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방백중제

한국무속신앙사전
백중을 맞이하여 심방들이 [단골](/topic/단골)들로부터 곡식을 받아 올리는 제의. 심방이 백중에 벌이는 제의라는 뜻에서 비롯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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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중을 맞이하여 심방들이 [단골](/topic/단골)들로부터 곡식을 받아 올리는 제의. 심방이 백중에 벌이는 제의라는 뜻에서 비롯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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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식
정의백중을 맞이하여 심방들이 [단골](/topic/단골)들로부터 곡식을 받아 올리는 제의. 심방이 백중에 벌이는 제의라는 뜻에서 비롯됐다.
내용심방백중제가 어떠한 방식으로 이루어지는지는 분명하게 알기 어렵다. 고대장본풀이의 관련 대목은 다음과 같다.

“……멧시간 아니 온 비가 시내방천이 득차고 세파랑 헤강이 세카망 물로 벡식[變色]이 뒈여, 뒷날 아침엔 어느 집을 막론고 농부덜이 떠렁쉐여 밧장기를 짊어지와 한부중에 타량[打令]소리 ……, 그 헤[年]부떠 칠월 열나을 벡중[百中] 소리가 당민 팔(八字) 궂인 신의 성방은 어느 성방칩을 막론고 벡중대제일(百中大祭日)을 지나, 벡중 마량(馬糧) 시만국[新萬穀]을 받아옵데다. 그때 옛 법으로 칠월 열나을 벡중이 근당(近當)민 초제일(初祭日)을 마련던 법입네다.”

이에 따르면 심방백중제는 심방이 굿을 하여 가뭄을 그치게 함으로써 차질 없이 조를 파종할 수 있게 해준 데 대한 감사의 뜻으로 곡식을 모아 심방에게 주어 제의를 벌이게 해준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백중에는 [마을](/topic/마을)마다 당에서 [마불림제](/topic/마불림제)를 지내게 마련이다. 따로 심방집에서 백중제를 지낼 여유도 없는 형편이다. 그럼에도 심방백중제를 따로 벌인 데에는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이 시기를 넘어서면 한참 뒤에야 당굿이 있게 되고, 따라서 심방들이 식량을 구하기 어려울 수도 있음을 미리 대비한 것이 아닌가 한다.

한편 ‘[세경본풀이](/topic/세경본풀이)’에서는 백중과 관련하여 자청비가 [오곡](/topic/오곡)의 씨를 [가지](/topic/가지)고 인간세상으로 내려선 것이 7월 열나흘 ‘백중사리’라고 한다. 이것이 마불림제의 기원과 관련된 것이라고 하면 심방백중제와는 적어도 전승상으로는 근원을 전혀 달리하는 셈이다.
심방백중제는 비록 구전이지만 비교적 뚜렷하게 역사적인 근거가 제시되는 사례라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볼 수 없는 의례이다.
참고문헌제주도무속자료[사전](/topic/사전)(현용준, 신구문화사, 1980).
역사고대장본풀이에 따르면 고대장은 이형상(李衡祥, 1653~1733) 목사와 동시대의 인물로 이야기하고 있다. 이형상 목사가 제주목에 부임한 것이 조선조 숙종 28년(1702)이니 이것이 사실이라면 심방백중제의 역사는 18세기 초 이상을 거슬러 오르지 못할 것이다. 다른 근거는 없으나 그대로 믿기도 어렵다. 다만 고대장이 굿을 하여 가뭄을 그치게 하자 농부들이 기뻐하며 조를 파종하러 나섰는데, 이때부터 백중사리가 당하면 심방들이 백중마량이라고 하여 곡식을 받아다 제의를 하는 법이 생겼다고 한다.
동문선조선무속의 연구 상赤松智城ㆍ秋葉隆, 심우성 역1991
민속원제주도무가본풀이사전진성기1991
경기대학교 석사학위논문제주도특수본풀이연구강권용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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