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하르방

한국무속신앙사전
돌하르방
돌하르방은 조선시대 관청인 제주목, 정의현, 대정현 성문 밖에 세워두었던 석상. 1971년 8월 25일에‘제주특별자치도 민속자료 제2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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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하르방은 조선시대 관청인 제주목, 정의현, 대정현 성문 밖에 세워두었던 석상. 1971년 8월 25일에‘제주특별자치도 민속자료 제2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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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권용
정의돌하르방은 조선시대 관청인 제주목, 정의현, 대정현 성문 밖에 세워두었던 석상. 1971년 8월 25일에‘제주특별자치도 민속자료 제2호’로 지정되었다.
정의돌하르방은 조선시대 관청인 제주목, 정의현, 대정현 성문 밖에 세워두었던 석상. 1971년 8월 25일에‘제주특별자치도 민속자료 제2호’로 지정되었다.
내용돌하르방은 현재 제주시에 21기가 있다. 서귀포시 표선면과 대정읍에 각 12기씩 24기가 있었다가 이 가운데 2기는 서울 국립민속박물관에 있으며, 1기는 소실됐다.

조선시대 제주도는 제주목, 정의현, 대정현으로 나뉘었다. 세 곳의 소재지에는 성(城)이 있었으며, 성문 밖에 돌하르방을 세워 놓았다. 돌하르방이 세워진 정확한 시기는 알수 없다. 『탐라기년』에 따르면 1754년(영조 30)에 제주목사 김몽규가 만들어 세웠다고 기록되어 있다.

돌하르방은 후대에 아이들이 석상의 형상을 보고 붙인 이름이다. 문헌에는 옹중석(翁仲石)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주민들은 대부분 우석목이라 불렀다. 우석목은 ‘우석(偶石)+목(木)’의 합성어이며 석상의 형태를 칭하는 ‘偶石’과 기능을 뜻하는 ‘木’의 복합어이다. 여기서 ‘木’이란 단어는 제주도의 집 입구에 세워 두는 정주목의 ‘목’과 쓰임새가 같다. 정주목은 집 출입구에 [대문](/topic/대문) 대신 세우는 좌우 구멍이 세 개 뚫린 [기둥](/topic/기둥)을 말한다. 기둥으로는 흔히 목재와 석재가 쓰인다. 여기에 [정낭](/topic/정낭)을 끼워 우마나 외인의 침입을 막았다. 원래 나무로 쉽게 세우다가 비가 많은 제주도 특성상 썩고 부러져 돌로 제작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명칭은 재료와 관계없이 존속되었다.

제주 민간에서 집에 정주목을 세운 뒤 정낭을 끼워 외부로 부터의 침입을 막았듯이 성문 밖에 우석목을 세워 외부의 침입을 막았다. 실제적으로 마주 선 우석목의 [기단](/topic/기단)부를 보면 홈이 파여 있다. 국립민속박물관에 있는 돌하르방의 기단부를 보면 지상에서 무릎정도 높이에 한 쪽은 'ㄱ'자로 파여 있고 한 쪽은 구멍이 나 있다. 이곳에는 정주목과 같이 나무를 꽂았을 것이다. 실제적인 외부 침입 방지보다는 통금을 상징하고 신앙적인 측면에서 외부의 사악함을 방지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처럼 돌하르방의 옛 명칭에‘목’이란 단어가 붙어 있는 것은 외부의 침입을 막는 정주목에서 기인했음을 알 수 있다.

돌하르방은 성문 밖의 수호신 기능을 한다. 여기서 돌하르방을 세운 주체가 제주목사라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육지부의 장승과 제주도의 돌하르방은 경계수호신으로 같은역할을 한다. 하지만 장승은 [마을](/topic/마을) 사람들에 의해 제작되어 마을 어귀에 세워지지만 돌하르방은 관청 소재지의 성문에 관 주도로 돌을 깎아 세웠다. 장승 세우기는 마을 주민이 주도하고 돌하르방은 관에서 주도한 것이다. 유교 이념을 국시로 삼은 조선의 지방관청이 없애야 할 대상인 무속 신앙물을 성문에다 세웠다는 것은 주목할 대목이다.

