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황연동유령산령당

한국무속신앙사전
강원도 태백시 황연동 유령(楡嶺)에서 나[그네](/topic/그네)의 행로 안전과 [마을](/topic/마을)의 안녕 및 풍년을 기원하는 제의 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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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태백시 황연동 유령(楡嶺)에서 나[그네](/topic/그네)의 행로 안전과 [마을](/topic/마을)의 안녕 및 풍년을 기원하는 제의 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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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설
정의강원도 태백시 황연동 유령(楡嶺)에서 나[그네](/topic/그네)의 행로 안전과 [마을](/topic/마을)의 안녕 및 풍년을 기원하는 제의 장소.
정의강원도 태백시 황연동 유령(楡嶺)에서 나[그네](/topic/그네)의 행로 안전과 [마을](/topic/마을)의 안녕 및 풍년을 기원하는 제의 장소.
참조[태백황연동유령제](/topic/태백황연동유령제)
참고문헌민속신앙부문 (김의숙, 강원문화연구 5, 강원대학교 강원문화연구소, 1985)
태백시지 (태백시, 1998)
참조[태백황연동유령제](/topic/태백황연동유령제)
참고문헌민속신앙부문 (김의숙, 강원문화연구 5, 강원대학교 강원문화연구소, 1985)
태백시지 (태백시, 1998)
내용유령산령제는 매년 음력 사월 열엿샛날에 지낸다. 제사는 태백시와 삼척시 도계읍 주민들로 구성된 유령제 봉사회 회원들이 주관하여 지낸다. 회원들은 [헌관](/topic/헌관)을 맡지 않고 대신 제사를 진행하는 집례(執禮), 대축(大祝), 찬인(贊引) 등의 역할을 맡는다.

제사를 준비하는 유사는 제사 지내기 한 달 전에 정한다. 유사는 회원 가운데 정하는데 생기는 보지 않는다. 예전에는 산령당 아래에 사는 사람들이 주로 유사직을 맡았으나 지금은 회원들이 돌아가면서 맡는다. 교통이 발달하지 않은 예전에는 걸어다녔기 때문에 먼 곳에 있는 사람이 유사가 되면 제물을 준비하여 산령당까지 옮기기 힘이 들었다. 이런 이유로 제물을 옮기기 쉬운 곳에 사는 회원들이 유사를 한 것이다.

음력 사월 초하룻날에는 제물로 쓸 황소 한 마리를 잡고, 초이튿날에는 제사에 쓸 술을 담근다. 술은 산령당 앞에 구덩이를 파서 단지를 묻고 담근다. 땅을 파고 짚에 불을 지펴 구덩이 주위를 여러 번 돌려 부정을 제거한 다음 단지를 묻는다. 단지를 묻고 술을 담그고 [금줄](/topic/금줄)을 친다.

유사는 제사 일주일 전에 목욕재계하고 나서 산령당과 자기 집 앞에 금줄을 친다. 유사는 제사를 준비할 때에만 나들이하고 가능한 한 집에 머문다. 헌관들은 공직에 있기 때문에 특별히 금기하는 것은 없으나 가능한 한 행동을 조심하고, 제사 전날에 목욕재계를 한다. 제례에 [제관](/topic/제관)으로 참여하는 유사․ 집례․ 대축․찬인들도 전날에 목욕재계를 한다. 헌관과 제관들은 절대 개고기를 먹으면 안 된다.

제사는 유교식으로 지낸다. 헌관은 삼헌관이다. [초헌](/topic/초헌)관은 태백시장이, [아헌](/topic/아헌)관은 태백시 의회의장이 그 직분을 수행한다. [종헌](/topic/종헌)관은 태백시 유도회장이나 태백시 문화원장 또는 태백시 노인회장 등이 한 해 한 차례 돌아가면서 맡아 한다.

헌관은 관복을 입고 당 앞에서 당을 향해 서 있다가 집례의 홀기에 따라 당 안으로 들어가 절을 한다. 절은 사배 한다. 제사는 [참신](/topic/참신)례, 초헌례, 아헌례, 종헌례, [음복](/topic/음복)례, 망료례, 사신례, 소지 상천례의 순으로 진행된다. 소지 상천례(燒紙 上天禮)는 사신례를 한 다음 주민들의 소원이 담긴 소지를 태우는 예이다. 소지에는 각자의 생기와 소원을 적어 놓았으며 소지는 초헌관이 한꺼번에 태운다. 소지를 한 사람씩 올리면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기 때문이다. 소지를 올릴 때에는 소지축(燒紙祝)을 읽는다.


