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두고사

한국무속신앙사전
음력 6월 보름 유두날에 지내는 [고사](/topic/고사), 유두제, [유두천신](/topic/유두천신)(流頭薦新)이라고도 한다. 가정에서 지내기도 하고 논밭에 나가서 지내기도 한다. 벼농사의 풍요를 기원하면서 한여름에 [수확](/topic/수확)되는 밭곡식과 과실 등의 수확을 기리는 [천신](/topic/천신)제의 성격이 강하다.
definition
음력 6월 보름 유두날에 지내는 [고사](/topic/고사), 유두제, [유두천신](/topic/유두천신)(流頭薦新)이라고도 한다. 가정에서 지내기도 하고 논밭에 나가서 지내기도 한다. 벼농사의 풍요를 기원하면서 한여름에 [수확](/topic/수확)되는 밭곡식과 과실 등의 수확을 기리는 [천신](/topic/천신)제의 성격이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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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자
정의음력 6월 보름 유두날에 지내는 [고사](/topic/고사), 유두제, [유두천신](/topic/유두천신)(流頭薦新)이라고도 한다. 가정에서 지내기도 하고 논밭에 나가서 지내기도 한다. 벼농사의 풍요를 기원하면서 한여름에 [수확](/topic/수확)되는 밭곡식과 과실 등의 수확을 기리는 [천신](/topic/천신)제의 성격이 강하다.
정의음력 6월 보름 유두날에 지내는 [고사](/topic/고사), 유두제, [유두천신](/topic/유두천신)(流頭薦新)이라고도 한다. 가정에서 지내기도 하고 논밭에 나가서 지내기도 한다. 벼농사의 풍요를 기원하면서 한여름에 [수확](/topic/수확)되는 밭곡식과 과실 등의 수확을 기리는 [천신](/topic/천신)제의 성격이 강하다.
내용유두고사는 [유두천신](/topic/유두천신)과 유두제 이외에도 용제, 용신제, [농신제](/topic/농신제) 등의 명칭이 있듯이 모두 농사와 직접 관련된 의례이다. 용제나 용신제는 농사의 기본인 물을 관장하는 용신, 곧 농경신인 용신에게 제를 지내는 것이다.

유두고사는 가정에서 지내거나 논밭에 나가서 지내기도 한다. 논밭에서 하는 고사를 유두고사라고도 하지만 용제나 용신제 또는 농신제라고도 한다. 이는 논농사의 풍농을 기원하면서 잡곡과 과실의 [수확](/topic/수확)을 기리는 것이다. 특히 잡곡농사의 수확을 기리는 천신제의 성격을 지닌다. 또 여름 과실을 수확하는 시기이기도 하여 잡곡과 함께 햇과일을 신에게 올리는 고사를 지낸다. 이는 곧 유두천신(流頭薦新)이다.

유두 무렵이면 벼가 한창 자라고 있을 때이다. 예전에는 이 무렵에 이른 벼가 나오기도 했다. 이를 유두벼라 하였다. 유두날을 경상북도 상주지역에서는 유두벼가 패는 날, 예천지역에서는 햅쌀밥을 찌는 날, 경주․군위․월성 등지에서는 옛날 나랏님이 햅쌀밥을 먹는 날, 영양지역에서는 유두벼를 심어서 조상께 제사를 올리는 날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풍습이 있었다는 것으로 보아 벼농사와도 무관하지는 않다. 유두벼를 조상에게 바치는 천신제가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지만 역시 중심이 되는 것은 밭작물과 관련된 고사라는 점이다.

유두는 여름 명절이다. 여름에는 밀 음식이 제철음식이다. 이 때문에 가정에서 고사를 지낼 때에도 밀음식을 쓴다. 대표적인 것이 밀전병인데 그냥 밀로만 부치기도 하지만 제철을 맞은 [호박](/topic/호박)을 넣어 전을 부쳐서 [가신](/topic/가신)에게 올려 고사를 지낸다.

유두날 밭제를 지낼 때에는 밭작물의 수확을 기념한다. 각별히 팥죽을 장만하는 집안도 있다. 유두 무렵에는 [참외](/topic/참외), [수박](/topic/수박) 등 과일이 나기 시작하여 이들 과일도 제물로 올렸다. 예전에는 유두날에 약수터에서 노구메를 드리기도 하였다. 노구는 놋쇠로 만든 작은 솥을, 메는 밥, 노구메를 드린다는 것은 곧 [노구솥](/topic/노구솥)에 밥을 지어 올리며 기원한다는 뜻이다. 이는 가정 단위의 고사이다.

강원도 산간[마을](/topic/마을)에서도 유두날이면 [밀국수](/topic/밀국수)와 밀부침을 만들어 유두고사를 지냈다. 이는 올해 지은 농사가 여름 동안 좋은 결실을 볼 수 있도록 신에게 비는 것이다. 유두고사는 1960년대까지 성행했으나 1980년대 들면서 거의 잊혀져 갔다. 밀부침을 올려 유두고사를 지내는 풍속은 서울과 경기도지역에도 성행했지만 역시 1960년대 산업사회에 들어서면서 사라지기 시작하였다.

