호리상 역시 다음에 홍수가 나서 떠내려가 없어지도록 그대로 둔다. 손을 댔다가는 화를 입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라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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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몽골학회 | 한국 무속신 고찰-무신도를 중심으로 | 양종승 | 1996 | 인하대학교 박물관 | 무신도에 나타난 무신의 상징성 | 양종승 | 19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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