“존령님께서는 [흠향](/topic/흠향)하시옵고, 소지를 올리는 모든 분들의 소원을 성취하도록 살펴주시고, 국태민안과 태백시와 삼척의 번영과 발전을 하도록 살펴주시고, 만만인의 건강과 행운이 있기를 축원드리옵니다“


제물은 메 네 그릇, 백설기, 쇠머리, 쇠다리, 쇠 내장, 쇠갈비, 쇠 전육, 포(어물), [삼실과](/topic/삼실과)([대추](/topic/대추)․밤․감), [수박](/topic/수박), [사과](/topic/사과), 배, [포도](/topic/포도) 등이다.

비용은 봉사회의 기금과 유령(느릅고개)에 인접한 태백시 황연동․삼척시 도계읍 주민들이 갹출한 돈, 회원들의 회비, 참여자들의 찬조금, 소지를 올린 새전(賽錢) 등으로 충당한다.
내용유령산령제는 매년 음력 사월 열엿샛날에 지낸다. 제사는 태백시와 삼척시 도계읍 주민들로 구성된 유령제 봉사회 회원들이 주관하여 지낸다. 회원들은 [헌관](/topic/헌관)을 맡지 않고 대신 제사를 진행하는 집례(執禮), 대축(大祝), 찬인(贊引) 등의 역할을 맡는다.

제사를 준비하는 유사는 제사 지내기 한 달 전에 정한다. 유사는 회원 가운데 정하는데 생기는 보지 않는다. 예전에는 산령당 아래에 사는 사람들이 주로 유사직을 맡았으나 지금은 회원들이 돌아가면서 맡는다. 교통이 발달하지 않은 예전에는 걸어다녔기 때문에 먼 곳에 있는 사람이 유사가 되면 제물을 준비하여 산령당까지 옮기기 힘이 들었다. 이런 이유로 제물을 옮기기 쉬운 곳에 사는 회원들이 유사를 한 것이다.

음력 사월 초하룻날에는 제물로 쓸 황소 한 마리를 잡고, 초이튿날에는 제사에 쓸 술을 담근다. 술은 산령당 앞에 구덩이를 파서 단지를 묻고 담근다. 땅을 파고 짚에 불을 지펴 구덩이 주위를 여러 번 돌려 부정을 제거한 다음 단지를 묻는다. 단지를 묻고 술을 담그고 [금줄](/topic/금줄)을 친다.

유사는 제사 일주일 전에 목욕재계하고 나서 산령당과 자기 집 앞에 금줄을 친다. 유사는 제사를 준비할 때에만 나들이하고 가능한 한 집에 머문다. 헌관들은 공직에 있기 때문에 특별히 금기하는 것은 없으나 가능한 한 행동을 조심하고, 제사 전날에 목욕재계를 한다. 제례에 [제관](/topic/제관)으로 참여하는 유사․ 집례․ 대축․찬인들도 전날에 목욕재계를 한다. 헌관과 제관들은 절대 개고기를 먹으면 안 된다.

제사는 유교식으로 지낸다. 헌관은 삼헌관이다. [초헌](/topic/초헌)관은 태백시장이, [아헌](/topic/아헌)관은 태백시 의회의장이 그 직분을 수행한다. [종헌](/topic/종헌)관은 태백시 유도회장이나 태백시 문화원장 또는 태백시 노인회장 등이 한 해 한 차례 돌아가면서 맡아 한다.

헌관은 관복을 입고 당 앞에서 당을 향해 서 있다가 집례의 홀기에 따라 당 안으로 들어가 절을 한다. 절은 사배 한다. 제사는 [참신](/topic/참신)례, 초헌례, 아헌례, 종헌례, [음복](/topic/음복)례, 망료례, 사신례, 소지 상천례의 순으로 진행된다. 소지 상천례(燒紙 上天禮)는 사신례를 한 다음 주민들의 소원이 담긴 소지를 태우는 예이다. 소지에는 각자의 생기와 소원을 적어 놓았으며 소지는 초헌관이 한꺼번에 태운다. 소지를 한 사람씩 올리면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기 때문이다. 소지를 올릴 때에는 소지축(燒紙祝)을 읽는다.


“존령님께서는 [흠향](/topic/흠향)하시옵고, 소지를 올리는 모든 분들의 소원을 성취하도록 살펴주시고, 국태민안과 태백시와 삼척의 번영과 발전을 하도록 살펴주시고, 만만인의 건강과 행운이 있기를 축원드리옵니다“


제물은 메 네 그릇, 백설기, 쇠머리, 쇠다리, 쇠 내장, 쇠갈비, 쇠 전육, 포(어물), [삼실과](/topic/삼실과)([대추](/topic/대추)․밤․감), [수박](/topic/수박), [사과](/topic/사과), 배, [포도](/topic/포도) 등이다.