유두 무렵에 농촌은 한참 손이 많이 가던 [모내기](/topic/모내기)를 끝내고 잠시 한가롭다. 물론 지난 겨울 또는 초봄에 파종한 밭작물을 수확할 때이기는 하지만 모내기처럼 때를 다투는 일은 아니다. 이 무렵 영․호남 지방에서는 논과 밭에 가서 농신제 또는 용신제를 지내는 일이 많았다.

전라북도지역에서는 찰떡을 해서 논둑 밑과 [물꼬](/topic/물꼬)에 한 덩이씩 놓고 물이 새지 말고 농사가 잘되길 농신(農神)에게 빈다. 찰떡 대신 [밀떡](/topic/밀떡)이나 송편을 해서 고사를 지내기도 한다. 이 떡들을 논둑에 꽂아 두거나 나무에 둥글둥글한 떡을 꽂았다가 논둑에 꽂아 둔다. 이렇게 고사를 마치면 동네 아이들이 급히 떡을 먹는다. 이 떡을 ‘유두알’이라고도 한다.

경상북도지역에서는 유두날에 나락이 잘되도록 유두지(유두제)를 지낸다. 유두고사라고도 하는 유두제는 1970년대까지도 활발하게 전승되었으나 거의 사라졌다. 잘사는 사람들은 쌀로 송편을 빚었다. 이를 ‘참떡’이라고 하였다. 보통 사람들은 밀을 쪄서 떡을 만들었다. 유두날 아침 일찍 논 주인이 떡을 해서 ‘지릅대’(겨릅대)에 꿰어 땅에 꽂아 둔다. 그리고 밥과 떡을 뿌리면서 농사가 잘되도록 빈다. 아이들은 아침부터 논을 돌아다니면서 꽂아 둔 떡을 빼 먹는다. 또 유두일에 논물이 풍족해지라고 ‘용’에게 제사를 지냈다. 이를 용제라고 하였으며, 유두날에 지낸다고 하여 ‘유두제’라고도 하였다. 용제는 대개 일꾼이 지냈으며, 논가에 파놓은 덤봉(웅덩이)에서 많이 지내기 때문에 덤봉제라고도 하였다. 용제는 마치 비가 오는 것처럼 [삿갓](/topic/삿갓)과 도리([도롱이](/topic/도롱이))를 입고 밤에 지낸다. 논에는 수숫대를 세우고 ‘지릅대’ 윗부분에 서숙을 끼우고 아래에다 [시루떡](/topic/시루떡)과 적 등 제물을 차린다. 천수답에 의존한 마을에서는 용제가 보편적인 의례였다.

둑이 터지는 것을 막고 풍년을 바라는 마음에서 용제를 지내는 마을도 있다. [용왕제](/topic/용왕제)라 하여 간단히 떡을 장만하여 논이나 밭가에 두고 농사가 잘되기를 빌기도 하였다. 이렇게 하면 농사가 잘되며 병충해가 없다고 한다.

예전에는 유두날 동류수에 머리를 감고 모든 궂은일을 털어내 불제제(祓除祭)를 지낸 뒤 음식을 차려 먹었다. 부인들은 이날 약수에 머리를 감으면 부스럼을 앓지 않는다 하여 약수를 찾았다. 또한 산이나 계곡에서 폭포처럼 쏟아져 내려오는 물 아래에서 물맞이를 하였다. 그러나 약수를 찾을 때에는 부정(不淨)이 없어야 한다. 이는 단순히 피서가 아니라 의례의 범주에서 행해짐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유두는 각종 농산물이 나올 때여서 풍요를 기리고 기원하는 고사를 지내며 물맞이를 하는 등의 의례는 [유두연](/topic/유두연)(流頭宴)을 원류로 하는 것이다.
내용유두고사는 [유두천신](/topic/유두천신)과 유두제 이외에도 용제, 용신제, [농신제](/topic/농신제) 등의 명칭이 있듯이 모두 농사와 직접 관련된 의례이다. 용제나 용신제는 농사의 기본인 물을 관장하는 용신, 곧 농경신인 용신에게 제를 지내는 것이다.

유두고사는 가정에서 지내거나 논밭에 나가서 지내기도 한다. 논밭에서 하는 고사를 유두고사라고도 하지만 용제나 용신제 또는 농신제라고도 한다. 이는 논농사의 풍농을 기원하면서 잡곡과 과실의 [수확](/topic/수확)을 기리는 것이다. 특히 잡곡농사의 수확을 기리는 천신제의 성격을 지닌다. 또 여름 과실을 수확하는 시기이기도 하여 잡곡과 함께 햇과일을 신에게 올리는 고사를 지낸다. 이는 곧 유두천신(流頭薦新)이다.

