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마송리석장승

한국무속신앙사전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마송리 오미[마을](/topic/마을)에 있는 세 기의 석장승. 2002년 3월 15일에 ‘충청북도 민속자료 제12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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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마송리 오미[마을](/topic/마을)에 있는 세 기의 석장승. 2002년 3월 15일에 ‘충청북도 민속자료 제12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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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경
정의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마송리 오미[마을](/topic/마을)에 있는 세 기의 석장승. 2002년 3월 15일에 ‘충청북도 민속자료 제12호’로 지정되었다.
정의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마송리 오미[마을](/topic/마을)에 있는 세 기의 석장승. 2002년 3월 15일에 ‘충청북도 민속자료 제12호’로 지정되었다.
내용마송리에서는 장승 세 기를 대상 신격으로 하여 매년 [장승제](/topic/장승제)를 지내고 있다. 제일(祭日)은 정월 초에 길일로 선택하며 보통 [정월대보름](/topic/정월대보름) 이전으로 잡는다. [마을](/topic/마을)에 불상사가 발생하면 제일을 연기하거나 제의를 아예 치르지 않는다.

[제관](/topic/제관)은 [생기복덕](/topic/생기복덕)(生氣福德) 여부를 가려 장승마다 제를 주재할 [헌관](/topic/헌관), 축관, 집사 각 한 명을 선정한다. 모두 아홉 명의 제관을 선출하는 것이다. 제관들은 삼일금기(三日禁忌)를 준수한다. [대문](/topic/대문)에 왼새끼로 [금줄](/topic/금줄)을 둘러치고 세 무더기의 [황토](/topic/황토)를 펴 모든 부정을 막는다. 마을 사람들도 외출을 삼가며, 일상에서조차 행동을 조심한다.

제물은 반장이나 헌관 가운데 한 사람이 준비한다. 예전에는 장승마다 헌관들이 제물을 준비하였다고 한다. 제물은 삼색실과, 백설기, 포, 술, 과자 등 비교적 간소하다. 주로 음성장에서 구입한다. 이때 손짓만으로 제물을 요구하며, 흥정도 하지 않는다.

마송리에서는 장승제를 흔히 “헌관하러 간다”고 한다. 제의 당일 오전 11시 즈음에 제관들은 [바지](/topic/바지)저고리에 [두루마기](/topic/두루마기)를 입고 장승마다 동시에 백설기에 촛불을 밝힌 다음 제물을 진설한다. 제의는 유교식 절차를 따른다. 제의가 끝나면 마을회관에서 [음복](/topic/음복)한다.

[축문](/topic/축문)은 다음과 같다.

“維歲次正月朔日 ○○○ 百拜敢告于 梧山靜界大將軍尊神 災殃消盡惡凶瘟乃攘其禍 毒猛獸乃遠其害諸般妖穢 廊淸如掃吉祥輻湊父母鶴壽 子孫蟄士雲梯農登露積 浴酒投餠含哺而歌肉啖魚 鼓腹而舞無限年太平安過 玆敢百拜祝願.”

즉 마을의 풍농과 평화, 사악한 기운의 소멸 등 일반적인 기원을 담고 있다.
참고문헌충북지방의 장승․솟대신앙 (국립민속박물관, 1994)
음성군 문화유적분포지도 (음성군·청주대학교박물관, 2002)
음성민속지 (음성문화원·음성향토문화연구회, 2002)
한국의 동제-상 (국립민속박물관, 2007)
내용마송리에서는 장승 세 기를 대상 신격으로 하여 매년 [장승제](/topic/장승제)를 지내고 있다. 제일(祭日)은 정월 초에 길일로 선택하며 보통 [정월대보름](/topic/정월대보름) 이전으로 잡는다. [마을](/topic/마을)에 불상사가 발생하면 제일을 연기하거나 제의를 아예 치르지 않는다.

[제관](/topic/제관)은 [생기복덕](/topic/생기복덕)(生氣福德) 여부를 가려 장승마다 제를 주재할 [헌관](/topic/헌관), 축관, 집사 각 한 명을 선정한다. 모두 아홉 명의 제관을 선출하는 것이다. 제관들은 삼일금기(三日禁忌)를 준수한다. [대문](/topic/대문)에 왼새끼로 [금줄](/topic/금줄)을 둘러치고 세 무더기의 [황토](/topic/황토)를 펴 모든 부정을 막는다. 마을 사람들도 외출을 삼가며, 일상에서조차 행동을 조심한다.

