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문화동벅수

한국무속신앙사전
경상남도 통영시 문화동에 세워진 돌장승. 1968년 11월 23일에 ‘중요민속자료 제7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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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통영시 문화동에 세워진 돌장승. 1968년 11월 23일에 ‘중요민속자료 제7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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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훈
정의경상남도 통영시 문화동에 세워진 돌장승. 1968년 11월 23일에 ‘중요민속자료 제7호’로 지정되었다
정의경상남도 통영시 문화동에 세워진 돌장승. 1968년 11월 23일에 ‘중요민속자료 제7호’로 지정되었다
내용경남 통영 지역에서는 장승을 ‘벅수’라고 한다. 벅수는 민간신앙의 대상물로서 다양한 역할을 한다. 통영문화동벅수는 비보장승으로 분류될 수 있다. 대체로 벅수가 남녀 한 쌍을 이루지만 이 돌벅수는 홀로 세워졌다. 1930년대 이전에는 [마을](/topic/마을) 노인들이 매년 봄과 가을에 차일(遮日)을 치고 오후에 한 시간 정도 간단한 [제상](/topic/제상)을 차려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현재는 벅수에게 지내는 동민 전체의 의식은 사라졌으며, 간혹 가정에서 벅수 앞에 촛불을 밝히고 간단한 제물을 차려 치성을 드린다. 통영 문화동 벅수는 건립시기가 명확히 밝혀져 있으며, 험상궂으면서도 웃고 있는 장승의 해학적 미학을 잘 보여 주는 민속자료로서 가치가 매우 높다.
참고문헌경남지방 장승․솟대신앙 (국립민속박물관, 1997)
내용경남 통영 지역에서는 장승을 ‘벅수’라고 한다. 벅수는 민간신앙의 대상물로서 다양한 역할을 한다. 통영문화동벅수는 비보장승으로 분류될 수 있다. 대체로 벅수가 남녀 한 쌍을 이루지만 이 돌벅수는 홀로 세워졌다. 1930년대 이전에는 [마을](/topic/마을) 노인들이 매년 봄과 가을에 차일(遮日)을 치고 오후에 한 시간 정도 간단한 [제상](/topic/제상)을 차려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현재는 벅수에게 지내는 동민 전체의 의식은 사라졌으며, 간혹 가정에서 벅수 앞에 촛불을 밝히고 간단한 제물을 차려 치성을 드린다. 통영 문화동 벅수는 건립시기가 명확히 밝혀져 있으며, 험상궂으면서도 웃고 있는 장승의 해학적 미학을 잘 보여 주는 민속자료로서 가치가 매우 높다.
참고문헌경남지방 장승․솟대신앙 (국립민속박물관, 1997)
역사통영문화동벅수는 1906년에 [마을](/topic/마을)의 재앙을 막고 평안을 기원하기 위해 동네 노인들이 벅수계를 조직하고 세병관 입구에 세운 것이다. 세병관은 1603년에 충무공 이순신의 공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워진 건물이며 이후 삼도수군통제사영(三道水軍統制使營)으로 사용되었다. 벅수가 세워진 문화동은 조선시대에는 거제현에 속하였지만 1914년에 있는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통영군 통영면 대화정(大和町)이 되었으며, 1955년에 충무시로 승격되었다가 다시 1995년 통영시에 통합되었다. 이러한 행정구역의 변천사로 인하여 ‘충무시문화동벅수’라고 지칭하기도 한다.

이 돌벅수는 시가의 낮은 중심지대에 위치한다. 마을의 [방역](/topic/방역)(防疫), 방액(防厄)을 위한 비보(裨補)장승으로 동남방이 허하다는 [풍수](/topic/풍수)지리설에 따라 만들어졌다고 한다. 벅수의 현재 위치는 1983년에 새로 옮겨진 것이다. ‘벅수이설내력’이라는 비석에 “이 벅수는 처음 도로 아래쪽에 있었으나 도시 계획에 의한 도로 확장으로 인하여 77년 만에 이곳으로 옮겨 세웠다”고 설명되어 있다.
역사통영문화동벅수는 1906년에 [마을](/topic/마을)의 재앙을 막고 평안을 기원하기 위해 동네 노인들이 벅수계를 조직하고 세병관 입구에 세운 것이다. 세병관은 1603년에 충무공 이순신의 공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워진 건물이며 이후 삼도수군통제사영(三道水軍統制使營)으로 사용되었다. 벅수가 세워진 문화동은 조선시대에는 거제현에 속하였지만 1914년에 있는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통영군 통영면 대화정(大和町)이 되었으며, 1955년에 충무시로 승격되었다가 다시 1995년 통영시에 통합되었다. 이러한 행정구역의 변천사로 인하여 ‘충무시문화동벅수’라고 지칭하기도 한다.

