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안마도당제

한국무속신앙사전
전라남도 영광군 낙월면 안마도에서 전통적으로 행해 온 [마을](/topic/마을)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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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영광군 낙월면 안마도에서 전통적으로 행해 온 [마을](/topic/마을)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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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
특징영광 안마도에서는 1970년대까지 제의를 행했다. [마을](/topic/마을)제 명칭은 ‘당제’, ‘당산제’ 등으로 지역별로 상이하게 나타난다. 네 마을이 연대하여 마을제사를 지내던 안마도에서는 당제(堂祭)로 통칭한다. 서해, 남해의 도서해안 지역을 중심으로 호명해 온 일반적인 경향이다. 대개 자연마을 단위별로 마을제사를 지내며, 섬 전체의 마을이 연합하여 닷새 동안 제의를 치른다는 점이 특징이다. 신격이나 성격은 도서해안 지역에서 연행되는 당제와 크게 다르지 않으나 해안 표착형 설화를 중심으로 구성된 마을제사라는 점, 특히 중국과의 관련성 속에서 이를 유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장소적 특성을 거론할 수 있다.
특징영광 안마도에서는 1970년대까지 제의를 행했다. [마을](/topic/마을)제 명칭은 ‘당제’, ‘당산제’ 등으로 지역별로 상이하게 나타난다. 네 마을이 연대하여 마을제사를 지내던 안마도에서는 당제(堂祭)로 통칭한다. 서해, 남해의 도서해안 지역을 중심으로 호명해 온 일반적인 경향이다. 대개 자연마을 단위별로 마을제사를 지내며, 섬 전체의 마을이 연합하여 닷새 동안 제의를 치른다는 점이 특징이다. 신격이나 성격은 도서해안 지역에서 연행되는 당제와 크게 다르지 않으나 해안 표착형 설화를 중심으로 구성된 마을제사라는 점, 특히 중국과의 관련성 속에서 이를 유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장소적 특성을 거론할 수 있다.
정의전라남도 영광군 낙월면 안마도에서 전통적으로 행해 온 [마을](/topic/마을)제사.
정의전라남도 영광군 낙월면 안마도에서 전통적으로 행해 온 [마을](/topic/마을)제사.
내용제당은 여섯 군데의 제당으로 구성되었다. 큰당, 작은당, 큰아들당, 작은아들당, 셋째아들당, 넷째아들당이 그것이다.

큰당은 곰몰[마을](/topic/마을) 뒷산(해군기지)에 위치한다. 신격은 할아버지에 해당된다. 큰당은 당집은 없고 [돌담](/topic/돌담)으로 둘러싸여 있다. 돌담 주변에는 동백나무숲이 우거졌다. 큰 당 입구의 왼쪽은 당할아버지 신격으로 호명된다. 판석(板石) 위에 쌀 두 가마 분량이 들어갈 크기의 항아리가 있다. 그 앞쪽으로 [철마](/topic/철마) 세 마리를 안치했다. 항아리 안에는 [신대](/topic/신대)[神木]에 매달았던 당목([무명](/topic/무명)베)과 노잣돈 [주머니](/topic/주머니)를 넣어 두었다. 당할아버지 맞은편을 신씨할머니당으로 부른다. 큰당 안에서 할아버지당과 신씨할머니당을 구별하기 위해 돌담을 쌓았다. 신씨할머니당에도 마찬[가지](/topic/가지)로 판석 위에 항아리를 두었다. 물론 현재 항아리나 철마는 전승되지 않는다. 돌담과 판석만이 제의 터의 위엄을 말해주고 있을 뿐이다.

작은당은 큰당에서 남쪽으로 100m쯤 아래에 있다. 신격은 할머니에 해당된다. 당 자체가 소실되어 형태는 확인할 수 없다. 마을에서는 이곳을 ‘구당터’(옛날 당이 있던 곳이라는 뜻)라고 부른다. 큰아들당은 큰당에서 남쪽으로 산 아래에 있는 곰몰마을의 입구에 위치한다. 신격은 큰아들에 해당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를 할아버지당으로 인식하기도 한다. 이 밖에 작은아들당, 셋째아들당, 넷째아들당의 경우도 할아버지당으로 인식한다. 작은아들당은 등몰마을 입구에 위치한다. 신격은 작은아들에 해당된다. 셋째아들당은 신기마을 입구에 위치한다. 신격은 셋째아들에 해당된다. 넷째아들당은 월촌마을 중앙에 위치한다. 신격은 넷째아들에 해당된다. 이들 아들 당의 신체는 모두 팽나무이다.

