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inition | 목조 건물 건축 과정에서 최상부 부재인 종도리(마룻도리)를 올리는 [상량제](/topic/상량제)(上樑祭) 때 사용하는 [축문](/topic/축문)(祝文).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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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 목조 건물 건축 과정에서 최상부 부재인 종도리(마룻도리)를 올리는 [상량제](/topic/상량제)(上樑祭) 때 사용하는 [축문](/topic/축문)(祝文). | 정의 | 목조 건물 건축 과정에서 최상부 부재인 종도리(마룻도리)를 올리는 [상량제](/topic/상량제)(上樑祭) 때 사용하는 [축문](/topic/축문)(祝文). | 내용 | 종도리를 올려놓는 과정인 상량은 건물 골격이 완성되는 단계이자 [가신](/topic/가신)(家神)인 성주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이 작업은 건축 과정에서 매우 중요하며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상량문으로써 건물 완성을 돕는다는 송축의 의미와 함께 축복의 노래로 종도리 올리는 일을 돕는다는 뜻을 담고 있다. 상량문은 문장의 길이와 형식에 따라 약간씩 다르지만 건물을 짓게 된 동기와 내력, 종도리를 올린 시간인 상량 시간, 여섯 방위에 대한 사, 기원문으로 구성된다. 상량 시간 외에도 터파기 날짜를 비롯해 주춧돌 놓는 날짜와 [입주](/topic/입주)(立柱) 날짜 등처럼 상징적이면서 중요한 조영(造營) 일자, 가주와 건축에 참여한 [목수](/topic/목수) 이름 등을 적기도 한다. 긴 글로 된 상량문의 사에는 동서남북상하 각 방위 앞에 ‘아랑위포량○’이 공통으로 들어간다. 그래서 상량문을 아랑사(兒郞詞), 육위(六偉), 아랑지송(兒郞之頌), 아랑지문(兒郞之文)이라고 부르며 양송(樑頌)으로 부르기도 한다. | 형식 | ■ 긴 상량문 긴 문장으로 된 상량문은 집을 짓게 된 내력과 동기, 동서남북상하 모두 6장으로 구성된 사(詞) 18수, ‘삼가 바라건대, 상량한 뒤에는[伏願上梁之後]’으로 시작하는 기원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중간에 들어가는 동서남북상하 6장 사의 첫 부분에는 ‘아랑위포량동(兒郞偉抛樑東)’ 따위처럼 아랑위를 수식으로 붙인다. 아랑위는 상량할 때 기운을 돋우기 위해 지르는 소리인 ‘이영차’나 ‘어기여차’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아랑은 원래 젊은 사람을 뜻하는 말이다. 그러나 상량문에서는 도[목수](/topic/목수)가 장인들을 싸잡아 부를 때 사용하는 상투적 표현으로 보는 견해도 있고, 아이로 해석하기도 한다. 경북 영주시 일대에서 [상량제](/topic/상량제)에 [허수아비](/topic/허수아비)를 사용하는 사례가 있어 아랑위를 허수아비로 해석하기도 한다. ■ 짧은 상량문 짧은 문장으로 된 상량문은 긴 상량문 형식에서 많이 축약되고 변형된 재액방지문자, 상량시(연월일시), 가주(家主) 생년, 건물 [좌향](/topic/좌향), 기원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글이 짧다고 해도 상량문은 어렵기 때문에 한학(漢學)에 밝은 사람이 지으며, 간혹 목수가 짓기도 한다. 짧은 상량문은 긴 상량문처럼 정해진 형식을 따르기보다 가주나 상량문을 쓴 사람에 따라 가감이 이루어져 다양하다. 일반적으로는 재액방지문자와 상량시를 적으며, 가주 생년과 건물 좌향을 생략하는 경우가 많다. 재액방지문자를 비롯한 요소가 두루 나타나는 상량문 예는 다음과 같다. ![가정신앙 상량문 1](/upload/img/20170106/20170106122452_t_.jpg) ![가정신앙 상량문 2](/upload/img/20170106/20170106122517_t_.jpg) ![가정신앙 상량문 3](/upload/img/20170106/20170106122535_t_.jpg) 짧은 상량문을 쓰는 위치는 종도리 바닥이다. 종도리에 쓰는 것은 이 부재가 집안의 중심이라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종도리 아래에 장여가 있으면 장여에 가려 글자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장여 바닥이나 종도리․장여 측면에 쓰기도 한다. 쓰는 방식은 대개 횡서(橫書)보다 종서(縱書)로 쓴다. 순서는 [안방](/topic/안방) 쪽에서 시작해 [건넌방](/topic/건넌방) 쪽으로 쓰는 경우가 많다. 이는 안방이 집의 중심이라는 인식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1. 재액방지문자([동물](/topic/동물) 문자) 짧은 상량문의 맨 처음과 끝에는 동물 문자를 서로 마주 보게 적는다. 문자로는 용(龍)과 거북[龜]이 가장 많이 쓰인다. 간혹 호랑이[虎], 봉(鳳), 기린(麒麟)도 쓰인다. 