이 돌벅수는 시가의 낮은 중심지대에 위치한다. 마을의 [방역](/topic/방역)(防疫), 방액(防厄)을 위한 비보(裨補)장승으로 동남방이 허하다는 [풍수](/topic/풍수)지리설에 따라 만들어졌다고 한다. 벅수의 현재 위치는 1983년에 새로 옮겨진 것이다. ‘벅수이설내력’이라는 비석에 “이 벅수는 처음 도로 아래쪽에 있었으나 도시 계획에 의한 도로 확장으로 인하여 77년 만에 이곳으로 옮겨 세웠다”고 설명되어 있다.
형태국보 제305호인 세병관(洗兵館)으로 오르는 길가 오른쪽에 홀로 세워져 있다. 벅수의 크기는 높이 198㎝, 둘레 160㎝이다. 몸체의 앞면에는 ‘토지대[장군](/topic/장군)(土地大將軍)’이라는 글자가 음각되어 있고, 뒷면에는 ‘광무십년병오팔월일동락동입(光武十年丙午八月日同樂洞立)’이라는 건립 연대를 새겼다.

벅수는 화강석으로 제작하였다. 전체적으로 몸체에 비하여 머리가 크다. 툭 튀어나온 눈과 양 옆으로 삐쳐나온 송곳니가 짙은 인상을 준다. 귀면(鬼面) 형상으로 무서운 표정을 짓고 있지만 웃고 있는 입과 비례가 맞지 않는 얼굴 생김새로 인하여 익살스러운 이미지를 전한다.

얼굴 전반에는 채색을 하였는데 많이 벗겨져 있다. [모자](/topic/모자)·눈썹·귀·수염 등은 검은색, 얼굴은 붉은색으로 각각 칠하였다. 머리 위에는 모자를 썼으며, 이마에는 굵은 주름이 나 있다. 코는 뭉툭한 삼각형이고, 귀는 부처님과 같이 길게 늘여졌다. 입의 양끝을 위로 세워 U자형으로 웃고 있다. 송곳니 사이에는 이빨 다섯 개가 드러나 있고, 턱 아래에는 세 가닥의 수염이 새겨져 있다.
형태국보 제305호인 세병관(洗兵館)으로 오르는 길가 오른쪽에 홀로 세워져 있다. 벅수의 크기는 높이 198㎝, 둘레 160㎝이다. 몸체의 앞면에는 ‘토지대[장군](/topic/장군)(土地大將軍)’이라는 글자가 음각되어 있고, 뒷면에는 ‘광무십년병오팔월일동락동입(光武十年丙午八月日同樂洞立)’이라는 건립 연대를 새겼다.

벅수는 화강석으로 제작하였다. 전체적으로 몸체에 비하여 머리가 크다. 툭 튀어나온 눈과 양 옆으로 삐쳐나온 송곳니가 짙은 인상을 준다. 귀면(鬼面) 형상으로 무서운 표정을 짓고 있지만 웃고 있는 입과 비례가 맞지 않는 얼굴 생김새로 인하여 익살스러운 이미지를 전한다.

얼굴 전반에는 채색을 하였는데 많이 벗겨져 있다. [모자](/topic/모자)·눈썹·귀·수염 등은 검은색, 얼굴은 붉은색으로 각각 칠하였다. 머리 위에는 모자를 썼으며, 이마에는 굵은 주름이 나 있다. 코는 뭉툭한 삼각형이고, 귀는 부처님과 같이 길게 늘여졌다. 입의 양끝을 위로 세워 U자형으로 웃고 있다. 송곳니 사이에는 이빨 다섯 개가 드러나 있고, 턱 아래에는 세 가닥의 수염이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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