안마도에는 신기․월촌․곰몰․등촌 등 네 개의 자연마을이 있다가 등촌마을의 가구 수가 줆으로써 신기마을과 통합되어 세 개 마을로 구성되었다. 당주([제관](/topic/제관))나 신대잡이를 대표자 또는 대리자로 내세우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마을 주민들이 제의의 주체가 된다.

제비(祭費)는 호구전 등으로 호명되는 인구당 갹출 방식을 택해 충당한다. 안마도에서는 이를 ‘[지붕](/topic/지붕) 머릿돈’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제비의 사용처는 거의 대부분 제물을 마련하는 것이다. 남은 금액은 당주(또는 제관)에게 수고비 명목으로 전달하는 사례도 있었다고 한다.

제관은 당주 네 명으로 구성된다. ‘신대잡이’로 호명되는 제의 보조자도 여덟 명이 선정된다. 당주와 ‘신대잡이’는 네 개 마을에서 각각 한 명, 두 명을 선출한다. 특히 당주의 경우 [생기복덕](/topic/생기복덕)을 봐서 손(孫)이 귀하거나 깨끗한 집을 선정한다. 당주로 선정되면 부정한 일을 하거나 부정한 것을 최소한 봐서도 안 된다. 부정한 일로 인식되는 것은 부부동침, 대소변을 보는 일, 궂은 곳(상례, 출산 등) 출입, 궂은 음식을 먹는 행위 등 포괄적이다. 물론 궂은일과 관련이 있는 경우에는 제관 선정에서 제외된다. 대소변 등 불가피하고 사소한 경우라 하더라도 반드시 다시 목욕재계하여 부정을 씻는다. 이러한 금기는 당제가 끝날 때까지 지켜진다.

제물도 깨끗한 사람(궂은일과 관련이 없는 사람)이 약 닷새 전에 인근의 내륙 포구인 법성포 장에서 구입해 온다. 제물을 구입할 때에는 값을 깎아서도, 흥정을 해서도 안 된다. 꼭 필요한 제의 물품은 삼색실과와 조기 등 해산물이다. 음식 조리에는 당주의 가족만이 참여할 수 있다. 조리 중에 음식 맛을 보면 안 된다. 가능한 한 음식은 싱겁게 만든다. [제상](/topic/제상)에 오르는 제물은 삼색실과를 포함해 조기, 나물, 메(밥), 술, 떡 등이다. 육류는 일절 사용하지 않는다.

음식의 진설은 일반적인 조상제사와 같다. 산의 정상에서는 제상을 두 개 준비한다. 한쪽은 신씨할머니상이고 다른 쪽은 당할아버지와 당할머니상이므로 메는 세 개가 된다.

곰몰마을에서는 음식을 주로 섣달그믐날과 정월 초나흗날 두 번 준비한다. 등몰마을에서는 정월 초하룻날에 음식을 준비한다. 신기마을에서는 정월 초이튿날에 준비한다. 월촌마을에서는 정월 초사흗날에 준비한다. 물론 준비하는 곳은 각 마을의 당주 집이다. 제기(祭器)도 당주 집의 그릇을 사용한다. 제를 지낼 때 사용한 도구 등은 당주 집에 보관한다.

