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inition | 강원도 동해시 어촌인 어달동의 동제. 육지성황을 모시는 서낭제와 바다성황을 모시는 해성제가 있으며, 서로 다른 시기에 각각 행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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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korname | 이한길 |
정의 | 강원도 동해시 어촌인 어달동의 동제. 육지성황을 모시는 서낭제와 바다성황을 모시는 해성제가 있으며, 서로 다른 시기에 각각 행해진다. | 정의 | 강원도 동해시 어촌인 어달동의 동제. 육지성황을 모시는 서낭제와 바다성황을 모시는 해성제가 있으며, 서로 다른 시기에 각각 행해진다. | 내용 | 1. 제의 일시 : 제의는 [마을](/topic/마을)에서 주관하는 서낭제가 시월과 섣달그믐날에 행해지며, 어촌계에서 주관하는 해성제는 시월 열흘날 안쪽으로 날을 받아서 행해진다. 마을에서 주관하는 제의는 시간은 주로 밤 10시쯤에 행한다. 섣달에 행하는 서낭제는 흔히 섣달그믐제사라고 하며, 해성제는 시월 [서낭당](/topic/서낭당) 제사가 끝난 뒤 열흘 이내에 행한다. 2. 당집과 당목 : 서낭당은 오래전에 지어졌으며 연대는 알 수 없으나, 1967년의(한국의 마을제당)에 따르면 마을에 처음 도착한 심씨가 건립하였다고 한다. 당집의 크기는 가로 약 650㎝, 세로 약 270㎝, 높이 약 180㎝이다. 방은 두 칸이며, 한 칸은 제당이고 다른 한 칸은 [재실](/topic/재실)로 사용한다. 그러나 4~5년 전에 제당 바깥에 별도로 재실을 건축한후로는 제당의 제실은 사용하지 않는다. 서낭당은 무당이 자주 사용하였으나 지금은 사용을 금하고 있다. 해성당은 선창가에 있으며, 추석 전에 풀을 벨 때와 제사를 지낼 때 청소하는 편이다. 3. 신위 : 서낭당의 신위는 토지지신, 성황지신, 여역지신, 해역지신 등 네 분이다. 해역지신은 해성당에 모셔져 있는 신위지만 서낭제를 올릴 때 함께 제향한다. 또한 해성당의 제의에서도 다른 세 분 신격과 함께 신위 네 분을 모두 제향한다. 서낭은 수서낭이며, 이곳 수서낭에서는 굿을 하지 않는다한다. 4. [제관](/topic/제관) : 제관은 [헌관](/topic/헌관) 네 명, 집사 한 명 등 총 다섯 명을 선정한다. 집사가 대축을 겸한다. 제관은 부정 없고 깨끗한 이로 보통 한 달 전에 선정한다. [생기복덕](/topic/생기복덕)은 보지 않지만 스스로 부정이 있으면 참여하지 않는다. 집안의 아내가 월경을 하거나 길에서 피를 보거나(차사고 혹은 개가 죽는 등) 하면 부정이 생겼다고 하여 참여할 수 없다. 제관은 [금줄](/topic/금줄)을 친 기간에는 문 밖 출입을 삼가며, 길흉사에는 아예 참석하지 않는다. 음식 장만하는 이를 ‘도가’라 이른다. 도가는 보통 한 달 전에 선정하며, 주로 [초헌](/topic/초헌)관이 된다. 어달동은 행정조직이 두 개 통으로 되어 있어 부정만 없다면 두 명의 통장이 자연스레 헌관이 된다. 이 밖에 제의에서는 소를 잡는 등 할 일이 많기 때문에 20여 명의주민들이 참여한다. 제관들은 제일(祭日) 아침에 목욕재계하며, [두루마기](/topic/두루마기)를 즐겨 입고 [유건](/topic/유건)을 착용한다. 5. 제물 : 제사에 사용하는 제기(祭器)는 마을에서 장만한 것으로 재실에 보관하고 있다. 섣달그믐 제사에는 황소, 시월 제사에는 수탉을 각각 사용한다. 제관들은 제의 20여일 전에 미리 매매 업자를 찾아가서 희생물인 소를 선정해둔다. 이때 제관들은 깨끗하고 잘생기고 거세하지 않은 황소를 선정한 후에 매매 업자에게 깨끗하게 잘 보살펴 달라고 당부한다. 그러나 요즘 거세하지 않은 황소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제일이 다가오면 업자는 섣달그믐날 아침(8~9시)에 제당까지 황소를 차에 싣고 운반해주며, 이때 소의 무게를 달아서 값을 계산한다. 도살은 오전 10시경에 시작하며, 소가 워낙 크다 보니 도살전문가를 초빙해야 한다. 소를 잡을 때에는 먼저 술을 한 잔 부어 놓고 한다. 소를 잡으면 피를 제당 주위에 뿌린 다음 부위별로 각을 떠서 모든 부위를 4등분하며, 소의 앞발과 뒷발도 각각 4등분한다. 