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심리

한국무속신앙사전
조기심리
조기를 잡는 어민들이 그해 맨 처음 잡아 올린 조기를 조상님께 바치는 제의. 주로 한식 무렵에 행하는 천신적(薦新的) 성격이 강한 어촌 지역의 가정신앙이다. 지역에 따라서는 조기신미(심니), 조기의 방언인 조구라는 명칭을 붙인 조구심리(신미·심니) 등으로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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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를 잡는 어민들이 그해 맨 처음 잡아 올린 조기를 조상님께 바치는 제의. 주로 한식 무렵에 행하는 천신적(薦新的) 성격이 강한 어촌 지역의 가정신앙이다. 지역에 따라서는 조기신미(심니), 조기의 방언인 조구라는 명칭을 붙인 조구심리(신미·심니) 등으로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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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종원
정의조기를 잡는 어민들이 그해 맨 처음 잡아 올린 조기를 조상님께 바치는 제의. 주로 한식 무렵에 행하는 천신적(薦新的) 성격이 강한 어촌 지역의 가정신앙이다. 지역에 따라서는 조기신미(심니), 조기의 방언인 조구라는 명칭을 붙인 조구심리(신미·심니) 등으로 부른다.
내용 및 역사조기심리는 용어에서도 알 수 있듯이 조기라는 어종과 관련된 의례이다. 회유성 어류인 조기는 봄철이면 산란을 목적으로 서해안 해안선을 따라 북상한다. 조기어업이 활발하던 시절에 북상하던 조기가 서해안의 주요 어장(漁場)에 도착하면 본격적으로 조기 어업이 시작되었다. 이때 첫 출어에서 잡아 올린 조기 가운데에서 가장 씨알이 굵고 보기 좋은 조기를 선별하여 조상님께 올리는 의례가 바로 조기심리이다.

어촌 지역의 조기심리는 농촌 지역에서 행해지는 ‘[[올벼](/topic/올벼)심리](/topic/올벼심리)(첫 [수확](/topic/수확)한 벼를 조상님께 바치는 의례)와 여러 [가지](/topic/가지) 면에서 닮아 있다는 점에서 [조상숭배](/topic/조상숭배)와 관련 있는 가정신앙으로 이해할 수 있다. 물론 농촌 지역의 올벼심리가 추수 무렵인 가을철에 행하는 의례인데 비해 조기심리가 본격적으로 조기어업이 시작되는 봄철에 행해진다는 점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다. 또한 조기심리는 잡은 조기를 조상님께 올리는 풍속이라는 점에서 보면 천신(薦新)의례와도 관련이 있다. 천신의례로 비교적 널리 알려진 사례는 조선시대에 사대부 집안에서 조상님께 청어를 올리는 [청어천신](/topic/청어천신)(靑魚薦新)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조기어업이 쇠퇴하기 시작한 197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서해안을 비롯해 남해안 일부 지역에서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양의 조기가 잡혔다. 이 일대에서 조기 어업이 언제부터 행해졌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늦어도 조선시대에는 조기 어업이 활발하게 진행됐음을 이 시기의 여러 문헌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조기심리의 역사를 추정해 볼 수 있겠지만 언제부터 조기심리를 했다는 기록이 보이지 않아 현재로서는 그 시기를 단정할 수 없다. 다만 조선시대에 국가에서 천신할 물품의 하나로 청어 이외에 조기가 등장했다는 사례를 통해 그 흔적을 엿볼 수 있다. 비록 서민들이 조기를 천신했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지만 조선시대에 조기천신이 행해졌다는 점에서 보면 늦어도 이 무렵에는 조기를 조상님께 올리는 조기심리가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추정은 고종 28년(1891, 광서 17년) 황해감사 오준영(吳駿泳)의 장계에 “천신하는 생석수어(生石首魚, 생조기)를 아직 잡지 못한 관계로 기한 안에 봉하여 올릴 수 없습니다. 황공한 마음으로 대죄합니다.”라는『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의 기록 때문이다. 그리고 이 기사를 통해 당시에는 천신할만한 좋은 어종을 잡는 일도 중요했지만 동해안의 명태와 더불어 조기가 서해안 전 지역에서 많이 잡혔음에도 냉동시설 등이 부족한 시절에 싱싱한 생석수어를 구해 한양(서울)까지 가져오는 일이 결코 쉽지 않았음을 유추할 수 있다.