제일은 주로 섣달그믐날부터 정월 초닷샛날까지로, 길일을 택하여 정한다. 큰당의 당할아버지와 신씨할머니를 모시고 내려와 큰아들 동네에서 하룻밤을 묵게 하고 연이어 둘째 마을, 셋째 마을, 넷째 마을 순으로 묵게 한다. 마지막날 다시 큰아들 마을인 곰몰마을에서 하룻밤을 묵게 한 뒤 다시 큰당으로 올라가 제의를 마치게 된다. 다만 네 개 마을 가운데 궂은일, 예를 들어 초상 등이 발생하면 해당 마을에서는 당할아버지와 당할머니 신대를 모실 수 없기 때문에 다른 마을로 건너뛰어 제사를 진행한다. 이에 따라 해당 마을 신대잡이나 마을 주민들은 당제에 참여할 수 없게 된다. 다만 등몰마을의 가구 수가 줄어들어 신기마을에 통합된 이후로는 곰몰, 신기, 월촌 등 세 개 마을에서 제사를 모시게 되었다. 이때에는 곰몰마을에서 이틀밤, 신기마을에서 하룻밤, 월촌마을에서 하룻밤, 다시 곰몰마을에서 하룻밤을 자고 큰당으로 올라가 제사를 마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마을의 병합과 상관없이 안마도 당제가 닷새 동안의 의례기간을 준수했다는 점을 보여 준다.

제의는 음식 진설-[분향](/topic/분향)(焚香)-[헌작](/topic/헌작)(獻爵)-재배(再拜)-헌작(獻爵)-재배(再拜)-소지(燒紙)-[음복](/topic/음복)(飮福)-[철상](/topic/철상)(撤床) 순으로 진행한다.

섣달그믐날 낮부터는 곰몰마을을 중심으로 제의가 이루어진다. 곰몰마을의 당주와 신대잡이, 어린 남자아이들과 깨끗하다는 구성 요건을 갖춘 남자들이 [꽹과리](/topic/꽹과리)와 징 등을 울리면서 큰당으로 올라간다. 큰당에 신대를 모시러 가는 까닭에 큰아들 신격에 해당되는 곰몰마을이 제의를 담당하는 것이다.

큰당에 도착하면 곧바로 신대를 만든다. 신대는 대나무이다. 대나무는 대개 육지에서 생대를 사다가 당주 집에 보관하면서 말린다. 대나무의 꼭대기에 동백나무 가지를 [창호지](/topic/창호지)로 묶는다. 항아리에 보관된 당목을 동백나무 가지의 밑동에 깃발처럼 매달아 둔다. 당목은 할아버지신대와 할머니신대를 합하여 한 필 반 길이이다. 할아버지신대와 할머니신대를 만들고 나면 이 신대를 모시고 하산한다. 이때 메는 올리지 않는다. 신대를 모시고 내려올 때에는 신대잡이가 신대를 들고, 어린 아이들은 당목 끝을 잡는다. 대개 오후 2시를 전후하여 내려올 때면 곰몰마을 당산, 즉 큰아들당에서는 굿청([농악](/topic/농악))을 벌인다. 신대가 곰몰당산으로 내려와 곰몰 굿청과 합류하면서 곰몰마을 축제판이 벌어진다. 연이어 신대는 당주 집에 모셔진다. 신대로 상징되는 당할아버지와 당할머니가 곰몰 당주 집에서 첫날밤을 보내는 셈이다. 신대는 [안채](/topic/안채)의 [안방](/topic/안방) 앞 [처마](/topic/처마) 끝에 모셔진다. 당주 집의 [대문](/topic/대문)에서 볼 때 당할아버지 신대를 왼쪽에 세우고 약 3m 오른쪽으로 당할머니 신대를 세운다. 이때 당주는 음식은 올리지 않고 술만 올린다. 저녁이 되면 당주는 메를 올리고, 이튿날 아침이 되면 준비한 제물을 올린다. 정월 초하룻날 아침이 되면 등몰 당주와 등몰 신대잡이, 등몰 굿청이 함께 곰몰마을로 올라온다. 등몰 굿청은 곰몰 굿청과 함께 곰몰당산에서 축제판을 벌이고, 당주는 곰몰 당주 집으로 간다. 등물 당주가 곰물 당주 집에 도착하면 곰몰 당주와 함께 음식을 진설하고 제사를 지낸다.

