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기가마고사

한국무속신앙사전
옹기가마고사
옹기를 만드는 장인들이 옹기 가마에 불을 지피기 전에 가마소성 작업이 잘 이루어지기를 기원하면서 드리는 [고사](/topic/고사). 장인에 따라 방법이나 상차림, 장소가 일부 다르기는 하지만 대부분 옹기 가마 앞에서 고사상을 차려 놓고 절을 하면서 옹기가 잘 구워지기를 기원한다.
definition
옹기를 만드는 장인들이 옹기 가마에 불을 지피기 전에 가마소성 작업이 잘 이루어지기를 기원하면서 드리는 [고사](/topic/고사). 장인에 따라 방법이나 상차림, 장소가 일부 다르기는 하지만 대부분 옹기 가마 앞에서 고사상을 차려 놓고 절을 하면서 옹기가 잘 구워지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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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은
특징옹기는 천주교와 밀접한 관련을 맺으면서 여러 [가지](/topic/가지) 변화를 나타낸다. 그 가운데 옹기가마고사의 모습도 천주교와 결합하면서 새로운 모습을 나타내기도 한다.

조선시대 말 천주교의 박해로 많은 천주교 신자가 신앙의 자유와 신분 보장을 위해 산 속으로 숨어들었다. 이들 천주교인은 경제적‧종교적 생활을 이어가기 위해 옹기 제작이나 판매를 [생업](/topic/생업)으로 하게 되었다. 이는 천주교의 전파 경로와 교우촌의 입지 조건이 옹기점이 형성되어 있는 위치나 조건과 매우 유사하였다 이는 현재도 그 영향으로 대부분의 옹기 장인이 천주교인임을 감안하여 볼 때 잘 알 수 있다. 즉 서울을 기점으로 시작된 천주교의 전파는 중부 내륙 지방에 강하게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현상은 이후 천주교인 옹기점이 대부분 이 지역과 일치하여 나타나게 됨을 확인할 수 있다. 1970년 전국의 옹기점 조사에 따르면 천주교를 믿는 장인 대부분이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 일부 지역에 속하여 있다. 이는 현재의 옹기 장인에게서 나타나는 종교적 특징과 지역성에서도 일치함을 알 수 있다.

옹기 제작과 천주교 신봉은 모두 가정 단위를 기준으로 다음 세대로 계승되는 같은 특징을 보이고 있어 천주교 신자의 옹기 제작은 계속 대물림되었다. 따라서 현재 3대 정도 이어져 온 천주교 신자인 옹기 장인의 경우 대부분 옹기가마고사를 지내지 않는다. 그 대신 신앙적인 면과 결합해 새로운 풍속을 보인다.

경기도 여주 옹기 장인의 경우 천주교 신자여서 가마 고사는 지내지 않는다. 대신 성당의 신부가 가마 앞에서 기도를 해 주면서 성수물을 뿌려주거나 레지오 회원들이 가마 앞에서 기도해 준다. 특별한 날을 잡아서 하는 것은 아니다. 성당에서 가정방문이 이루어지는 경우 축복해 주는 형태이다.

경기도 안성 옹기 장인의 경우 간혹 가마에 불을 지피기 전에 가마 앞에서 잠깐 기도를 한다. 특별한 형식이나 구성원이 있는 것이 아니다. 마음속으로 소원을 비는 형태의 기도가 대부분이다.

가마 앞에서 기도를 하고 신부가 찾아와 성수물을 뿌려 주는 모습은 가마고사를 지내던 풍속이 새로운 종교를 받아들이게 됨으로 생겨나는 변모된 풍속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가마고사를 지내든지 기도를 드리든지 하는 행위들은 모두 누군가에게 의지해 작업이 잘되기를 기원하는 것으로, 그 대상만 바뀌었을 뿐 맥락은 같다고 할 수 있다.
특징옹기는 천주교와 밀접한 관련을 맺으면서 여러 [가지](/topic/가지) 변화를 나타낸다. 그 가운데 옹기가마고사의 모습도 천주교와 결합하면서 새로운 모습을 나타내기도 한다.

