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inition | 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 사내리 [마을](/topic/마을) 앞에 서 있는 4기의 입석 형태 당산. 1999년 7월 9일에 ‘전라북도 민속자료 제32호’로 지정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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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korname | 나경수 |
정의 | 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 사내리 [마을](/topic/마을) 앞에 서 있는 4기의 입석 형태 당산. 1999년 7월 9일에 ‘전라북도 민속자료 제32호’로 지정되었다. | 정의 | 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 사내리 [마을](/topic/마을) 앞에 서 있는 4기의 입석 형태 당산. 1999년 7월 9일에 ‘전라북도 민속자료 제32호’로 지정되었다. | 내용 | 조선 성종(재위 1469~1494) 때 [마을](/topic/마을)을 지나던 한 도승의 말에 따라 세웠다고 전해진다. 원래는 12당산이 있었으나 어느 날 마을 노인의 꿈에 신령이 나타나 4위만 모시라는 계시가 있은 뒤부터 지금까지 4기에만 [정월대보름](/topic/정월대보름)날에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외부로 통하는 마을 어귀 길가에 시정이 있으며, 시정 옆에 당산석이 1기 있고, 북쪽으로 난 논둑길을 따라 각각 약 30~40m의 거리를 두고 3기의 당산석이 연이어 서 있다. 시정 옆에 있는 당산석은 할머니당산, 북쪽 논둑길에 처음에 있는 당산석은 할아버지당산, 그다음은 아들당산, 맨 뒤쪽은 며느리당산이다. 당산제는 할아버지당산-할머니당산-아들당산-며느리당산 순서로 제사를 지낸다. 당산제를 지내면서 왼새끼를 꼬아 두세 바퀴 당산석에 두르고 옷을 입힌다고 하여 당목천을 길게 오려 [금줄](/topic/금줄) 사이사이에 끼운다. 모든 당산석은 자연석을 그대로 사용했다. 다만 할아버지당산과 아들당산은 머리에 갓을 씌우듯 갓돌을 올렸다. 남자만 갓을 쓰기 때문에 갓돌도 남신인 할아버지당산과 아들당산에만 씌운 것이다. | 당산 명칭 | 높이 | 너비 | 두께 | 갓지름 | | -------- | -------- | -------- | -------- | -------- | | 할머니당산 | 65㎝ | 45㎝ | 22㎝ | - | | 할아버지당산 | 109cm | 37cm | - | 60cm | | 아들당산 | 110cm | 40cm | - | 84cm | | 며느리당산 | 50cm | 40cm | 14cm | - | | 참고문헌 | 고창군지 (고창군지편찬위원회, 2009) | 내용 | 조선 성종(재위 1469~1494) 때 [마을](/topic/마을)을 지나던 한 도승의 말에 따라 세웠다고 전해진다. 원래는 12당산이 있었으나 어느 날 마을 노인의 꿈에 신령이 나타나 4위만 모시라는 계시가 있은 뒤부터 지금까지 4기에만 [정월대보름](/topic/정월대보름)날에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외부로 통하는 마을 어귀 길가에 시정이 있으며, 시정 옆에 당산석이 1기 있고, 북쪽으로 난 논둑길을 따라 각각 약 30~40m의 거리를 두고 3기의 당산석이 연이어 서 있다. 시정 옆에 있는 당산석은 할머니당산, 북쪽 논둑길에 처음에 있는 당산석은 할아버지당산, 그다음은 아들당산, 맨 뒤쪽은 며느리당산이다. 당산제는 할아버지당산-할머니당산-아들당산-며느리당산 순서로 제사를 지낸다. 당산제를 지내면서 왼새끼를 꼬아 두세 바퀴 당산석에 두르고 옷을 입힌다고 하여 당목천을 길게 오려 [금줄](/topic/금줄) 사이사이에 끼운다. 모든 당산석은 자연석을 그대로 사용했다. 다만 할아버지당산과 아들당산은 머리에 갓을 씌우듯 갓돌을 올렸다. 남자만 갓을 쓰기 때문에 갓돌도 남신인 할아버지당산과 아들당산에만 씌운 것이다. | 당산 명칭 | 높이 | 너비 | 두께 | 갓지름 | | -------- | -------- | -------- | -------- | -------- | | 할머니당산 | 65㎝ | 45㎝ | 22㎝ | - | | 할아버지당산 | 109cm | 37cm | - | 60cm | | 아들당산 | 110cm | 40cm | - | 84cm | | 며느리당산 | 50cm | 40cm | 14cm | - | | 참고문헌 | 고창군지 (고창군지편찬위원회, 20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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