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기리도당제

한국무속신앙사전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신길3동에 전승되고 있는 [마을](/topic/마을) 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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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신길3동에 전승되고 있는 [마을](/topic/마을) 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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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태한
정의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신길3동에 전승되고 있는 [마을](/topic/마을) 제의.
유래와 역사과거의 행정구역명은 경기도 시흥군 하북면 신길리였다. 이것이 변화하여 신기리라 불리면서 신기리도당제라고 부른다. 신기리도당제의 기원은 정확하지 않다. 고구려 장수왕때 큰 폭동이 발생하여 나라가 뒤숭숭해지자 어선의 무사 운항과 [마을](/topic/마을)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주민들이 포구 언덕 위의 소나무에 당제를 지내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이것은서울 지역의 각 마을 도당에 전해지는 유래담의 하나로 보인다. 도당을 지어 산신을 모신 것이 400여 년 전이라는 말도 있어 유래에 대해서는 정확하지 않다. 신기리도당의 [상량문](/topic/상량문)에는 단기 4279년(서기 1946)이라 적혀 있지만 도당은 6·25전쟁 때 소실되었다가 1954년에 중건되었다. 도로 확장공사로 도당의 터가 반으로 줄었지만 현재도 그 명맥이 유지되고 있다.
정의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신길3동에 전승되고 있는 [마을](/topic/마을) 제의.
유래와 역사과거의 행정구역명은 경기도 시흥군 하북면 신길리였다. 이것이 변화하여 신기리라 불리면서 신기리도당제라고 부른다. 신기리도당제의 기원은 정확하지 않다. 고구려 장수왕때 큰 폭동이 발생하여 나라가 뒤숭숭해지자 어선의 무사 운항과 [마을](/topic/마을)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주민들이 포구 언덕 위의 소나무에 당제를 지내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이것은서울 지역의 각 마을 도당에 전해지는 유래담의 하나로 보인다. 도당을 지어 산신을 모신 것이 400여 년 전이라는 말도 있어 유래에 대해서는 정확하지 않다. 신기리도당의 [상량문](/topic/상량문)에는 단기 4279년(서기 1946)이라 적혀 있지만 도당은 6·25전쟁 때 소실되었다가 1954년에 중건되었다. 도로 확장공사로 도당의 터가 반으로 줄었지만 현재도 그 명맥이 유지되고 있다.
내용신기리도당제는 매년 음력 시월 초사흗날에 유교식으로 거행된다. 과거에는 정월 초사흗날과 칠월칠석날에 제를 지냈지만 지금은 연 1회로 바뀌었다. 일제강점기 전까지는 무당이 굿을 주재하였다고 하지만 6·25전쟁 이후 유교식 제의만 거행한다. 모든 치성을 주관하는 이는 당주로, [생기복덕](/topic/생기복덕)을 가려 선출하였다. 그러나 토착민들이 이주해 나가면서 당주를 할 사람이 없게 되자 신기향우회에서 1980년대부터 당주를 선출하여 소임을 맡고 있다.

제의는 당주 집에서 시작된다. 제물을 도당으로 옮기기 전에 간단히 당주 집에서 정성을 들인다. 삼색실과와 떡으로 제물을 차리고 절을 하는 정도이다. 도당으로 모든 제물을 옮기고 역시 신기향우회에서 선출한 집사의 도움을 받아 제의를 거행한다. 제물은 돼지머리가 올라가는 것을 제외하고 가정에서 거행하는 제사의 상차림과 동일하다. 제의방식도 일반적인 제사 격식을 따른다. 모든 제의가 끝나면 당 밖에 나와 [축문](/topic/축문)을 사르고 [음복](/topic/음복)을 한다.

신기리도당제는 [마을](/topic/마을)공동제의이지만 현재는 신기향우회가 모든 행사를 주관한다. 신기향우회는 신기리 출신의 40대 이상 남자들로 구성된 단체로, 매달 10일 정기모임을 갖고 도당제를 주관한다. 마을 주민들의 참여는 거의 없이 오로지 향우회원 중심으로 전승되고 있다. 이것은 도시 지역의 전통마을이 붕괴되면서 전통 공동제의가 변모되는 새로운모습으로 볼수 있다. 마을 사람들이 주도적으로 나서지 않고 향우회, 보존회가 중심이 되어 공동제의를 전승하는 모습이 신기리도당제에 그대로 보인다.
내용신기리도당제는 매년 음력 시월 초사흗날에 유교식으로 거행된다. 과거에는 정월 초사흗날과 칠월칠석날에 제를 지냈지만 지금은 연 1회로 바뀌었다. 일제강점기 전까지는 무당이 굿을 주재하였다고 하지만 6·25전쟁 이후 유교식 제의만 거행한다. 모든 치성을 주관하는 이는 당주로, [생기복덕](/topic/생기복덕)을 가려 선출하였다. 그러나 토착민들이 이주해 나가면서 당주를 할 사람이 없게 되자 신기향우회에서 1980년대부터 당주를 선출하여 소임을 맡고 있다.

