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inition | 부산광역시 영도구 신선동[마을](/topic/마을)의 안과태평(安過太平)과 각 가정의 소원성취를 기원하는 제의가 이루어지는 장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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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korname | 김승찬 |
정의 | 부산광역시 영도구 신선동[마을](/topic/마을)의 안과태평(安過太平)과 각 가정의 소원성취를 기원하는 제의가 이루어지는 장소. | 정의 | 부산광역시 영도구 신선동[마을](/topic/마을)의 안과태평(安過太平)과 각 가정의 소원성취를 기원하는 제의가 이루어지는 장소. | 내용 | [제관](/topic/제관)은 옛날에는 신선동 [마을](/topic/마을)회의에서 정월 초닷새쯤에 [생기복덕](/topic/생기복덕)하고 칼컫는(부정이 없고 깨끗한) 사람을 선정하면, 제관이 제의를 보좌할 유사 세 명을 선정하여 제의를 진행하였다. 그러나 1992년부터 상주하는 당주(현재 당주는 장운표, 1959년생)가 마을사람 가운데 제당 일에 협력하며 부정이 없는 사람을 제관으로 두 명([아헌](/topic/아헌)관·[종헌](/topic/종헌)관)과 축관으로 한 명 선정하여 제의를 행한다. 당주와 제관은 금기생활을 지켜야 한다. 금기생활은 당주의 경우 제의가 드는 정월 한 달과 구월 한 달이며, 제관은 제관으로 지정된 날로부터 제의가 끝나면 해제된다. 제의 날짜는 음력 [정월대보름](/topic/정월대보름)날 자시와 구월 열나흗날 자정으로 일 년에 두 번 지낸다. 당주는 제의 열흘 전에 하씨할매당 아래쪽에 있는 [요사](/topic/요사)채에서 제주(祭酒)를 담고, 제의 이틀 전 좋은 제수를 자갈치시장에 가서 사되 제수의 값은 깎지 않는다. 제수에는 닭고기와 쇠고기는 쓰지 않고 까만 수퇘지 한 마리를 구입한다. 수퇘지를 5각(앞다리 2, 뒷다리 2, 머리와 몸통)을 내어 제의 때 할배상과 할매당의 하씨할매상에 앞다리 각 1개, 삼신제왕상과 [용왕상](/topic/용왕상)에 뒷다리 각 1개, 산신상에 머리와 몸통을 바친다. 이 밖의 고기로는 민어, 조기, 납새미, 붉돔, 옥돔, 건어포(명태포·문어포)가 있다. 또 [시루떡](/topic/시루떡) 3종(백설기·찰떡·팥떡) 및 나물로는 콩나물, 도라지, 고사리, 무, [배추](/topic/배추), [미나리](/topic/미나리) 등이다. 과일로는 [대추](/topic/대추), 밤, 곶감, 배, [사과](/topic/사과), 귤, 바나나가 있다. 그리고 [강정](/topic/강정)을 올린다. 제수 장만은 제의 당일 산제당과 관계 있는 보살들이 와서 한다. 제의 때가 되면 당주·제관·축관은 흰 [두루마기](/topic/두루마기)에 갓을 쓰고 [참례](/topic/참례)한다. 제물은 산신도 앞에 진설한다. 첫째 줄에는 나물탕·메·백짐시루떡, 둘째 줄에 돼지고기·탕·찹쌀시루떡, 셋째 줄에 민어·조기·납새미·옥돔·콩나물·도라지·고사리·무채·배추전·미나리전·팥시루떡, 넷째 줄에 건어포(명태포·문어포)·대추·밤·곶감·배·술잔·사과·귤·바나나, 강정 순으로 올린다. [촛대](/topic/촛대)는 첫째 줄 양쪽에 놓는다. [향로](/topic/향로)는 제단 아래 향로대가 있어 그곳에 둔다. 