유두 무렵이면 벼가 한창 자라고 있을 때이다. 예전에는 이 무렵에 이른 벼가 나오기도 했다. 이를 유두벼라 하였다. 유두날을 경상북도 상주지역에서는 유두벼가 패는 날, 예천지역에서는 햅쌀밥을 찌는 날, 경주․군위․월성 등지에서는 옛날 나랏님이 햅쌀밥을 먹는 날, 영양지역에서는 유두벼를 심어서 조상께 제사를 올리는 날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풍습이 있었다는 것으로 보아 벼농사와도 무관하지는 않다. 유두벼를 조상에게 바치는 천신제가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지만 역시 중심이 되는 것은 밭작물과 관련된 고사라는 점이다.

유두는 여름 명절이다. 여름에는 밀 음식이 제철음식이다. 이 때문에 가정에서 고사를 지낼 때에도 밀음식을 쓴다. 대표적인 것이 밀전병인데 그냥 밀로만 부치기도 하지만 제철을 맞은 [호박](/topic/호박)을 넣어 전을 부쳐서 [가신](/topic/가신)에게 올려 고사를 지낸다.

유두날 밭제를 지낼 때에는 밭작물의 수확을 기념한다. 각별히 팥죽을 장만하는 집안도 있다. 유두 무렵에는 [참외](/topic/참외), [수박](/topic/수박) 등 과일이 나기 시작하여 이들 과일도 제물로 올렸다. 예전에는 유두날에 약수터에서 노구메를 드리기도 하였다. 노구는 놋쇠로 만든 작은 솥을, 메는 밥, 노구메를 드린다는 것은 곧 [노구솥](/topic/노구솥)에 밥을 지어 올리며 기원한다는 뜻이다. 이는 가정 단위의 고사이다.

강원도 산간[마을](/topic/마을)에서도 유두날이면 [밀국수](/topic/밀국수)와 밀부침을 만들어 유두고사를 지냈다. 이는 올해 지은 농사가 여름 동안 좋은 결실을 볼 수 있도록 신에게 비는 것이다. 유두고사는 1960년대까지 성행했으나 1980년대 들면서 거의 잊혀져 갔다. 밀부침을 올려 유두고사를 지내는 풍속은 서울과 경기도지역에도 성행했지만 역시 1960년대 산업사회에 들어서면서 사라지기 시작하였다.

유두 무렵에 농촌은 한참 손이 많이 가던 [모내기](/topic/모내기)를 끝내고 잠시 한가롭다. 물론 지난 겨울 또는 초봄에 파종한 밭작물을 수확할 때이기는 하지만 모내기처럼 때를 다투는 일은 아니다. 이 무렵 영․호남 지방에서는 논과 밭에 가서 농신제 또는 용신제를 지내는 일이 많았다.

전라북도지역에서는 찰떡을 해서 논둑 밑과 [물꼬](/topic/물꼬)에 한 덩이씩 놓고 물이 새지 말고 농사가 잘되길 농신(農神)에게 빈다. 찰떡 대신 [밀떡](/topic/밀떡)이나 송편을 해서 고사를 지내기도 한다. 이 떡들을 논둑에 꽂아 두거나 나무에 둥글둥글한 떡을 꽂았다가 논둑에 꽂아 둔다. 이렇게 고사를 마치면 동네 아이들이 급히 떡을 먹는다. 이 떡을 ‘유두알’이라고도 한다.

경상북도지역에서는 유두날에 나락이 잘되도록 유두지(유두제)를 지낸다. 유두고사라고도 하는 유두제는 1970년대까지도 활발하게 전승되었으나 거의 사라졌다. 잘사는 사람들은 쌀로 송편을 빚었다. 이를 ‘참떡’이라고 하였다. 보통 사람들은 밀을 쪄서 떡을 만들었다. 유두날 아침 일찍 논 주인이 떡을 해서 ‘지릅대’(겨릅대)에 꿰어 땅에 꽂아 둔다. 그리고 밥과 떡을 뿌리면서 농사가 잘되도록 빈다. 아이들은 아침부터 논을 돌아다니면서 꽂아 둔 떡을 빼 먹는다. 또 유두일에 논물이 풍족해지라고 ‘용’에게 제사를 지냈다. 이를 용제라고 하였으며, 유두날에 지낸다고 하여 ‘유두제’라고도 하였다. 용제는 대개 일꾼이 지냈으며, 논가에 파놓은 덤봉(웅덩이)에서 많이 지내기 때문에 덤봉제라고도 하였다. 용제는 마치 비가 오는 것처럼 [삿갓](/topic/삿갓)과 도리([도롱이](/topic/도롱이))를 입고 밤에 지낸다. 논에는 수숫대를 세우고 ‘지릅대’ 윗부분에 서숙을 끼우고 아래에다 [시루떡](/topic/시루떡)과 적 등 제물을 차린다. 천수답에 의존한 마을에서는 용제가 보편적인 의례였다.

둑이 터지는 것을 막고 풍년을 바라는 마음에서 용제를 지내는 마을도 있다. [용왕제](/topic/용왕제)라 하여 간단히 떡을 장만하여 논이나 밭가에 두고 농사가 잘되기를 빌기도 하였다. 이렇게 하면 농사가 잘되며 병충해가 없다고 한다.