등몰당산에서 굿판을 벌이고 난 뒤 등몰 당주 집으로 신대를 모시고 가서 둘째 밤을 보낸다. 이튿날 아침, 즉 정월 초이튿날이 되면 신기마을의 당주와 굿청 및 신대잡이가 올라온다. 굿청과 신대잡이는 등몰당산에서 등몰 굿청과 함께 굿판을 벌이고, 신기 당주는 등몰 당주 집으로 가서 아침제사를 지낸다. 제사가 끝나면 등몰 신대잡이가 신대를 모시고 등몰당산으로 간다. 신기마을과 등몰마을의 굿청이 굿판을 벌인 다음 신기마을의 신대잡이가 신대를 인수하여 신기마을로 향한다. 이때 등몰마을 사람들은 노잣돈이라고 하여 엽전주머니를 당목 끝에 매달아 준다.

신기마을 당산(셋째아들 당산)에서 굿판을 벌인 다음 신대잡이는 신대를 모시고 신기 당주 집으로 간다. 동일한 방식으로 사흘째 밤을 보내고 초사흗날 아침에 월촌마을의 당주와 굿청, 신대가 동일한 형식으로 올라온다. 월촌 당주가 신기마을의 당주 집으로 가서 아침제사를 지내고 나면 신기마을의 신대잡이가 신대를 인수하여 월촌마을로 간다. 이때도 마찬가지로 노잣돈이라고 하여 엽전주머니를 당목 끝에 매달아 준다.

엽전월촌 굿청, 신대잡이가 모시고 간 신대를 중심으로 굿판이 벌어진다. 동일한 방식으로 월촌 당주 집에서 나흘째 밤을 보낸다. 정월 초나흗날 아침에는 월촌 당주만 참여하여 제사를 지낸다. 월촌 당산에서 마지막 밤을 보낸 당할아버지와 당할머니 신격은 역순으로 동일한 제사 형식을 거치면서 과정을 되풀이하게 된다. 역순으로 돌아나와 곰몰 당주 집에서 하룻밤을 지낸 뒤 정월 초닷새날 아침제사를 곰몰 당주만 참여한 가운데 지낸다. 점심 때쯤 되면 곰몰마을의 어린 아이들과 부정이 없는 남자들을 중심으로 신대를 잡은 신대잡이와 함께 큰당으로 올라간다. 정상에 있는 항아리에 신대에 묶은 당목과 노잣돈 주머니 등을 넣고 마을로 내려오면 모든 마을제사가 끝나게 된다. 대나무는 곰몰 당주 집에 보관하였다가 이듬해 제사 때 사용하게 된다.

제의의 목적이 집약되어 있는 것이 [축문](/topic/축문)이다. 그러나 안마도에는 구전만 있을 뿐 축문이 전해 오지 않는다. 주민들에 따르면 치병(治病), 제액(除厄), 풍농(豐農), 풍어(豐漁), 자손의 번창 등을 기원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었다.
참고문헌영광 안마도 촌제 조사 보고 (표인주, 전남문화재 6, 전라남도, 1993)
전남 영광군 안마도당제 고찰 (표인주, 한국민속학 26, 한국민속학회, 1994)
공동체신앙과 당신화 연구 (표인주, 집문당, 1996년)
전남 영광군 안마도당제 고찰 (표인주, 남도민속문화론, 민속원, 2000)
내용제당은 여섯 군데의 제당으로 구성되었다. 큰당, 작은당, 큰아들당, 작은아들당, 셋째아들당, 넷째아들당이 그것이다.

큰당은 곰몰[마을](/topic/마을) 뒷산(해군기지)에 위치한다. 신격은 할아버지에 해당된다. 큰당은 당집은 없고 [돌담](/topic/돌담)으로 둘러싸여 있다. 돌담 주변에는 동백나무숲이 우거졌다. 큰 당 입구의 왼쪽은 당할아버지 신격으로 호명된다. 판석(板石) 위에 쌀 두 가마 분량이 들어갈 크기의 항아리가 있다. 그 앞쪽으로 [철마](/topic/철마) 세 마리를 안치했다. 항아리 안에는 [신대](/topic/신대)[神木]에 매달았던 당목([무명](/topic/무명)베)과 노잣돈 [주머니](/topic/주머니)를 넣어 두었다. 당할아버지 맞은편을 신씨할머니당으로 부른다. 큰당 안에서 할아버지당과 신씨할머니당을 구별하기 위해 돌담을 쌓았다. 신씨할머니당에도 마찬[가지](/topic/가지)로 판석 위에 항아리를 두었다. 물론 현재 항아리나 철마는 전승되지 않는다. 돌담과 판석만이 제의 터의 위엄을 말해주고 있을 뿐이다.

