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inition |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에서 [정월대보름](/topic/정월대보름)날에 행해지는 고을 당산제. 2007년 7월 27일에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37호’로 지정되었다. 고창오거리당산은 행주형국(行舟形局)인 고창읍의 고을 [풍수](/topic/풍수)를 비보하기 위해 고을의 오방에 세운 화표(華表) 및 당산을 가리킨다. 고창읍의 다섯 당산 가운데 중거리당산·중앙동당산·하거리당산은 상부에 [삿갓](/topic/삿갓)을 쓴 모양의 석간(石竿)으로, 1969년 12월 15일에 ‘중요민속자료 제14호’로 지정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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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korname | 김월덕 |
정의 |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에서 [정월대보름](/topic/정월대보름)날에 행해지는 고을 당산제. 2007년 7월 27일에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37호’로 지정되었다. 고창오거리당산은 행주형국(行舟形局)인 고창읍의 고을 [풍수](/topic/풍수)를 비보하기 위해 고을의 오방에 세운 화표(華表) 및 당산을 가리킨다. 고창읍의 다섯 당산 가운데 중거리당산·중앙동당산·하거리당산은 상부에 [삿갓](/topic/삿갓)을 쓴 모양의 석간(石竿)으로, 1969년 12월 15일에 ‘중요민속자료 제14호’로 지정되었다. | 유래 및 역사 | 중거리당산, 중앙동당산, 하거리당산 석간에는 건립 연대와 [시주](/topic/시주)자(施主者) 및 [화주](/topic/화주)(化主) 명단이 새겨져 있다. 세 석간에 명시된 내용을 통해 이것들이 1803년(순조 3)에 건립되었다는 점을 알 수 있고, 석간을 [마을](/topic/마을)별 신체(神體)로 모시기 위해 고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건립에 참여했음을 추측할 수 있다. 고창오거리당산은 [풍수](/topic/풍수)지리상 행주형국인 고창읍을 비보하기 위해 기존의 자연입석보다 더 높은 석간으로 돛대 역할을 하도록 세운 것이라고 전한다. | 내용 및 특징 | 현재 고창오거리당산제는 1980년대에 고창문화원에서 재현한 이후 고창오거리당산제보존회에서 주관하고 있으며, 2006년 전북 정읍시에서 개최된 제47회 한국민속예술축제에서 대통령상을 받았다. 이 당산제는 음력 정초에 [마을](/topic/마을)별로 행한 후에 [정월대보름](/topic/정월대보름)날에 중거리당산 일대와 고창 문화의전당 광장에서 당산제, [연등놀이](/topic/연등놀이), 줄 놀이, 줄 예맞이, 줄 시위굿, [줄다리기](/topic/줄다리기), 당산 옷 입히기 등을 한다. 이 당산제는 무형문화재 지정 이후 지역전통문화축제로 위상을 새롭게 자리매김하고 있다. 고창오거리당산은 고창읍의 오방에 위치한 다섯 마을, 즉 상거리·안거리·중거리·하거리·교촌리에 위치하고 있다. 각 마을의 당산은 자연입석과 인공석간, 당산나무 등의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중앙동당산, 중거리당산, 하거리당산은 화강암 석간으로서 상부에 갓을 얹은 모양을 하고 있어 ‘갓당산’이라고도 한다. 