제의는 고씨할배제-하씨할매제-삼신제왕할매제-산신제-[용왕제](/topic/용왕제)의 순서로 행한다. 각 제의의 절차는 유가식으로 촛불을 밝히고 제수를 진설한 뒤 당주가 [초헌](/topic/초헌)관이 되어 향을 사르고 술을 올린 뒤 일동이 재배한다. 일동의 재배가 끝나면 개반삽시(메 그릇 뚜껑을열고 수저를 올려놓음)하고 축관이 [독축](/topic/독축)한다. 할배당의 [축문](/topic/축문)은 아래와 같이 한글로 되어있다. 고씨제 축문 유세차 년 월 십오일 유학 인동장씨 장운표 감소고우 복유고씨귀신유신봉우 비무후간영도구구민제해 소멸수복강길영구불열 근구주찬용신보고 상향 독축을 하고 나면 아헌관과 종헌관이 차례로 [헌작](/topic/헌작) 재배한 뒤 잠시 기다렸다가 수저를 거두고 메뚜껑을 덮은 다음 일동이 재배하고 소지를 올린다. 소지를 올릴 때 먼저 할배소지를 한 장 올리고 그다음 당주소지를 올리고 뒤이어 마을 사람들이 써 준 소지들을 올리고 [철상](/topic/철상)한다. 다음 할매제도 할배제와 같은 절차로 행한다. 할매제의 축문도 한글로 되어 있다. 하씨제 축문 유세차 년 월 십오일 유학 인동장씨 장운표 감소고우 복유하씨지신유신보우 비무휴판자도민여자 중확업자중부복리일증 제해소멸무궁발전근이 청작용신호고 상향 그다음 행해지는 삼신제왕할매제는 할배제에 쓴 제수를 그대로 옮겨와 쓰며, 메·나물탕·돼지고기만 바꾼다. 제의 절차는 할매제와 같되 축문과 소지는 하지 않는다. 그다음천왕[장군](/topic/장군)신상 앞에서 산신제를 지낸다. 산신제는 할배제와 같은 절차로 하되 제수는 돼지고기의 머리와 몸통을 올린다. 축문은 한글로 되어 있으며, 소지는 올리지 않는다. 산신제 축문 유세차 년 월 십오일 유학 인동장씨 장운표 감소고우 복유산신진아도소제창복 수사치상[구유](/topic/구유)페세매인 사가제호주송야도기공 영궐덕시사보경멩백실 방연삼구신기강길인급 가족기궐육축성군천백상 원길일자천성형양양여재 기감향삼백육순서협앙망유 영시앙항감 상향 산신제가 끝나면 다시 고씨할배당 아래에 있는 샘에서 마지막으로 용왕제를 올린다. 할배제처럼 제수를 올리고 당주가 [단작](/topic/단작) 재배하면 당주와 더불어 제관들도 함께 재배함으로써 제의를 끝낸다. 그리고 [잡귀잡신](/topic/잡귀잡신)을 위해 산제당 안의 요사채에 살고 있는 보살이 작은 상에 메, 나물, 고기를 약간 준비하여 ‘산제당’이라 쓰인 일주문 아래에 갖다 놓음으로써 모든 제의는 끝난다. 제의가 끝나면 당주를 비롯한 제관과 제수를 장만하는 데 도운 보살들이 요사채에 모여 함께 [음복](/topic/음복)을 하고 따로 남긴 제물을 신선동 경로당과 복지회관에 보낸다. 제수 경비는제당에 굿하러 오는 이들의 헌납금과 불전함에 넣은 [시주](/topic/시주)금으로 충당하며 한 차례에 약 500만 원이 든다고 한다. 산제당이 거의 개인의 암자와 같아 결산보고는 없다. | 참고문헌 | 增補東國輿地勝覽, 부산의 고적과 유물 (김의환, 아성출판사, 1969) 한국의 향토신앙 (장주근, 을유문화사, 1998) 전국의 기도터와 굿당-경상·제주지역 (김덕묵, 한국민속기록보존소, 2004) 부산의 당제 (김승찬 외, 부산광역시사편찬위원회, 2005) | 내용 | [제관](/topic/제관)은 옛날에는 신선동 [마을](/topic/마을)회의에서 정월 초닷새쯤에 [생기복덕](/topic/생기복덕)하고 칼컫는(부정이 없고 깨끗한) 사람을 선정하면, 제관이 제의를 보좌할 유사 세 명을 선정하여 제의를 진행하였다. 