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륵불

한국무속신앙사전
미륵불
미륵의 영험을 믿고 기원하는 [미륵제](/topic/미륵제)의 신체로 위하는 제의 대상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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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의 영험을 믿고 기원하는 [미륵제](/topic/미륵제)의 신체로 위하는 제의 대상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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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욱
정의미륵의 영험을 믿고 기원하는 [미륵제](/topic/미륵제)의 신체로 위하는 제의 대상물.
정의미륵의 영험을 믿고 기원하는 [미륵제](/topic/미륵제)의 신체로 위하는 제의 대상물.
내용[마을](/topic/마을)공동제의나 무속에서 무당들이 신단에 모신 미륵불 외에 가정에서 개별적으로 신앙되는 미륵불은 가정신앙의 의례 대상으로 구분된다. 가정에서 위하는 미륵불의 형태는 돌, 바위, 금속, 목재 등으로 미륵불을 조각한 불상이거나 미륵불의 형태를 한 자연석, 바위 등의 사례가 있다. 제의는 봄, 가을에 행하는 가정고사 때 함께 위하기도 하고 불교의식과 유사하게 정월초하루, 대보름에 제물을 올리고 기도를 하기도 한다. 위하게 된 이유는 가정마다 다르지만 대부분 조상과 관련된 경우가 많다. 마을공동의 [미륵제](/topic/미륵제)가 있는 경우 이 마을 공동제를 먼저 지낸 뒤에 개인치성을 올린다. 이러한 양상은 마을신앙, 가정신앙, 개인신앙이 상호 분리되지 않은 심성임을 알게 한다.
내용[마을](/topic/마을)공동제의나 무속에서 무당들이 신단에 모신 미륵불 외에 가정에서 개별적으로 신앙되는 미륵불은 가정신앙의 의례 대상으로 구분된다. 가정에서 위하는 미륵불의 형태는 돌, 바위, 금속, 목재 등으로 미륵불을 조각한 불상이거나 미륵불의 형태를 한 자연석, 바위 등의 사례가 있다. 제의는 봄, 가을에 행하는 가정고사 때 함께 위하기도 하고 불교의식과 유사하게 정월초하루, 대보름에 제물을 올리고 기도를 하기도 한다. 위하게 된 이유는 가정마다 다르지만 대부분 조상과 관련된 경우가 많다. 마을공동의 [미륵제](/topic/미륵제)가 있는 경우 이 마을 공동제를 먼저 지낸 뒤에 개인치성을 올린다. 이러한 양상은 마을신앙, 가정신앙, 개인신앙이 상호 분리되지 않은 심성임을 알게 한다.
지역사례충남 홍성군 금마면 송암리 구암[마을](/topic/마을)에는 미륵이 하나 있다. 이 미륵이 비를 맞아 훼손되자 1970년대에 미륵당을 조그맣게 지었다. 한때 [미륵제](/topic/미륵제)를 그만두었으나 마을에 우환이 생겨서 다시 지내기 시작했다. 제의는 정월 열나흗날 밤 8, 9시경에 지낸다. 미륵제를 지내기 위해서 낮에는 미륵당을 청소하고 초, 청수, 백[무리](/topic/무리)떡(백설기)을 준비한다. 저녁이 되면 제물을 진설하고 미륵제를 지내며, 제의가 끝나면 집집마다 소지를 올리고는 마친다. 이후, 밤 11시경이 되면 개인 치성을 드리러 간다. 이는 동네에서 미륵을 위하기 전에 개인적으로 치성을 드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장가를 못 간 아들이 있으면 결혼을 시켜달라고 빌고, 아이를 낳지 못하는 사람이 있으면 미륵에게 임신 치성을 드린다. 이때는 청수와 백무리떡만 [가지](/topic/가지)고 가서 치성을 드린다. 마을 주민들은 ‘미륵님이 한 가지 소원은 꼭 들어준다’고 믿고 있다.

강원도 화천군 화천읍 대이리 아랫대리에서도 [미륵바위](/topic/미륵바위) 치성의례가 있다. 아이들이 머리가 아프고 집안에 좋지 않은 일이 있어서 무당을 찾아가면 미륵바위에 가서 치성을 드리라고 하였다. 무당이 방법을 일러주면 그대로 주부가 행한다. 제물은 [시루떡](/topic/시루떡), 무나물 세 접시, 술 한 병을 올린다. 집에서 치성에 올릴 술을 만들 때에는 사람의 입에 대지 않은 것을 미리 떠서두었다. 미륵바위에서는 외지 사람들이 기도를 드리는 모습이나 무당들이 와서 치성을 드리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미륵바위가 사람들이 치성을 드리는 장소이기 때문에 영험하다고 느낀 탓인지 어떤 사람들은 미륵바위를 자기 집에 가져다가 두기도 했다. 그 뒤 집 주인이 별안간 화를 입어서 주민들이 미륵바위를 되찾아 제자리에 둔 적도 있었다.