용은 일반적으로 ‘용(龍)’만 적지만 용용용(龍龍龍), 용반(龍盤), 해룡(海龍), 활룡해룡(活龍 海龍), 구룡(龜龍)으로 적기도 한다. ‘구(龜)’도 대개 구(龜)만 적지만 구구구(龜龜龜), 낙구(洛龜), 수구(水龜), 산구(山龜), 하구(河龜)로 적기도 한다. 때로 상형문자나 그림으로 대신하기도 한다. 상량문에 ‘용’과 ‘거북’을 적는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주장이 있다. 그 가운데 용과 거북이 물과 관련된 동물이라는 점에서 화재에 취약한 목조 건물에 불이 나지 않기를 바라는 의미로 해석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김홍식(金鴻植)은 『한국의 [민가](/topic/민가)』에서 “용(龍)․구(龜)자를 쓰는 것은 거북과 용이 물 속에서 사는 신령한 동물로서 불을 이긴다는 화재 방지의 오행사상에서 나온 것 같다.”고 하였으며, 김광언(金光彦)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topic/사전)』 「상량고사」에서 “상량문 좌우 양 끝에는 용(龍)과 구(龜)자를 서로 마주 대하도록 쓰는데, 이는 용과 거북이 물의 신[水神]이므로 이렇게 적어두면 화재를 막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동물은 아니지만 해(海), 수(水), 하(河) 등의 문자도 쓴다. 이 역시 물을 상징하는 문자로, 화재를 방지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전북 군산시 성산면 고봉리 채원병(蔡元秉) 씨 가옥 상량문의 ‘묘(淼)’자나 경복궁 근정전 종도리 아래 장여에서 상량문과 함께 발견된 육각형 은판의 ‘묘(淼)’, 1000여 자의 ‘용(龍)’자로 메워 쓴 ‘수(水)’ 모두 화재 방지와 연관된다. 경남 함양군 안의면 금천리 허삼돌 씨 가옥의 [사랑채](/topic/사랑채) 상량문에는 ‘용(龍)’자 주위에 ‘해(海)’자, ‘호(虎)’자 주위에 ‘풍(風)’자를 각각 적기도 했다. ![가정신앙 상량문 4](/upload/img/20170106/20170106122948_t_.jpg) 거북은 수신으로서 화재 방지의 의미가 있지만 장수 동물이나 길상 동물로도 인식된다. 경기도 남양주시 이패동의 한 제보자에 따르면 상량문 맨 처음과 끝에 ‘龍虎’ 또는 ‘龍龜’라고 쓰는데 용은 높이 존중하는 동물, 호랑이는 짐승 가운데 가장 위대한 동물, 거북은 오래 사는 동물을 각각 의미한다고 한다. 호랑이는 가장 위대한 동물로서 벽사(辟邪)의 의미를 지니며, 기린(麒麟)․봉(鳳)과 같은 길상 동물을 쓰는 것도 이러한 인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경기도 양평군 양평읍 창대리에서는 ‘하룡(河龍)’과 ‘낙구(洛龜)’를 화재 및 재액을 방지하는 의미로 썼다고 한다. 맨 처음과 끝에 문자를 쓴 예는 다음과 같다. ![가정신앙 상량문 5](/upload/img/20170106/20170106123010_t_.jpg) 2. 상량시(上樑時) 상량문에는 종도리를 올린 시간인 상량시를 적는다. 상량시는 긴 상량문에 간혹 적는 것과 달리 짧은 상량문에 대부분 적으며, 사람의 태어난 연월일시를 간지 또는 숫자로 쓴다. 간지는 ‘갑자(甲子)’처럼 쓰는 것이 일반적이다. 전북 임실군 오수면 둔덕리 이웅재 씨 가옥처럼 계(癸)와 해(亥)를 대신하여 흑(黑)이나 저(猪)를 쓴 예도 있다. 상량이라는 것은 비록 건물이지만 마치 사람의 탄생처럼 탄생일인 연월일시가 정해진다는 의미이다. 이에 따라 상량일을 상량문 안에 사주(四柱)로 기록하기도 한다. 그 예로 경북 성주군 한개[마을](/topic/마을) 한주종택 [사당](/topic/사당) 상량문에서는 ‘[사과](/topic/사과) 정미 갑인 갑진 신미(四課 丁未 甲寅 甲辰 辛未)’로 썼다. 연도를 적는 방법은 ① 연도(또는 年號)+간지(십간십이지), ② 연도, ③ 간지 등이다. ‘광무칠년갑진(光武七年甲辰)’처럼 연도+간지로 표기한 방식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세재(歲在)’ 또는 ‘태세(太歲)’라고 적고 간지 또는 연도를 적기도 하며, ‘상지’(上之, 현 임금 즉위년 기준)를 쓰기도 한다. 연호는 집주인과 글쓴이의 세계관이 반영되기도 한다. 청나라 연호인 ‘동치(同治)’, ‘광서(光緖)’, ‘함풍(咸豐)’, ‘가경(嘉慶)’과 명나라 연호인 ‘숭정(崇禎)’은 집주인의 다른 세계관을 보여준다. 대한제국기에 지어진 민가 상량문에는 ‘광무(光武)’ 연호가 많이 등장한다.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민가 가운데에는 일제 연호인 소화(昭和)가 대부분이지만 단기(檀紀)나 개국 528년(開國五百二十八年)처럼 소화 연호를 사용하지 않은 예도 있다. 서원과 같은 유교 건물인 경우 공부자탄강(孔夫子誕降), 사찰 건물은 불기(佛紀)나 세존응화(世尊應化)로 각각 쓰는 등 건물 성격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구력(舊曆)’이나 ‘주후(主後, 예수 탄생 이후인 서기를 가리킴)’를 쓰는 경우도 있으며, 최근에 지어진 가옥은 서기(西紀)를 많이 사용한다. 