조선시대 말 천주교의 박해로 많은 천주교 신자가 신앙의 자유와 신분 보장을 위해 산 속으로 숨어들었다. 이들 천주교인은 경제적‧종교적 생활을 이어가기 위해 옹기 제작이나 판매를 [생업](/topic/생업)으로 하게 되었다. 이는 천주교의 전파 경로와 교우촌의 입지 조건이 옹기점이 형성되어 있는 위치나 조건과 매우 유사하였다 이는 현재도 그 영향으로 대부분의 옹기 장인이 천주교인임을 감안하여 볼 때 잘 알 수 있다. 즉 서울을 기점으로 시작된 천주교의 전파는 중부 내륙 지방에 강하게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현상은 이후 천주교인 옹기점이 대부분 이 지역과 일치하여 나타나게 됨을 확인할 수 있다. 1970년 전국의 옹기점 조사에 따르면 천주교를 믿는 장인 대부분이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 일부 지역에 속하여 있다. 이는 현재의 옹기 장인에게서 나타나는 종교적 특징과 지역성에서도 일치함을 알 수 있다.

옹기 제작과 천주교 신봉은 모두 가정 단위를 기준으로 다음 세대로 계승되는 같은 특징을 보이고 있어 천주교 신자의 옹기 제작은 계속 대물림되었다. 따라서 현재 3대 정도 이어져 온 천주교 신자인 옹기 장인의 경우 대부분 옹기가마고사를 지내지 않는다. 그 대신 신앙적인 면과 결합해 새로운 풍속을 보인다.

경기도 여주 옹기 장인의 경우 천주교 신자여서 가마 고사는 지내지 않는다. 대신 성당의 신부가 가마 앞에서 기도를 해 주면서 성수물을 뿌려주거나 레지오 회원들이 가마 앞에서 기도해 준다. 특별한 날을 잡아서 하는 것은 아니다. 성당에서 가정방문이 이루어지는 경우 축복해 주는 형태이다.

경기도 안성 옹기 장인의 경우 간혹 가마에 불을 지피기 전에 가마 앞에서 잠깐 기도를 한다. 특별한 형식이나 구성원이 있는 것이 아니다. 마음속으로 소원을 비는 형태의 기도가 대부분이다.

가마 앞에서 기도를 하고 신부가 찾아와 성수물을 뿌려 주는 모습은 가마고사를 지내던 풍속이 새로운 종교를 받아들이게 됨으로 생겨나는 변모된 풍속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가마고사를 지내든지 기도를 드리든지 하는 행위들은 모두 누군가에게 의지해 작업이 잘되기를 기원하는 것으로, 그 대상만 바뀌었을 뿐 맥락은 같다고 할 수 있다.
정의옹기를 만드는 장인들이 옹기 가마에 불을 지피기 전에 가마소성 작업이 잘 이루어지기를 기원하면서 드리는 [고사](/topic/고사). 장인에 따라 방법이나 상차림, 장소가 일부 다르기는 하지만 대부분 옹기 가마 앞에서 고사상을 차려 놓고 절을 하면서 옹기가 잘 구워지기를 기원한다.
정의옹기를 만드는 장인들이 옹기 가마에 불을 지피기 전에 가마소성 작업이 잘 이루어지기를 기원하면서 드리는 [고사](/topic/고사). 장인에 따라 방법이나 상차림, 장소가 일부 다르기는 하지만 대부분 옹기 가마 앞에서 고사상을 차려 놓고 절을 하면서 옹기가 잘 구워지기를 기원한다.
내용옹기가마고사를 언제부터 지냈는지는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는 문헌이 없다. 단 옹기의 원류가 도기(陶器)에서부터 출발하였다는 점, 옹기뿐만 아니라 도자기를 만드는 사기점에서도 역시 옹기가마고사와 마찬[가지](/topic/가지)로 소성 전에 가마고사를 지내며, 인간이 어떠한 일을 이루기 위해 자연의 힘을 빌거나 이에 의지하고자 하는 의미에서 제사를 지냈다는 점에서 볼 때 그 기원을 따지면 오랜 시간까지 올라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옹기가마고사에 대한 직접적인 역사기록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나 조선시대 말 천주교 신부인 뮈텔의 일기 『뮈텔주교일기』에는 옹기점의 여러 모습이 나온다. 그 가운데 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오늘은 마침 옹기를 굽는 날이어서 이번 가마의 옹기와 다음 가마를 위한 하느님의 축복을 빌기 위해 나에게 가마의 축성을 부탁했다. 저녁 때 크렘프 신부와 함께 가마에 불을 지피는 의식에 참석했다.(1906년 11월 13일)” 이는 천주교 신자인 옹기 장인의 가마에 옹기가 잘 구워져 나올 수 있도록 기도하는 의식으로, 기존에 행해지던 가마고사의 형태와 천주교가 결합하여 나온 모습임을 알 수 있다.

