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물건리동제

한국무속신앙사전
경상남도 남해군 삼동면 물건리에서 매년 음력 시월에 [마을](/topic/마을)의 안녕을 기원할 목적으로 행하는 마을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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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남해군 삼동면 물건리에서 매년 음력 시월에 [마을](/topic/마을)의 안녕을 기원할 목적으로 행하는 마을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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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일
정의경상남도 남해군 삼동면 물건리에서 매년 음력 시월에 [마을](/topic/마을)의 안녕을 기원할 목적으로 행하는 마을제의.
정의경상남도 남해군 삼동면 물건리에서 매년 음력 시월에 [마을](/topic/마을)의 안녕을 기원할 목적으로 행하는 마을제의.
내용전국적으로 전승되고 있는 동제는 크게 당제형와 당굿형으로 나눌 수 있다. 당제는 동제라 일컫기도 하며, [마을](/topic/마을)에서 동회를 열어 [제관](/topic/제관)을 선출하고 제관들이 동신당에 제를 올리는 것이다. 당굿은 대대적인 동신제로, 무당을 불러다가 굿으로 동신에게 제의를 올리는 것이다. 물건리동제는 당제에 해당한다. 보통 당제는 삼헌(三獻)과 [독축](/topic/독축)(讀祝)으로 이루어지고, 나이가 많은 사람 중 [생기복덕](/topic/생기복덕)이 맞고 정결한 이를 뽑는다. 보통 제주 한 명, 집사 한 명, 축관 한 명을 선출한다. 그러나 물건리동제는 메를 올리고 삼헌례를 하지만 독축을 하거나 소지는 올리지 않아 유교식 제의가 변형·축소된 형태라 할 수 있다.

물건리동제는 매년 음력 시월 보름날에 지내는 정기 제의로 동제를 거른 해가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1. 제관 선출 : 예전에는 동네 회의에서 깨끗하고 존경받는 사람을 뽑았지만 요즘은 서로 제관에 뽑히는 것을 기피하고 있어 두 개 반을 한 조로 묶어 돌아가면서 제관을 뽑는다. 총 열두 개 반이어서 6년에 한 번 동제를 주관한다.

2. 금기 : 제관은 깨끗하고 부정이 없는 사람으로 한다. 예전에는 제관이 보름 정도 금기사항을 지켜야 했으나 요즘은 일주일 정도로 줄었다. 일주일가량 집 둘레에 [금줄](/topic/금줄)을 치고, 바깥 외출을 삼가며, 부정한 일을 하지 않는다.

3. 제일 : 음력 시월 보름날 오후 5시 윗당산(상당)에서부터 시작한다. 제의는 본래 밤 12시에 지냈으나 요즘은 편의상 초저녁 날이 어두워지면 시작한다.

4. 제의 장소 : 제당은 당집이나 [서낭당](/topic/서낭당)이 없고 당나무만 있는 신수(神樹) 형태이다. 현재 윗당산나무(상당)와 아랫당산나무(하당)는 모두 썩어서 부러졌고, 그 밑동에서 다시 줄기가 핀 상태이다.

5. 제의 과정 : 제관들은 음력 시월 보름날 오후 5시에 윗당산에서 제물을 진설한다. 제물은 돼지머리, 팥시루떡, [삼색나물](/topic/삼색나물), 탕, 조기 따위의 각종 생선구이와 생선전, 꼬치, 밤·[대추](/topic/대추)·곶감(또는 감)·[사과](/topic/사과)·배 따위의 각종 과일 등을 진설한다. 진설 준비는 제관 부부와 이장, 마을 주민 5~6명이 함께한다. 요즘은 해[가지](/topic/가지)기 전에 동제를 지내기 때문에 진설이 끝나는 즉시 제의를 시작한다.