그러나 1992년부터 상주하는 당주(현재 당주는 장운표, 1959년생)가 마을사람 가운데 제당 일에 협력하며 부정이 없는 사람을 제관으로 두 명([아헌](/topic/아헌)관·[종헌](/topic/종헌)관)과 축관으로 한 명 선정하여 제의를 행한다. 당주와 제관은 금기생활을 지켜야 한다. 금기생활은 당주의 경우 제의가 드는 정월 한 달과 구월 한 달이며, 제관은 제관으로 지정된 날로부터 제의가 끝나면 해제된다. 제의 날짜는 음력 [정월대보름](/topic/정월대보름)날 자시와 구월 열나흗날 자정으로 일 년에 두 번 지낸다. 당주는 제의 열흘 전에 하씨할매당 아래쪽에 있는 [요사](/topic/요사)채에서 제주(祭酒)를 담고, 제의 이틀 전 좋은 제수를 자갈치시장에 가서 사되 제수의 값은 깎지 않는다. 제수에는 닭고기와 쇠고기는 쓰지 않고 까만 수퇘지 한 마리를 구입한다. 수퇘지를 5각(앞다리 2, 뒷다리 2, 머리와 몸통)을 내어 제의 때 할배상과 할매당의 하씨할매상에 앞다리 각 1개, 삼신제왕상과 [용왕상](/topic/용왕상)에 뒷다리 각 1개, 산신상에 머리와 몸통을 바친다. 이 밖의 고기로는 민어, 조기, 납새미, 붉돔, 옥돔, 건어포(명태포·문어포)가 있다. 또 [시루떡](/topic/시루떡) 3종(백설기·찰떡·팥떡) 및 나물로는 콩나물, 도라지, 고사리, 무, [배추](/topic/배추), [미나리](/topic/미나리) 등이다. 과일로는 [대추](/topic/대추), 밤, 곶감, 배, [사과](/topic/사과), 귤, 바나나가 있다. 그리고 [강정](/topic/강정)을 올린다. 제수 장만은 제의 당일 산제당과 관계 있는 보살들이 와서 한다. 제의 때가 되면 당주·제관·축관은 흰 [두루마기](/topic/두루마기)에 갓을 쓰고 [참례](/topic/참례)한다. 제물은 산신도 앞에 진설한다. 첫째 줄에는 나물탕·메·백짐시루떡, 둘째 줄에 돼지고기·탕·찹쌀시루떡, 셋째 줄에 민어·조기·납새미·옥돔·콩나물·도라지·고사리·무채·배추전·미나리전·팥시루떡, 넷째 줄에 건어포(명태포·문어포)·대추·밤·곶감·배·술잔·사과·귤·바나나, 강정 순으로 올린다. [촛대](/topic/촛대)는 첫째 줄 양쪽에 놓는다. [향로](/topic/향로)는 제단 아래 향로대가 있어 그곳에 둔다. 제의는 고씨할배제-하씨할매제-삼신제왕할매제-산신제-[용왕제](/topic/용왕제)의 순서로 행한다. 각 제의의 절차는 유가식으로 촛불을 밝히고 제수를 진설한 뒤 당주가 [초헌](/topic/초헌)관이 되어 향을 사르고 술을 올린 뒤 일동이 재배한다. 일동의 재배가 끝나면 개반삽시(메 그릇 뚜껑을열고 수저를 올려놓음)하고 축관이 [독축](/topic/독축)한다. 할배당의 [축문](/topic/축문)은 아래와 같이 한글로 되어있다. 고씨제 축문 유세차 년 월 십오일 유학 인동장씨 장운표 감소고우 복유고씨귀신유신봉우 비무후간영도구구민제해 소멸수복강길영구불열 근구주찬용신보고 상향 독축을 하고 나면 아헌관과 종헌관이 차례로 [헌작](/topic/헌작) 재배한 뒤 잠시 기다렸다가 수저를 거두고 메뚜껑을 덮은 다음 일동이 재배하고 소지를 올린다. 소지를 올릴 때 먼저 할배소지를 한 장 올리고 그다음 당주소지를 올리고 뒤이어 마을 사람들이 써 준 소지들을 올리고 [철상](/topic/철상)한다. 다음 할매제도 할배제와 같은 절차로 행한다. 할매제의 축문도 한글로 되어 있다. 