경기도 김포시 대곶면 약암2리 약산마을 뒤쪽 산에는 돌미륵을 모신 당(미륵당)이 있으며, 그곳에 모신 미륵을 위하는 가정이 있다. 주민들은 돌미륵을 ‘미륵 부처님’이라고 한다. 당초 마을에 살던 만신이 3대째(유씨 할머니-강씨 할머니-서씨 할머니) 미륵을 모시며 당을 지켰다. 서씨 할머니가 세상을 뜬 뒤에는 그의 [신딸](/topic/신딸)이 당을 위하고 있다. 주민들은 기자, 치병 등을 위하여 치성을 드리면서 가족이 편안하고 잘되게 해주기를 기원하며 정월 초사흗날과 백중에 개인적으로 기도를 올린다. 미륵을 모신 집은 당초 한 칸짜리 오두막이었으나 1998년에 새로 두 칸짜리 집을 지어서 미륵당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새로 집을 지은 것은 마을 주민 가운데 한 사람이 병을 고쳐달라고 미륵님께 빌어 병이 완쾌되자 희사한 것이라고 한다. 미륵당 안에는 돌미륵뿐만 아니라 무신도에 그려진 여러 신령을 모시고 있다. 또한 그동안 당을 지키던 만신 세 사람도 ‘대신할머니’로 모셔지고 있다. 돌미륵은 높이 약 50㎝ 크기이다. 예전에는 지금의 절반 정도의 돌이었으나 점차 자라나 지금의 크기가 되었다고 한다. 또 미륵의 가운데에 띠가 있다. 주민들은 이것이 관대에 두르는 허리띠와 같이 생겼다고 하면서 이 덕분인지 약산마을과 인근에서 관으로 진출한 인물이 많이 났다고 해석하였다.

미륵의 영험함이 인근 지역에도 소문이 나서 한번은 도둑을 맞았다고 한다. 그러자 만신이 무쟁이(일반인)에게 대를 잡게 하여 미륵을 찾은 적이 있다. 대가 흔들리면서 버스를 타고 강화도 전등사 인근까지 가서 훔친 사람을 찾아 미륵을 되찾아오기도 하였다. 약산마을에서는 미륵에 대하여 예전부터 개인적으로 치성을 드렸다고 한다. 현재는 4집에서 꾸준히 미륵에 대한 치성을 드리고 있다.

전남 순천시 낙안면 창녕리마을에는 예부터 영험성이 깃들어 있는 돌미륵이 있었다. 미륵이라고 불리는 큰 돌 위에 둥그런 작은 돌을 올려놓은 것이다. 아이를 낳지 못한 여인들이 이곳에 기자치성을 드리고 미륵의 머리를 들었다 놓으면 아기를 갖는다는 말이 전한다. 이러한 돌미륵의 영험함으로 인해 마을에서는 매년 이곳에서 당산제를 지내고 있다. 지금은 마을에 사람이 적어서 이장 혼자 당산제를 지낸다고 한다.
참고문헌한국의 가정신앙-경기도․충남․강원도․전남 (국립문화재연구소, 2005․2006․2008)
지역사례충남 홍성군 금마면 송암리 구암[마을](/topic/마을)에는 미륵이 하나 있다. 이 미륵이 비를 맞아 훼손되자 1970년대에 미륵당을 조그맣게 지었다. 한때 [미륵제](/topic/미륵제)를 그만두었으나 마을에 우환이 생겨서 다시 지내기 시작했다. 제의는 정월 열나흗날 밤 8, 9시경에 지낸다. 미륵제를 지내기 위해서 낮에는 미륵당을 청소하고 초, 청수, 백[무리](/topic/무리)떡(백설기)을 준비한다. 저녁이 되면 제물을 진설하고 미륵제를 지내며, 제의가 끝나면 집집마다 소지를 올리고는 마친다. 이후, 밤 11시경이 되면 개인 치성을 드리러 간다. 이는 동네에서 미륵을 위하기 전에 개인적으로 치성을 드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장가를 못 간 아들이 있으면 결혼을 시켜달라고 빌고, 아이를 낳지 못하는 사람이 있으면 미륵에게 임신 치성을 드린다. 이때는 청수와 백무리떡만 [가지](/topic/가지)고 가서 치성을 드린다. 마을 주민들은 ‘미륵님이 한 가지 소원은 꼭 들어준다’고 믿고 있다.