예전에는 유두날 동류수에 머리를 감고 모든 궂은일을 털어내 불제제(祓除祭)를 지낸 뒤 음식을 차려 먹었다. 부인들은 이날 약수에 머리를 감으면 부스럼을 앓지 않는다 하여 약수를 찾았다. 또한 산이나 계곡에서 폭포처럼 쏟아져 내려오는 물 아래에서 물맞이를 하였다. 그러나 약수를 찾을 때에는 부정(不淨)이 없어야 한다. 이는 단순히 피서가 아니라 의례의 범주에서 행해짐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유두는 각종 농산물이 나올 때여서 풍요를 기리고 기원하는 고사를 지내며 물맞이를 하는 등의 의례는 [유두연](/topic/유두연)(流頭宴)을 원류로 하는 것이다.
역사유두(流頭)는 동류수두목욕(東流水頭沐浴)의 약자이다. 유두명절이 언제부터 유래했는지는 확실하게 알 수 없지만 문헌 기록에 따르면 신라시대에 이미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서는 『[동국세시기](/topic/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기록되어 있다.

고려 19대 명종 때의 학자 김극기(金克己)는 문집 『김거사집(金居士集)』에서 “경주의 옛 풍속에 6월 보름날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아 불길한 것들을 씻어버리고 그 자리에서 재앙을 물리치는 제를 지낸 뒤 술을 마신다. 이것을 [유두연](/topic/유두연)(流頭宴)이라고 한다.”고 하였다.

유두는 고려 9대 [속절](/topic/속절)(俗節)로 소개되지는 않았지만 고려시대에 이어 조선에 들어서도 이어받아 속절, 곧 명절로 삼았다. 유두연은 유두음(流頭飮)이라고도 한다. 이에 대해서는 『고려사(高麗史)』 권 20 명종 15년에 기록되어 있다.

6월 병인(丙寅)에 시어사(侍御使) 두 사람과 환관이 광진사(廣眞寺)에 모여서 유두음을 하였다. 나라 풍속에서 15일 유두수에 머리를 감아 상서롭지 못한 것을 없애고 이로 인하여 모여 술을 마시니 이를 유두라 이름 하였다.

유두가 1518년(중종 13)에는 설․추석과 함께 3대 명절로 정해질 만큼 큰 명절이었다. 조선시대 경주지역에는 유두연 풍속이 있었다.

조선시대 유두날에는 전통명절로서 다양한 명절식이 있었다. 유두날에는 [수단](/topic/수단)(水團)이라 하여 멥쌀가루를 쪄서 둥글고 길게 만든 다음 구슬처럼 잘게 썰어 꿀물에 담갔다가 얼음에 채워 먹었으며, 제사에도 썼다. [건단](/topic/건단)(乾團)도 있다. 건단은 수단처럼 만들지만 물에 넣지 않은, 곧 찬 경단과 같은 것이다. 더러는 멥쌀 대신 찹쌀가루로 만들기도 하였다.

밀가루를 반죽하여 꿀에 버무린 콩이나 깨를 속에 넣어 찐 것을 [상화병](/topic/상화병)(霜花餠)이라고 한다. 이 밖에도 밀가루를 반죽하여 기름에 지지고 고미로 만든 소를 넣거나 콩과 깨에 꿀을 섞은 소를 넣어 여러 [가지](/topic/가지) 모양으로 어물어 만든 [연병](/topic/연병)(連餠)이 있다. 나뭇잎 모양으로 주름을 잡아 고미로 만든 소를 넣고 채롱에 쪄서 초장에 찍어먹기도 한다. 이들 유두 음식은 명절식이면서 제사음식이기도 하다.

식용뿐만 아니라 밀가루로 액막이용도 만든다. 밀가루를 반죽하여 구슬 모양의 누룩을 만든다. 이것을 유두누룩([유두면](/topic/유두면))이라고 한다. 거기에다 오색 물감을 들여 세 개를 이어 색실에 꿰어 차고 다녔으며, 문 위에 걸어 액을 막기도 하였다. 이것을 서로 선물로 보내기도 하였다.
역사유두(流頭)는 동류수두목욕(東流水頭沐浴)의 약자이다. 유두명절이 언제부터 유래했는지는 확실하게 알 수 없지만 문헌 기록에 따르면 신라시대에 이미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서는 『[동국세시기](/topic/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기록되어 있다.

고려 19대 명종 때의 학자 김극기(金克己)는 문집 『김거사집(金居士集)』에서 “경주의 옛 풍속에 6월 보름날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아 불길한 것들을 씻어버리고 그 자리에서 재앙을 물리치는 제를 지낸 뒤 술을 마신다. 이것을 [유두연](/topic/유두연)(流頭宴)이라고 한다.”고 하였다.