이들 당산은 공통적으로 할아버지당산으로 인식된다. 이 당산들의 형태와 각 마을별 당산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읍의 동쪽에 있는 상거리당산은 고창읍 읍내리 천북동(또는 동산몰)에 있으며, 입석과 당산나무로 이루어져 있다. 마을 안쪽의 할아버지당산은 입석과 나무가 결합된 형태이며, 할머니당산은 팽나무이다. 마을 바깥쪽 길가의 자연입석은 아들당산(또는 큰부인당산)이라고 한다. 상거리당산제는 음력 정월 초하룻날에 지낸다. 제주는 [제관](/topic/제관), 축관, 집사 등을 선정한다. 제물은 메, 편, 돼지머리, 나물, 채소, [삼실과](/topic/삼실과) 등이다. 제의 비용은 마을 소유의 전답에서 나오는 소출로 충당하며, 제수 장만은 노인당 산지기 집에서 담당한다. 정월 초하룻날 오전에 제사가 끝나면 제의에 참여한 사람들이 노인당에 함께 모여 [음복](/topic/음복)한다. 중앙동 시장 안에 있는 중앙당산은 높이 375㎝의 화강석 석간으로 되어 있다. 신격은 할아버지당산이다. 일제강점기 말까지 할머니당산 나무가 있었다고 하지만 현재는 석간만 남아 있다. 중앙당산은 석간에 ‘가경팔년 계해윤이월초십일(嘉慶八年 癸亥閏二月初十日)’이라는 문구와 [시주](/topic/시주) 및 [화주](/topic/화주) 명단이 새겨져 있어 건립 연대와 건립 참여자들을 알 수 있다. 중앙당산에서는 음력 정월 초사흗날에 당산제를 지낸다. 이때 마을에 부정한 일이 생기면 이월 초하룻날로 연기한다. 제관과 유사는 [생기복덕](/topic/생기복덕)에 맞는 사람을 선정하며, 제의 비용은 마을회의에서 결의하여 추렴한다. 제물로는 떡, 삼실과, 나물, 생선 등이다. 제의는 유교식 절차에 따라 간소하게 행하며 제의 후에는 마을 사람들이 함께 모여 음복한다. 읍의 중앙에 위치한 중거리당산은 높이 382㎝의 화강석 석간 형태이다. 상부에 사각 모양의 갓을 씌운 모습이며, 이를 할아버지당산이라고 부른다. 이 석간에는 ‘천년완골흘연진남 계해삼월 일(千年頑骨屹然鎭南 癸亥三月 日)’이라는 구절이 새겨져 있어서 고창읍의 남쪽 방위를 비보하기 위해 세워진 것임을 알 수 있다. 이곳의 당산제는 매년 음력 정월대보름날 자시에 마을의 풍년을 기원하면서 6·25전쟁 전까지 지냈다고 한다. 고창오거리당산제 복원 이후 이 중거리당산제는 일종의 연합 제의 성격을 띠게 되었으며, 고을당산제로서 ‘오거리당산제’라고 할 때에는 정월대보름날에 행하는 중거리당산제를 지칭한다. 제관은 삼헌관, 축관, 집사로 이루어진다. 제의 비용은 고창오거리당산제보존회에서 마련하고 있다. 현재 ‘고창오거리당산보존회’에서 주관하여 행하는 오거리당산제는 중거리당산과 고창 문화의전당 광장 등지에서 이루어진다. 진행 절차는 다음과 같다. 먼저 굿판을 어우른 다음 진설-[헌작](/topic/헌작)-재배-[독축](/topic/독축)-소지-음복 순으로 유교식 제의를 지낸다. 제의가 끝나면 남·여로 편을 나누어 줄다리기를 한다. 줄다리기는 세 번을 하며, 여자가 이겨야 풍년이 든다는 속신 때문에 항상 여자가 두 번 이긴다. 줄다리기가 끝나면 줄을 중거리당산에 감아 둔다. 이를 ‘당산 옷 입히기’라고 한다. 감아둔 줄은 이듬해까지 그대로 둔다. 고창천 남쪽 [골목](/topic/골목) 안에 있는 하거리당산은 높이 670㎝의 사각 석간 형태이다. 신격은 할아버지당산이다. 석간 측면에 ‘진서화표가경팔년 계해삼월 일(鎭西華表嘉慶八年 癸亥三月 日)’이라고 새겨져 있어 이 당산이 읍의 서쪽 방위를 비보하기 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화표 옆에는 큰 느티나무와 고창읍 내 수구입석비(高敞邑內水口立石碑)가 있다. 