옹기가마고사는 무엇보다 소성 작업이 잘 이루어지기를 기원하는 데 목적이 있기 때문에 [장작](/topic/장작) 가마를 통해 작업이 이루어지는 경우에 주로 나타난다. 즉 장작가마의 효율성이나 경제성이 떨어져 대부분의 옹기 공장에서도 기름가마나 가스가마를 사용하게 된 1970년대 이후부터는 대부분의 옹기점에서 가마고사를 지내지 않게 되었다.

또한 조선시대 말에 있은 천주교에 대한 박해로 생겨난 많은 교우촌에서는 옹기를 [생업](/topic/생업)으로 생활하게 되면서 많은 옹기 장인이 천주교인으로 교화하기도 하였다. 이후 천주교를 믿는 장인들의 경우 가마고사를 지내지 않게 되면서 고사의 풍습은 대를 이어오면서 점점 사라지는 경우도 있다.
내용옹기가마고사를 언제부터 지냈는지는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는 문헌이 없다. 단 옹기의 원류가 도기(陶器)에서부터 출발하였다는 점, 옹기뿐만 아니라 도자기를 만드는 사기점에서도 역시 옹기가마고사와 마찬[가지](/topic/가지)로 소성 전에 가마고사를 지내며, 인간이 어떠한 일을 이루기 위해 자연의 힘을 빌거나 이에 의지하고자 하는 의미에서 제사를 지냈다는 점에서 볼 때 그 기원을 따지면 오랜 시간까지 올라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옹기가마고사에 대한 직접적인 역사기록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나 조선시대 말 천주교 신부인 뮈텔의 일기 『뮈텔주교일기』에는 옹기점의 여러 모습이 나온다. 그 가운데 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오늘은 마침 옹기를 굽는 날이어서 이번 가마의 옹기와 다음 가마를 위한 하느님의 축복을 빌기 위해 나에게 가마의 축성을 부탁했다. 저녁 때 크렘프 신부와 함께 가마에 불을 지피는 의식에 참석했다.(1906년 11월 13일)” 이는 천주교 신자인 옹기 장인의 가마에 옹기가 잘 구워져 나올 수 있도록 기도하는 의식으로, 기존에 행해지던 가마고사의 형태와 천주교가 결합하여 나온 모습임을 알 수 있다.

옹기가마고사는 무엇보다 소성 작업이 잘 이루어지기를 기원하는 데 목적이 있기 때문에 [장작](/topic/장작) 가마를 통해 작업이 이루어지는 경우에 주로 나타난다. 즉 장작가마의 효율성이나 경제성이 떨어져 대부분의 옹기 공장에서도 기름가마나 가스가마를 사용하게 된 1970년대 이후부터는 대부분의 옹기점에서 가마고사를 지내지 않게 되었다.