문헌 자료의 부족 등으로 조선시대 서민들의 풍속에서 조기심리가 행해졌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와 광복 이후에는 여러 지역에서 조기심리가 행해진 사실을 구술 자료에선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조기어업의 중심지이던 서해안 여러 지역에서 과거에 조기심리를 했다는 구체적인 사례를 현지조사를 통해 들을 수 있었다. 이들 지역의 조기심리는 첫 출어 또는 출어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조기를 잡으면 그 가운데 가장 크고 윤기가 흐르는 조기를 골라 찌거나 말려서 조상님께 올리는 형태가 일반적인 모습이었다. 이러한 의례는 개인에 따라 진행과정이나 시기에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조기어업이 활발하던 시기에는 조기를 잡는 어민 대부분이 조기심리를 했다고 전해진다. 여러 지역에서 활발하게 행해진 조기심리는 1970년대 중반 이후 조기어업이 쇠퇴하면서 차츰 소멸되었고, 오늘날에는 그 흔적을 찾기 힘들게 되었다.
정의조기를 잡는 어민들이 그해 맨 처음 잡아 올린 조기를 조상님께 바치는 제의. 주로 한식 무렵에 행하는 천신적(薦新的) 성격이 강한 어촌 지역의 가정신앙이다. 지역에 따라서는 조기신미(심니), 조기의 방언인 조구라는 명칭을 붙인 조구심리(신미·심니) 등으로 부른다.
내용 및 역사조기심리는 용어에서도 알 수 있듯이 조기라는 어종과 관련된 의례이다. 회유성 어류인 조기는 봄철이면 산란을 목적으로 서해안 해안선을 따라 북상한다. 조기어업이 활발하던 시절에 북상하던 조기가 서해안의 주요 어장(漁場)에 도착하면 본격적으로 조기 어업이 시작되었다. 이때 첫 출어에서 잡아 올린 조기 가운데에서 가장 씨알이 굵고 보기 좋은 조기를 선별하여 조상님께 올리는 의례가 바로 조기심리이다.

어촌 지역의 조기심리는 농촌 지역에서 행해지는 ‘[[올벼](/topic/올벼)심리](/topic/올벼심리)(첫 [수확](/topic/수확)한 벼를 조상님께 바치는 의례)와 여러 [가지](/topic/가지) 면에서 닮아 있다는 점에서 [조상숭배](/topic/조상숭배)와 관련 있는 가정신앙으로 이해할 수 있다. 물론 농촌 지역의 올벼심리가 추수 무렵인 가을철에 행하는 의례인데 비해 조기심리가 본격적으로 조기어업이 시작되는 봄철에 행해진다는 점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다. 또한 조기심리는 잡은 조기를 조상님께 올리는 풍속이라는 점에서 보면 천신(薦新)의례와도 관련이 있다. 천신의례로 비교적 널리 알려진 사례는 조선시대에 사대부 집안에서 조상님께 청어를 올리는 [청어천신](/topic/청어천신)(靑魚薦新)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조기어업이 쇠퇴하기 시작한 197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서해안을 비롯해 남해안 일부 지역에서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양의 조기가 잡혔다. 이 일대에서 조기 어업이 언제부터 행해졌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늦어도 조선시대에는 조기 어업이 활발하게 진행됐음을 이 시기의 여러 문헌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조기심리의 역사를 추정해 볼 수 있겠지만 언제부터 조기심리를 했다는 기록이 보이지 않아 현재로서는 그 시기를 단정할 수 없다. 다만 조선시대에 국가에서 천신할 물품의 하나로 청어 이외에 조기가 등장했다는 사례를 통해 그 흔적을 엿볼 수 있다. 비록 서민들이 조기를 천신했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지만 조선시대에 조기천신이 행해졌다는 점에서 보면 늦어도 이 무렵에는 조기를 조상님께 올리는 조기심리가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추정은 고종 28년(1891, 광서 17년) 황해감사 오준영(吳駿泳)의 장계에 “천신하는 생석수어(生石首魚, 생조기)를 아직 잡지 못한 관계로 기한 안에 봉하여 올릴 수 없습니다. 황공한 마음으로 대죄합니다.”라는『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의 기록 때문이다. 그리고 이 기사를 통해 당시에는 천신할만한 좋은 어종을 잡는 일도 중요했지만 동해안의 명태와 더불어 조기가 서해안 전 지역에서 많이 잡혔음에도 냉동시설 등이 부족한 시절에 싱싱한 생석수어를 구해 한양(서울)까지 가져오는 일이 결코 쉽지 않았음을 유추할 수 있다.