하씨제 축문 유세차 년 월 십오일 유학 인동장씨 장운표 감소고우 복유하씨지신유신보우 비무휴판자도민여자 중확업자중부복리일증 제해소멸무궁발전근이 청작용신호고 상향 그다음 행해지는 삼신제왕할매제는 할배제에 쓴 제수를 그대로 옮겨와 쓰며, 메·나물탕·돼지고기만 바꾼다. 제의 절차는 할매제와 같되 축문과 소지는 하지 않는다. 그다음천왕[장군](/topic/장군)신상 앞에서 산신제를 지낸다. 산신제는 할배제와 같은 절차로 하되 제수는 돼지고기의 머리와 몸통을 올린다. 축문은 한글로 되어 있으며, 소지는 올리지 않는다. 산신제 축문 유세차 년 월 십오일 유학 인동장씨 장운표 감소고우 복유산신진아도소제창복 수사치상[구유](/topic/구유)페세매인 사가제호주송야도기공 영궐덕시사보경멩백실 방연삼구신기강길인급 가족기궐육축성군천백상 원길일자천성형양양여재 기감향삼백육순서협앙망유 영시앙항감 상향 산신제가 끝나면 다시 고씨할배당 아래에 있는 샘에서 마지막으로 용왕제를 올린다. 할배제처럼 제수를 올리고 당주가 [단작](/topic/단작) 재배하면 당주와 더불어 제관들도 함께 재배함으로써 제의를 끝낸다. 그리고 [잡귀잡신](/topic/잡귀잡신)을 위해 산제당 안의 요사채에 살고 있는 보살이 작은 상에 메, 나물, 고기를 약간 준비하여 ‘산제당’이라 쓰인 일주문 아래에 갖다 놓음으로써 모든 제의는 끝난다. 제의가 끝나면 당주를 비롯한 제관과 제수를 장만하는 데 도운 보살들이 요사채에 모여 함께 [음복](/topic/음복)을 하고 따로 남긴 제물을 신선동 경로당과 복지회관에 보낸다. 제수 경비는제당에 굿하러 오는 이들의 헌납금과 불전함에 넣은 [시주](/topic/시주)금으로 충당하며 한 차례에 약 500만 원이 든다고 한다. 산제당이 거의 개인의 암자와 같아 결산보고는 없다. | 참고문헌 | 增補東國輿地勝覽, 부산의 고적과 유물 (김의환, 아성출판사, 1969) 한국의 향토신앙 (장주근, 을유문화사, 1998) 전국의 기도터와 굿당-경상·제주지역 (김덕묵, 한국민속기록보존소, 2004) 부산의 당제 (김승찬 외, 부산광역시사편찬위원회, 2005) | 역사 | 아씨당(阿氏堂)은 본래 하씨신당(河氏神堂)이었다. 하씨신당의 위치는 1908년에 설립된 사립 옥성학교(玉成學校) 옆의 수목 가운데에 있었으나 이 학교가 폐교되고 1941년에영도공립보통학교(현재 영도초등학교)를 세우면서 학교 부지 확충을 위해 하씨신당을 헐게 됨으로써 신선동의 계곡인 현 위치로 옮기게 되었다. 하씨신당의 내력은 다음과 같다. 부산 서구의「 시약산산제당약사」에 따르면 최재우의 여동생이 동학란에 피신하여 시약산에서 당집을 지어 살았다. 최재우의 조카뻘 되는 최씨와 그 부인인 진양 하씨가 와서 최씨녀를 시봉하다가 하씨가 19세기 말엽에 영도 고갈산(枯渴山, 지금의 봉래산) 중턱으로 가서 당을 세우고 살다가 죽었다. 이에 주민들이 그 당을 하씨신당이라 칭하였다고 한다. 하씨신당(할매당)을 현 위치로 옮긴 뒤 고씨신당(할배당)을 세우고, 고씨신당 뒤 바위 가운데에 천왕[장군](/topic/장군)신상(산신상)을 세웠다고한다. | 역사 | 아씨당(阿氏堂)은 본래 하씨신당(河氏神堂)이었다. 하씨신당의 위치는 1908년에 설립된 사립 옥성학교(玉成學校) 옆의 수목 가운데에 있었으나 이 학교가 폐교되고 1941년에영도공립보통학교(현재 영도초등학교)를 세우면서 학교 부지 확충을 위해 하씨신당을 헐게 됨으로써 신선동의 계곡인 현 위치로 옮기게 되었다. 하씨신당의 내력은 다음과 같다. 