이는 삼성혈과 연관시켜 볼 수 있다. [삼성신화](/topic/삼성신화)는 제주도의 가장 대표적인 [건국신화](/topic/건국신화)이다. 이 신화의 구조는 제주 무속에서 불리던 지상용출(地上湧出)신화와 같다. 당시 제주도 위정자들은 이런 [무속신화](/topic/무속신화)를 왜 성역화 했는지 생각할 수 있다. 제주도는 조선의 가장 변방이자 가장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한 곳이다. 제주도민들은 제주도의 고유한 문화를 지키며 살고 있었고, 그 문화에는 무속신앙이 중심을 이루고 있었다. 중앙에서 파견된 위정자들의 입장에서 제주도민들은 교화의 대상이었다. 제주도에는 무속신앙이 뿌리깊게 자리 잡고 있었다. 이는 “당 오백, 절 오백에 불을 질렀다”는 이형상 목사의 얘기를 통해 알 수 있다. 이에 따라 제주민들을 중앙집권의 제도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는그들이 믿는 신앙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무속신화를 건국신화화하였으며, 삼성사를 만들어 무속의례를 유교의례화했다. 우석목 또한 문을 지키는 정주목신을 받아들여 성문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만든 것이다. 우석목은 위정자들이 제주민의 무속신앙을 받아들인 결과라 할 수 있다.
참고문헌제주도 무속과 그 주변 (현용준, 집문당, 2002)
내용돌하르방은 현재 제주시에 21기가 있다. 서귀포시 표선면과 대정읍에 각 12기씩 24기가 있었다가 이 가운데 2기는 서울 국립민속박물관에 있으며, 1기는 소실됐다.

조선시대 제주도는 제주목, 정의현, 대정현으로 나뉘었다. 세 곳의 소재지에는 성(城)이 있었으며, 성문 밖에 돌하르방을 세워 놓았다. 돌하르방이 세워진 정확한 시기는 알수 없다. 『탐라기년』에 따르면 1754년(영조 30)에 제주목사 김몽규가 만들어 세웠다고 기록되어 있다.

돌하르방은 후대에 아이들이 석상의 형상을 보고 붙인 이름이다. 문헌에는 옹중석(翁仲石)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주민들은 대부분 우석목이라 불렀다. 우석목은 ‘우석(偶石)+목(木)’의 합성어이며 석상의 형태를 칭하는 ‘偶石’과 기능을 뜻하는 ‘木’의 복합어이다. 여기서 ‘木’이란 단어는 제주도의 집 입구에 세워 두는 정주목의 ‘목’과 쓰임새가 같다. 정주목은 집 출입구에 [대문](/topic/대문) 대신 세우는 좌우 구멍이 세 개 뚫린 [기둥](/topic/기둥)을 말한다. 기둥으로는 흔히 목재와 석재가 쓰인다. 여기에 [정낭](/topic/정낭)을 끼워 우마나 외인의 침입을 막았다. 원래 나무로 쉽게 세우다가 비가 많은 제주도 특성상 썩고 부러져 돌로 제작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명칭은 재료와 관계없이 존속되었다.

제주 민간에서 집에 정주목을 세운 뒤 정낭을 끼워 외부로 부터의 침입을 막았듯이 성문 밖에 우석목을 세워 외부의 침입을 막았다. 실제적으로 마주 선 우석목의 [기단](/topic/기단)부를 보면 홈이 파여 있다. 국립민속박물관에 있는 돌하르방의 기단부를 보면 지상에서 무릎정도 높이에 한 쪽은 'ㄱ'자로 파여 있고 한 쪽은 구멍이 나 있다. 이곳에는 정주목과 같이 나무를 꽂았을 것이다. 실제적인 외부 침입 방지보다는 통금을 상징하고 신앙적인 측면에서 외부의 사악함을 방지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처럼 돌하르방의 옛 명칭에‘목’이란 단어가 붙어 있는 것은 외부의 침입을 막는 정주목에서 기인했음을 알 수 있다.