유두는 고려 9대 [속절](/topic/속절)(俗節)로 소개되지는 않았지만 고려시대에 이어 조선에 들어서도 이어받아 속절, 곧 명절로 삼았다. 유두연은 유두음(流頭飮)이라고도 한다. 이에 대해서는 『고려사(高麗史)』 권 20 명종 15년에 기록되어 있다.

6월 병인(丙寅)에 시어사(侍御使) 두 사람과 환관이 광진사(廣眞寺)에 모여서 유두음을 하였다. 나라 풍속에서 15일 유두수에 머리를 감아 상서롭지 못한 것을 없애고 이로 인하여 모여 술을 마시니 이를 유두라 이름 하였다.

유두가 1518년(중종 13)에는 설․추석과 함께 3대 명절로 정해질 만큼 큰 명절이었다. 조선시대 경주지역에는 유두연 풍속이 있었다.

조선시대 유두날에는 전통명절로서 다양한 명절식이 있었다. 유두날에는 [수단](/topic/수단)(水團)이라 하여 멥쌀가루를 쪄서 둥글고 길게 만든 다음 구슬처럼 잘게 썰어 꿀물에 담갔다가 얼음에 채워 먹었으며, 제사에도 썼다. [건단](/topic/건단)(乾團)도 있다. 건단은 수단처럼 만들지만 물에 넣지 않은, 곧 찬 경단과 같은 것이다. 더러는 멥쌀 대신 찹쌀가루로 만들기도 하였다.

밀가루를 반죽하여 꿀에 버무린 콩이나 깨를 속에 넣어 찐 것을 [상화병](/topic/상화병)(霜花餠)이라고 한다. 이 밖에도 밀가루를 반죽하여 기름에 지지고 고미로 만든 소를 넣거나 콩과 깨에 꿀을 섞은 소를 넣어 여러 [가지](/topic/가지) 모양으로 어물어 만든 [연병](/topic/연병)(連餠)이 있다. 나뭇잎 모양으로 주름을 잡아 고미로 만든 소를 넣고 채롱에 쪄서 초장에 찍어먹기도 한다. 이들 유두 음식은 명절식이면서 제사음식이기도 하다.

식용뿐만 아니라 밀가루로 액막이용도 만든다. 밀가루를 반죽하여 구슬 모양의 누룩을 만든다. 이것을 유두누룩([유두면](/topic/유두면))이라고 한다. 거기에다 오색 물감을 들여 세 개를 이어 색실에 꿰어 차고 다녔으며, 문 위에 걸어 액을 막기도 하였다. 이것을 서로 선물로 보내기도 하였다.
지역사례유두고사를 [유두천신](/topic/유두천신), 유두제, 용제, [농신제](/topic/농신제) 등으로도 불린다고 했지만 유두고사란 이름으로 지내는 지역도 많다. 반면에 이를 구별하지 않는 지역 역시 많다.

경기도 광주시 장지동에서는 유두날에 가정에서 유두고사를 지냈다. 특히 이날에 칠석과 마찬[가지](/topic/가지)로 [밀떡](/topic/밀떡)(밀전병)을 해 먹는다. 밀로만 전을 부치거나 [호박](/topic/호박)을 썰어 넣고 전병을 만들기도 한다. 이렇게 음식이 마련되면 [안방](/topic/안방)과 [마루](/topic/마루), [터주](/topic/터주)가 있는 [장독대](/topic/장독대) 등에 올렸다가 가져와 먹는다. [참외](/topic/참외) 등 햇과일을 함께 올리기도 한다.

음력 6월과 7월은 밀을 [수확](/topic/수확)하는 시기이다. 그래서 햇곡인 밀로 만든 음식을 집안의 신들에게 올리는 것은 가을 추수가 끝난 뒤 지내는 음력 10월의 [가을고사](/topic/가을고사)와 같은 의미를 갖는 천신으로 볼 수 있다.

경북 영일만 지방에서는 유두날에 논밭에서 충제(蟲祭)를 겸해 고사를 지낸다. 떡을 논두렁에 놓고 구우면 연기가 난다. 이 연기로 구충(驅蟲)이 된다고 한다. 전을 지져 기름냄새로 구충하는 곳도 있다. 이는 충제이기도 하다. 유두날 무렵이면 밭작물을 거둘 시기여서 밭에 팥죽을 올리고 밭작물의 풍농을 기리는 밭제를 지내기도 한다. 과일 농사를 하는 가정에서는 유두날 과일밭에 나가 특별히 고사를 지내기도 한다.

안동지역에서는 유두날 아침에 국수를 만들어 [수박](/topic/수박) 밭고랑에다 뿌린다. 이는 수박줄이 국수처럼 쭉쭉 뻗어 나가라는 의미이다. 또 수제비를 해서 참외 밭에 뿌려 둔다. 이는 역시 수제비 같은 참외가 주렁주렁 열리라는 뜻이다. 이와 같이 고사를 지낸 뒤 비가 오면 풍년이 든다는 말이 있다.