작은당은 큰당에서 남쪽으로 100m쯤 아래에 있다. 신격은 할머니에 해당된다. 당 자체가 소실되어 형태는 확인할 수 없다. 마을에서는 이곳을 ‘구당터’(옛날 당이 있던 곳이라는 뜻)라고 부른다. 큰아들당은 큰당에서 남쪽으로 산 아래에 있는 곰몰마을의 입구에 위치한다. 신격은 큰아들에 해당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를 할아버지당으로 인식하기도 한다. 이 밖에 작은아들당, 셋째아들당, 넷째아들당의 경우도 할아버지당으로 인식한다. 작은아들당은 등몰마을 입구에 위치한다. 신격은 작은아들에 해당된다. 셋째아들당은 신기마을 입구에 위치한다. 신격은 셋째아들에 해당된다. 넷째아들당은 월촌마을 중앙에 위치한다. 신격은 넷째아들에 해당된다. 이들 아들 당의 신체는 모두 팽나무이다.

안마도에는 신기․월촌․곰몰․등촌 등 네 개의 자연마을이 있다가 등촌마을의 가구 수가 줆으로써 신기마을과 통합되어 세 개 마을로 구성되었다. 당주([제관](/topic/제관))나 신대잡이를 대표자 또는 대리자로 내세우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마을 주민들이 제의의 주체가 된다.

제비(祭費)는 호구전 등으로 호명되는 인구당 갹출 방식을 택해 충당한다. 안마도에서는 이를 ‘[지붕](/topic/지붕) 머릿돈’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제비의 사용처는 거의 대부분 제물을 마련하는 것이다. 남은 금액은 당주(또는 제관)에게 수고비 명목으로 전달하는 사례도 있었다고 한다.

제관은 당주 네 명으로 구성된다. ‘신대잡이’로 호명되는 제의 보조자도 여덟 명이 선정된다. 당주와 ‘신대잡이’는 네 개 마을에서 각각 한 명, 두 명을 선출한다. 특히 당주의 경우 [생기복덕](/topic/생기복덕)을 봐서 손(孫)이 귀하거나 깨끗한 집을 선정한다. 당주로 선정되면 부정한 일을 하거나 부정한 것을 최소한 봐서도 안 된다. 부정한 일로 인식되는 것은 부부동침, 대소변을 보는 일, 궂은 곳(상례, 출산 등) 출입, 궂은 음식을 먹는 행위 등 포괄적이다. 물론 궂은일과 관련이 있는 경우에는 제관 선정에서 제외된다. 대소변 등 불가피하고 사소한 경우라 하더라도 반드시 다시 목욕재계하여 부정을 씻는다. 이러한 금기는 당제가 끝날 때까지 지켜진다.

제물도 깨끗한 사람(궂은일과 관련이 없는 사람)이 약 닷새 전에 인근의 내륙 포구인 법성포 장에서 구입해 온다. 제물을 구입할 때에는 값을 깎아서도, 흥정을 해서도 안 된다. 꼭 필요한 제의 물품은 삼색실과와 조기 등 해산물이다. 음식 조리에는 당주의 가족만이 참여할 수 있다. 조리 중에 음식 맛을 보면 안 된다. 가능한 한 음식은 싱겁게 만든다. [제상](/topic/제상)에 오르는 제물은 삼색실과를 포함해 조기, 나물, 메(밥), 술, 떡 등이다. 육류는 일절 사용하지 않는다.

음식의 진설은 일반적인 조상제사와 같다. 산의 정상에서는 제상을 두 개 준비한다. 한쪽은 신씨할머니상이고 다른 쪽은 당할아버지와 당할머니상이므로 메는 세 개가 된다.