비용은 봉사회의 기금과 유령(느릅고개)에 인접한 태백시 황연동․삼척시 도계읍 주민들이 갹출한 돈, 회원들의 회비, 참여자들의 찬조금, 소지를 올린 새전(賽錢) 등으로 충당한다.
형태유령은 신라 때 임금이 신라의 5악(五嶽) 가운데 하나인 태백산(太白山)에서 천제를 지내기 위해 소를 몰고 넘던 고개이고, 조선시대에는 남쪽에 있는 태백산을 향해 망제(望祭)를 올리던 곳으로 우보산(牛甫山)이라고도 한다. 인근에 있는 태백시 주민들과 삼척시 도계읍 주민들이 이곳 정상에 산령당을 지어 놓고 고개를 넘을 때 무사히 넘을 수 있도록 기원하고 또 [마을](/topic/마을)에 질병이 돌지 않고 평안함과 농사에 풍년이 들기를 기원한다.

당집이 있는 곳은 황연동 14통 솔안마을로, 예전의 통리1구에 해당한다. 당은 2005년 4월 유령제 봉사회의 기금과 회원들의 특별찬조금으로 개축하였다. 앞면은 세 칸(3문), 옆면은 두 칸으로 된 8작 [기와](/topic/기와)[지붕](/topic/지붕)이다. 건축면적은 59.4㎡이다. 당 안에는 [위패](/topic/위패)는 없고 호랑이를 탄 신령과 동자 두 사람이 서 있는 그림이 전면 벽에 걸려 있다.
형태유령은 신라 때 임금이 신라의 5악(五嶽) 가운데 하나인 태백산(太白山)에서 천제를 지내기 위해 소를 몰고 넘던 고개이고, 조선시대에는 남쪽에 있는 태백산을 향해 망제(望祭)를 올리던 곳으로 우보산(牛甫山)이라고도 한다. 인근에 있는 태백시 주민들과 삼척시 도계읍 주민들이 이곳 정상에 산령당을 지어 놓고 고개를 넘을 때 무사히 넘을 수 있도록 기원하고 또 [마을](/topic/마을)에 질병이 돌지 않고 평안함과 농사에 풍년이 들기를 기원한다.

당집이 있는 곳은 황연동 14통 솔안마을로, 예전의 통리1구에 해당한다. 당은 2005년 4월 유령제 봉사회의 기금과 회원들의 특별찬조금으로 개축하였다. 앞면은 세 칸(3문), 옆면은 두 칸으로 된 8작 [기와](/topic/기와)[지붕](/topic/지붕)이다. 건축면적은 59.4㎡이다. 당 안에는 [위패](/topic/위패)는 없고 호랑이를 탄 신령과 동자 두 사람이 서 있는 그림이 전면 벽에 걸려 있다.
유래유령은 백두대간 줄기인 삼수령(三水嶺․피재, 강원도 태백시 삼수동 소재)에서 백두대간과 갈라진 줄기가 낙동정맥을 이루면서 남쪽으로 가다가 첫 번째에 나타나는 고개이다. 이 고개는 현재 기차와 자동차가 다니는 통리재(桶里峙)가 생기기 전에 영동 지역인 삼척(三陟)과 영서 지역인 태백을 오가는 교통의 요충지였다. 주민들은 고개가 높고 험하여 오르기 힘든 데다 짐승, 특히 호랑이가 득실거려 호랑이의 피해를 많이 보았다. 이 때문에 고개를 넘을 때에는 무서워서 혼자 넘지 못하여 여러 명이 모여 넘었고, 어떤 때에는 짐승을 쫓기 위해 징과 [꽹과리](/topic/꽹과리)를 치며 넘었다고 한다.

이 고개를 자주 넘는 주민들은 목숨을 잃어가며 힘들게 고개를 넘을 게 아니라 산령을 섬기고, 산령의 도움을 받아 아무 탈 없이 고개를 넘고 싶어 하였다. 주민들이 피재를 안심하고 넘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고개 정상에 산령당을 짓고, 산령을 위로하기 위해 매년 제사를 지냈다. 산령제를 지내고 나서부터는 별 탈 없이 고개를 잘 넘어 다닐 수 있었다. 그 후 나라에서 산령제를 지내 주었다. 그러다가 나라에 난리가 나고 어수선하여 행정력이 미처 미치지 못하게 되자 나라에서는 여러 해 동안 제사를 도와 주지 못했고, 주민들도 제사를 지내지 못하였다. 그러다 보니 산령당이 심하게 훼손되고, [마을](/topic/마을)에 질병이 창궐하고, 농사도 잘 되지 않았다.

