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동성적지

한국무속신앙사전
임진왜란 이후 조선에 관왕묘(關王廟)가 세워[지게](/topic/지게) 된 연혁을 기술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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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이후 조선에 관왕묘(關王廟)가 세워[지게](/topic/지게) 된 연혁을 기술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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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호
정의임진왜란 이후 조선에 관왕묘(關王廟)가 세워[지게](/topic/지게) 된 연혁을 기술한 책.
정의임진왜란 이후 조선에 관왕묘(關王廟)가 세워[지게](/topic/지게) 된 연혁을 기술한 책.
내용관왕묘(關王廟)는 중국 삼국시대의 장수인 관우(關羽)를 향사한 [사당](/topic/사당)이다. 중국에서 관우는 이미 오래전부터 중요한 신앙의 대상이 되었으며, 우리나라에는 임진왜란 당시에 명나라 장수들이 군사들의 사기 진작을 위하여 관우의 사당을 건립하기 시작하면서 생겨났다. 최초로 건립된 관왕묘는 1598년(선조 31) 숭례문 밖에 건립된 남관왕묘[南廟]이다. 남묘는 명나라 장수 진인(陳寅)이 전시에 부상을 입어 치료차 한양의 [남산](/topic/남산)에 거할 때 묘당(廟堂)을 세우고 관우의 신상을 모시는 데서 비롯되었다. 이것을 시작으로 성주(星州)와 안동(安東), 고금도(古今島)에 관왕묘가 건립되었고, 1599년(선조 32)에는 동관왕묘[東廟]의 건립이 착수되어 1601년에 완성되었다. 관왕묘는 명나라 [장군](/topic/장군)들이 [묘사](/topic/묘사)의 건립을 주도한 만큼 조선의 정부에서도 그것을 도왔던 것으로 시작하였지만 후에는 국가의 제사로 여겨질 만큼 자리 잡게 되었다.

영조시대에 관왕묘 제사는 『국조속오례의(國朝續五禮儀)』의 소사(小祀)로 포함되었고 정조시대에는 중사(中祀)로 격상되었다. 이어 1832년(순조 32)에는 임란의 6주기를 맞이하여 서울의 동묘(東廟)와 남묘(南廟), 안동․성주․남원(南原)․고금도에 위치한 관왕묘에 물품과 사람들을 내려 보내어 특별한 의례를 거행하도록 하였다.

『해동성적지(海東聖蹟誌)』는 1876년(고종 13)에 간행된 목활자본의 책으로 총 2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관왕묘의 건립부터 제식(祭式), 사적에 관련된 문장과 기록들을 총망라하고 있다. 권1은 「묘사고(廟祠考)」, 「유인고(遺印考)」, 「[사전](/topic/사전)고(祀典考)」, 「제문고(祭文考)」, 「영감고(靈感考)」로 구성되어 있고 권2는 「예문고(藝文考)」를 담고 있다.

권1의 「묘사고」에서는 한양의 남묘․동묘, 고금도의 탄보묘(誕報廟), 남원과 안동, 성주의 관왕묘의 건립 연혁과 관제신앙(關帝信仰)과 관련된 전설을 그린 그림, 한양의 남묘도(南廟圖)와 동묘도(東廟圖)를 실었다. 「유인고」에는 묘사의 운영과 관련하여 사용된 각종 인장(印章)들의 종류와 형태, 인장문(印章文) 등을 도식화 하였다. 「사전고」에는 관제묘에서의 제사 규칙이 기록되어 있으며, 「제문고」에는 역대 각 관왕묘의 치제문(致祭文)을 모아 연대와 지은 이를 수록하였다. 「영감고」에는 관제신앙과 관련된 11편의 이적(異蹟)과 사건을 모아 기록하였다.

권2의 「예문고」는 관우나 그의 사적에 관계되는 문장․기록들을 기류(記類)․명류(銘類)․시류(詩類)․부류(賦類)․찬류(贊類)․연류(聯類)․변류(匾類) 등의 항목으로 세세히 분류하여 수록하고 있다.

