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inition | 전통시대에 무속인, 화랑, 재인, 예인, [광대](/topic/광대) 등을 구성원으로 한 자치 조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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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korname | 허용호 |
정의 | 전통시대에 무속인, 화랑, 재인, 예인, [광대](/topic/광대) 등을 구성원으로 한 자치 조직. | 참조 | [악공청](/topic/악공청) | 참고문헌 | 朝鮮巫俗の硏究 (赤松智城·秋葉隆, 조선총독부, 1938) [조선무속의 연구](/topic/조선무속의연구) (심우성 옮김, 동문선, 1991) 한국연극사 연구 (사진실, 태학사, 1997) 조선 후기 수원 지역 연행예술 (허용호, 수원문화예술사, 화성연구회, 2004),) 일제강점기 경기도 민속신앙의 양상과 의의 (허용호, 한국무속학 11, 한국무속학회, 2006) | 내용 | 재인청은 [광대](/topic/광대)청(廣大廳)·화랑청(花郞廳)이라고도 하는데 경기·충청·전라 삼도에 있었다고 한다. 재인청은 나름대로 엄격한 조직체계를 갖추고 있었으며, 그 계원은 세습무가, [무악](/topic/무악)을 반주하는 화랑, 곡예를 하는 재인, 가무를 하는 예인, 무악을 하는 광대 등이 었다. 재인청의 조직체계를 보면, 각 도마다 도청(道廳)이 있고, 그 장(長)을 대방(大房)이라 칭한다. 대방 아래 도산주(都山主) 2명이 있었는데 이들은 좌도도산주(左道都山主), 우도도산주(右道都山主)로 칭하며, 한 도(道)를 좌우로 나눠 관할하였다. 산주는 대방을 보좌하며 중요 사항을 의논했다. 그 아래에 집망(執網) 4명, 공원(公員) 4명, 장무(掌務) 2명이 있었는데, 집망과 공원은 간사에 해당하며, 장무는 서무계이다. 한편 군(郡) 재인청의 장은 청수(廳首)라 칭하고, 그 아래에 공원과 장무를 뒀다. 조선 후기 재인들의 자치 조직인 재인청은 18~19세기 초에 만들어져 1920년까지 존속했던 것으로 보인다. 재인청 이외의 재인들의 자치 조직은 적어도 병자호란(1636) 이전부터 존재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는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10년 10월 16일 기사에, ‘재인들의 우두머리라는 의미’의 ‘산주재인(山主才人)’이라는 호칭과 ‘완문 등장팔도재인(完文 等狀八道才人)’에 나오는 ‘도산주(都山主)’가 서로 통한다는 점을 근거로 한다. 이를 근거로 조선 전기에 재인들의 자치조직이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재인들의 자치조직이 분명하게 그 실체를 드러낸 때는 병자호란 이후이다. 그 근거가 되는 것이 순조 24년(1824)의 ‘완문 등장팔도재인’의 내용이다. “팔도재인 등은 병자년 이후로 칙행(勅行)을 위하여 좌우산대를 설치하여 거행하였다(八道才人等 丙子以後 當爲勅行而設爲左右山擧行)”는 구절은 병자년인 1636년 직후에 어떤 조직 체계가 사신을 위한 [나례](/topic/나례)를 거행한 주체로 부상했음을 말한다. 그런데 이 ‘어떤 조직 체계’가 ‘재인청’은 아니다. 1636년 직후 있었던 어떤 조직적인 체계가 나중에 재인청 설립을 보게 되었다고 할 수는 있어도 1636년에 재인청이 세워졌다는 것은 사실일 수 없다. 재인들의 자치 조직은 그 이전부터 존재하고 있었지만, ‘완문 등장팔도재인’에서 밝힌 1636년까지는 공식적인 역할을 맡지 않았다. 재인들의 자체적인 조직과 [나례도감](/topic/나례도감)을 통한 중앙집권적인 관리가 병행하는 시기를 거쳐 1636년에 재인 조직이 정식으로 나례의 좌우 산대를 주관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재인 조직이 국가 행사를 주관할 수 있을 만큼 성장한 것을 의미한다. 한편 1784년 갑진년에 ‘좌우산(左右山)을 만들어 사신을 환영하는 규칙’이 사라진다. 『정조실록(正祖實錄)』을 보면 정조 8년(1784)에 이와 관련된 일련의 사건들이 벌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10월 9일에는 나례 비용을 부호나 강인들에게 부담지우는 폐단이 잇달았고, 11월 5일에는 “나희 연습을 하다가 밤중에 화포를 쏘아 올리는 사건”이 발생했으며 11월 14일 조에는 “사대부들이 [산대놀이](/topic/산대놀이)를 벌이고, 해당 당상관과 낭관이 이를 배웠다”라고 해서 이에 따라 해당 관계자는 물론이고 대사헌, 장령, 형조판서, 참판, 참의 한성부 좌윤과 우윤 등이 모두 파직되었다는 기록이 구체적으로 나와 있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 때문에 ‘좌우산을 만들어 사신을 환영하는 규칙’이 사라[지게](/topic/지게) 된 것으로 보인다. 재인청은 1784년에서 1824년 사이 어느 때인가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흔히 재인 조직의 등장이 『경기도창재도청안』이나 ‘완문 등장팔도재인’, 「[조선무속의 연구](/topic/조선무속의연구)」 등에 갑진년 이후 또는 1784년으로 분명하게 나와 있다는 점을 근거로 1784년이라고 추정한다. 그런데 1784년 이후에 재인청이 설립되었고, 재인청이 설립되고 수십 년 뒤인 1824년 조직을 재정비하여 그 결과를 호조(戶曹)에 보고한 문서가 바로 ‘완문 등장팔도재인’이다. 따라서 재인 조직이 재인청으로 설립된 시기는 『경기도창재도청안』의 내용에 “조산(造山)의 규칙이 깨진 후에 재인청의 규칙을 세웠다”라고 하였으니 1784년 이후이며, ‘완문 등장팔도재인’의 내용이 재인청을 재정비한다는 것이므로 1824년 이전이다. 중국 사신의 환영을 위한 행사마저 폐지된 이후에 오히려 재인 조직이 재인청으로 거듭난 것은, 그 존재 기반이 민간에서의 연행 활동에 있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재인 자치조직은 국가 행사를 위하여 존립한 것이 아니라 17세기 이후 민간에서의 흥행 활동에 기반을 두고 성장한 것이다. 그리고 1784년 이후 재인 조직이 재인청으로 거듭난 것은 자체적인 질서를 바로잡고 민간의 오락적 요구에 한층 더 부응하기 위한 것으로 추정된다. | 在传统时代,由巫师,花郎,才人,艺人,广大(音)(民间艺人—译注)等构成的自治组织。 “才人厅”又称“广大厅”,“花郎厅”,据说主要分布于京畿道,忠清道,全罗道等三道。它具备有严格的组织结构,成员包括[世袭巫](/topic/世袭巫),演奏巫乐的花郎,杂技演员才人,唱歌跳舞的艺人,唱巫乐的广大等。 细看组织体系,每个道有道厅,道厅厅长为大房。大房属下有两名都山主,他们将一道分为左右两部分管理。山主辅佐大房,讨论重要事项。朝鲜后期的才人厅建立于十八世纪至十九世纪初期,一直保持到1920 年。才人自治组织为自十七世纪以民间娱乐活动为基础得到发展的组织,并非为举办国家活动而存在的机构。据推测,1784 年之后,才人组织成立才人厅是为了整顿自身秩序,进一步迎合民间娱乐需求。 | Jaeincheong es el término que hace referencia a una asociación de artistas que era una organización autogestionada integrada por chamanes, músicos, acróbatas, bailarines y payasos. Esta asociación se llamaba también como Gwangdaecheong o Hwarangcheong, y mantenía sus oficinas en la provincia de Gyeonggi-do, la de Chungcheong-do y la de Jeolla-do. Jaeincheong era una estructura organizativa tan estricta cuyos miembros eran chamanes hereditarios llamados seseummu, músicos chamánicos llamados hwarang, acróbatas llamados jaein, cantantes y bailarines llamados yein, artistas chamánicos y payasos llamados gwangdae. La asociación mantenía una oficina regional en cada provincia, dirigida por un daebang que era servido por dos dosangju, cada uno estaba en cargo de la gestión de la mitad de la provincia Jaeincheong fue establecida a finales de la dinastía Joseon entre el siglo XVIII y principios del siglo XIX, y se mantuvo hasta el año 1920. Jaeincheong era una asociación civil que creció gracias a la prosperidad de los negocios de entretenimiento y actividades chamánicas a partir del siglo XVII. Y se cree que las organizaciones más pequeñas se reconocieron ellas mismas como Jaeincheog para satisfacer las necesidades públicas de la mejor manera ofreciendo sus mejores servicios relacionados con el entretenimiento y prácticas chamánicas a la gente. | Jaeincheong, or Association of Entertainers, was a selfgoverning organization formed by shamans, musicians, acrobats, dancers and clowns. The association was also called Gwangdaecheong (Association of Clowns) or Hwarangcheong (Association of Shamanic Musicians), and maintained offices in Gyeonggi, Chungcheong and Jeolla provinces. It had a strict organizational structure and its members included hereditary shamans (seseummu), shamanic music accompanists (hwarang), acrobats (jaein), singing and dancing entertainers (yein) shamanic perfomers and clowns (gwangdae). The association maintained a regional office in each province, directed by a daebang, who was served by two dosanju, each in charge of the management of half the province. Jaeincheong was established in late Joseon, between 18th century and early 19th century, and was maintained until the 1920s. It was a civilian association that grew out of the thriving business of entertainment and shamanic services since the 17th century and smaller societies reorganized themselves as Jaeincheong to better meet the public demand for these services with better managemen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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擇里誌 | 조선총독부 | 朝鮮巫俗の硏究 | 赤松智城ㆍ秋葉隆 | 1937 | 한국정신문화연구원 | 한국민족문화백과대사전 22-최영장군신 | 최길성 | 1994 | 한국정신문화연구원 | 한국민족문화백과대사전 22-최영 | 민병하 | 1994 | 대한출판 | 최영장군과 기봉영당 | 최재영 | 2005 | 해암 | 고려명장 최영의 역사흔적을 찾아서 | 김병섭 | 2007 | 민속원 | 최영장군당굿연구 | 최영장군당굿보존회 | 20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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