먼저 제관 부부는 서쪽 방향으로 절을 한다. 윗당산에서는 1시간 남짓 제의가 이루어진다. 상당제가 끝나면 [한지](/topic/한지)에 메 세 묶음을 싸서 트럭에 싣고 아랫당산으로 향한다. 아랫당산에 도착하면 제관은 메와 술을 각각 올리고 재배한 뒤 넓적한 돌 아래에 땅을 파고 메를 묻은 다음, 술과 음식을 사방에 뿌린다. 땅을 판 곳을 밥구덕이라고 하며, 매년 행하는 위치는 동일하다. 다음으로 제관은 마을의 한쪽 동구 밖인 동천고개로 가서 메와 술을 올리고 재배한 다음 밥구덕에 메를 묻는다. 그리고 다른 쪽 동구 밖인 은점고개로 가서동일한 순서로 제의를 행한 뒤 마을로 돌아온다.

윗당산과 아랫당산, 동천고개와 은점고개에 각각 제의를 지내고 메를 묻는 것에는 춘하추동, 동서남북 언제 어디서나 동민들이 평안하기를 기원하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마을을 보호하기 위해 마을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는 잡귀와 액, 살, 재앙 따위를 막아 마을을 보호한다는 의미가 있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즉 동구의 상당과 마을 안의 하당 외에 마을로 들어오는 양쪽 고갯마루 길 옆에서 제의를 지내는 것으로 보아서 밖으로부터 마을로 들어오는 잡귀와 액운 따위를 막아내려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할 수있다. 이 마을은 어촌이기 때문에 풍어의 기원과 해상 사고 방지에의 기원도 담겨 있다.

이러한 일련의 제의 과정이 끝나면 주민들이 주민센터에 모여 [음복](/topic/음복)하는 것으로 동제를 마[무리](/topic/무리)한다.
내용전국적으로 전승되고 있는 동제는 크게 당제형와 당굿형으로 나눌 수 있다. 당제는 동제라 일컫기도 하며, [마을](/topic/마을)에서 동회를 열어 [제관](/topic/제관)을 선출하고 제관들이 동신당에 제를 올리는 것이다. 당굿은 대대적인 동신제로, 무당을 불러다가 굿으로 동신에게 제의를 올리는 것이다. 물건리동제는 당제에 해당한다. 보통 당제는 삼헌(三獻)과 [독축](/topic/독축)(讀祝)으로 이루어지고, 나이가 많은 사람 중 [생기복덕](/topic/생기복덕)이 맞고 정결한 이를 뽑는다. 보통 제주 한 명, 집사 한 명, 축관 한 명을 선출한다. 그러나 물건리동제는 메를 올리고 삼헌례를 하지만 독축을 하거나 소지는 올리지 않아 유교식 제의가 변형·축소된 형태라 할 수 있다.

물건리동제는 매년 음력 시월 보름날에 지내는 정기 제의로 동제를 거른 해가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1. 제관 선출 : 예전에는 동네 회의에서 깨끗하고 존경받는 사람을 뽑았지만 요즘은 서로 제관에 뽑히는 것을 기피하고 있어 두 개 반을 한 조로 묶어 돌아가면서 제관을 뽑는다. 총 열두 개 반이어서 6년에 한 번 동제를 주관한다.

2. 금기 : 제관은 깨끗하고 부정이 없는 사람으로 한다. 예전에는 제관이 보름 정도 금기사항을 지켜야 했으나 요즘은 일주일 정도로 줄었다. 일주일가량 집 둘레에 [금줄](/topic/금줄)을 치고, 바깥 외출을 삼가며, 부정한 일을 하지 않는다.

3. 제일 : 음력 시월 보름날 오후 5시 윗당산(상당)에서부터 시작한다. 제의는 본래 밤 12시에 지냈으나 요즘은 편의상 초저녁 날이 어두워지면 시작한다.

4. 제의 장소 : 제당은 당집이나 [서낭당](/topic/서낭당)이 없고 당나무만 있는 신수(神樹) 형태이다. 현재 윗당산나무(상당)와 아랫당산나무(하당)는 모두 썩어서 부러졌고, 그 밑동에서 다시 줄기가 핀 상태이다.