제물은 반장이나 헌관 가운데 한 사람이 준비한다. 예전에는 장승마다 헌관들이 제물을 준비하였다고 한다. 제물은 삼색실과, 백설기, 포, 술, 과자 등 비교적 간소하다. 주로 음성장에서 구입한다. 이때 손짓만으로 제물을 요구하며, 흥정도 하지 않는다.

마송리에서는 장승제를 흔히 “헌관하러 간다”고 한다. 제의 당일 오전 11시 즈음에 제관들은 [바지](/topic/바지)저고리에 [두루마기](/topic/두루마기)를 입고 장승마다 동시에 백설기에 촛불을 밝힌 다음 제물을 진설한다. 제의는 유교식 절차를 따른다. 제의가 끝나면 마을회관에서 [음복](/topic/음복)한다.

[축문](/topic/축문)은 다음과 같다.

“維歲次正月朔日 ○○○ 百拜敢告于 梧山靜界大將軍尊神 災殃消盡惡凶瘟乃攘其禍 毒猛獸乃遠其害諸般妖穢 廊淸如掃吉祥輻湊父母鶴壽 子孫蟄士雲梯農登露積 浴酒投餠含哺而歌肉啖魚 鼓腹而舞無限年太平安過 玆敢百拜祝願.”

즉 마을의 풍농과 평화, 사악한 기운의 소멸 등 일반적인 기원을 담고 있다.
참고문헌충북지방의 장승․솟대신앙 (국립민속박물관, 1994)
음성군 문화유적분포지도 (음성군·청주대학교박물관, 2002)
음성민속지 (음성문화원·음성향토문화연구회, 2002)
한국의 동제-상 (국립민속박물관, 2007)
역사마송리 장승의 조성 연대를 확정하기는 곤란하다. 다만 장승의 양식이 불두형(佛頭形, 불상 머리 모양)으로 이마에 백호의 흔적이 있고, 풍화 정도로 미루어 조선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한편 촌로들에 따르면 제주 고씨 집안에서 1713년(숙종 39)에 무관 고증명이 [마을](/topic/마을) 수호를 위해 장승을 세웠다고 하지만 3호 장승에 새겨져 있는 신묘정월일(辛卯正月日)이란 명문과 연대가 일치하지 않아 신빙성은 떨어진다.
역사마송리 장승의 조성 연대를 확정하기는 곤란하다. 다만 장승의 양식이 불두형(佛頭形, 불상 머리 모양)으로 이마에 백호의 흔적이 있고, 풍화 정도로 미루어 조선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한편 촌로들에 따르면 제주 고씨 집안에서 1713년(숙종 39)에 무관 고증명이 [마을](/topic/마을) 수호를 위해 장승을 세웠다고 하지만 3호 장승에 새겨져 있는 신묘정월일(辛卯正月日)이란 명문과 연대가 일치하지 않아 신빙성은 떨어진다.
형태마송리 장승은 오미[마을](/topic/마을) 앞을 흐르는 냇가의 다리 밑을 기점으로 하여 마을도로 왼쪽(음성군에서 청주시 방향)에서 냇둑을 따라 세 기가 약 100개 간격을 두고 일정하게 서 있다. 1920년대 충북선을 가설하기 전까지 현재 장승의 위치를 중심으로 동쪽, 서쪽, 남쪽에 각기 있었다고 한다. 이들 장승 세 기는 모두 화강암 재질이며, 마을 사람들은 흔히 ‘장성님’이라고 부른다.

1호 장승은 전체 높이 240㎝에 앞면 너비 40㎝, 얼굴 길이 80㎝이다. 머리에는 관음보살과 같은 관을 쓰고 이마에는 백호가 표시되어 있다. 눈과 눈썹은 ‘一’자형이다. 오른쪽 귀는 약간 위쪽으로 올라가 있으며, 왼쪽 귀는 아래로 처져 있다. 입은 다문 듯 미소를 띠고 있다. 손가락은 나뉘어 있지 않으며, 팔짱을 끼고 있다. 얼굴 부분과 몸통 부분은 분명하게 구분되어 있으며, 목 부분은 양각기법으로 표시하고 있다. 몸체에는 명문이 새겨져 있으나 마모가 심해 판독이 어렵다.