상주시 사벌면 원흥1리에서는 유두일에 용제를 지낸다. 유두에는 천방이 터지는 것을 막고 곡식이 잘되게 해 달라고 떡이나 국수를 만들어(잡곡농사의 수확을 볼 때니까) 논이나 천방에 갖다 놓고 “아래 논에 용왕님, 웃논에 용왕님, 밭으로는 비 내루고(내리고), 맞으로는 도끼로 나락을 비고(베고)”라고 빌면서 제사를 지낸다. 이를 용지(용제), 또는 유두지(유두제)라고 한다. [머슴](/topic/머슴)이 있는 집에서는 머슴을 제사에 보내기도 한다. 그리고 참외밭에는 수제비를 끓여서 [도롱이](/topic/도롱이)를 깔아 놓고 제를 지내고, 삼으로 겨릅을 묶어서 세워 놓고 고시하듯이 그 위에 가지고 간 음식을 모두 꽂아 놓는다. 제를 지낸 뒤 음식을 먹고 음식이 남으면 집으로 가지고 온다.

김천시 구성면 하강2리 강성[마을](/topic/마을)에서는 유두일에 떡 여러 개를 삼바리 형태로 엮어 놓은 삼대에 꿰어 논으로 가져간다. 그런 다음 [물꼬](/topic/물꼬)에 삼대를 고정시킨 다음 그 위에 떡을 놓고 농사가 잘되게 해 달라고 빌고 온다. 이 일은 대개 집안의 머슴들이 주인을 대신해서 많이 한다. 제물로 가지고 간 떡은 지나가는 마을 사람이나 아이들이 빼 먹을 수 있도록 그냥 놓아 두고 온다.

충청남도 금산군 복수면 다복리 다복마을에서는 유두날 부침개나 [송편](/topic/송편)을 만들어 논을 위한다. 위한다는 것은 고사를 지내는 것을 의미한다. 밀가루에 [부추](/topic/부추)와 호박을 잘라 넣고 부친다. 송편은 쌀가루를 빻아서 뜨거운 물로 반죽하여 만든다. 반죽이 되면 소로 콩, 팥, 깨 등을 넣는다. 남자들은 송편을 ‘다래끼’에 담아 논으로 가져 간다. 논의 귀퉁이에 부침개와 송편을 놓아 둔다. 이렇게 하면 나락이 잘 여문다고 한다. 떡과 부침개는 주워 먹으면 좋다고 하여 아이들이 주로 주워 먹는다.

전라남도 여수시 화양면 안포리 세포마을에서는 유두날에 [논고사](/topic/논고사)를 지낸다. 아침 일찍 밥을 해 먹은 다음 제물을 장만하여 논으로 나간다. 제물은 메 한 그릇과 과일, 밀떡 등 간단하게 준비한다. 논둑에 가서 짚을 깔고 그 위에 제물을 진설한다. 그리고 손을 비비며 한 해 농사가 무사히 마[무리](/topic/무리)되게 해 달라고 논에 있는 신령에게 부탁한다. [비손](/topic/비손)이 끝나면 제물은 논둑에 묻거나 그대로 놔두고 돌아온다.

충청북도 영동군 용산면 율리에서는 유두날 물꼬에 가서 밀부침개를 해 놓는다. 그러면 짐승이 침입하지 않기 때문에 벼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여긴다. 또 논에서 기름 냄새를 피우면 벼멸구가 줄어든다고 하여 이곳에서 직접 부침개를 해서 비손을 하고 온다. 근래에는 [농약](/topic/농약)을 치기 때문에 이러한 풍습은 사라졌다.

유두날에 각별히 터주를 위하는 날로 여겨 고사를 지내기도 한다. 충남 금산군 부리면 어재리 마을의 한 가정에서는 유두일에 터주를 위하는 날로 여겨 터주단지 안의 쌀을 처음으로 헐어서 밥과 떡을 하여 [터주고사](/topic/터주고사)를 지낸다. 마을에 초상이 나거나 부정한 일이 발생하면 유두고사를 지내지 않고 청수만 한 그릇 올린다. 조상을 위하는 제사 때와 마찬가지로 밥, 김, 나무새(나물) 등 제물을 장만한다. 떡으로는 송편을 올린다. 터주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두 분이기 때문에 밥을 두 그릇 올린다. 숟가락은 밥 위에 올려놓는다. 송편은 고물을 넣어 배가 볼록하게 만든다. 아이들도 그 송편처럼 배가 두둑하게 해 달라는 의미이다. 부모가 돌아가시고 [삼우제](/topic/삼우제)를 지낼 때도 송편을 올린다.