반면에 연호 없이 ‘무자(戊子)’나 ‘기미(己未)’ 등 간지만 쓰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십간십이지로 쓰지만 전북 임실군 오수면 둔덕리 이웅재 씨 가옥 상량문처럼 ‘임자구월 이십팔일병술’을 고갑자(古甲子)인 ‘玄黓[임]困敦[자]玄[구]月二十八日柔兆[병]閹茂[술]’로 기록하기도 한다. 연도 다음에는 월일시를 적는다. 따라서 ○월○일○시로 적고 그 뒤에 상량 또는 [입주](/topic/입주)상량(立柱上樑)이라고 쓴다. 시간을 적는 방법은 대개 간지로 표기하여 오시(午時, 오전 11시~오후 1시)처럼 적는다. 최근에는 ‘오전십시(午前十時)’처럼 오전․오후로 적는 사례가 점차 많아진다. ‘시(時)’를 적을 때 고자(古字)인 ‘시(峕)’를 사용하기도 한다. 상량을 올린 시간 외에 간혹 개기(開基)나 정초(定礎)의 날짜, 시간을 적기도 한다. 수주상량(竪柱上樑)이나 입주상량성조(立柱上樑成造)로 적기도 한다. 3. 좌향(坐向) 상량문에 건물 좌향을 적는다. 방식은 간지로 방향을 기록하여 ‘자좌오향(子坐午向)’처럼 좌와 향을 적는다. ‘유좌(酉坐)’와 같이 좌만 쓰기도 한다. 이는 좌만 기록하더라도 향을 알 수 있기 때문에 좌향을 기록한 것과 같다. 또 괘에 따라 건좌손향(乾坐巽向), 간좌(艮坐), 간좌곤향(艮坐坤向)처럼 쓰기도 한다. 4. 가주(家主) 상량문에 가주를 적는다. 이름은 적지 않고 가주 생년을 간지로 적어 ‘가주○○生’이라고 적는다. 가주 대신 택주(宅主)로 적거나 ‘成造運○○生’이라고 적기도 한다. 5. 기원문(祈願文) 짧은 상량문은 기원문도 간략하다. 기원문 가운데에는 ‘응천상지삼광 비인간지오복(應天上之三光 備人間之五福)’이 가장 많이 쓰인다. 삼광(三光)은 일(日)․월(月)․성(星), 오복(五福)은 수(壽)․부(富)․다남(多男)․위(位)․건강(健康)을 각각 이른다. ‘하늘의 해님․달님․별님은 감응하시어 인간의 오복을 내려주소서.’라는 뜻이다. 이 밖에 부귀영화 자손창성(富貴榮華子孫昌盛) 등도 쓰인다. [입춘첩](/topic/입춘첩)에 많이 쓰이는 글귀인 ‘부모천년수 자손만세영(父母千年壽子孫萬世榮)’도 가끔 쓰인다. 쓰는 방식은 기원문의 글자가 많아서 대개 두 줄로 쓰며, 다른 글자보다 작은 글씨로 쓴다. 6. 기타 내용 상량문에는 공사에 참여한 목수의 이름을 적기도 한다. 채원병 씨 가옥 [안채](/topic/안채) 상량문에는 ‘경신목경진금경인목경진금(庚申木庚辰金庚寅木庚辰金)’이라고 적혀 있다. 이는 오행이나 집이 영원히 존속하라는 경신신앙(庚申信仰)의 의미로 해석된다. | 내용 | 종도리를 올려놓는 과정인 상량은 건물 골격이 완성되는 단계이자 [가신](/topic/가신)(家神)인 성주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이 작업은 건축 과정에서 매우 중요하며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상량문으로써 건물 완성을 돕는다는 송축의 의미와 함께 축복의 노래로 종도리 올리는 일을 돕는다는 뜻을 담고 있다. 상량문은 문장의 길이와 형식에 따라 약간씩 다르지만 건물을 짓게 된 동기와 내력, 종도리를 올린 시간인 상량 시간, 여섯 방위에 대한 사, 기원문으로 구성된다. 상량 시간 외에도 터파기 날짜를 비롯해 주춧돌 놓는 날짜와 [입주](/topic/입주)(立柱) 날짜 등처럼 상징적이면서 중요한 조영(造營) 일자, 가주와 건축에 참여한 [목수](/topic/목수) 이름 등을 적기도 한다. 긴 글로 된 상량문의 사에는 동서남북상하 각 방위 앞에 ‘아랑위포량○’이 공통으로 들어간다. 그래서 상량문을 아랑사(兒郞詞), 육위(六偉), 아랑지송(兒郞之頌), 아랑지문(兒郞之文)이라고 부르며 양송(樑頌)으로 부르기도 한다. | 형식 | ■ 긴 상량문 긴 문장으로 된 상량문은 집을 짓게 된 내력과 동기, 동서남북상하 모두 6장으로 구성된 사(詞) 18수, ‘삼가 바라건대, 상량한 뒤에는[伏願上梁之後]’으로 시작하는 기원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중간에 들어가는 동서남북상하 6장 사의 첫 부분에는 ‘아랑위포량동(兒郞偉抛樑東)’ 따위처럼 아랑위를 수식으로 붙인다. 아랑위는 상량할 때 기운을 돋우기 위해 지르는 소리인 ‘이영차’나 ‘어기여차’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아랑은 원래 젊은 사람을 뜻하는 말이다. 그러나 상량문에서는 도[목수](/topic/목수)가 장인들을 싸잡아 부를 때 사용하는 상투적 표현으로 보는 견해도 있고, 아이로 해석하기도 한다. 경북 영주시 일대에서 [상량제](/topic/상량제)에 [허수아비](/topic/허수아비)를 사용하는 사례가 있어 아랑위를 허수아비로 해석하기도 한다. ■ 짧은 상량문 짧은 문장으로 된 상량문은 긴 상량문 형식에서 많이 축약되고 변형된 재액방지문자, 상량시(연월일시), 가주(家主) 생년, 건물 [좌향](/topic/좌향), 기원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글이 짧다고 해도 상량문은 어렵기 때문에 한학(漢學)에 밝은 사람이 지으며, 간혹 목수가 짓기도 한다. 짧은 상량문은 긴 상량문처럼 정해진 형식을 따르기보다 가주나 상량문을 쓴 사람에 따라 가감이 이루어져 다양하다. 일반적으로는 재액방지문자와 상량시를 적으며, 가주 생년과 건물 좌향을 생략하는 경우가 많다. 