그 즈음 영서 지역인 황지(태백시 황지동)에 사는 효자가 아버지 제삿날에 제물을 사 [가지](/topic/가지)고 이 고개(유령)를 넘게 되었다. 효자는 낮에 집에서 일을 하다가 조금 늦어서 고개를 넘어 영동 지역에 있는 소달장(所達場, 삼척시 도계읍 소달리 소재)에 장을 보러 갔다. 제물을 장만한 효자는 혼자 늦게 이 고개를 넘게 되었다. 그날 따라 집에서 늦게 떠나는 바람에 동네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 넘게 된 것이다.

효자는 제수를 장만하여 부지런히 걸어 고개에 이르렀다. 고개에 이르니 호랑이가 나타났다. 호랑이를 본 효자는 그만 놀라 기절하였다.

한참 지나 깨어 보니 호랑이가 옆에 있었다. 겁에 질린 효자는 호랑이에게 빌었다.“오늘이 아버지 제사인데 제사를 지내야 하니 제발 살려 주십시오.”이렇게 애원하니 호랑이가 말하였다.“효성이 지극하니 살려 준다. 대신 청을 들어줄 수 있느냐?”“청이 무엇입니까?”“황소를 한 마리 잡아 이곳에서 제사를 지낼 수 있느냐?”“네, 지낼 수 있습니다.”

효자가 약속을 하자 호랑이가 “나는 이곳에 있는 산신이다. 그동안 너희가 제사를 지내지 않고 고갯길을 함부로 다니기에 너희를 혼내고 잡아먹었다. 오늘 너를 잡아먹으려고 했으나 하늘이 낸 효자라 살려 보내니 돌아가서 산제를 정성껏 지내면 다시는 재앙이 없으리라.”하고 사라졌다.

그때 효자가 사는 동네에서는 밤이 늦도록 효자가 돌아오지 않으니 마을 사람들은 횃불을 들고 마중을 나왔다. 고개에 이르니 효자가 있어 마을 사람들은 그와 같이 집으로 왔다. 집에 온 효자는 아버지 제사를 지내고, 호랑이와 한 약속대로 황소 한 마리를 잡아 고개에 와서 제사를 지냈다. 이날이 바로 음력 사월 열엿샛날이다.

그 뒤 주민들은 산령을 성심껏 모시기 위해 산령당을 복원하고, 효자는 매년 황소를 잡아 제물로 바쳤다. 제사를 다시 지내고서부터 짐승으로부터 피해가 없이 고개를 잘 넘어 다녔고, 마을에 농사도 잘 되고, 전염병도 돌지 않았다.

그런데 효자 한 사람이 매년 황소 한 마리를 제물로 바치기에는 좀 [무리](/topic/무리)였고 힘이 들었다. 그래서 황소를 준비하지 못하여 제사를 지내지 못하게 되었다. 제사를 지내지 못하니 또다시 마을에 재앙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짐승들이 고개를 넘는 사람들을 해치고, 마을에는 흉년이 들고, 전염병이 돌아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는 등 피해가 막심하였다.

불안해진 마을 사람들은 돈을 갹출하여 제물을 준비하고 제사를 지내기 시작하였다. 제사를 다시 지내니 마을에는 아무런 피해가 없었다.

마을 사람들이 오랫동안 산령을 섬기지 않으니 산령이 호랑이로 변신해 나[그네](/topic/그네)에게 제사를 지내 달라고 한 것이었다.
유래유령은 백두대간 줄기인 삼수령(三水嶺․피재, 강원도 태백시 삼수동 소재)에서 백두대간과 갈라진 줄기가 낙동정맥을 이루면서 남쪽으로 가다가 첫 번째에 나타나는 고개이다. 이 고개는 현재 기차와 자동차가 다니는 통리재(桶里峙)가 생기기 전에 영동 지역인 삼척(三陟)과 영서 지역인 태백을 오가는 교통의 요충지였다. 주민들은 고개가 높고 험하여 오르기 힘든 데다 짐승, 특히 호랑이가 득실거려 호랑이의 피해를 많이 보았다. 이 때문에 고개를 넘을 때에는 무서워서 혼자 넘지 못하여 여러 명이 모여 넘었고, 어떤 때에는 짐승을 쫓기 위해 징과 [꽹과리](/topic/꽹과리)를 치며 넘었다고 한다.