돌하르방은 성문 밖의 수호신 기능을 한다. 여기서 돌하르방을 세운 주체가 제주목사라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육지부의 장승과 제주도의 돌하르방은 경계수호신으로 같은역할을 한다. 하지만 장승은 [마을](/topic/마을) 사람들에 의해 제작되어 마을 어귀에 세워지지만 돌하르방은 관청 소재지의 성문에 관 주도로 돌을 깎아 세웠다. 장승 세우기는 마을 주민이 주도하고 돌하르방은 관에서 주도한 것이다. 유교 이념을 국시로 삼은 조선의 지방관청이 없애야 할 대상인 무속 신앙물을 성문에다 세웠다는 것은 주목할 대목이다.

이는 삼성혈과 연관시켜 볼 수 있다. [삼성신화](/topic/삼성신화)는 제주도의 가장 대표적인 [건국신화](/topic/건국신화)이다. 이 신화의 구조는 제주 무속에서 불리던 지상용출(地上湧出)신화와 같다. 당시 제주도 위정자들은 이런 [무속신화](/topic/무속신화)를 왜 성역화 했는지 생각할 수 있다. 제주도는 조선의 가장 변방이자 가장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한 곳이다. 제주도민들은 제주도의 고유한 문화를 지키며 살고 있었고, 그 문화에는 무속신앙이 중심을 이루고 있었다. 중앙에서 파견된 위정자들의 입장에서 제주도민들은 교화의 대상이었다. 제주도에는 무속신앙이 뿌리깊게 자리 잡고 있었다. 이는 “당 오백, 절 오백에 불을 질렀다”는 이형상 목사의 얘기를 통해 알 수 있다. 이에 따라 제주민들을 중앙집권의 제도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는그들이 믿는 신앙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무속신화를 건국신화화하였으며, 삼성사를 만들어 무속의례를 유교의례화했다. 우석목 또한 문을 지키는 정주목신을 받아들여 성문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만든 것이다. 우석목은 위정자들이 제주민의 무속신앙을 받아들인 결과라 할 수 있다.
참고문헌제주도 무속과 그 주변 (현용준, 집문당, 2002)
朝鲜时代安放在济州岛城门外的守护石神。

朝鲜时代济州岛划分为济州牧,旌义县和大静县。三处所在地均有城,城门之外便立着济州岛石爷(韩文中的发音为Dolhareubang—译注)。济州岛石爷的具体安放时间无所得知。《眈罗志》有1754 年(英祖30)由济州牧师金永奎制造并竖立的记录。济州岛石爷是后代子孙们看着石像的形状而取的名称。文献中的记录为“翁仲石”,村民们则大部分都称之为“偶石木”。偶石木是“偶石”+“木”的合成词,是称呼石像形态的“偶石”与寓意功能的“木”的复合词。将偶石木立于城门外为的是阻挡外部的侵入。此处,“木”这一单词,与立于济州岛家门口阻挡外部侵入的“正柱木”的“木”具有相同的作用。

在济州岛,家门口没有大门,而是立着穿有三个孔的柱子。将长长的横杆穿过柱洞架起来控制外部的进出。即从信仰上,欲由此防止外部邪恶的侵入。同样,济州岛石爷也发挥着城门之外守护神的功能。但值得注意的是,竖立起济州岛石爷的主体是济州牧使这一点。半岛陆地地区的[长栍](/topic/长栍)和济州岛的济州岛石爷作为区境守护神,发挥着同样的作用。但长栍是由村民们在村庄入口处竖立的,而济州岛石爷则是立于官府所在地的城门处,由官府主导削石而立,可见长栍由村民主导,济州岛石爷则由官府所主导。这可谓是执政者接受济州村民巫俗信仰的结果。
Dolhareubang, or stone grandfather, is a stone deity erected outside the gates of fortresses on Jeju Island during the Joseon dynasty.