재액방지문자를 비롯한 요소가 두루 나타나는 상량문 예는 다음과 같다. ![가정신앙 상량문 1](/upload/img/20170106/20170106122452_t_.jpg) ![가정신앙 상량문 2](/upload/img/20170106/20170106122517_t_.jpg) ![가정신앙 상량문 3](/upload/img/20170106/20170106122535_t_.jpg) 짧은 상량문을 쓰는 위치는 종도리 바닥이다. 종도리에 쓰는 것은 이 부재가 집안의 중심이라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종도리 아래에 장여가 있으면 장여에 가려 글자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장여 바닥이나 종도리․장여 측면에 쓰기도 한다. 쓰는 방식은 대개 횡서(橫書)보다 종서(縱書)로 쓴다. 순서는 [안방](/topic/안방) 쪽에서 시작해 [건넌방](/topic/건넌방) 쪽으로 쓰는 경우가 많다. 이는 안방이 집의 중심이라는 인식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1. 재액방지문자([동물](/topic/동물) 문자) 짧은 상량문의 맨 처음과 끝에는 동물 문자를 서로 마주 보게 적는다. 문자로는 용(龍)과 거북[龜]이 가장 많이 쓰인다. 간혹 호랑이[虎], 봉(鳳), 기린(麒麟)도 쓰인다. 용은 일반적으로 ‘용(龍)’만 적지만 용용용(龍龍龍), 용반(龍盤), 해룡(海龍), 활룡해룡(活龍 海龍), 구룡(龜龍)으로 적기도 한다. ‘구(龜)’도 대개 구(龜)만 적지만 구구구(龜龜龜), 낙구(洛龜), 수구(水龜), 산구(山龜), 하구(河龜)로 적기도 한다. 때로 상형문자나 그림으로 대신하기도 한다. 상량문에 ‘용’과 ‘거북’을 적는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주장이 있다. 그 가운데 용과 거북이 물과 관련된 동물이라는 점에서 화재에 취약한 목조 건물에 불이 나지 않기를 바라는 의미로 해석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김홍식(金鴻植)은 『한국의 [민가](/topic/민가)』에서 “용(龍)․구(龜)자를 쓰는 것은 거북과 용이 물 속에서 사는 신령한 동물로서 불을 이긴다는 화재 방지의 오행사상에서 나온 것 같다.”고 하였으며, 김광언(金光彦)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topic/사전)』 「상량고사」에서 “상량문 좌우 양 끝에는 용(龍)과 구(龜)자를 서로 마주 대하도록 쓰는데, 이는 용과 거북이 물의 신[水神]이므로 이렇게 적어두면 화재를 막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동물은 아니지만 해(海), 수(水), 하(河) 등의 문자도 쓴다. 이 역시 물을 상징하는 문자로, 화재를 방지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전북 군산시 성산면 고봉리 채원병(蔡元秉) 씨 가옥 상량문의 ‘묘(淼)’자나 경복궁 근정전 종도리 아래 장여에서 상량문과 함께 발견된 육각형 은판의 ‘묘(淼)’, 1000여 자의 ‘용(龍)’자로 메워 쓴 ‘수(水)’ 모두 화재 방지와 연관된다. 경남 함양군 안의면 금천리 허삼돌 씨 가옥의 [사랑채](/topic/사랑채) 상량문에는 ‘용(龍)’자 주위에 ‘해(海)’자, ‘호(虎)’자 주위에 ‘풍(風)’자를 각각 적기도 했다. ![가정신앙 상량문 4](/upload/img/20170106/20170106122948_t_.jpg) 거북은 수신으로서 화재 방지의 의미가 있지만 장수 동물이나 길상 동물로도 인식된다. 경기도 남양주시 이패동의 한 제보자에 따르면 상량문 맨 처음과 끝에 ‘龍虎’ 또는 ‘龍龜’라고 쓰는데 용은 높이 존중하는 동물, 호랑이는 짐승 가운데 가장 위대한 동물, 거북은 오래 사는 동물을 각각 의미한다고 한다. 호랑이는 가장 위대한 동물로서 벽사(辟邪)의 의미를 지니며, 기린(麒麟)․봉(鳳)과 같은 길상 동물을 쓰는 것도 이러한 인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경기도 양평군 양평읍 창대리에서는 ‘하룡(河龍)’과 ‘낙구(洛龜)’를 화재 및 재액을 방지하는 의미로 썼다고 한다. 맨 처음과 끝에 문자를 쓴 예는 다음과 같다. ![가정신앙 상량문 5](/upload/img/20170106/20170106123010_t_.jpg) 2. 상량시(上樑時) 상량문에는 종도리를 올린 시간인 상량시를 적는다. 상량시는 긴 상량문에 간혹 적는 것과 달리 짧은 상량문에 대부분 적으며, 사람의 태어난 연월일시를 간지 또는 숫자로 쓴다. 간지는 ‘갑자(甲子)’처럼 쓰는 것이 일반적이다. 전북 임실군 오수면 둔덕리 이웅재 씨 가옥처럼 계(癸)와 해(亥)를 대신하여 흑(黑)이나 저(猪)를 쓴 예도 있다. 상량이라는 것은 비록 건물이지만 마치 사람의 탄생처럼 탄생일인 연월일시가 정해진다는 의미이다. 이에 따라 상량일을 상량문 안에 사주(四柱)로 기록하기도 한다. 그 예로 경북 성주군 한개[마을](/topic/마을) 한주종택 [사당](/topic/사당) 상량문에서는 ‘[사과](/topic/사과) 정미 갑인 갑진 신미(四課 丁未 甲寅 甲辰 辛未)’로 썼다. 연도를 적는 방법은 ① 연도(또는 年號)+간지(십간십이지), ② 연도, ③ 간지 등이다. ‘광무칠년갑진(光武七年甲辰)’처럼 연도+간지로 표기한 방식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세재(歲在)’ 또는 ‘태세(太歲)’라고 적고 간지 또는 연도를 적기도 하며, ‘상지’(上之, 현 임금 즉위년 기준)를 쓰기도 한다. 