이 고개를 자주 넘는 주민들은 목숨을 잃어가며 힘들게 고개를 넘을 게 아니라 산령을 섬기고, 산령의 도움을 받아 아무 탈 없이 고개를 넘고 싶어 하였다. 주민들이 피재를 안심하고 넘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고개 정상에 산령당을 짓고, 산령을 위로하기 위해 매년 제사를 지냈다. 산령제를 지내고 나서부터는 별 탈 없이 고개를 잘 넘어 다닐 수 있었다. 그 후 나라에서 산령제를 지내 주었다. 그러다가 나라에 난리가 나고 어수선하여 행정력이 미처 미치지 못하게 되자 나라에서는 여러 해 동안 제사를 도와 주지 못했고, 주민들도 제사를 지내지 못하였다. 그러다 보니 산령당이 심하게 훼손되고, [마을](/topic/마을)에 질병이 창궐하고, 농사도 잘 되지 않았다.

그 즈음 영서 지역인 황지(태백시 황지동)에 사는 효자가 아버지 제삿날에 제물을 사 [가지](/topic/가지)고 이 고개(유령)를 넘게 되었다. 효자는 낮에 집에서 일을 하다가 조금 늦어서 고개를 넘어 영동 지역에 있는 소달장(所達場, 삼척시 도계읍 소달리 소재)에 장을 보러 갔다. 제물을 장만한 효자는 혼자 늦게 이 고개를 넘게 되었다. 그날 따라 집에서 늦게 떠나는 바람에 동네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 넘게 된 것이다.

효자는 제수를 장만하여 부지런히 걸어 고개에 이르렀다. 고개에 이르니 호랑이가 나타났다. 호랑이를 본 효자는 그만 놀라 기절하였다.

한참 지나 깨어 보니 호랑이가 옆에 있었다. 겁에 질린 효자는 호랑이에게 빌었다.“오늘이 아버지 제사인데 제사를 지내야 하니 제발 살려 주십시오.”이렇게 애원하니 호랑이가 말하였다.“효성이 지극하니 살려 준다. 대신 청을 들어줄 수 있느냐?”“청이 무엇입니까?”“황소를 한 마리 잡아 이곳에서 제사를 지낼 수 있느냐?”“네, 지낼 수 있습니다.”

효자가 약속을 하자 호랑이가 “나는 이곳에 있는 산신이다. 그동안 너희가 제사를 지내지 않고 고갯길을 함부로 다니기에 너희를 혼내고 잡아먹었다. 오늘 너를 잡아먹으려고 했으나 하늘이 낸 효자라 살려 보내니 돌아가서 산제를 정성껏 지내면 다시는 재앙이 없으리라.”하고 사라졌다.

그때 효자가 사는 동네에서는 밤이 늦도록 효자가 돌아오지 않으니 마을 사람들은 횃불을 들고 마중을 나왔다. 고개에 이르니 효자가 있어 마을 사람들은 그와 같이 집으로 왔다. 집에 온 효자는 아버지 제사를 지내고, 호랑이와 한 약속대로 황소 한 마리를 잡아 고개에 와서 제사를 지냈다. 이날이 바로 음력 사월 열엿샛날이다.

그 뒤 주민들은 산령을 성심껏 모시기 위해 산령당을 복원하고, 효자는 매년 황소를 잡아 제물로 바쳤다. 제사를 다시 지내고서부터 짐승으로부터 피해가 없이 고개를 잘 넘어 다녔고, 마을에 농사도 잘 되고, 전염병도 돌지 않았다.

그런데 효자 한 사람이 매년 황소 한 마리를 제물로 바치기에는 좀 [무리](/topic/무리)였고 힘이 들었다. 그래서 황소를 준비하지 못하여 제사를 지내지 못하게 되었다. 제사를 지내지 못하니 또다시 마을에 재앙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짐승들이 고개를 넘는 사람들을 해치고, 마을에는 흉년이 들고, 전염병이 돌아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는 등 피해가 막심하였다.

불안해진 마을 사람들은 돈을 갹출하여 제물을 준비하고 제사를 지내기 시작하였다. 제사를 다시 지내니 마을에는 아무런 피해가 없었다.

마을 사람들이 오랫동안 산령을 섬기지 않으니 산령이 호랑이로 변신해 나[그네](/topic/그네)에게 제사를 지내 달라고 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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