곰몰마을에서는 음식을 주로 섣달그믐날과 정월 초나흗날 두 번 준비한다. 등몰마을에서는 정월 초하룻날에 음식을 준비한다. 신기마을에서는 정월 초이튿날에 준비한다. 월촌마을에서는 정월 초사흗날에 준비한다. 물론 준비하는 곳은 각 마을의 당주 집이다. 제기(祭器)도 당주 집의 그릇을 사용한다. 제를 지낼 때 사용한 도구 등은 당주 집에 보관한다.

제일은 주로 섣달그믐날부터 정월 초닷샛날까지로, 길일을 택하여 정한다. 큰당의 당할아버지와 신씨할머니를 모시고 내려와 큰아들 동네에서 하룻밤을 묵게 하고 연이어 둘째 마을, 셋째 마을, 넷째 마을 순으로 묵게 한다. 마지막날 다시 큰아들 마을인 곰몰마을에서 하룻밤을 묵게 한 뒤 다시 큰당으로 올라가 제의를 마치게 된다. 다만 네 개 마을 가운데 궂은일, 예를 들어 초상 등이 발생하면 해당 마을에서는 당할아버지와 당할머니 신대를 모실 수 없기 때문에 다른 마을로 건너뛰어 제사를 진행한다. 이에 따라 해당 마을 신대잡이나 마을 주민들은 당제에 참여할 수 없게 된다. 다만 등몰마을의 가구 수가 줄어들어 신기마을에 통합된 이후로는 곰몰, 신기, 월촌 등 세 개 마을에서 제사를 모시게 되었다. 이때에는 곰몰마을에서 이틀밤, 신기마을에서 하룻밤, 월촌마을에서 하룻밤, 다시 곰몰마을에서 하룻밤을 자고 큰당으로 올라가 제사를 마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마을의 병합과 상관없이 안마도 당제가 닷새 동안의 의례기간을 준수했다는 점을 보여 준다.

제의는 음식 진설-[분향](/topic/분향)(焚香)-[헌작](/topic/헌작)(獻爵)-재배(再拜)-헌작(獻爵)-재배(再拜)-소지(燒紙)-[음복](/topic/음복)(飮福)-[철상](/topic/철상)(撤床) 순으로 진행한다.

섣달그믐날 낮부터는 곰몰마을을 중심으로 제의가 이루어진다. 곰몰마을의 당주와 신대잡이, 어린 남자아이들과 깨끗하다는 구성 요건을 갖춘 남자들이 [꽹과리](/topic/꽹과리)와 징 등을 울리면서 큰당으로 올라간다. 큰당에 신대를 모시러 가는 까닭에 큰아들 신격에 해당되는 곰몰마을이 제의를 담당하는 것이다.

큰당에 도착하면 곧바로 신대를 만든다. 신대는 대나무이다. 대나무는 대개 육지에서 생대를 사다가 당주 집에 보관하면서 말린다. 대나무의 꼭대기에 동백나무 가지를 [창호지](/topic/창호지)로 묶는다. 항아리에 보관된 당목을 동백나무 가지의 밑동에 깃발처럼 매달아 둔다. 당목은 할아버지신대와 할머니신대를 합하여 한 필 반 길이이다. 할아버지신대와 할머니신대를 만들고 나면 이 신대를 모시고 하산한다. 이때 메는 올리지 않는다. 신대를 모시고 내려올 때에는 신대잡이가 신대를 들고, 어린 아이들은 당목 끝을 잡는다. 대개 오후 2시를 전후하여 내려올 때면 곰몰마을 당산, 즉 큰아들당에서는 굿청([농악](/topic/농악))을 벌인다. 신대가 곰몰당산으로 내려와 곰몰 굿청과 합류하면서 곰몰마을 축제판이 벌어진다. 연이어 신대는 당주 집에 모셔진다. 신대로 상징되는 당할아버지와 당할머니가 곰몰 당주 집에서 첫날밤을 보내는 셈이다. 신대는 [안채](/topic/안채)의 [안방](/topic/안방) 앞 [처마](/topic/처마) 끝에 모셔진다. 당주 집의 [대문](/topic/대문)에서 볼 때 당할아버지 신대를 왼쪽에 세우고 약 3m 오른쪽으로 당할머니 신대를 세운다. 이때 당주는 음식은 올리지 않고 술만 올린다. 저녁이 되면 당주는 메를 올리고, 이튿날 아침이 되면 준비한 제물을 올린다. 정월 초하룻날 아침이 되면 등몰 당주와 등몰 신대잡이, 등몰 굿청이 함께 곰몰마을로 올라온다. 등몰 굿청은 곰몰 굿청과 함께 곰몰당산에서 축제판을 벌이고, 당주는 곰몰 당주 집으로 간다. 등물 당주가 곰물 당주 집에 도착하면 곰몰 당주와 함께 음식을 진설하고 제사를 지낸다.