2호 장승은 전체 높이 260㎝에 앞면 너비가 50㎝다. 문관석(文官石) 형태의 미륵형 장승이며 머리에는 [사모](/topic/사모)를 쓰고 있다. 이마가 얼굴에 비해 상대적으로 넓고 길며, 두 귀는 눈 위쪽으로 [가지](/topic/가지)런히 붙어 있다. 두 손은 앞으로 모아 잡고 있다. 눈은 부리부리하고, 코는 주먹코 형상이며, 입은 꽉 다문 듯하다. 몸체에는 ‘정계대[장군](/topic/장군)(靜界大將軍)’이란 명문이 새겨져 있다.

3호 장승은 전체 높이 220㎝에 앞면 너비 50㎝이다. [선돌](/topic/선돌)형 장승으로, 아무런 조각이나 장식이 없이 다만 앞면에 정계대장군(靜界大將軍), 왼쪽면에 ‘신묘정월일(辛卯正月日)’이란 명문이 각각 새겨져 있을 뿐이다. 왼쪽면의 명문은 장승의 연원을 밝히는 데 중요한 근거가 되고 있다.
형태마송리 장승은 오미[마을](/topic/마을) 앞을 흐르는 냇가의 다리 밑을 기점으로 하여 마을도로 왼쪽(음성군에서 청주시 방향)에서 냇둑을 따라 세 기가 약 100개 간격을 두고 일정하게 서 있다. 1920년대 충북선을 가설하기 전까지 현재 장승의 위치를 중심으로 동쪽, 서쪽, 남쪽에 각기 있었다고 한다. 이들 장승 세 기는 모두 화강암 재질이며, 마을 사람들은 흔히 ‘장성님’이라고 부른다.

1호 장승은 전체 높이 240㎝에 앞면 너비 40㎝, 얼굴 길이 80㎝이다. 머리에는 관음보살과 같은 관을 쓰고 이마에는 백호가 표시되어 있다. 눈과 눈썹은 ‘一’자형이다. 오른쪽 귀는 약간 위쪽으로 올라가 있으며, 왼쪽 귀는 아래로 처져 있다. 입은 다문 듯 미소를 띠고 있다. 손가락은 나뉘어 있지 않으며, 팔짱을 끼고 있다. 얼굴 부분과 몸통 부분은 분명하게 구분되어 있으며, 목 부분은 양각기법으로 표시하고 있다. 몸체에는 명문이 새겨져 있으나 마모가 심해 판독이 어렵다.

2호 장승은 전체 높이 260㎝에 앞면 너비가 50㎝다. 문관석(文官石) 형태의 미륵형 장승이며 머리에는 [사모](/topic/사모)를 쓰고 있다. 이마가 얼굴에 비해 상대적으로 넓고 길며, 두 귀는 눈 위쪽으로 [가지](/topic/가지)런히 붙어 있다. 두 손은 앞으로 모아 잡고 있다. 눈은 부리부리하고, 코는 주먹코 형상이며, 입은 꽉 다문 듯하다. 몸체에는 ‘정계대[장군](/topic/장군)(靜界大將軍)’이란 명문이 새겨져 있다.

3호 장승은 전체 높이 220㎝에 앞면 너비 50㎝이다. [선돌](/topic/선돌)형 장승으로, 아무런 조각이나 장식이 없이 다만 앞면에 정계대장군(靜界大將軍), 왼쪽면에 ‘신묘정월일(辛卯正月日)’이란 명문이 각각 새겨져 있을 뿐이다. 왼쪽면의 명문은 장승의 연원을 밝히는 데 중요한 근거가 되고 있다.
後漢書 東夷傳
三國志 魏志 東夷傳
東國歲時記
臨瀛誌
동문선조선무속의 연구赤松智城·秋葉隆, 심우성 역1991
문음사김금화의 무가집김금화1995
화산문화양주소놀이굿김헌선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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