연호는 집주인과 글쓴이의 세계관이 반영되기도 한다. 청나라 연호인 ‘동치(同治)’, ‘광서(光緖)’, ‘함풍(咸豐)’, ‘가경(嘉慶)’과 명나라 연호인 ‘숭정(崇禎)’은 집주인의 다른 세계관을 보여준다. 대한제국기에 지어진 민가 상량문에는 ‘광무(光武)’ 연호가 많이 등장한다.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민가 가운데에는 일제 연호인 소화(昭和)가 대부분이지만 단기(檀紀)나 개국 528년(開國五百二十八年)처럼 소화 연호를 사용하지 않은 예도 있다. 서원과 같은 유교 건물인 경우 공부자탄강(孔夫子誕降), 사찰 건물은 불기(佛紀)나 세존응화(世尊應化)로 각각 쓰는 등 건물 성격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구력(舊曆)’이나 ‘주후(主後, 예수 탄생 이후인 서기를 가리킴)’를 쓰는 경우도 있으며, 최근에 지어진 가옥은 서기(西紀)를 많이 사용한다. 반면에 연호 없이 ‘무자(戊子)’나 ‘기미(己未)’ 등 간지만 쓰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십간십이지로 쓰지만 전북 임실군 오수면 둔덕리 이웅재 씨 가옥 상량문처럼 ‘임자구월 이십팔일병술’을 고갑자(古甲子)인 ‘玄黓[임]困敦[자]玄[구]月二十八日柔兆[병]閹茂[술]’로 기록하기도 한다. 연도 다음에는 월일시를 적는다. 따라서 ○월○일○시로 적고 그 뒤에 상량 또는 [입주](/topic/입주)상량(立柱上樑)이라고 쓴다. 시간을 적는 방법은 대개 간지로 표기하여 오시(午時, 오전 11시~오후 1시)처럼 적는다. 최근에는 ‘오전십시(午前十時)’처럼 오전․오후로 적는 사례가 점차 많아진다. ‘시(時)’를 적을 때 고자(古字)인 ‘시(峕)’를 사용하기도 한다. 상량을 올린 시간 외에 간혹 개기(開基)나 정초(定礎)의 날짜, 시간을 적기도 한다. 수주상량(竪柱上樑)이나 입주상량성조(立柱上樑成造)로 적기도 한다. 3. 좌향(坐向) 상량문에 건물 좌향을 적는다. 방식은 간지로 방향을 기록하여 ‘자좌오향(子坐午向)’처럼 좌와 향을 적는다. ‘유좌(酉坐)’와 같이 좌만 쓰기도 한다. 이는 좌만 기록하더라도 향을 알 수 있기 때문에 좌향을 기록한 것과 같다. 또 괘에 따라 건좌손향(乾坐巽向), 간좌(艮坐), 간좌곤향(艮坐坤向)처럼 쓰기도 한다. 4. 가주(家主) 상량문에 가주를 적는다. 이름은 적지 않고 가주 생년을 간지로 적어 ‘가주○○生’이라고 적는다. 가주 대신 택주(宅主)로 적거나 ‘成造運○○生’이라고 적기도 한다. 5. 기원문(祈願文) 짧은 상량문은 기원문도 간략하다. 기원문 가운데에는 ‘응천상지삼광 비인간지오복(應天上之三光 備人間之五福)’이 가장 많이 쓰인다. 삼광(三光)은 일(日)․월(月)․성(星), 오복(五福)은 수(壽)․부(富)․다남(多男)․위(位)․건강(健康)을 각각 이른다. ‘하늘의 해님․달님․별님은 감응하시어 인간의 오복을 내려주소서.’라는 뜻이다. 이 밖에 부귀영화 자손창성(富貴榮華子孫昌盛) 등도 쓰인다. [입춘첩](/topic/입춘첩)에 많이 쓰이는 글귀인 ‘부모천년수 자손만세영(父母千年壽子孫萬世榮)’도 가끔 쓰인다. 쓰는 방식은 기원문의 글자가 많아서 대개 두 줄로 쓰며, 다른 글자보다 작은 글씨로 쓴다. 6. 기타 내용 상량문에는 공사에 참여한 목수의 이름을 적기도 한다. 채원병 씨 가옥 [안채](/topic/안채) 상량문에는 ‘경신목경진금경인목경진금(庚申木庚辰金庚寅木庚辰金)’이라고 적혀 있다. 이는 오행이나 집이 영원히 존속하라는 경신신앙(庚申信仰)의 의미로 해석된다. | 역사 | [상량제](/topic/상량제)는 전통사회의 건축 조영 과정에서 행해지는 공정이자 제의로 텃고사[開基祭]와 함께 가장 중요하게 여겨진다. 이때 쓰는 [축문](/topic/축문)인 상량문(上樑文)은 중국 육조 때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유원(李裕元)의 『[임하필기](/topic/임하필기)(林下筆記)』 「경전화시편(瓊田花市編)」에는 『문체명변(文體明辯)』의 상량문 개론을 요약한 내용이 나온다. 비록 중국 사례이지만 우리나라와 형식이 유사한 것으로 추측된다. 상량문이란 공사(工師)가 종도리를 올릴 때 하는 말이다. 세속에서 궁실을 지을 때면 반드시 길한 날을 받아서 상량을 한다. 이때 친지와 손님들이 요즘 만두(饅頭)라고 부르는 면(麵)에 싼 음식을 다른 음식물과 함께 올리며 [경사](/topic/경사)를 축하하고, 장인(匠人)에게 음식을 베풀어 주었다. 그러면 장인의 우두머리가 면을 종도리에 던지면서 이 글을 외우며 축원한다. 상량문의 첫머리와 끝 부분은 모두 변려문을 사용하고 중간에는 각각 3구씩으로 된 시 여섯 수를 써서 사방(四方)과 상하에 배당하니, 이것은 대개 속례(俗禮)인 듯하다. 이제 그 법을 논하여 하나의 문체 유형으로 구비하였다. 또 살펴보건대, 원나라 진역증(陳繹曾)의 『문전(文筌)』에 실린 보병문(寶甁文)에 “[미장이](/topic/미장이)가 용마루[棟脊]를 칠할 때 부르는 노래이다.”라고 하였는데, 여러 문집에는 이런 글이 없으므로 정식을 삼을 수가 없다. 삼가 생각건대, 그 글은 대략 상량문과 같고 끝 부분에 시를 열거한 것은 약어(樂語)의 구호(口號)에 비견되는데, 다만 사방과 상하에 배당되는 글이 없을 뿐이다. 