느티나무는 할머니당산으로 여기며, 입석비 또한 당산으로 일컫기도 한다. 하거리에서는 수재(水災)를 비롯해 각종 재앙을 비방하고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할아버지당산과 할머니당산에서 음력 정월 초하룻날 저녁에 제의를 행하였다. 제관과 유사는 생기복덕이 맞는 사람으로 선정하고 나서 떡, 돼지머리, 삼실과 등의 제물을 준비한다. 제의는 유교식으로 간단히 지낸다. 고창읍의 북쪽에 위치한 교촌당산은 입석 두 기와 당산나무로 구성되어 있다. 본래 할아버지당산은 고창중학교 앞의 길가, 할머니당산은 고창중학교 안, 아들당산은 향교 서편에 각각 있었다고 한다. 할아버지당산은 중거리당산과 같이 석간 형태였으나 중간에 훼손되어 고창오거리당산제보존회에서 1984년에 다시 만들어 세우고 비문 앞면에 ‘진북화표(鎭北華表)’라는 명문을 새겨 넣었다. 할아버지당산을 다시 세우면서 아들당산과 함께 마을 안쪽으로 자리를 옮겨와 현재는 할아버지당산과 아들당산이 나란히 놓여 있다. 교촌당산제는 음력 정월 초사흗날에 지낸다. 제관과 유사는 생기복덕이 맞는 사람 가운데 한 명씩 선정되며 제관은 몸을 깨끗이 하고 금기를 수행한다. 제물로는 삼실과·떡·나물·생선 등을 쓰고, 제사 비용은 걸립을 하여 충당한다. 제의 절차는 유교식으로 간단히 진행한다. | 정의 |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에서 [정월대보름](/topic/정월대보름)날에 행해지는 고을 당산제. 2007년 7월 27일에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37호’로 지정되었다. 고창오거리당산은 행주형국(行舟形局)인 고창읍의 고을 [풍수](/topic/풍수)를 비보하기 위해 고을의 오방에 세운 화표(華表) 및 당산을 가리킨다. 고창읍의 다섯 당산 가운데 중거리당산·중앙동당산·하거리당산은 상부에 [삿갓](/topic/삿갓)을 쓴 모양의 석간(石竿)으로, 1969년 12월 15일에 ‘중요민속자료 제14호’로 지정되었다. | 유래 및 역사 | 중거리당산, 중앙동당산, 하거리당산 석간에는 건립 연대와 [시주](/topic/시주)자(施主者) 및 [화주](/topic/화주)(化主) 명단이 새겨져 있다. 세 석간에 명시된 내용을 통해 이것들이 1803년(순조 3)에 건립되었다는 점을 알 수 있고, 석간을 [마을](/topic/마을)별 신체(神體)로 모시기 위해 고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건립에 참여했음을 추측할 수 있다. 고창오거리당산은 [풍수](/topic/풍수)지리상 행주형국인 고창읍을 비보하기 위해 기존의 자연입석보다 더 높은 석간으로 돛대 역할을 하도록 세운 것이라고 전한다. | 내용 및 특징 | 현재 고창오거리당산제는 1980년대에 고창문화원에서 재현한 이후 고창오거리당산제보존회에서 주관하고 있으며, 2006년 전북 정읍시에서 개최된 제47회 한국민속예술축제에서 대통령상을 받았다. 이 당산제는 음력 정초에 [마을](/topic/마을)별로 행한 후에 [정월대보름](/topic/정월대보름)날에 중거리당산 일대와 고창 문화의전당 광장에서 당산제, [연등놀이](/topic/연등놀이), 줄 놀이, 줄 예맞이, 줄 시위굿, [줄다리기](/topic/줄다리기), 당산 옷 입히기 등을 한다. 이 당산제는 무형문화재 지정 이후 지역전통문화축제로 위상을 새롭게 자리매김하고 있다. 고창오거리당산은 고창읍의 오방에 위치한 다섯 마을, 즉 상거리·안거리·중거리·하거리·교촌리에 위치하고 있다. 