In Joseon, Jeju Island was divided into three counties – Jejumok, Jeongeuihyeon and Daejeonghyeon–and in the capital of each county was a fortress, outside of which dolhareubang were erected. It is difficult to determine the date of the first stone deity, but the official Jeju provincial record Tamnaji notes that a stone grandfather was erected by Jejumok magistrate Kim Yeong-gyu in the 30th year of King Yeongjo’s reign in Joseon (1754). Dolhareubang is a children’s term that later came into wide use. Records refer to the statue by the term ongjungseok, which originated from the legendary Chinese commander and tomb guardian Weng Zhong, while villagers used the term useongmok, meaning stone general guardian, its function similar to that of wooden pillars (jeongjumok) that function as a gate in traditional Jeju houses for keeping out outsiders, and in religious terms, evil spirits from the outside world. In the same vein, these stone deities served as guardians of the fortress.

It is notable that dolhareubang were erected in stone by the magistrate of Jeju outside the fortress of the county capital, while the village guardian post jangseung of the mainland, similar in function, were carved from tree trunks by villagers and erected at the entrance of the village. This could be interpreted as a result of the government’s embrace of the shamanic faith of the people of Jeju.
Dolhareubang que significa literalmente “abuelo de piedra” se refiere a las estatuas de piedra erigidas fuera de las puertas de las fortalezas en la isla de Jeju-do durante la dinastía Joseon.

En la época de Joseon, la isla de Jeju-do era dividida en tres condados: Jejumok, Jeongeuihyeon y Daejeonghyeon. La capital de cada condado era una fortaleza, fuera de la cual la dolhareubang fue erigida. Es difícil determinar la fecha de la primera deidad de piedra, sin embargo, según los registros oficiales de la provincia de Jeju, 《Tamnaje》, un abuelo de piedra fue erigido por el magistrado de Jejumok, Kim Yeong-gyu en 1754, el trigésimo año del reinado de Yeongjo de la dinastía de Joseon. Dolhareubang es el término creado luego por niños y se convirtió en una palabra usada de manera extendida. Por otro lado, en los registros escritos, la estatua se denomina ongjungseok, mientras que los aldeanos usaban el término useongmok, que significa “general guardián de piedra”. Useonmok es una palabra compuesta por la palabra “useok” que significa “estatua de piedra” y la palabra “mok” que significa “árbol”. En este caso el carácter “mok” es igual al que se utiliza en la palabra “jeongjumok” de la isla de Jeju-do, que significa “pilares de madera que protegen al pueblo de la invasión exterior”.

En la isla de Jeju-do, se erigen tres pilares con tres agujeros en el lugar de la entrada de casa, colocan un palo largo a través de los tres agujeros de los pilares de modo horizontal para bloquear la entrada a la casa, para alejar las malas esfuerzas y mantener la casa pura. De esta manera, estas deidades de piedra como guardianas que protegen las áreas fuera de las fortalezas. Cabe destacar que las dolhareubang fueron erigidas por el magistrado de Jejumok, fuera de la capital del condado, mientras que los postes guardianes del pueblo llamados jangseung de las regiones interiores que tenían la misma función que las deidades de piedra isleñas fueron talladas en madera y se observaban en la entrada de aldeas. Este hecho puede interpretarse como un resultado de que la creencia chamánica fue adoptada ya por los funcionarios gubernamentales en la isla de Jeju-do.
朝鲜时代安放在济州岛城门外的守护石神。

朝鲜时代济州岛划分为济州牧,旌义县和大静县。三处所在地均有城,城门之外便立着济州岛石爷(韩文中的发音为Dolhareubang—译注)。济州岛石爷的具体安放时间无所得知。《眈罗志》有1754 年(英祖30)由济州牧师金永奎制造并竖立的记录。济州岛石爷是后代子孙们看着石像的形状而取的名称。文献中的记录为“翁仲石”,村民们则大部分都称之为“偶石木”。偶石木是“偶石”+“木”的合成词,是称呼石像形态的“偶石”与寓意功能的“木”的复合词。将偶石木立于城门外为的是阻挡外部的侵入。此处,“木”这一单词,与立于济州岛家门口阻挡外部侵入的“正柱木”的“木”具有相同的作用。