옳은지 그른지 알 수가 없으나, 우선 그 말을 여기에다 붙여두기도 한다. 송인(宋人)이 또 상패문(上牌文)을 두었는데, 이것은 대개 [편액](/topic/편액)(扁額)을 올릴 때 사용하는 말이다. 이 역시 상량문으로 인하여 한 단계 발전시킨 것이다. 『대한화[사전](/topic/사전)(大漢和辭典)』에는 ‘상량문’에 대해 문체의 명칭이며, 상량제 때 쓰는 축문으로 육조 때부터 시작되었고, 문(文)은 나란히 쓰며, 마지막에 시를 덧붙인다고 적혀 있다. 그러면서 상량문은 상하동서남북 모두 6장(章)으로 구성되며, 문의 처음과 장(章)마다 들어가는 시의 첫 부분에 ‘아랑위(兒郎偉)’라는 3자(字)를 수식으로 붙인다고 적고 있다. 『고려사(高麗史)』에는 1309년(충선왕 원년) 연경궁 상량 때 관리들이 원나라 제도를 본떠서 은, [명주](/topic/명주), [모시](/topic/모시)를 예물로 바쳤다는 기록이 있어 상량제가 늦어도 고려시대에는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상량문은 기록상 이보다 앞서 이규보(李奎報)의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잡저(雜著)」 ‘을유년대창니고상량문(乙酉年大倉泥庫上梁文)’에 나온다. 『태종실록(太宗實錄)』에는 사헌부에서 전사 판관(典祀判官) 박윤영이 누문 상량제(樓門上樑祭)에 향탄(香炭)을 바치는 것을 빠뜨려 그의 죄를 청한다는 내용이 나온다. 상량문을 국가에서 공식적으로 논의한 사례로는 『선조실록(宣祖實錄)』의 태묘(太廟) 상량문이 있다. 태묘 상량 때 선조와 신하들이 상량문을 의논하면서 “상량문은 당초부터 예의(禮儀)에 관계되지는 않았으나 아마도 중고(中古)에 나온 듯하니 송도(頌禱, 경사를 기리고 축하함)의 뜻을 따르는 것이므로 예에 있고 없는 것을 묻는 것은 부당하다.”고 하였다. 또한 “이전부터 시작되어 송(宋)나라 예가 분명히 있는 만큼 몽고에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없으므로 태묘 상량의 [축사](/topic/축사)를 하게 되었다.”고 적고 있다. 이덕무(李德懋)의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 에는 나무 꼭대기에 까치가 집을 짓다가 중단하고 돌아오지 않자 외삼촌이 조카에게 “상량문을 지으면 까치가 집을 완성할 것이다.” 라고 일렀고, 이에 조카가 상량문을 짓자 까치가 비로소 집을 완성하였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이처럼 상량문을 지어야 집이 완성된다고 믿을 만큼 상량문은 건물 건축 과정에 꼭 필요하였다. 상량문은 건축 내력과 동기, ‘아랑위포량동(兒郞偉抛樑東)’이라는 구절을 시작으로 서․남․북․상․하(또는 동남서북상하) 순으로 된 사(詞), 기원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길고 난해한 형식의 글이 쓰인 상량문 문서는 점차 사라졌다. 오늘날에는 상량문이라 하면 대개 종도리나 장여에 직접 쓰인 묵서명(墨書銘) 형식을 지칭한다. 그리고 목구조 건물을 짓는 일이 거의 사라지면서 최근에는 상량문을 짓는 경우가 매우 드물고, 비록 상량문을 짓는다고 해도 간략하게 짓거나 한자 대신 한글로 짓는 예가 늘어나고 있다. | 역사 | [상량제](/topic/상량제)는 전통사회의 건축 조영 과정에서 행해지는 공정이자 제의로 텃고사[開基祭]와 함께 가장 중요하게 여겨진다. 이때 쓰는 [축문](/topic/축문)인 상량문(上樑文)은 중국 육조 때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유원(李裕元)의 『[임하필기](/topic/임하필기)(林下筆記)』 「경전화시편(瓊田花市編)」에는 『문체명변(文體明辯)』의 상량문 개론을 요약한 내용이 나온다. 비록 중국 사례이지만 우리나라와 형식이 유사한 것으로 추측된다. 상량문이란 공사(工師)가 종도리를 올릴 때 하는 말이다. 세속에서 궁실을 지을 때면 반드시 길한 날을 받아서 상량을 한다. 이때 친지와 손님들이 요즘 만두(饅頭)라고 부르는 면(麵)에 싼 음식을 다른 음식물과 함께 올리며 [경사](/topic/경사)를 축하하고, 장인(匠人)에게 음식을 베풀어 주었다. 그러면 장인의 우두머리가 면을 종도리에 던지면서 이 글을 외우며 축원한다. 상량문의 첫머리와 끝 부분은 모두 변려문을 사용하고 중간에는 각각 3구씩으로 된 시 여섯 수를 써서 사방(四方)과 상하에 배당하니, 이것은 대개 속례(俗禮)인 듯하다. 이제 그 법을 논하여 하나의 문체 유형으로 구비하였다. 또 살펴보건대, 원나라 진역증(陳繹曾)의 『문전(文筌)』에 실린 보병문(寶甁文)에 “[미장이](/topic/미장이)가 용마루[棟脊]를 칠할 때 부르는 노래이다.”라고 하였는데, 여러 문집에는 이런 글이 없으므로 정식을 삼을 수가 없다. 삼가 생각건대, 그 글은 대략 상량문과 같고 끝 부분에 시를 열거한 것은 약어(樂語)의 구호(口號)에 비견되는데, 다만 사방과 상하에 배당되는 글이 없을 뿐이다. 옳은지 그른지 알 수가 없으나, 우선 그 말을 여기에다 붙여두기도 한다. 송인(宋人)이 또 상패문(上牌文)을 두었는데, 이것은 대개 [편액](/topic/편액)(扁額)을 올릴 때 사용하는 말이다. 이 역시 상량문으로 인하여 한 단계 발전시킨 것이다. 