문헌 자료의 부족 등으로 조선시대 서민들의 풍속에서 조기심리가 행해졌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와 광복 이후에는 여러 지역에서 조기심리가 행해진 사실을 구술 자료에선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조기어업의 중심지이던 서해안 여러 지역에서 과거에 조기심리를 했다는 구체적인 사례를 현지조사를 통해 들을 수 있었다. 이들 지역의 조기심리는 첫 출어 또는 출어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조기를 잡으면 그 가운데 가장 크고 윤기가 흐르는 조기를 골라 찌거나 말려서 조상님께 올리는 형태가 일반적인 모습이었다. 이러한 의례는 개인에 따라 진행과정이나 시기에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조기어업이 활발하던 시기에는 조기를 잡는 어민 대부분이 조기심리를 했다고 전해진다. 여러 지역에서 활발하게 행해진 조기심리는 1970년대 중반 이후 조기어업이 쇠퇴하면서 차츰 소멸되었고, 오늘날에는 그 흔적을 찾기 힘들게 되었다.
지역사례오늘날 조기심리가 행해지고 있는 지역을 찾는 일은 쉽지 않다. 이 의례는 조기어업이 쇠퇴하기 이전만 하더라도 서해안을 비롯해 서남해안 여러 지역에서 널리 행해졌다.

조기심리의 지역별 사례를 살펴보면 전남 목포시 온무동 다순구미[마을](/topic/마을), 무안군 운남면, 영광군 묘량면 운당리와 백수읍 지산리 및 법성면 법성리에서 조기심리가 행해졌음을 알 수 있다. 이에 비해 전라북도에서는 군산시 경암동, 고창군 성송면 향산리, 부안군 부안읍 동중리와 상서면 용서리 등지에서 조기심리가 행해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전남 목포지역에서는 [고사](/topic/고사)를 지낼 때 조기를 가장 귀한 제물로 여겨, 음력 이삼월에 잡힌 가장 좋은 조기를 따로 보관해 두었다가 다음 배고사를 지낼 때 제물로 삼아 조기심리를 했다. 전북 군산지역에서는 사월에 새 조기가 나오면 조상님께 먼저 올린다는 의미에서 성주께 조기를 올리고 밥을 차려 놓았다. 주민들은 이것을 ‘조구심리(조기심리)’라고 불렀다.

이밖에 서해안과 서남해안 일대에서는 조기심리가 많이 행해졌음을 기타 자료와 현지조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과거 조기어업이 활발하던 위도와 영광군을 포함한 전라도 해안 일대와 연평도를 중심으로 한 경기도, 충청도 해안 지역에서 조기심리가 행해졌음이 확인되었다.

전북 부안군 위도 지역에서는 옛날 [조기잡이](/topic/조기잡이)로 성시(盛市)를 이루던 칠산어장이 있어 유명하다. 이 어장에서 맨 처음 잡힌 조기를 조상에게 먼저 올리는 것을 ‘조기신미’라고 한다. 첫 출어에서 조기를 잡지 못하는 집에서는 조기를 사서라도 집안의 조상님께 조기를 올렸다고 한다. 조기신미는 [기제사](/topic/기제사) 때처럼 일정한 시간을 정해 놓고 제를 모시는 것이 아니다. 조기를 구하는 즉시 굽거나 찌거나 하여 아침·점심 또는 저녁 아무 때나 밥상에 올려서 방 [윗목](/topic/윗목)에다 차리고 조상님께 올린다. 제의 형식은 아주 간단하다. 집안의 부인이 두 번 절하면 끝난다. 이 지역에서 조기신미를 하는 이유는 조기가 깨끗하고 옛날부터 좋은 생선으로 대접을 받았다. 그리고 철따라 잡히며, 칠산어장의 명물로서 어민들의 일 년 농사와 같은 값진 것이기 때문에 먼저 조상에게 바치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조기가 잘 잡히도록 비는 뜻도 있다고 한다.