5. 제의 과정 : 제관들은 음력 시월 보름날 오후 5시에 윗당산에서 제물을 진설한다. 제물은 돼지머리, 팥시루떡, [삼색나물](/topic/삼색나물), 탕, 조기 따위의 각종 생선구이와 생선전, 꼬치, 밤·[대추](/topic/대추)·곶감(또는 감)·[사과](/topic/사과)·배 따위의 각종 과일 등을 진설한다. 진설 준비는 제관 부부와 이장, 마을 주민 5~6명이 함께한다. 요즘은 해[가지](/topic/가지)기 전에 동제를 지내기 때문에 진설이 끝나는 즉시 제의를 시작한다.

먼저 제관 부부는 서쪽 방향으로 절을 한다. 윗당산에서는 1시간 남짓 제의가 이루어진다. 상당제가 끝나면 [한지](/topic/한지)에 메 세 묶음을 싸서 트럭에 싣고 아랫당산으로 향한다. 아랫당산에 도착하면 제관은 메와 술을 각각 올리고 재배한 뒤 넓적한 돌 아래에 땅을 파고 메를 묻은 다음, 술과 음식을 사방에 뿌린다. 땅을 판 곳을 밥구덕이라고 하며, 매년 행하는 위치는 동일하다. 다음으로 제관은 마을의 한쪽 동구 밖인 동천고개로 가서 메와 술을 올리고 재배한 다음 밥구덕에 메를 묻는다. 그리고 다른 쪽 동구 밖인 은점고개로 가서동일한 순서로 제의를 행한 뒤 마을로 돌아온다.

윗당산과 아랫당산, 동천고개와 은점고개에 각각 제의를 지내고 메를 묻는 것에는 춘하추동, 동서남북 언제 어디서나 동민들이 평안하기를 기원하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마을을 보호하기 위해 마을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는 잡귀와 액, 살, 재앙 따위를 막아 마을을 보호한다는 의미가 있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즉 동구의 상당과 마을 안의 하당 외에 마을로 들어오는 양쪽 고갯마루 길 옆에서 제의를 지내는 것으로 보아서 밖으로부터 마을로 들어오는 잡귀와 액운 따위를 막아내려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할 수있다. 이 마을은 어촌이기 때문에 풍어의 기원과 해상 사고 방지에의 기원도 담겨 있다.

이러한 일련의 제의 과정이 끝나면 주민들이 주민센터에 모여 [음복](/topic/음복)하는 것으로 동제를 마[무리](/topic/무리)한다.
의의동제는 [마을](/topic/마을) 대동을 위한 마을의 공적 성격을 띤 대동제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물건리의 동제는 위상을 상실한 채 마을 주민들의 무관심 속에 명맥을 겨우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외부인이 동제에 참석하는 것을 철저히 금하고 있어 외부인에 의해 부정이 생기는 것을 방지하고자 하는 의식이 강하게 남아 있다.

동제는 종교적 기능과 사회적 기능을 동시에 지니고 있지만 현재 물건리에서는 종교적·사회적 기능이 급격히 쇠퇴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동제를 통해 마을 주민들의심리적 유대와 단합을 통한 공동운명체라는 자기 소속감을 확인시켜 주는 기능은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미미해지고 있다. 마을 주민 대부분은 [제관](/topic/제관)이 되는 것을 기피하고 있어서어쩔 수 없이 두 개 반이 한 조가 되어 순환하면서 동제 준비를 하는 실정이다. 마을 주민 대부분은 동제에 신경을 쓰지 않고 있으며, 예전부터 있어 왔기에 마지못해 하는 것이전체적인 분위기이다. 이것은 현대화의 물결에 따라 어쩔 수 없는 현상이기도 하지만 물건리 내부에서 그 원인을 찾으면 크게 두 [가지](/topic/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외지인의 대거 유입을 들 수 있다. 전통적인 마을에서는 공동운명체로서의 소속감과 유대감이 강하지만 물건리의 경우 멸치잡이·낚싯배 등 수입원이 많기 때문에 많은 수의 외지인이 지속적으로 유입되고 있고, 그에 따라 예전과 같은 마을공동운명체로서의 유대감을 기대하기 힘들어졌다.