『대한화[사전](/topic/사전)(大漢和辭典)』에는 ‘상량문’에 대해 문체의 명칭이며, 상량제 때 쓰는 축문으로 육조 때부터 시작되었고, 문(文)은 나란히 쓰며, 마지막에 시를 덧붙인다고 적혀 있다. 그러면서 상량문은 상하동서남북 모두 6장(章)으로 구성되며, 문의 처음과 장(章)마다 들어가는 시의 첫 부분에 ‘아랑위(兒郎偉)’라는 3자(字)를 수식으로 붙인다고 적고 있다. 『고려사(高麗史)』에는 1309년(충선왕 원년) 연경궁 상량 때 관리들이 원나라 제도를 본떠서 은, [명주](/topic/명주), [모시](/topic/모시)를 예물로 바쳤다는 기록이 있어 상량제가 늦어도 고려시대에는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상량문은 기록상 이보다 앞서 이규보(李奎報)의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잡저(雜著)」 ‘을유년대창니고상량문(乙酉年大倉泥庫上梁文)’에 나온다. 『태종실록(太宗實錄)』에는 사헌부에서 전사 판관(典祀判官) 박윤영이 누문 상량제(樓門上樑祭)에 향탄(香炭)을 바치는 것을 빠뜨려 그의 죄를 청한다는 내용이 나온다. 상량문을 국가에서 공식적으로 논의한 사례로는 『선조실록(宣祖實錄)』의 태묘(太廟) 상량문이 있다. 태묘 상량 때 선조와 신하들이 상량문을 의논하면서 “상량문은 당초부터 예의(禮儀)에 관계되지는 않았으나 아마도 중고(中古)에 나온 듯하니 송도(頌禱, 경사를 기리고 축하함)의 뜻을 따르는 것이므로 예에 있고 없는 것을 묻는 것은 부당하다.”고 하였다. 또한 “이전부터 시작되어 송(宋)나라 예가 분명히 있는 만큼 몽고에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없으므로 태묘 상량의 [축사](/topic/축사)를 하게 되었다.”고 적고 있다. 이덕무(李德懋)의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 에는 나무 꼭대기에 까치가 집을 짓다가 중단하고 돌아오지 않자 외삼촌이 조카에게 “상량문을 지으면 까치가 집을 완성할 것이다.” 라고 일렀고, 이에 조카가 상량문을 짓자 까치가 비로소 집을 완성하였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이처럼 상량문을 지어야 집이 완성된다고 믿을 만큼 상량문은 건물 건축 과정에 꼭 필요하였다. 상량문은 건축 내력과 동기, ‘아랑위포량동(兒郞偉抛樑東)’이라는 구절을 시작으로 서․남․북․상․하(또는 동남서북상하) 순으로 된 사(詞), 기원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길고 난해한 형식의 글이 쓰인 상량문 문서는 점차 사라졌다. 오늘날에는 상량문이라 하면 대개 종도리나 장여에 직접 쓰인 묵서명(墨書銘) 형식을 지칭한다. 그리고 목구조 건물을 짓는 일이 거의 사라지면서 최근에는 상량문을 짓는 경우가 매우 드물고, 비록 상량문을 짓는다고 해도 간략하게 짓거나 한자 대신 한글로 짓는 예가 늘어나고 있다. | 형태 | 상량문은 본래 긴 글을 네모 형태의 종이나 비단 같은 천에 먹으로 적으며, 이를 접어 종도리나 종도리를 받치는 부재인 장여에 홈을 파고 넣는다. 이런 상량문은 주로 [반가](/topic/반가)(班家)에서 쓰였으며, [민가](/topic/민가)(民家)에서는 거의 쓰이지 않았다. 이 밖에 짧은 글로 된 묵서명 또는 상량기(上樑記)라고 부르는 상량문도 있다. 이것은 종도리나 장여에 글씨를 직접 쓰는 형태로 반가와 민가에서 두루 사용되었다. 상량문이 직접 쓰인 종도리는 ‘상량보’라고 부르기도 한다. 현재 우리가 볼 수 있는 상량문은 대부분 종도리나 장여에 글이 적힌 묵서명 형태이다. 그러나 이것도 상량문을 적지 않거나 세월이 지나면서 글자를 해독할 수 없게 되는 등 사례가 줄어들고 있다. | 형태 | 상량문은 본래 긴 글을 네모 형태의 종이나 비단 같은 천에 먹으로 적으며, 이를 접어 종도리나 종도리를 받치는 부재인 장여에 홈을 파고 넣는다. 이런 상량문은 주로 [반가](/topic/반가)(班家)에서 쓰였으며, [민가](/topic/민가)(民家)에서는 거의 쓰이지 않았다. 이 밖에 짧은 글로 된 묵서명 또는 상량기(上樑記)라고 부르는 상량문도 있다. 이것은 종도리나 장여에 글씨를 직접 쓰는 형태로 반가와 민가에서 두루 사용되었다. 상량문이 직접 쓰인 종도리는 ‘상량보’라고 부르기도 한다. 현재 우리가 볼 수 있는 상량문은 대부분 종도리나 장여에 글이 적힌 묵서명 형태이다. 그러나 이것도 상량문을 적지 않거나 세월이 지나면서 글자를 해독할 수 없게 되는 등 사례가 줄어들고 있다. | 의의 | [상량제](/topic/상량제)는 전통사회의 건축 조영 과정에서 텃고사와 함께 가장 중요한 공정이자 제의로 여겨진다. 사람들은 종도리가 올려지는 순간인 상량 때 목조 건물의 구조체가 완성되면서 집도 다 지어지고 동시에 성주가 탄생한다고 인식하였다. 이에 따라 집의 생일(生日)을 정함에 있어서 [사전](/topic/사전)에 반드시 길일을 택하고, 집을 짓는 과정을 그 공정에 맞게 진행하였다. 상량을 통해 집이 지어지고 가옥 생일인 상량시가 정해지면 집도 마치 사람처럼 태어난 날, 즉 연월일시 사주(四柱)가 생긴다. 