『해동성적지』는 관제신앙이 임란 이후 우리나라에 전래된 과정과 이후 변화해 가는 모습을 가늠하는 데 도움을 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참고문헌海東聖蹟誌, 19세기 후반 관왕 숭배의 확산과 관왕묘 제례의 주도권을 둘러싼 동래 지역사회의 동향 (손숙경, 고문서연구 23, 한국고문서학회, 2003)
내용관왕묘(關王廟)는 중국 삼국시대의 장수인 관우(關羽)를 향사한 [사당](/topic/사당)이다. 중국에서 관우는 이미 오래전부터 중요한 신앙의 대상이 되었으며, 우리나라에는 임진왜란 당시에 명나라 장수들이 군사들의 사기 진작을 위하여 관우의 사당을 건립하기 시작하면서 생겨났다. 최초로 건립된 관왕묘는 1598년(선조 31) 숭례문 밖에 건립된 남관왕묘[南廟]이다. 남묘는 명나라 장수 진인(陳寅)이 전시에 부상을 입어 치료차 한양의 [남산](/topic/남산)에 거할 때 묘당(廟堂)을 세우고 관우의 신상을 모시는 데서 비롯되었다. 이것을 시작으로 성주(星州)와 안동(安東), 고금도(古今島)에 관왕묘가 건립되었고, 1599년(선조 32)에는 동관왕묘[東廟]의 건립이 착수되어 1601년에 완성되었다. 관왕묘는 명나라 [장군](/topic/장군)들이 [묘사](/topic/묘사)의 건립을 주도한 만큼 조선의 정부에서도 그것을 도왔던 것으로 시작하였지만 후에는 국가의 제사로 여겨질 만큼 자리 잡게 되었다.

영조시대에 관왕묘 제사는 『국조속오례의(國朝續五禮儀)』의 소사(小祀)로 포함되었고 정조시대에는 중사(中祀)로 격상되었다. 이어 1832년(순조 32)에는 임란의 6주기를 맞이하여 서울의 동묘(東廟)와 남묘(南廟), 안동․성주․남원(南原)․고금도에 위치한 관왕묘에 물품과 사람들을 내려 보내어 특별한 의례를 거행하도록 하였다.

『해동성적지(海東聖蹟誌)』는 1876년(고종 13)에 간행된 목활자본의 책으로 총 2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관왕묘의 건립부터 제식(祭式), 사적에 관련된 문장과 기록들을 총망라하고 있다. 권1은 「묘사고(廟祠考)」, 「유인고(遺印考)」, 「[사전](/topic/사전)고(祀典考)」, 「제문고(祭文考)」, 「영감고(靈感考)」로 구성되어 있고 권2는 「예문고(藝文考)」를 담고 있다.

권1의 「묘사고」에서는 한양의 남묘․동묘, 고금도의 탄보묘(誕報廟), 남원과 안동, 성주의 관왕묘의 건립 연혁과 관제신앙(關帝信仰)과 관련된 전설을 그린 그림, 한양의 남묘도(南廟圖)와 동묘도(東廟圖)를 실었다. 「유인고」에는 묘사의 운영과 관련하여 사용된 각종 인장(印章)들의 종류와 형태, 인장문(印章文) 등을 도식화 하였다. 「사전고」에는 관제묘에서의 제사 규칙이 기록되어 있으며, 「제문고」에는 역대 각 관왕묘의 치제문(致祭文)을 모아 연대와 지은 이를 수록하였다. 「영감고」에는 관제신앙과 관련된 11편의 이적(異蹟)과 사건을 모아 기록하였다.

권2의 「예문고」는 관우나 그의 사적에 관계되는 문장․기록들을 기류(記類)․명류(銘類)․시류(詩類)․부류(賦類)․찬류(贊類)․연류(聯類)․변류(匾類) 등의 항목으로 세세히 분류하여 수록하고 있다.

『해동성적지』는 관제신앙이 임란 이후 우리나라에 전래된 과정과 이후 변화해 가는 모습을 가늠하는 데 도움을 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참고문헌海東聖蹟誌, 19세기 후반 관왕 숭배의 확산과 관왕묘 제례의 주도권을 둘러싼 동래 지역사회의 동향 (손숙경, 고문서연구 23, 한국고문서학회,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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