강원도 화천군 화천읍 대이리 아랫대리에서도 [미륵바위](/topic/미륵바위) 치성의례가 있다. 아이들이 머리가 아프고 집안에 좋지 않은 일이 있어서 무당을 찾아가면 미륵바위에 가서 치성을 드리라고 하였다. 무당이 방법을 일러주면 그대로 주부가 행한다. 제물은 [시루떡](/topic/시루떡), 무나물 세 접시, 술 한 병을 올린다. 집에서 치성에 올릴 술을 만들 때에는 사람의 입에 대지 않은 것을 미리 떠서두었다. 미륵바위에서는 외지 사람들이 기도를 드리는 모습이나 무당들이 와서 치성을 드리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미륵바위가 사람들이 치성을 드리는 장소이기 때문에 영험하다고 느낀 탓인지 어떤 사람들은 미륵바위를 자기 집에 가져다가 두기도 했다. 그 뒤 집 주인이 별안간 화를 입어서 주민들이 미륵바위를 되찾아 제자리에 둔 적도 있었다.

경기도 김포시 대곶면 약암2리 약산마을 뒤쪽 산에는 돌미륵을 모신 당(미륵당)이 있으며, 그곳에 모신 미륵을 위하는 가정이 있다. 주민들은 돌미륵을 ‘미륵 부처님’이라고 한다. 당초 마을에 살던 만신이 3대째(유씨 할머니-강씨 할머니-서씨 할머니) 미륵을 모시며 당을 지켰다. 서씨 할머니가 세상을 뜬 뒤에는 그의 [신딸](/topic/신딸)이 당을 위하고 있다. 주민들은 기자, 치병 등을 위하여 치성을 드리면서 가족이 편안하고 잘되게 해주기를 기원하며 정월 초사흗날과 백중에 개인적으로 기도를 올린다. 미륵을 모신 집은 당초 한 칸짜리 오두막이었으나 1998년에 새로 두 칸짜리 집을 지어서 미륵당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새로 집을 지은 것은 마을 주민 가운데 한 사람이 병을 고쳐달라고 미륵님께 빌어 병이 완쾌되자 희사한 것이라고 한다. 미륵당 안에는 돌미륵뿐만 아니라 무신도에 그려진 여러 신령을 모시고 있다. 또한 그동안 당을 지키던 만신 세 사람도 ‘대신할머니’로 모셔지고 있다. 돌미륵은 높이 약 50㎝ 크기이다. 예전에는 지금의 절반 정도의 돌이었으나 점차 자라나 지금의 크기가 되었다고 한다. 또 미륵의 가운데에 띠가 있다. 주민들은 이것이 관대에 두르는 허리띠와 같이 생겼다고 하면서 이 덕분인지 약산마을과 인근에서 관으로 진출한 인물이 많이 났다고 해석하였다.

미륵의 영험함이 인근 지역에도 소문이 나서 한번은 도둑을 맞았다고 한다. 그러자 만신이 무쟁이(일반인)에게 대를 잡게 하여 미륵을 찾은 적이 있다. 대가 흔들리면서 버스를 타고 강화도 전등사 인근까지 가서 훔친 사람을 찾아 미륵을 되찾아오기도 하였다. 약산마을에서는 미륵에 대하여 예전부터 개인적으로 치성을 드렸다고 한다. 현재는 4집에서 꾸준히 미륵에 대한 치성을 드리고 있다.

전남 순천시 낙안면 창녕리마을에는 예부터 영험성이 깃들어 있는 돌미륵이 있었다. 미륵이라고 불리는 큰 돌 위에 둥그런 작은 돌을 올려놓은 것이다. 아이를 낳지 못한 여인들이 이곳에 기자치성을 드리고 미륵의 머리를 들었다 놓으면 아기를 갖는다는 말이 전한다. 이러한 돌미륵의 영험함으로 인해 마을에서는 매년 이곳에서 당산제를 지내고 있다. 지금은 마을에 사람이 적어서 이장 혼자 당산제를 지낸다고 한다.
참고문헌한국의 가정신앙-경기도․충남․강원도․전남 (국립문화재연구소, 2005․2006․2008)
예산군 대술면 장복리의 돌미륵; 상부 훼손됨, 주민들이 당을 지어 제사하다 중단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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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군 대술면 장복리의 돌미륵; 상부 훼손됨, 주민들이 당을 지어 제사하다 중단됨
예산군 대술면 방산리 미륵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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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군 대술면 방산리 미륵불
예산군 대술면 방산리 미륵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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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군 대술면 방산리 미륵불
예산군 대술면 장복리의 돌미륵; 상부 훼손됨, 주민들이 당을 지어 제사하다 중단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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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군 대술면 장복리의 돌미륵; 상부 훼손됨, 주민들이 당을 지어 제사하다 중단됨
예산군 대술면 방산리 미륵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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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군 대술면 방산리 미륵불
예산군 대술면 방산리 미륵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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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군 대술면 방산리 미륵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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