이처럼 전통사회에서는 상량을 통해 집은 물론 가족의 운명 또한 좌우된다고 믿어서 상량제와 상량문을 중시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기록하고 의미를 담고 있는 상량문은 그 속에 담긴 재액방지문자나 기원문을 통해 가옥 건축 과정에서 집이 사람만의 정주처(定住處)가 아니라 성주신을 비롯한 여러 [가신](/topic/가신)의 정주처이기도 하다는 인식 체계를 보여준다. 오늘날 남아 있는 여러 상량문 문서나 묵서형 상량문은 전통사회에서 상량제와 상량문을 중시하였음을 보여준다. 긴 글로 된 상량문의 건축 내력과 동기, 대지 형국(形局)은 집과 집을 둘러싼 당시 사람들의 인식 체계를 보여준다. 또한 마지막에 적힌 기원문을 통해 가옥 주인과 주변 사람들의 소원을 짐작할 수 있다. 짧은 글로 된 상량문의 상량시는 건축 연대를 추정하는 근거가 되며, 가주 생년과 상량시는 집을 지을 당시의 건립 동기 등을 알리는 역할을 한다. 또한 [동물](/topic/동물) 문자를 이용한 재액방지문자나 연호 표기 방식에서는 당시 사람들의 세계관과 인식 체계를 엿볼 수 있다. | 참고문헌 | 한국고건물상량기문집 (고고미술동인회, 1964) 한국의 주거민속지 (김광언, 민음사, 1988) 상량문집 (이정섭 역, 문화재관리국, 1991) 중․한․일, 세 나라의 주거민속연구 (김광언, 민속학연구 7, 국립민속박물관, 2000) 경기도민속지 Ⅳ (경기도박물관, 2001) 宣祖實錄, 林下筆記, 경기도 [민가](/topic/민가) 상량문 고찰 (기량, 생활문물연구 9, 국립민속박물관, 2003) 大漢和辭典 (諸橋轍次, 昭和43年) | 의의 | [상량제](/topic/상량제)는 전통사회의 건축 조영 과정에서 텃고사와 함께 가장 중요한 공정이자 제의로 여겨진다. 사람들은 종도리가 올려지는 순간인 상량 때 목조 건물의 구조체가 완성되면서 집도 다 지어지고 동시에 성주가 탄생한다고 인식하였다. 이에 따라 집의 생일(生日)을 정함에 있어서 [사전](/topic/사전)에 반드시 길일을 택하고, 집을 짓는 과정을 그 공정에 맞게 진행하였다. 상량을 통해 집이 지어지고 가옥 생일인 상량시가 정해지면 집도 마치 사람처럼 태어난 날, 즉 연월일시 사주(四柱)가 생긴다. 이처럼 전통사회에서는 상량을 통해 집은 물론 가족의 운명 또한 좌우된다고 믿어서 상량제와 상량문을 중시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기록하고 의미를 담고 있는 상량문은 그 속에 담긴 재액방지문자나 기원문을 통해 가옥 건축 과정에서 집이 사람만의 정주처(定住處)가 아니라 성주신을 비롯한 여러 [가신](/topic/가신)의 정주처이기도 하다는 인식 체계를 보여준다. 오늘날 남아 있는 여러 상량문 문서나 묵서형 상량문은 전통사회에서 상량제와 상량문을 중시하였음을 보여준다. 긴 글로 된 상량문의 건축 내력과 동기, 대지 형국(形局)은 집과 집을 둘러싼 당시 사람들의 인식 체계를 보여준다. 또한 마지막에 적힌 기원문을 통해 가옥 주인과 주변 사람들의 소원을 짐작할 수 있다. 짧은 글로 된 상량문의 상량시는 건축 연대를 추정하는 근거가 되며, 가주 생년과 상량시는 집을 지을 당시의 건립 동기 등을 알리는 역할을 한다. 또한 [동물](/topic/동물) 문자를 이용한 재액방지문자나 연호 표기 방식에서는 당시 사람들의 세계관과 인식 체계를 엿볼 수 있다. | 참고문헌 | 한국고건물상량기문집 (고고미술동인회, 1964) 한국의 주거민속지 (김광언, 민음사, 1988) 상량문집 (이정섭 역, 문화재관리국, 1991) 중․한․일, 세 나라의 주거민속연구 (김광언, 민속학연구 7, 국립민속박물관, 2000) 경기도민속지 Ⅳ (경기도박물관, 2001) 宣祖實錄, 林下筆記, 경기도 [민가](/topic/민가) 상량문 고찰 (기량, 생활문물연구 9, 국립민속박물관, 2003) 大漢和辭典 (諸橋轍次, 昭和43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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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속학회 | 해도부락제의 신 출현 형식고-상마도 당산제와 용왕제를 중심으로 | 김정업 | 1975 | 문화재관리국 | 용배 젓기 고 | 김광언 | 1994 | 국립민속박물관 | 위도띠뱃굿에서 보이는 띠배의 의미 고찰 | 서종원 | 2003 | 국립문화재연구소 | 위도띠뱃놀이 | 김익두 외 | 20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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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풍정상량문 | 13524 추풍정상량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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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성 삼가헌 대문간채 상량문(중요민속문화재 제104호) | 13523 달성 삼가헌 대문간채 상량문(중요민속문화재 제104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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