둘째, 기성 종교의 확산을 들 수 있다. 현재 물건리에는 교회, 성당, 미륵을 모시는 사찰이 들어서 있다. 작은 마을에 교회, 성당, 사찰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동제가 종교적·사회적 기능을 수행하기 어려운 환경임을 의미한다.

이러한 이유로 물건리의 동제는 예전에 비해 계속 축소되었고 동민들의 무관심 속에 행해지고 있다. 이에 따라 풍물을 울리고 각각의 가정에서 밥을 해 올리는 등 마을 주민들의적극적인 참여에 의해 치러지던 과거의 물건리 동제 모습은 이제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참고문헌민속박물관 사람들의 [세시풍속](/topic/세시풍속)현장조사6년 DVD (국립민속박물관, 2008)
동신당 (김태곤, 민속원, 1999)
[서낭당](/topic/서낭당) (이종철·박호원, 대원사, 1999)
동제의 상징과 의미전달체계 (이기태, 민속원, 2004)
의의동제는 [마을](/topic/마을) 대동을 위한 마을의 공적 성격을 띤 대동제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물건리의 동제는 위상을 상실한 채 마을 주민들의 무관심 속에 명맥을 겨우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외부인이 동제에 참석하는 것을 철저히 금하고 있어 외부인에 의해 부정이 생기는 것을 방지하고자 하는 의식이 강하게 남아 있다.

동제는 종교적 기능과 사회적 기능을 동시에 지니고 있지만 현재 물건리에서는 종교적·사회적 기능이 급격히 쇠퇴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동제를 통해 마을 주민들의심리적 유대와 단합을 통한 공동운명체라는 자기 소속감을 확인시켜 주는 기능은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미미해지고 있다. 마을 주민 대부분은 [제관](/topic/제관)이 되는 것을 기피하고 있어서어쩔 수 없이 두 개 반이 한 조가 되어 순환하면서 동제 준비를 하는 실정이다. 마을 주민 대부분은 동제에 신경을 쓰지 않고 있으며, 예전부터 있어 왔기에 마지못해 하는 것이전체적인 분위기이다. 이것은 현대화의 물결에 따라 어쩔 수 없는 현상이기도 하지만 물건리 내부에서 그 원인을 찾으면 크게 두 [가지](/topic/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외지인의 대거 유입을 들 수 있다. 전통적인 마을에서는 공동운명체로서의 소속감과 유대감이 강하지만 물건리의 경우 멸치잡이·낚싯배 등 수입원이 많기 때문에 많은 수의 외지인이 지속적으로 유입되고 있고, 그에 따라 예전과 같은 마을공동운명체로서의 유대감을 기대하기 힘들어졌다.

둘째, 기성 종교의 확산을 들 수 있다. 현재 물건리에는 교회, 성당, 미륵을 모시는 사찰이 들어서 있다. 작은 마을에 교회, 성당, 사찰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동제가 종교적·사회적 기능을 수행하기 어려운 환경임을 의미한다.

이러한 이유로 물건리의 동제는 예전에 비해 계속 축소되었고 동민들의 무관심 속에 행해지고 있다. 이에 따라 풍물을 울리고 각각의 가정에서 밥을 해 올리는 등 마을 주민들의적극적인 참여에 의해 치러지던 과거의 물건리 동제 모습은 이제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참고문헌민속박물관 사람들의 [세시풍속](/topic/세시풍속)현장조사6년 DVD (국립민속박물관, 2008)
동신당 (김태곤, 민속원, 1999)
[서낭당](/topic/서낭당) (이종철·박호원, 대원사, 1999)
동제의 상징과 의미전달체계 (이기태, 민속원,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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