또한 조선시대 말에 있은 천주교에 대한 박해로 생겨난 많은 교우촌에서는 옹기를 [생업](/topic/생업)으로 생활하게 되면서 많은 옹기 장인이 천주교인으로 교화하기도 하였다. 이후 천주교를 믿는 장인들의 경우 가마고사를 지내지 않게 되면서 고사의 풍습은 대를 이어오면서 점점 사라지는 경우도 있다.
역사옹기가마고사를 언제부터 지냈는지는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는 문헌이 없다. 단 옹기의 원류가 도기(陶器)에서부터 출발하였다는 점, 옹기뿐만 아니라 도자기를 만드는 사기점에서도 역시 옹기가마고사와 마찬[가지](/topic/가지)로 소성 전에 가마고사를 지내며, 인간이 어떠한 일을 이루기 위해 자연의 힘을 빌거나 이에 의지하고자 하는 의미에서 제사를 지냈다는 점에서 볼 때 그 기원을 따지면 오랜 시간까지 올라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옹기가마고사에 대한 직접적인 역사기록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나 조선시대 말 천주교 신부인 뮈텔의 일기 『뮈텔주교일기』에는 옹기점의 여러 모습이 나온다. 그 가운데 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오늘은 마침 옹기를 굽는 날이어서 이번 가마의 옹기와 다음 가마를 위한 하느님의 축복을 빌기 위해 나에게 가마의 축성을 부탁했다. 저녁 때 크렘프 신부와 함께 가마에 불을 지피는 의식에 참석했다.(1906년 11월 13일)” 이는 천주교 신자인 옹기 장인의 가마에 옹기가 잘 구워져 나올 수 있도록 기도하는 의식으로, 기존에 행해지던 가마고사의 형태와 천주교가 결합하여 나온 모습임을 알 수 있다.

옹기가마고사는 무엇보다 소성 작업이 잘 이루어지기를 기원하는 데 목적이 있기 때문에 [장작](/topic/장작) 가마를 통해 작업이 이루어지는 경우에 주로 나타난다. 즉 장작가마의 효율성이나 경제성이 떨어져 대부분의 옹기 공장에서도 기름가마나 가스가마를 사용하게 된 1970년대 이후부터는 대부분의 옹기점에서 가마고사를 지내지 않게 되었다.

또한 조선시대 말에 있은 천주교에 대한 박해로 생겨난 많은 교우촌에서는 옹기를 [생업](/topic/생업)으로 생활하게 되면서 많은 옹기 장인이 천주교인으로 교화하기도 하였다. 이후 천주교를 믿는 장인들의 경우 가마고사를 지내지 않게 되면서 고사의 풍습은 대를 이어오면서 점점 사라지는 경우도 있다.
역사옹기가마고사를 언제부터 지냈는지는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는 문헌이 없다. 단 옹기의 원류가 도기(陶器)에서부터 출발하였다는 점, 옹기뿐만 아니라 도자기를 만드는 사기점에서도 역시 옹기가마고사와 마찬[가지](/topic/가지)로 소성 전에 가마고사를 지내며, 인간이 어떠한 일을 이루기 위해 자연의 힘을 빌거나 이에 의지하고자 하는 의미에서 제사를 지냈다는 점에서 볼 때 그 기원을 따지면 오랜 시간까지 올라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옹기가마고사에 대한 직접적인 역사기록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나 조선시대 말 천주교 신부인 뮈텔의 일기 『뮈텔주교일기』에는 옹기점의 여러 모습이 나온다. 그 가운데 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오늘은 마침 옹기를 굽는 날이어서 이번 가마의 옹기와 다음 가마를 위한 하느님의 축복을 빌기 위해 나에게 가마의 축성을 부탁했다. 저녁 때 크렘프 신부와 함께 가마에 불을 지피는 의식에 참석했다.(1906년 11월 13일)” 이는 천주교 신자인 옹기 장인의 가마에 옹기가 잘 구워져 나올 수 있도록 기도하는 의식으로, 기존에 행해지던 가마고사의 형태와 천주교가 결합하여 나온 모습임을 알 수 있다.

옹기가마고사는 무엇보다 소성 작업이 잘 이루어지기를 기원하는 데 목적이 있기 때문에 [장작](/topic/장작) 가마를 통해 작업이 이루어지는 경우에 주로 나타난다. 즉 장작가마의 효율성이나 경제성이 떨어져 대부분의 옹기 공장에서도 기름가마나 가스가마를 사용하게 된 1970년대 이후부터는 대부분의 옹기점에서 가마고사를 지내지 않게 되었다.