각 마을의 당산은 자연입석과 인공석간, 당산나무 등의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중앙동당산, 중거리당산, 하거리당산은 화강암 석간으로서 상부에 갓을 얹은 모양을 하고 있어 ‘갓당산’이라고도 한다. 이들 당산은 공통적으로 할아버지당산으로 인식된다. 이 당산들의 형태와 각 마을별 당산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읍의 동쪽에 있는 상거리당산은 고창읍 읍내리 천북동(또는 동산몰)에 있으며, 입석과 당산나무로 이루어져 있다. 마을 안쪽의 할아버지당산은 입석과 나무가 결합된 형태이며, 할머니당산은 팽나무이다. 마을 바깥쪽 길가의 자연입석은 아들당산(또는 큰부인당산)이라고 한다. 상거리당산제는 음력 정월 초하룻날에 지낸다. 제주는 [제관](/topic/제관), 축관, 집사 등을 선정한다. 제물은 메, 편, 돼지머리, 나물, 채소, [삼실과](/topic/삼실과) 등이다. 제의 비용은 마을 소유의 전답에서 나오는 소출로 충당하며, 제수 장만은 노인당 산지기 집에서 담당한다. 정월 초하룻날 오전에 제사가 끝나면 제의에 참여한 사람들이 노인당에 함께 모여 [음복](/topic/음복)한다. 중앙동 시장 안에 있는 중앙당산은 높이 375㎝의 화강석 석간으로 되어 있다. 신격은 할아버지당산이다. 일제강점기 말까지 할머니당산 나무가 있었다고 하지만 현재는 석간만 남아 있다. 중앙당산은 석간에 ‘가경팔년 계해윤이월초십일(嘉慶八年 癸亥閏二月初十日)’이라는 문구와 [시주](/topic/시주) 및 [화주](/topic/화주) 명단이 새겨져 있어 건립 연대와 건립 참여자들을 알 수 있다. 중앙당산에서는 음력 정월 초사흗날에 당산제를 지낸다. 이때 마을에 부정한 일이 생기면 이월 초하룻날로 연기한다. 제관과 유사는 [생기복덕](/topic/생기복덕)에 맞는 사람을 선정하며, 제의 비용은 마을회의에서 결의하여 추렴한다. 제물로는 떡, 삼실과, 나물, 생선 등이다. 제의는 유교식 절차에 따라 간소하게 행하며 제의 후에는 마을 사람들이 함께 모여 음복한다. 읍의 중앙에 위치한 중거리당산은 높이 382㎝의 화강석 석간 형태이다. 상부에 사각 모양의 갓을 씌운 모습이며, 이를 할아버지당산이라고 부른다. 이 석간에는 ‘천년완골흘연진남 계해삼월 일(千年頑骨屹然鎭南 癸亥三月 日)’이라는 구절이 새겨져 있어서 고창읍의 남쪽 방위를 비보하기 위해 세워진 것임을 알 수 있다. 이곳의 당산제는 매년 음력 정월대보름날 자시에 마을의 풍년을 기원하면서 6·25전쟁 전까지 지냈다고 한다. 고창오거리당산제 복원 이후 이 중거리당산제는 일종의 연합 제의 성격을 띠게 되었으며, 고을당산제로서 ‘오거리당산제’라고 할 때에는 정월대보름날에 행하는 중거리당산제를 지칭한다. 제관은 삼헌관, 축관, 집사로 이루어진다. 제의 비용은 고창오거리당산제보존회에서 마련하고 있다. 현재 ‘고창오거리당산보존회’에서 주관하여 행하는 오거리당산제는 중거리당산과 고창 문화의전당 광장 등지에서 이루어진다. 진행 절차는 다음과 같다. 먼저 굿판을 어우른 다음 진설-[헌작](/topic/헌작)-재배-[독축](/topic/독축)-소지-음복 순으로 유교식 제의를 지낸다. 제의가 끝나면 남·여로 편을 나누어 줄다리기를 한다. 줄다리기는 세 번을 하며, 여자가 이겨야 풍년이 든다는 속신 때문에 항상 여자가 두 번 이긴다. 줄다리기가 끝나면 줄을 중거리당산에 감아 둔다. 이를 ‘당산 옷 입히기’라고 한다. 감아둔 줄은 이듬해까지 그대로 둔다. 고창천 남쪽 [골목](/topic/골목) 안에 있는 하거리당산은 높이 670㎝의 사각 석간 형태이다. 신격은 할아버지당산이다. 