전남 영광군 묘량면 영운리 마을에서는 한식 전후나 보름 무렵에 조기심리를 한다. 그해 처음으로 잡힌 고기[조기]가 판매될 때면 영광읍에서 열리는 5일장에서 생조기를 사다가 고사리를 넣어 지지고 밥과 나물을 준비해 선영께 바친 뒤 집안 어르신을 모셔다가 조기 맛을 보게 해드리는 것이 이 지역의 조기심리이다. 조기심리를 하기 전에는 남의 집에 가더라도 조기를 먹지 못했다. 조기가 상어처럼 제사와 명절에 빠져서는 안 되는 귀한 고기이자 특산품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새로 잡힌 음식(조기)을 다른 누구보다 집안의 조상과 어른들께 먼저 드리는 미풍양속인 이유가 가장 크다. 이 마을의 다른 집안에서도 선영에 항상 조구심리와 오리심리를 했다. 이 지역 운암동의 동산댁 역시 친정에서 극진히 조기심리를 행하는 것을 보고 컸다. 그러다가 시집 와서 새댁 때 몇 차례 조기심리를 했을 뿐 그 뒤 조기심리는 점차 사라졌다고 한다.

개별적인 차이에 따라 조기심리 의례의 규모는 차이가 있지만 조기심리에서 중요한 점은 앞서 소개한 두 지역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 첫 조업에서 잡아 올린 조기를 조상님께 바쳤다는 내용이다. 인천광역시 옹진군에 속한 덕적도에서도 맨 먼저 잡은 조기를 배에 잘 보관해 뒀다가 집으로 가져 와서 조상님께 바쳤다. 조상님께 올릴 조기는 생조기를 올리는 것이 아니라, 특별히 가공(굽거나 쪘다)을 했다고 한다.

한편 조기심리는 군산 지역 사례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배고사와 맞물려 진행되기도 한다. 특별한 날을 잡아 별도로 조기심리를 행하는 것이 아니라 배고사를 지내는 과정에서 조기심리 의례를 행한다. 충남 홍성군 서부면 판교리 수룡동마을에서는 조기심리를 했다는 구체적인 사례를 확인할 수 없지만 해마다 3월 중에 배고사를 지낼 때 조기를 7~9마리를 쪄서 조상님께 제물로 바쳤다고 한다.
지역사례오늘날 조기심리가 행해지고 있는 지역을 찾는 일은 쉽지 않다. 이 의례는 조기어업이 쇠퇴하기 이전만 하더라도 서해안을 비롯해 서남해안 여러 지역에서 널리 행해졌다.

조기심리의 지역별 사례를 살펴보면 전남 목포시 온무동 다순구미[마을](/topic/마을), 무안군 운남면, 영광군 묘량면 운당리와 백수읍 지산리 및 법성면 법성리에서 조기심리가 행해졌음을 알 수 있다. 이에 비해 전라북도에서는 군산시 경암동, 고창군 성송면 향산리, 부안군 부안읍 동중리와 상서면 용서리 등지에서 조기심리가 행해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전남 목포지역에서는 [고사](/topic/고사)를 지낼 때 조기를 가장 귀한 제물로 여겨, 음력 이삼월에 잡힌 가장 좋은 조기를 따로 보관해 두었다가 다음 배고사를 지낼 때 제물로 삼아 조기심리를 했다. 전북 군산지역에서는 사월에 새 조기가 나오면 조상님께 먼저 올린다는 의미에서 성주께 조기를 올리고 밥을 차려 놓았다. 주민들은 이것을 ‘조구심리(조기심리)’라고 불렀다.

이밖에 서해안과 서남해안 일대에서는 조기심리가 많이 행해졌음을 기타 자료와 현지조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과거 조기어업이 활발하던 위도와 영광군을 포함한 전라도 해안 일대와 연평도를 중심으로 한 경기도, 충청도 해안 지역에서 조기심리가 행해졌음이 확인되었다.