在济州岛,家门口没有大门,而是立着穿有三个孔的柱子。将长长的横杆穿过柱洞架起来控制外部的进出。即从信仰上,欲由此防止外部邪恶的侵入。同样,济州岛石爷也发挥着城门之外守护神的功能。但值得注意的是,竖立起济州岛石爷的主体是济州牧使这一点。半岛陆地地区的[长栍](/topic/长栍)和济州岛的济州岛石爷作为区境守护神,发挥着同样的作用。但长栍是由村民们在村庄入口处竖立的,而济州岛石爷则是立于官府所在地的城门处,由官府主导削石而立,可见长栍由村民主导,济州岛石爷则由官府所主导。这可谓是执政者接受济州村民巫俗信仰的结果。
Dolhareubang, or stone grandfather, is a stone deity erected outside the gates of fortresses on Jeju Island during the Joseon dynasty.

In Joseon, Jeju Island was divided into three counties – Jejumok, Jeongeuihyeon and Daejeonghyeon–and in the capital of each county was a fortress, outside of which dolhareubang were erected. It is difficult to determine the date of the first stone deity, but the official Jeju provincial record Tamnaji notes that a stone grandfather was erected by Jejumok magistrate Kim Yeong-gyu in the 30th year of King Yeongjo’s reign in Joseon (1754). Dolhareubang is a children’s term that later came into wide use. Records refer to the statue by the term ongjungseok, which originated from the legendary Chinese commander and tomb guardian Weng Zhong, while villagers used the term useongmok, meaning stone general guardian, its function similar to that of wooden pillars (jeongjumok) that function as a gate in traditional Jeju houses for keeping out outsiders, and in religious terms, evil spirits from the outside world. In the same vein, these stone deities served as guardians of the fortress.

It is notable that dolhareubang were erected in stone by the magistrate of Jeju outside the fortress of the county capital, while the village guardian post jangseung of the mainland, similar in function, were carved from tree trunks by villagers and erected at the entrance of the village. This could be interpreted as a result of the government’s embrace of the shamanic faith of the people of Jeju.
Dolhareubang que significa literalmente “abuelo de piedra” se refiere a las estatuas de piedra erigidas fuera de las puertas de las fortalezas en la isla de Jeju-do durante la dinastía Joseon.

En la época de Joseon, la isla de Jeju-do era dividida en tres condados: Jejumok, Jeongeuihyeon y Daejeonghyeon. La capital de cada condado era una fortaleza, fuera de la cual la dolhareubang fue erigida. Es difícil determinar la fecha de la primera deidad de piedra, sin embargo, según los registros oficiales de la provincia de Jeju, 《Tamnaje》, un abuelo de piedra fue erigido por el magistrado de Jejumok, Kim Yeong-gyu en 1754, el trigésimo año del reinado de Yeongjo de la dinastía de Joseon. Dolhareubang es el término creado luego por niños y se convirtió en una palabra usada de manera extendida. Por otro lado, en los registros escritos, la estatua se denomina ongjungseok, mientras que los aldeanos usaban el término useongmok, que significa “general guardián de piedra”. Useonmok es una palabra compuesta por la palabra “useok” que significa “estatua de piedra” y la palabra “mok” que significa “árbol”. En este caso el carácter “mok” es igual al que se utiliza en la palabra “jeongjumok” de la isla de Jeju-do, que significa “pilares de madera que protegen al pueblo de la invasión exterior”.

En la isla de Jeju-do, se erigen tres pilares con tres agujeros en el lugar de la entrada de casa, colocan un palo largo a través de los tres agujeros de los pilares de modo horizontal para bloquear la entrada a la casa, para alejar las malas esfuerzas y mantener la casa pura. De esta manera, estas deidades de piedra como guardianas que protegen las áreas fuera de las fortalezas. Cabe destacar que las dolhareubang fueron erigidas por el magistrado de Jejumok, fuera de la capital del condado, mientras que los postes guardianes del pueblo llamados jangseung de las regiones interiores que tenían la misma función que las deidades de piedra isleñas fueron talladas en madera y se observaban en la entrada de aldeas. Este hecho puede interpretarse como un resultado de que la creencia chamánica fue adoptada ya por los funcionarios gubernamentales en la isla de Jeju-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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