석간 측면에 ‘진서화표가경팔년 계해삼월 일(鎭西華表嘉慶八年 癸亥三月 日)’이라고 새겨져 있어 이 당산이 읍의 서쪽 방위를 비보하기 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화표 옆에는 큰 느티나무와 고창읍 내 수구입석비(高敞邑內水口立石碑)가 있다. 느티나무는 할머니당산으로 여기며, 입석비 또한 당산으로 일컫기도 한다. 하거리에서는 수재(水災)를 비롯해 각종 재앙을 비방하고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할아버지당산과 할머니당산에서 음력 정월 초하룻날 저녁에 제의를 행하였다. 제관과 유사는 생기복덕이 맞는 사람으로 선정하고 나서 떡, 돼지머리, 삼실과 등의 제물을 준비한다. 제의는 유교식으로 간단히 지낸다. 고창읍의 북쪽에 위치한 교촌당산은 입석 두 기와 당산나무로 구성되어 있다. 본래 할아버지당산은 고창중학교 앞의 길가, 할머니당산은 고창중학교 안, 아들당산은 향교 서편에 각각 있었다고 한다. 할아버지당산은 중거리당산과 같이 석간 형태였으나 중간에 훼손되어 고창오거리당산제보존회에서 1984년에 다시 만들어 세우고 비문 앞면에 ‘진북화표(鎭北華表)’라는 명문을 새겨 넣었다. 할아버지당산을 다시 세우면서 아들당산과 함께 마을 안쪽으로 자리를 옮겨와 현재는 할아버지당산과 아들당산이 나란히 놓여 있다. 교촌당산제는 음력 정월 초사흗날에 지낸다. 제관과 유사는 생기복덕이 맞는 사람 가운데 한 명씩 선정되며 제관은 몸을 깨끗이 하고 금기를 수행한다. 제물로는 삼실과·떡·나물·생선 등을 쓰고, 제사 비용은 걸립을 하여 충당한다. 제의 절차는 유교식으로 간단히 진행한다. | 상호참조 | 고창오거리당산(71쪽) | 참고문헌 | 고창읍 오거리당산 (이두현, 민속자료조사보고서 10, 문화재관리국, 1968) 전북지방 장승·솟대 신앙 (국립민속박물관·전라북도, 1994) 고창오거리당산제와 바람직한 축제화 방안 (표인주, 남도민속연구 5, 남도민속학회, 1999) 전라북도 [마을](/topic/마을)지킴이·정악 (전라북도, 2004) | 상호참조 | 고창오거리당산(71쪽) | 참고문헌 | 고창읍 오거리당산 (이두현, 민속자료조사보고서 10, 문화재관리국, 1968) 전북지방 장승·솟대 신앙 (국립민속박물관·전라북도, 1994) 고창오거리당산제와 바람직한 축제화 방안 (표인주, 남도민속연구 5, 남도민속학회, 1999) 전라북도 [마을](/topic/마을)지킴이·정악 (전라북도, 2004) | 의의 | 고창오거리당산제는 오방의 관념과 [풍수](/topic/풍수)의 비보 관념이 반영된 고을 신앙의 한 사례이다. 고을의 허약한 지세를 비보하기 위해 고을의 오방에 인공적인 당산을 건립함으로써 고을의 재액방어를 적극 실현하고자 한 점에서 고을 신앙으로서의 의의를 찾을 수 있다. 또한 여러 [마을](/topic/마을)이 연합하여 행하는 의례는 더욱 강한 제의적 효과를 낳을 뿐만 아니라 고을민들이 화합을 이룰 수 있는 계기가 된다고도 할 수 있다. | 의의 | 고창오거리당산제는 오방의 관념과 [풍수](/topic/풍수)의 비보 관념이 반영된 고을 신앙의 한 사례이다. 고을의 허약한 지세를 비보하기 위해 고을의 오방에 인공적인 당산을 건립함으로써 고을의 재액방어를 적극 실현하고자 한 점에서 고을 신앙으로서의 의의를 찾을 수 있다. 또한 여러 [마을](/topic/마을)이 연합하여 행하는 의례는 더욱 강한 제의적 효과를 낳을 뿐만 아니라 고을민들이 화합을 이룰 수 있는 계기가 된다고도 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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