전북 부안군 위도 지역에서는 옛날 [조기잡이](/topic/조기잡이)로 성시(盛市)를 이루던 칠산어장이 있어 유명하다. 이 어장에서 맨 처음 잡힌 조기를 조상에게 먼저 올리는 것을 ‘조기신미’라고 한다. 첫 출어에서 조기를 잡지 못하는 집에서는 조기를 사서라도 집안의 조상님께 조기를 올렸다고 한다. 조기신미는 [기제사](/topic/기제사) 때처럼 일정한 시간을 정해 놓고 제를 모시는 것이 아니다. 조기를 구하는 즉시 굽거나 찌거나 하여 아침·점심 또는 저녁 아무 때나 밥상에 올려서 방 [윗목](/topic/윗목)에다 차리고 조상님께 올린다. 제의 형식은 아주 간단하다. 집안의 부인이 두 번 절하면 끝난다. 이 지역에서 조기신미를 하는 이유는 조기가 깨끗하고 옛날부터 좋은 생선으로 대접을 받았다. 그리고 철따라 잡히며, 칠산어장의 명물로서 어민들의 일 년 농사와 같은 값진 것이기 때문에 먼저 조상에게 바치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조기가 잘 잡히도록 비는 뜻도 있다고 한다.

전남 영광군 묘량면 영운리 마을에서는 한식 전후나 보름 무렵에 조기심리를 한다. 그해 처음으로 잡힌 고기[조기]가 판매될 때면 영광읍에서 열리는 5일장에서 생조기를 사다가 고사리를 넣어 지지고 밥과 나물을 준비해 선영께 바친 뒤 집안 어르신을 모셔다가 조기 맛을 보게 해드리는 것이 이 지역의 조기심리이다. 조기심리를 하기 전에는 남의 집에 가더라도 조기를 먹지 못했다. 조기가 상어처럼 제사와 명절에 빠져서는 안 되는 귀한 고기이자 특산품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새로 잡힌 음식(조기)을 다른 누구보다 집안의 조상과 어른들께 먼저 드리는 미풍양속인 이유가 가장 크다. 이 마을의 다른 집안에서도 선영에 항상 조구심리와 오리심리를 했다. 이 지역 운암동의 동산댁 역시 친정에서 극진히 조기심리를 행하는 것을 보고 컸다. 그러다가 시집 와서 새댁 때 몇 차례 조기심리를 했을 뿐 그 뒤 조기심리는 점차 사라졌다고 한다.

개별적인 차이에 따라 조기심리 의례의 규모는 차이가 있지만 조기심리에서 중요한 점은 앞서 소개한 두 지역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 첫 조업에서 잡아 올린 조기를 조상님께 바쳤다는 내용이다. 인천광역시 옹진군에 속한 덕적도에서도 맨 먼저 잡은 조기를 배에 잘 보관해 뒀다가 집으로 가져 와서 조상님께 바쳤다. 조상님께 올릴 조기는 생조기를 올리는 것이 아니라, 특별히 가공(굽거나 쪘다)을 했다고 한다.

