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각시

한국무속신앙사전
혼기가 찬 처녀가 시집을 [가지](/topic/가지) 못하고 죽은 것이 한이 되어 주로 자기 또래의 혼기 찬 처녀를 괴롭히는 악귀. 손말명, 왕신, 처녀귀신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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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기가 찬 처녀가 시집을 [가지](/topic/가지) 못하고 죽은 것이 한이 되어 주로 자기 또래의 혼기 찬 처녀를 괴롭히는 악귀. 손말명, 왕신, 처녀귀신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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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대원
정의혼기가 찬 처녀가 시집을 [가지](/topic/가지) 못하고 죽은 것이 한이 되어 주로 자기 또래의 혼기 찬 처녀를 괴롭히는 악귀. 손말명, 왕신, 처녀귀신이라고도 한다.
내용처녀에게 손각시가 붙으면 그 처녀는 병이 들거나 다른 괴롭힘을 당해 시집을 [가지](/topic/가지) 못한다고 한다. 설화에 따르면 손씨가(孫氏家)에 규녀(閨女)가 있었는데 출가(出嫁)하지 못하고 죽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각씨는 규녀를 칭하며, ‘손’은 곧 손님이란 뜻에서 ‘침해(侵害)’를 말한다.

이능화는 “우리나라에서 [원귀](/topic/원귀) 중에서 가장 무서운 원귀는 흔히 손각시라 한다. 이 손각시는 정욕을 해원(解寃)하지 못하고 죽은 처녀귀신을 말한다”라고 하였다. 이 때문에 처녀가 죽으면 다른 어떤 사람이 죽는 것보다 더 두려워했다. 손각시를 신봉하는 집안에서는 딸이 시집가기 전에 여무(女巫)를 초청하여 여탐굿을 한 다음 출가시킨다. 또한 손각시 옷을 만들 때는 비단필의 머리 부분을 끊어 처녀로 만들어서 신상(神箱) 안에 넣어두며, 집 안에 음식이나 새로운 물건이 들어오면 가장 먼저 신상에 바쳤다고 한다. 가족 중에 출가하는 사람이 있는 경우 신상에 고하지 않으면 큰 화를 입는다고 한다.

손각시를 방지하는 방법으로는 여러 가지가 있다. 먼저 처녀가 죽으면 손각시가 될 것을 두려워해 남성 성기를 강조한 [인형](/topic/인형)을 짚으로 만들어 관에 넣거나 남자 옷을 입혀 거꾸로 묻기도 한다. 다음으로 가시나무를 관 주위에 넣어서 묻었다. 성기를 강조한 사내 인형을 관에 넣거나 남자 옷을 입히는 이유는 죽어서나마 남성과 접촉한 것을 위안삼으라는 것이고, 거꾸로 묻는 것은 행여나 혼이 다시 일어나 밖으로 나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관 주변에 가시나무를 넣는 것은 앞의 방법으로도 안심이 되지 않아서 관 주변에 가시나무를 넣어둠으로써 손각시가 밖으로 나오는 것을 원천 봉쇄하는 것이다. 또 사람의 왕래가 많은 사거리의 길목에 묻거나 주위에서 젊은 남자가 죽으면 그와 허혼례(許婚禮)를 치러준다. 그리고 머리 위에 체를 덮어 씌워서 묻기도 한다. 이유는 손각시가 체 구멍을 헤아리다가 그 주변을 지나가는 사람을 보느라고 체 구멍 수를 잊어서 다시 헤아리게 하여 나오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무라야마 지준(村山智順)은 손각시가 [조혼](/topic/조혼)(早婚) 풍습에 많은 영향을 미쳤으며, 이로 인해 열녀문(烈女門)을 건립하게 되었으며, 실제로 손각시와 관련된 열녀문은 반수 이상을 차지한다고 했다.
지역사례강원도 삼척시 원남면 갈남리에는 애랑이 전설이 있다. 이 전설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이 [마을](/topic/마을)에 덕배와 애랑이라는 처녀 총각이 살고 있었다. 어느 날 덕배가 애랑이를 미역이 많이 있는 애바위라는 섬에 배로 태워다 주었다. 덕배를 보내고 미역을 뜯던 애랑이는 파도에 휩쓸려 목숨을 잃었다. 그 후 마을 사람들이 뱃일을 나가면 고기가 잡히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은 애랑이의 혼을 달래기 위해 바닷가 언덕에 당집을 짓고 제를 지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어느 날 술에 취한 어부 한 명이 바다에 욕을 하고 오줌을 누었다. 이후에 마을의 배가 바다에 나가면 만선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이 마을에서는 매년 정월 대보름과 10월 첫 오(午)날에 제를 지내면서 이날 남근목을 깎아 당집에 바쳤다고 한다. 이는 애랑이의 원혼을 달래기 위함이다.

남해에 있는 사랑도 [옥녀봉](/topic/옥녀봉)의 옥녀 이야기도 역시 유명하다. 전설에 따르면 과년(過年)한 옥녀가 홀로 된 아버지의 성적 요구에 괴로워한 나머지 옥녀봉에 올라가서 떨어져 자살하였다. 그 뒤부터 동네에서 처녀가 시집갈 때 신부가 탄 가마가 옥녀봉 밑을 지나게 되면 반드시 가마에서 내려 걸어간다고 한다. 이는 옥녀가 시집도 못 가고 죽었기 때문에 그 원령이 옥녀봉에 남아서 시집가는 처녀에게 샘을 내어 화를 미친다고 생각해서이다.
참고문헌사후결혼의 의미 (최길성, 비교민속학회 창간호, 한국비교민속학회, 1985)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topic/사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1)
한국민속대사전 2 (한국민속사전편찬위원회, 민족문화사, 1991)
[조선무속고](/topic/조선무속고) (이능화, 이재곤 역, 동문선, 1995)
한국민속문화대사전 상 (김용덕, 도서출판 창솔, 2004)
국립민속박물관큰무당 우옥주 유품양종승1995
국립문화재연구소황해도평산소놀음굿양종승1998
도서출판 民俗苑한국의 굿하효길 외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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