등몰당산에서 굿판을 벌이고 난 뒤 등몰 당주 집으로 신대를 모시고 가서 둘째 밤을 보낸다. 이튿날 아침, 즉 정월 초이튿날이 되면 신기마을의 당주와 굿청 및 신대잡이가 올라온다. 굿청과 신대잡이는 등몰당산에서 등몰 굿청과 함께 굿판을 벌이고, 신기 당주는 등몰 당주 집으로 가서 아침제사를 지낸다. 제사가 끝나면 등몰 신대잡이가 신대를 모시고 등몰당산으로 간다. 신기마을과 등몰마을의 굿청이 굿판을 벌인 다음 신기마을의 신대잡이가 신대를 인수하여 신기마을로 향한다. 이때 등몰마을 사람들은 노잣돈이라고 하여 엽전주머니를 당목 끝에 매달아 준다.

신기마을 당산(셋째아들 당산)에서 굿판을 벌인 다음 신대잡이는 신대를 모시고 신기 당주 집으로 간다. 동일한 방식으로 사흘째 밤을 보내고 초사흗날 아침에 월촌마을의 당주와 굿청, 신대가 동일한 형식으로 올라온다. 월촌 당주가 신기마을의 당주 집으로 가서 아침제사를 지내고 나면 신기마을의 신대잡이가 신대를 인수하여 월촌마을로 간다. 이때도 마찬가지로 노잣돈이라고 하여 엽전주머니를 당목 끝에 매달아 준다.

엽전월촌 굿청, 신대잡이가 모시고 간 신대를 중심으로 굿판이 벌어진다. 동일한 방식으로 월촌 당주 집에서 나흘째 밤을 보낸다. 정월 초나흗날 아침에는 월촌 당주만 참여하여 제사를 지낸다. 월촌 당산에서 마지막 밤을 보낸 당할아버지와 당할머니 신격은 역순으로 동일한 제사 형식을 거치면서 과정을 되풀이하게 된다. 역순으로 돌아나와 곰몰 당주 집에서 하룻밤을 지낸 뒤 정월 초닷새날 아침제사를 곰몰 당주만 참여한 가운데 지낸다. 점심 때쯤 되면 곰몰마을의 어린 아이들과 부정이 없는 남자들을 중심으로 신대를 잡은 신대잡이와 함께 큰당으로 올라간다. 정상에 있는 항아리에 신대에 묶은 당목과 노잣돈 주머니 등을 넣고 마을로 내려오면 모든 마을제사가 끝나게 된다. 대나무는 곰몰 당주 집에 보관하였다가 이듬해 제사 때 사용하게 된다.