또한 조선시대 말에 있은 천주교에 대한 박해로 생겨난 많은 교우촌에서는 옹기를 [생업](/topic/생업)으로 생활하게 되면서 많은 옹기 장인이 천주교인으로 교화하기도 하였다. 이후 천주교를 믿는 장인들의 경우 가마고사를 지내지 않게 되면서 고사의 풍습은 대를 이어오면서 점점 사라지는 경우도 있다.
지역사례경기도나 충청도의 경우 대부분의 옹기 장인이 천주교신자여서 옹기가마고사를 지내는 옹기점은 매우 드물다. 대부분의 옹기가마고사는 천주교신자가 아닌 장인들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지역적으로는 전라남도나 경상도의 일부 지역에서 나타난다.

전남 무안군 몽탄면 옹기점의 경우 매해 [정월대보름](/topic/정월대보름)날 아침에 제를 지낸다. 이때 상은 옹기공장 안과 집 안에 각각 차려 놓는다. 상 차리는 시간은 설이나 추석의 제사상과 마찬[가지](/topic/가지)로 해가 뜨기 전 이른 아침이다. 해가 뜨면 보름을 맞는다는 의미가 없어지기 때문에 새벽 3시쯤부터 일어나 음식을 장만하고 6~7시에 상을 올린다. 대보름날에는 설이나 추석과 같이 반드시 지내야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상에 올리는 음식이나 제를 올리는 형태가 특정 격식이나 절차가 있는 것은 아니다. 상차림은 제사상과 같이 밥, 국, 과일류, 나물류 등을 올린다. 생선은 보통 올리지 않지만 간혹 올리는 경우 비늘이 없는 것을 사용한다. 대보름날에는 절을 하지 않기 때문에 남자들은 보름 상에 관여하지 않는다. 상은 공장 안에 한 개, 집 안에 세 개를 놓는다. 집 안에 놓여지는 상은 부모님, 조부모님 그리고 성주신께 각각 따로 차린다. 이들 상에는 제삿밥이라는 의미가 부여되지만 공장 안에 차려지는 상에는 특별한 대상이 없다. 공장에 차리는 상에는 수저를 공장의 안쪽 방향으로 하여 놓는다. 한 시간 정도 둔 뒤 식구들의 아침상에 올라가는 것이 대부분이다. 한 해 동안 공장 안에 상이 차려지는 경우는 대보름날밖에 없다. 또한 대보름 전날인 열나흗날에는 해가 지기 시작할 즈음에 공장 안과 집 안에 불을 환하게 밝혀 놓는다. 이는 일 년 동안 환하게 잘살라는 의미이다.

영암군 신북면 옹기점의 경우 1970년대까지 [장작](/topic/장작)가마를 사용할 때는 불을 지필 때 가마 앞에서 고사를 지냈다. 그러나 가스가마를 사용한 이후에는 거의 매일 불을 지피기 때문에 불을 지필 때는 지내지 않고 정월대보름날에만 지낸다. 상에는 돼지머리, 떡, 술, 나물류, 밥, 국 등이 올라간다. 집 안에 차려 놓는 상에는 일반 제사상과 같이 두 번 절을 한다. 현재 사용하는 가스가마 앞에도 상을 차리지만 절은 하지 않는다. 상은 보통 대보름날 새벽 3~4시쯤에 올리며, 일 년 동안 일이 잘되기를 기원한다. 상을 올릴 때에는 집안 식구 외 다른 사람들은 들어올 수 없다.

경상북도 상주시 이안면 옹기점의 경우 현재 장인 대부분이 천주교 신자여서 가마고사를 지내지 않는다. 예전에는 이 지역에서도 가마고사를 지냈다. 가마에 불을 지필 때 지내는 가마고사는 돼지머리, 떡, 술을 올려놓는 일반 고사상과 같이 차리고 절을 하면서 옹기가 잘 구워지기를 빌었다고 한다. 가마고사를 지낼 때와 가마에 불을 지필 때에는 여성이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하는 금기 사항도 있었다.
지역사례경기도나 충청도의 경우 대부분의 옹기 장인이 천주교신자여서 옹기가마고사를 지내는 옹기점은 매우 드물다. 대부분의 옹기가마고사는 천주교신자가 아닌 장인들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지역적으로는 전라남도나 경상도의 일부 지역에서 나타난다.