장광에 나가 마련한 제물을 상에 받쳐 올리고 그릇에 [불밝이쌀](/topic/불밝이쌀)을 담아 촛불을 밝히고 향도 피워 놓는다. 청수는 별도로 마련된 [정화수](/topic/정화수) 그릇에 담아서 올린다. 제물 진설이 끝나면 비손을 하고 천황, 성주, 터주, 식구들 소지를 순서대로 올린다. 이 때는 시집간 딸을 포함하여 사위까지 모두 위한다. 사위를 위해서 소지를 올릴 때는 “누구누구 자손, 동남간에 어디를 가도 잘되게 해 주시오.”라고 빈다. 소지가 보얗게 잘 올라가야 좋다고 한다. 이런 경우 소지를 다시 올려 본다. 터주에 올린 제물은 모두 방 안의 성주와 조상께 올렸다가 나누어 먹는다.
참고문헌[조선상식](/topic/조선상식)문답 (최남선, 동명사, 1947)
조선상식-풍속․지리․제도 (최남선, 동명사, 1948)
한국농경세시의 연구 (김택규, 영남대학교출판부, 1985)
경기도 [세시풍속](/topic/세시풍속) (국립문화재연구소, 2001)
충청남도 세시풍속 (국립문화재연구소, 2003)
한국의 가정신앙-경기도 (국립문화재연구소, 2005)
세시풍속-총괄 (국립문화재연구소, 2006)
조선대세시기 (국립민속박물관, 2007)
한국의 가정신앙-경북 (국립문화재연구소, 2007)
한국의 가정신앙-충남 (국립문화재연구소, 2007)
[동국세시기](/topic/동국세시기) (홍석모, 정성모 역, 풀빛, 2009)
지역사례유두고사를 [유두천신](/topic/유두천신), 유두제, 용제, [농신제](/topic/농신제) 등으로도 불린다고 했지만 유두고사란 이름으로 지내는 지역도 많다. 반면에 이를 구별하지 않는 지역 역시 많다.

경기도 광주시 장지동에서는 유두날에 가정에서 유두고사를 지냈다. 특히 이날에 칠석과 마찬[가지](/topic/가지)로 [밀떡](/topic/밀떡)(밀전병)을 해 먹는다. 밀로만 전을 부치거나 [호박](/topic/호박)을 썰어 넣고 전병을 만들기도 한다. 이렇게 음식이 마련되면 [안방](/topic/안방)과 [마루](/topic/마루), [터주](/topic/터주)가 있는 [장독대](/topic/장독대) 등에 올렸다가 가져와 먹는다. [참외](/topic/참외) 등 햇과일을 함께 올리기도 한다.

음력 6월과 7월은 밀을 [수확](/topic/수확)하는 시기이다. 그래서 햇곡인 밀로 만든 음식을 집안의 신들에게 올리는 것은 가을 추수가 끝난 뒤 지내는 음력 10월의 [가을고사](/topic/가을고사)와 같은 의미를 갖는 천신으로 볼 수 있다.

경북 영일만 지방에서는 유두날에 논밭에서 충제(蟲祭)를 겸해 고사를 지낸다. 떡을 논두렁에 놓고 구우면 연기가 난다. 이 연기로 구충(驅蟲)이 된다고 한다. 전을 지져 기름냄새로 구충하는 곳도 있다. 이는 충제이기도 하다. 유두날 무렵이면 밭작물을 거둘 시기여서 밭에 팥죽을 올리고 밭작물의 풍농을 기리는 밭제를 지내기도 한다. 과일 농사를 하는 가정에서는 유두날 과일밭에 나가 특별히 고사를 지내기도 한다.

안동지역에서는 유두날 아침에 국수를 만들어 [수박](/topic/수박) 밭고랑에다 뿌린다. 이는 수박줄이 국수처럼 쭉쭉 뻗어 나가라는 의미이다. 또 수제비를 해서 참외 밭에 뿌려 둔다. 이는 역시 수제비 같은 참외가 주렁주렁 열리라는 뜻이다. 이와 같이 고사를 지낸 뒤 비가 오면 풍년이 든다는 말이 있다.

상주시 사벌면 원흥1리에서는 유두일에 용제를 지낸다. 유두에는 천방이 터지는 것을 막고 곡식이 잘되게 해 달라고 떡이나 국수를 만들어(잡곡농사의 수확을 볼 때니까) 논이나 천방에 갖다 놓고 “아래 논에 용왕님, 웃논에 용왕님, 밭으로는 비 내루고(내리고), 맞으로는 도끼로 나락을 비고(베고)”라고 빌면서 제사를 지낸다. 이를 용지(용제), 또는 유두지(유두제)라고 한다. [머슴](/topic/머슴)이 있는 집에서는 머슴을 제사에 보내기도 한다. 그리고 참외밭에는 수제비를 끓여서 [도롱이](/topic/도롱이)를 깔아 놓고 제를 지내고, 삼으로 겨릅을 묶어서 세워 놓고 고시하듯이 그 위에 가지고 간 음식을 모두 꽂아 놓는다. 제를 지낸 뒤 음식을 먹고 음식이 남으면 집으로 가지고 온다.