제의의 목적이 집약되어 있는 것이 [축문](/topic/축문)이다. 그러나 안마도에는 구전만 있을 뿐 축문이 전해 오지 않는다. 주민들에 따르면 치병(治病), 제액(除厄), 풍농(豐農), 풍어(豐漁), 자손의 번창 등을 기원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었다.
참고문헌영광 안마도 촌제 조사 보고 (표인주, 전남문화재 6, 전라남도, 1993)
전남 영광군 안마도당제 고찰 (표인주, 한국민속학 26, 한국민속학회, 1994)
공동체신앙과 당신화 연구 (표인주, 집문당, 1996년)
전남 영광군 안마도당제 고찰 (표인주, 남도민속문화론, 민속원, 2000)
유래제의 대상으로 선정된 신격과 신체(神體)는 안마도의 당신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 신화는 안마도에 살았다고 전해지는 신씨할머니와 관련된다. 어느 날 신씨할머니의 꿈에 한 장수가 나타나 “나는 당나라 장수인데 한 번도 전쟁터에 출전하지 못했다. 이곳 북쪽 산 너머 선창가까지 왔다. 나를 이곳 산봉우리에 묻고 매년 설날에 매굿을 해 제사를 지내 달라”고 하였다. 이와 더불어 궤짝과 말이 당너머라는 바닷가에 밀려왔다. 잠이 깬 신씨할머니는 이 이상한 꿈 이야기를 하고 나서 [마을](/topic/마을) 사람들과 함께 당너머 바닷가로 가 보았다. 그런데 그곳에는 현몽한 궤짝이 실제 떠밀려 와 있는 것이 아닌가! 그 궤짝을 열어 보았더니 1m 이상 되는 긴 머리털과 중국 화폐가 들어 있는 큰 [주머니](/topic/주머니), [철마](/topic/철마) 세 마리, 옷, 당제의 의례절차가 기록되어 있는 책이 들어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예사스러운 일이 아니라고 판단하여 철마 세 마리를 큰당에 모시고, 이곳에 항아리를 묻어 궤짝의 내용물을 넣어 두고 해마다 제사를 지내게 되었다.

이에 따라 제의 대상은 신씨할머니를 중심으로 한 당할아버지와 당할머니가 된다. 통상 당할아버지와 신씨할머니에 대한 제의가 중심으로 연행되지만 [제상](/topic/제상)으로 보면 당할머니의 몫이 따로 차려지는 점으로 미루어 3신위가 되는 셈이다. 그러나 [신대](/topic/신대)는 두 개뿐이어서 선대나 후대에 신격에 대한 변화가 있었음을 보여 준다.
유래제의 대상으로 선정된 신격과 신체(神體)는 안마도의 당신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 신화는 안마도에 살았다고 전해지는 신씨할머니와 관련된다. 어느 날 신씨할머니의 꿈에 한 장수가 나타나 “나는 당나라 장수인데 한 번도 전쟁터에 출전하지 못했다. 이곳 북쪽 산 너머 선창가까지 왔다. 나를 이곳 산봉우리에 묻고 매년 설날에 매굿을 해 제사를 지내 달라”고 하였다. 이와 더불어 궤짝과 말이 당너머라는 바닷가에 밀려왔다. 잠이 깬 신씨할머니는 이 이상한 꿈 이야기를 하고 나서 [마을](/topic/마을) 사람들과 함께 당너머 바닷가로 가 보았다. 그런데 그곳에는 현몽한 궤짝이 실제 떠밀려 와 있는 것이 아닌가! 그 궤짝을 열어 보았더니 1m 이상 되는 긴 머리털과 중국 화폐가 들어 있는 큰 [주머니](/topic/주머니), [철마](/topic/철마) 세 마리, 옷, 당제의 의례절차가 기록되어 있는 책이 들어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예사스러운 일이 아니라고 판단하여 철마 세 마리를 큰당에 모시고, 이곳에 항아리를 묻어 궤짝의 내용물을 넣어 두고 해마다 제사를 지내게 되었다.

이에 따라 제의 대상은 신씨할머니를 중심으로 한 당할아버지와 당할머니가 된다. 통상 당할아버지와 신씨할머니에 대한 제의가 중심으로 연행되지만 [제상](/topic/제상)으로 보면 당할머니의 몫이 따로 차려지는 점으로 미루어 3신위가 되는 셈이다. 그러나 [신대](/topic/신대)는 두 개뿐이어서 선대나 후대에 신격에 대한 변화가 있었음을 보여 준다.
인천교육대 기전문화연구소강화도 외포리 고창굿 연구문광영1996
강화군사편찬위원회신편 강화사 중-문화와 사상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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