전남 무안군 몽탄면 옹기점의 경우 매해 [정월대보름](/topic/정월대보름)날 아침에 제를 지낸다. 이때 상은 옹기공장 안과 집 안에 각각 차려 놓는다. 상 차리는 시간은 설이나 추석의 제사상과 마찬[가지](/topic/가지)로 해가 뜨기 전 이른 아침이다. 해가 뜨면 보름을 맞는다는 의미가 없어지기 때문에 새벽 3시쯤부터 일어나 음식을 장만하고 6~7시에 상을 올린다. 대보름날에는 설이나 추석과 같이 반드시 지내야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상에 올리는 음식이나 제를 올리는 형태가 특정 격식이나 절차가 있는 것은 아니다. 상차림은 제사상과 같이 밥, 국, 과일류, 나물류 등을 올린다. 생선은 보통 올리지 않지만 간혹 올리는 경우 비늘이 없는 것을 사용한다. 대보름날에는 절을 하지 않기 때문에 남자들은 보름 상에 관여하지 않는다. 상은 공장 안에 한 개, 집 안에 세 개를 놓는다. 집 안에 놓여지는 상은 부모님, 조부모님 그리고 성주신께 각각 따로 차린다. 이들 상에는 제삿밥이라는 의미가 부여되지만 공장 안에 차려지는 상에는 특별한 대상이 없다. 공장에 차리는 상에는 수저를 공장의 안쪽 방향으로 하여 놓는다. 한 시간 정도 둔 뒤 식구들의 아침상에 올라가는 것이 대부분이다. 한 해 동안 공장 안에 상이 차려지는 경우는 대보름날밖에 없다. 또한 대보름 전날인 열나흗날에는 해가 지기 시작할 즈음에 공장 안과 집 안에 불을 환하게 밝혀 놓는다. 이는 일 년 동안 환하게 잘살라는 의미이다.

영암군 신북면 옹기점의 경우 1970년대까지 [장작](/topic/장작)가마를 사용할 때는 불을 지필 때 가마 앞에서 고사를 지냈다. 그러나 가스가마를 사용한 이후에는 거의 매일 불을 지피기 때문에 불을 지필 때는 지내지 않고 정월대보름날에만 지낸다. 상에는 돼지머리, 떡, 술, 나물류, 밥, 국 등이 올라간다. 집 안에 차려 놓는 상에는 일반 제사상과 같이 두 번 절을 한다. 현재 사용하는 가스가마 앞에도 상을 차리지만 절은 하지 않는다. 상은 보통 대보름날 새벽 3~4시쯤에 올리며, 일 년 동안 일이 잘되기를 기원한다. 상을 올릴 때에는 집안 식구 외 다른 사람들은 들어올 수 없다.

경상북도 상주시 이안면 옹기점의 경우 현재 장인 대부분이 천주교 신자여서 가마고사를 지내지 않는다. 예전에는 이 지역에서도 가마고사를 지냈다. 가마에 불을 지필 때 지내는 가마고사는 돼지머리, 떡, 술을 올려놓는 일반 고사상과 같이 차리고 절을 하면서 옹기가 잘 구워지기를 빌었다고 한다. 가마고사를 지낼 때와 가마에 불을 지필 때에는 여성이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하는 금기 사항도 있었다.
의의가마고사를 지내는 옹기점의 경우 [장작](/topic/장작)가마 소성이 이루어질 때 대부분 고사를 드리지만 이는 그 수나 경우가 매우 적어지고 있다.

일부 옹기점의 경우 일 년 가운데 [정월대보름](/topic/정월대보름)날에만 고사를 지낸다. 이는 사회의 변화로 인해 간소화되어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하지만 제작 기술의 진보로 인한 이유가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즉 가마에 불을 지필 때는 작업은 물론 본인의 기술과 노력도 중요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바람이나 기압 등 자연 조건도 매우 중요하였다. 이 때문에 그동안의 수고와 노력이 헛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초자연적 신에 의지하는 모습으로 가마고사를 지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손 성형보다는 석고틀을 이용한 작업이 늘어나고, 장작 가마의 위험성과 비효율적인 경제성보다 가스 가마를 이용한 제작이 늘어나면서 예전에 우려하던 자연적 요소들은 사라[지게](/topic/지게) 되었다. 결국 기술 진보로 인해 자연적 신에 의지하던 가마 고사의 필요성은 점점 줄어들었다.