김천시 구성면 하강2리 강성[마을](/topic/마을)에서는 유두일에 떡 여러 개를 삼바리 형태로 엮어 놓은 삼대에 꿰어 논으로 가져간다. 그런 다음 [물꼬](/topic/물꼬)에 삼대를 고정시킨 다음 그 위에 떡을 놓고 농사가 잘되게 해 달라고 빌고 온다. 이 일은 대개 집안의 머슴들이 주인을 대신해서 많이 한다. 제물로 가지고 간 떡은 지나가는 마을 사람이나 아이들이 빼 먹을 수 있도록 그냥 놓아 두고 온다.

충청남도 금산군 복수면 다복리 다복마을에서는 유두날 부침개나 [송편](/topic/송편)을 만들어 논을 위한다. 위한다는 것은 고사를 지내는 것을 의미한다. 밀가루에 [부추](/topic/부추)와 호박을 잘라 넣고 부친다. 송편은 쌀가루를 빻아서 뜨거운 물로 반죽하여 만든다. 반죽이 되면 소로 콩, 팥, 깨 등을 넣는다. 남자들은 송편을 ‘다래끼’에 담아 논으로 가져 간다. 논의 귀퉁이에 부침개와 송편을 놓아 둔다. 이렇게 하면 나락이 잘 여문다고 한다. 떡과 부침개는 주워 먹으면 좋다고 하여 아이들이 주로 주워 먹는다.

전라남도 여수시 화양면 안포리 세포마을에서는 유두날에 [논고사](/topic/논고사)를 지낸다. 아침 일찍 밥을 해 먹은 다음 제물을 장만하여 논으로 나간다. 제물은 메 한 그릇과 과일, 밀떡 등 간단하게 준비한다. 논둑에 가서 짚을 깔고 그 위에 제물을 진설한다. 그리고 손을 비비며 한 해 농사가 무사히 마[무리](/topic/무리)되게 해 달라고 논에 있는 신령에게 부탁한다. [비손](/topic/비손)이 끝나면 제물은 논둑에 묻거나 그대로 놔두고 돌아온다.

충청북도 영동군 용산면 율리에서는 유두날 물꼬에 가서 밀부침개를 해 놓는다. 그러면 짐승이 침입하지 않기 때문에 벼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여긴다. 또 논에서 기름 냄새를 피우면 벼멸구가 줄어든다고 하여 이곳에서 직접 부침개를 해서 비손을 하고 온다. 근래에는 [농약](/topic/농약)을 치기 때문에 이러한 풍습은 사라졌다.

유두날에 각별히 터주를 위하는 날로 여겨 고사를 지내기도 한다. 충남 금산군 부리면 어재리 마을의 한 가정에서는 유두일에 터주를 위하는 날로 여겨 터주단지 안의 쌀을 처음으로 헐어서 밥과 떡을 하여 [터주고사](/topic/터주고사)를 지낸다. 마을에 초상이 나거나 부정한 일이 발생하면 유두고사를 지내지 않고 청수만 한 그릇 올린다. 조상을 위하는 제사 때와 마찬가지로 밥, 김, 나무새(나물) 등 제물을 장만한다. 떡으로는 송편을 올린다. 터주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두 분이기 때문에 밥을 두 그릇 올린다. 숟가락은 밥 위에 올려놓는다. 송편은 고물을 넣어 배가 볼록하게 만든다. 아이들도 그 송편처럼 배가 두둑하게 해 달라는 의미이다. 부모가 돌아가시고 [삼우제](/topic/삼우제)를 지낼 때도 송편을 올린다.

장광에 나가 마련한 제물을 상에 받쳐 올리고 그릇에 [불밝이쌀](/topic/불밝이쌀)을 담아 촛불을 밝히고 향도 피워 놓는다. 청수는 별도로 마련된 [정화수](/topic/정화수) 그릇에 담아서 올린다. 제물 진설이 끝나면 비손을 하고 천황, 성주, 터주, 식구들 소지를 순서대로 올린다. 이 때는 시집간 딸을 포함하여 사위까지 모두 위한다. 사위를 위해서 소지를 올릴 때는 “누구누구 자손, 동남간에 어디를 가도 잘되게 해 주시오.”라고 빈다. 소지가 보얗게 잘 올라가야 좋다고 한다. 이런 경우 소지를 다시 올려 본다. 터주에 올린 제물은 모두 방 안의 성주와 조상께 올렸다가 나누어 먹는다.
참고문헌[조선상식](/topic/조선상식)문답 (최남선, 동명사, 1947)
조선상식-풍속․지리․제도 (최남선, 동명사,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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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세시풍속](/topic/세시풍속) (국립문화재연구소,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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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가정신앙-경기도 (국립문화재연구소, 2005)
세시풍속-총괄 (국립문화재연구소, 2006)
조선대세시기 (국립민속박물관, 2007)
한국의 가정신앙-경북 (국립문화재연구소, 2007)
한국의 가정신앙-충남 (국립문화재연구소, 2007)
[동국세시기](/topic/동국세시기) (홍석모, 정성모 역, 풀빛, 2009)
민속원서울진오기굿홍태한2004
보고사서울지역 안안팎굿 무가자료집김헌선2006
보고사서울지역진진오기굿 무가자료집김헌선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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