부산 서구의「 시약산산제당약사」에 따르면 최재우의 여동생이 동학란에 피신하여 시약산에서 당집을 지어 살았다. 최재우의 조카뻘 되는 최씨와 그 부인인 진양 하씨가 와서 최씨녀를 시봉하다가 하씨가 19세기 말엽에 영도 고갈산(枯渴山, 지금의 봉래산) 중턱으로 가서 당을 세우고 살다가 죽었다. 이에 주민들이 그 당을 하씨신당이라 칭하였다고 한다. 하씨신당(할매당)을 현 위치로 옮긴 뒤 고씨신당(할배당)을 세우고, 고씨신당 뒤 바위 가운데에 천왕[장군](/topic/장군)신상(산신상)을 세웠다고한다. | 형태 | 1942년에 세운 제당들이 낡아 1995년 음력 8월 19일에 개축 수리를 시작하여 12월 3일에 마쳤다. 고씨할배당은 건축면적이 15.51㎡로 [기와](/topic/기와) [우진각지붕](/topic/우진각지붕)에 벽은 블록으로 쌓아시멘트로 마감하였다. 문은 정면 오른쪽에 [여닫이](/topic/여닫이) 외짝 나무문과 왼쪽에 태극도형이 그려진 여닫이 두 짝 나무문이 달려 있고, 앞 [추녀](/topic/추녀) 끝에 흰 플라스틱 [차양](/topic/차양)대를 붙였다. 제단은 77㎝ 높이에 두께 2㎝의 화강암 대리석을 П형으로 놓았다. 제단 위에는 호랑이를 데리고 있는 산신도가 있고, 제단 아래에는 불전함이 있다. 하씨할매당은 고씨할배당의 서북쪽으로 15m 지점에 있다. 당의 건축면적은 15.18㎡이며 기와 우진각지붕을 비롯해 문과 제단은 고씨할배당과 같다. 제단 위에는 여신도가 두개 걸려 있다. 오른쪽이 삼신제왕할매이고, 왼쪽이 하씨할매이다. 두 할매의 제단 아래에는 각각 불전함이 놓여 있다. 두 제당의 주위에는 출입구를 제외하고 [돌담](/topic/돌담)을 직사각형으로 쌓아 놓았다. 고씨할배당 뒤 바위에 세운 천왕[장군](/topic/장군)신상(산신상)은 키가 180㎝ 정도로 오른손에는 [삼지창](/topic/삼지창)을 치켜들었고, 왼손에는 칼을 아래로 비껴들었다. | 형태 | 1942년에 세운 제당들이 낡아 1995년 음력 8월 19일에 개축 수리를 시작하여 12월 3일에 마쳤다. 고씨할배당은 건축면적이 15.51㎡로 [기와](/topic/기와) [우진각지붕](/topic/우진각지붕)에 벽은 블록으로 쌓아시멘트로 마감하였다. 문은 정면 오른쪽에 [여닫이](/topic/여닫이) 외짝 나무문과 왼쪽에 태극도형이 그려진 여닫이 두 짝 나무문이 달려 있고, 앞 [추녀](/topic/추녀) 끝에 흰 플라스틱 [차양](/topic/차양)대를 붙였다. 제단은 77㎝ 높이에 두께 2㎝의 화강암 대리석을 П형으로 놓았다. 제단 위에는 호랑이를 데리고 있는 산신도가 있고, 제단 아래에는 불전함이 있다. 하씨할매당은 고씨할배당의 서북쪽으로 15m 지점에 있다. 당의 건축면적은 15.18㎡이며 기와 우진각지붕을 비롯해 문과 제단은 고씨할배당과 같다. 제단 위에는 여신도가 두개 걸려 있다. 오른쪽이 삼신제왕할매이고, 왼쪽이 하씨할매이다. 두 할매의 제단 아래에는 각각 불전함이 놓여 있다. 두 제당의 주위에는 출입구를 제외하고 [돌담](/topic/돌담)을 직사각형으로 쌓아 놓았다. 고씨할배당 뒤 바위에 세운 천왕[장군](/topic/장군)신상(산신상)은 키가 180㎝ 정도로 오른손에는 [삼지창](/topic/삼지창)을 치켜들었고, 왼손에는 칼을 아래로 비껴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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