이러한 모습은 사기점의 경우에도 비슷하게 나타난다. 가스가마를 사용하는 사기점에서 가마고사를 지내는 경우는 거의 없다. 장작가마를 사용하는 일부 장인의 경우에만 고사를 지내고 있다. 가마고사를 지내는 사기점 장인의 경우에도 장작가마가 아닌 가스가마를 사용하면 고사를 지낼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고 증언하고 있다. 따라서 점차 옹기의 제작 기술이 늘어나거나 옹기의 수요가 급격히 줄어 이를 제작하는 장인이 점차 사라지게 될 경우 함께 이어져 오던 옹기가마고사의 풍습도 그 모습을 잃어가게 될 것이다.

한편 기존에는 옹기 가마 앞이나 공장 안에서 고사를 드리는 모습을 보여 왔다. 그러나 옹기가마고사를 일 년 중 정월대보름날에만 지키는 가정의 경우를 살펴보면 대보름 제사와 같이 ‘제삿밥’의 의미가 부여되면서 집 안에 상을 차리는 모습이 생겨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여자들이 상차림에 관여하거나 일부의 경우 남성은 관여하지도 않게 되는 특징도 나타났다.
참고문헌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 172-옹기 (정명호, 문화재관리국, 1987)
한국천주교회의 소공동체 전통 (김진소, 민족사와 교회사, 한국교회사연구소, 2000)
옹기점의 민속학적 고찰 (민경은, 고려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5)
경기도 옹기점 현황조사 보고서 (옹기민속박물관, 2008)
옹[기장](/topic/기장) (국립문화재연구소, 민속원, 2010)
의의가마고사를 지내는 옹기점의 경우 [장작](/topic/장작)가마 소성이 이루어질 때 대부분 고사를 드리지만 이는 그 수나 경우가 매우 적어지고 있다.

일부 옹기점의 경우 일 년 가운데 [정월대보름](/topic/정월대보름)날에만 고사를 지낸다. 이는 사회의 변화로 인해 간소화되어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하지만 제작 기술의 진보로 인한 이유가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즉 가마에 불을 지필 때는 작업은 물론 본인의 기술과 노력도 중요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바람이나 기압 등 자연 조건도 매우 중요하였다. 이 때문에 그동안의 수고와 노력이 헛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초자연적 신에 의지하는 모습으로 가마고사를 지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손 성형보다는 석고틀을 이용한 작업이 늘어나고, 장작 가마의 위험성과 비효율적인 경제성보다 가스 가마를 이용한 제작이 늘어나면서 예전에 우려하던 자연적 요소들은 사라[지게](/topic/지게) 되었다. 결국 기술 진보로 인해 자연적 신에 의지하던 가마 고사의 필요성은 점점 줄어들었다.

이러한 모습은 사기점의 경우에도 비슷하게 나타난다. 가스가마를 사용하는 사기점에서 가마고사를 지내는 경우는 거의 없다. 장작가마를 사용하는 일부 장인의 경우에만 고사를 지내고 있다. 가마고사를 지내는 사기점 장인의 경우에도 장작가마가 아닌 가스가마를 사용하면 고사를 지낼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고 증언하고 있다. 따라서 점차 옹기의 제작 기술이 늘어나거나 옹기의 수요가 급격히 줄어 이를 제작하는 장인이 점차 사라지게 될 경우 함께 이어져 오던 옹기가마고사의 풍습도 그 모습을 잃어가게 될 것이다.

한편 기존에는 옹기 가마 앞이나 공장 안에서 고사를 드리는 모습을 보여 왔다. 그러나 옹기가마고사를 일 년 중 정월대보름날에만 지키는 가정의 경우를 살펴보면 대보름 제사와 같이 ‘제삿밥’의 의미가 부여되면서 집 안에 상을 차리는 모습이 생겨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여자들이 상차림에 관여하거나 일부의 경우 남성은 관여하지도 않게 되는 특징도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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