제의는 당주 집에서 시작된다. 제물을 도당으로 옮기기 전에 간단히 당주 집에서 정성을 들인다. 삼색실과와 떡으로 제물을 차리고 절을 하는 정도이다. 도당으로 모든 제물을 옮기고 역시 신기향우회에서 선출한 집사의 도움을 받아 제의를 거행한다. 제물은 돼지머리가 올라가는 것을 제외하고 가정에서 거행하는 제사의 상차림과 동일하다. 제의방식도 일반적인 제사 격식을 따른다. 모든 제의가 끝나면 당 밖에 나와 [축문](/topic/축문)을 사르고 [음복](/topic/음복)을 한다.

신기리도당제는 [마을](/topic/마을)공동제의이지만 현재는 신기향우회가 모든 행사를 주관한다. 신기향우회는 신기리 출신의 40대 이상 남자들로 구성된 단체로, 매달 10일 정기모임을 갖고 도당제를 주관한다. 마을 주민들의 참여는 거의 없이 오로지 향우회원 중심으로 전승되고 있다. 이것은 도시 지역의 전통마을이 붕괴되면서 전통 공동제의가 변모되는 새로운모습으로 볼수 있다. 마을 사람들이 주도적으로 나서지 않고 향우회, 보존회가 중심이 되어 공동제의를 전승하는 모습이 신기리도당제에 그대로 보인다.
형태[골목](/topic/골목)의 철문을 열고 들어가면 태극무늬가 있는 [솟을대문](/topic/솟을대문)이 있고 그 안에 6.6㎡ 정도의 한 칸 [한옥](/topic/한옥)으로 된 신기리도당이 있다. 도당 안에는 정면에 도당할아버지, 할머니를 그린 무신도가 [봉안](/topic/봉안)되어 있다. 그 앞에는 제물을 진설할 수 있는 단이 꾸며져 있다. 무신도는 도난당한 것을 다시 그려 봉안한 것이며, 왼쪽에 도당할아버지, 오른쪽에 도당할머니가 한 폭의 그림으로 함께 있다. 이 무신도의 형상은 [이태원](/topic/이태원)부군당의 무신도와 형태가 닮아 동일 시기에 동일 화상이 그린 것으로 추정되지만 정확하지 않다.
형태[골목](/topic/골목)의 철문을 열고 들어가면 태극무늬가 있는 [솟을대문](/topic/솟을대문)이 있고 그 안에 6.6㎡ 정도의 한 칸 [한옥](/topic/한옥)으로 된 신기리도당이 있다. 도당 안에는 정면에 도당할아버지, 할머니를 그린 무신도가 [봉안](/topic/봉안)되어 있다. 그 앞에는 제물을 진설할 수 있는 단이 꾸며져 있다. 무신도는 도난당한 것을 다시 그려 봉안한 것이며, 왼쪽에 도당할아버지, 오른쪽에 도당할머니가 한 폭의 그림으로 함께 있다. 이 무신도의 형상은 [이태원](/topic/이태원)부군당의 무신도와 형태가 닮아 동일 시기에 동일 화상이 그린 것으로 추정되지만 정확하지 않다.
의의신기리도당제는 도시 지역의 변모된 공동제의의 모습을 보여 준다. [마을](/topic/마을)에 거주하고 있든 타지로 이주했든 같은 마을을 성장 배경으로 하는 사람들이 모여 마을공동제의를 주관하고 있다. 일종의 친목회 유지에 도당제가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
참고문헌서울의 [마을](/topic/마을)굿 (박흥주, 서문당, 2001)
의의신기리도당제는 도시 지역의 변모된 공동제의의 모습을 보여 준다. [마을](/topic/마을)에 거주하고 있든 타지로 이주했든 같은 마을을 성장 배경으로 하는 사람들이 모여 마을공동제의를 주관하고 있다. 일종의 친목회 유지에 도당제가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
참고문헌서울의 [마을](/topic/마을)굿 (박흥주, 서문당, 2001)
일지사조선시대지장시왕도 연구김정희1996
보고사서울진진오기굿무가자료집김헌선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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