한편 조기심리는 군산 지역 사례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배고사와 맞물려 진행되기도 한다. 특별한 날을 잡아 별도로 조기심리를 행하는 것이 아니라 배고사를 지내는 과정에서 조기심리 의례를 행한다. 충남 홍성군 서부면 판교리 수룡동마을에서는 조기심리를 했다는 구체적인 사례를 확인할 수 없지만 해마다 3월 중에 배고사를 지낼 때 조기를 7~9마리를 쪄서 조상님께 제물로 바쳤다고 한다.
의의조기어업에 종사하는 어민들이 봄철에 조기심리를 한 연유는 조기심리의 또 다른 명칭인 조기신미(新味)에서 알 수 있듯 조상님께 새 조기를 맛보게 한다는 의미가 강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다른 측면에서 보면 추수감사제와 같이 [수확](/topic/수확)한 작물을 조상님께 가장 먼저 맛보게 함으로써 조상님 덕에 한 해 좋은 작물을 수확할 수 있었음을 감사하는 의미이다. 실제로 서해안 지역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이들 지역민이 조기심리를 한 연유는 조기라는 어류가 옛날부터 귀한 대접을 받은 어류여서 처음 잡아 올린 조기를 조상님께 바침으로써 감사의 표시를 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조기심리는 과거 농촌 지역에서 추수 무렵에 행한 ‘[[올벼](/topic/올벼)심리](/topic/올벼심리)’라는 풍속과 여러 [가지](/topic/가지) 면에서 닮았다. 물론 이런 사례가 올벼와 조기에 한정된 것은 아니다. 이 두 가지 사례 외에 첫 수확한 햇과일을 바치는 행위 등이 모두 이와 유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오늘날 첫 월급을 타면 부모에게 [속옷](/topic/속옷)을 사드리는 경우도 이런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런 내용들은 우리의 전통적인 [조상숭배](/topic/조상숭배)사상과 맞물려 행해진 의례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렇지만 조기심리는 이러한 의미 외에 조상님께 조기를 바침으로써 조업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사고는 물론 한 해의 풍어를 기여하고자 하는 측면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농촌 지역의 올벼심리와 달리 첫 출어에서 잡아 올린 조기를 조상님께 바쳤다는 점에서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조기어업 과정에서 더욱 많은 양의 조기를 잡을 수 있도록 조상님께서 보살펴 주기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행해진 의례로 보인다.
참고문헌東國歲時記, 承政院日記, 위도의 민속지 (박환용, 향토문화연구 4, 원광대학교향토문화연구소, 1987)
조구심리를 행하는 [마을](/topic/마을)-전남 영광군 묘량면 영운리 (문화관광부, 1998)
전라남도 [세시풍속](/topic/세시풍속) (국립문화재연구소, 2003)
충청남도 세시풍속 (국립문화재연구소, 2003)
전라북도 세시풍속 (국립문화재연구소, 2003)
의의조기어업에 종사하는 어민들이 봄철에 조기심리를 한 연유는 조기심리의 또 다른 명칭인 조기신미(新味)에서 알 수 있듯 조상님께 새 조기를 맛보게 한다는 의미가 강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다른 측면에서 보면 추수감사제와 같이 [수확](/topic/수확)한 작물을 조상님께 가장 먼저 맛보게 함으로써 조상님 덕에 한 해 좋은 작물을 수확할 수 있었음을 감사하는 의미이다. 실제로 서해안 지역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이들 지역민이 조기심리를 한 연유는 조기라는 어류가 옛날부터 귀한 대접을 받은 어류여서 처음 잡아 올린 조기를 조상님께 바침으로써 감사의 표시를 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조기심리는 과거 농촌 지역에서 추수 무렵에 행한 ‘[[올벼](/topic/올벼)심리](/topic/올벼심리)’라는 풍속과 여러 [가지](/topic/가지) 면에서 닮았다. 물론 이런 사례가 올벼와 조기에 한정된 것은 아니다. 이 두 가지 사례 외에 첫 수확한 햇과일을 바치는 행위 등이 모두 이와 유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오늘날 첫 월급을 타면 부모에게 [속옷](/topic/속옷)을 사드리는 경우도 이런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런 내용들은 우리의 전통적인 [조상숭배](/topic/조상숭배)사상과 맞물려 행해진 의례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렇지만 조기심리는 이러한 의미 외에 조상님께 조기를 바침으로써 조업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사고는 물론 한 해의 풍어를 기여하고자 하는 측면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농촌 지역의 올벼심리와 달리 첫 출어에서 잡아 올린 조기를 조상님께 바쳤다는 점에서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조기어업 과정에서 더욱 많은 양의 조기를 잡을 수 있도록 조상님께서 보살펴 주기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행해진 의례로 보인다.
참고문헌東國歲時記, 承政院日記, 위도의 민속지 (박환용, 향토문화연구 4, 원광대학교향토문화연구소, 1987)
조구심리를 행하는 [마을](/topic/마을)-전남 영광군 묘량면 영운리 (문화관광부, 1998)
전라남도 [세시풍속](/topic/세시풍속) (국립문화재연구소, 2003)
충청남도 세시풍속 (국립문화재연구소, 2003)
전라북도 세시풍속 (국립문화재연구소, 2003)
석암출판사무속대백과 2이윤종1995
국학자료원계룡산 굿당 연구구중회2001
세명대학교 지역문화연구소제천 지역의 병굿 연구안상경2002
충북대학교 중원문화연구소충북 북부 지역 무속의례의 전승과 변이안상경2003
조기 말리는 모습
13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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뱃고사(절)
13815
뱃고사(절)
뱃고사(음식) 
13814
뱃고사(음식) 
조기 말리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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뱃고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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뱃고사(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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