이렇게 준비한 희생물은 성황지신, 토지지신,여역지신, 해역지신 순으로 올리며 가장 먼저 올리는 것은 간이다. 닭의 경우 예전에는 수탉 한 마리의 머리를 잘라서 제당 근처에 피를 뿌리고 도가 집에서 그것을 삶아 4등분 했다고 한다. 지금은 네 마리를 구입하기 때문에 굳이 4등분할 필요가 없다. 섣달그믐 제의와 시월 제의의 나머지 제물은 동일하다. 어물은 방어, 대구, 열기, 문어, 명태 등을 쪄서 올린다. 주둥이와 꼬리와 비늘은 도가가 누구냐에 따라서 치는 경우도 있고 그냥 두는 경우도 있다. 어물 중 ‘-치’로 끝나는 물고기는 올리지 않는다. 어물은 접시에 차곡차곡 쌓아 놓으며, 맨 위는 문어로 덮어 마[무리](/topic/무리)하며, 모두 네 접시를 준비한다. 백설기는 한 말 정도의 쌀로 네 판을 만드는데 예전에는 도가에서 장만하였다가 지금은 떡집에서 주문해서 장만한다. 메는 네 그릇이다. 나물은 도라지·[시금치](/topic/시금치)·무채 등 세 [가지](/topic/가지)를 즐겨 사용하고, 고사리는 사용하지 않는다. 탕은 무에 쇠고기를 넣어 만든다. 과일은 [삼실과](/topic/삼실과)(곶감, 밤, [대추](/topic/대추)), [사과](/topic/사과), 배, 귤 등이다. 과줄은 사용하지만 과자는 사용하지 않는다. 두부는 전으로 만들어 올린다. 술은 제당에 구덩이를 파고 직접 담갔지만 1990년대부터는 청주를 구입해 사용한다. 제물은 가장 좋은 것으로장만하고, 제물을 구입할 때 가격 흥정을 하지 않는다. 제의 비용은 가구당 2,000~5,000원을 갹출하다가 1990년대에 마을자산인 땅을 팔아서 기금을 만들고 이것으로 충당한다. 6. 제의 절차 : 금줄은 3~7일 전에 도가가 왼새끼를 꼬아서 그 사이에 소지종이를 끼워 넣어서 준비하여 제당에 먼저 친 다음 자기 집에도 친다. 이때 [황토](/topic/황토)도 함께 뿌린다. 또마을 사람들은 큰소리가 나지 않도록(싸우지 않도록) 서로가 주의한다. 첫 술잔은 도가가 초헌관이 되어 성황지신에게 [헌작](/topic/헌작)한다. 그다음 술잔은 [아헌](/topic/아헌)관이 토지지신, 세 번째 헌관이 여역지신, 네 번째 헌관이 해역지신에게 동시에 헌작하고 배례를한다. 이런 방식으로 헌작을 다시 한 번 더 한 뒤 고축한다. [축문](/topic/축문)은 한자로 표기되어 있다. 이후 이들은 제당에서 잠시 나와 있다가 들어가서 다시 한 번 헌작하고, 소지를 올린다. 소지는 처음에 축관이 동네를 위해 대표로 한 장 올린 후, 헌관들이 각자가 여러 장의 소지를 올린다. 소지를 올린 후 제사상의 음식을 골고루 조금씩 떼어내 퇴주잔에담은 다음 밖으로 나와 개울에 버린다. 여기에는 동네의 안녕을 비는 뜻이 담겨 있다. 이후 [음복](/topic/음복)을 간단히 하고는 남은 음식을 모두 도가 집으로 가져가서 주민들이 음복한다.이때 쇠고기는 반별로 무게를 달아서 분배하며, 쇠머리와 살코기 일부를 노인회에 기증한다. 쇠[가죽](/topic/가죽)은 원하는 이에게 주기도 하고 원하는 이가 없으면 제당 앞 땅을 파고 묻는다. 쇠가죽은 매매하지 않는다. 예전에는 서낭제가 끝나면 각자 설을 쇠고 난 다음 초이틀에 각 반 대표들이 도가 집에 모여 음복하고 총결산을 하였으나, 2002~2003년부터는마을 결산을 [연말](/topic/연말)에 행하고 있다. 7. 기타 : 동해시가 되기 전에는 이장, 동해시가 된 초창기에는 통장이 각각 마을의 기금을 관리하였으나 주민들은 2005년쯤 어달동 재정관리위원회를 발족시켜 마을기금을 일체 관리하게 하였다. 제사 비용은 이 위원회에서 나온다. 어달동은 어촌계가 아무리 돈이 많아도 제사 주관은 반드시 마을이 주체가 되며, 어촌계는 서낭제에 찬조금을 내기도 한다. 다음은 해성제에 관한 자료이다. 1. 제의 일시 : 시월에 어촌계가 주관하는 제의로, 서낭당 제사가 끝난 뒤 열흘 이내에 날을 받아서 해성당에서 행한다. 2. 당집과 당목 : 해성당과 여기에 부속된 수부당이 있다. 해성당은 본래 도로가에 있었으나 도로가 확장하면서 지금의 위치인 산자락으로 옮겨졌다. 해성당은 [지붕](/topic/지붕)을 덮어서는 아니 된다고 하여 지붕 없이 시멘트로 디귿(ㄷ) 자 형태로 지어 놓았다는 것이다. 수부당은 본래 해성당과 10m 정도 아래에 위치하는 도로 입구에 기묘하게 생긴 자연석이었다. 그러나 땅주인과 문제가 생겨 이것을 해성당 내부 오른쪽으로 옮겼다. 이 무렵에 땅주인과 관련이 있는 잠수부가 죽는 사건이 발생하였는데 사람들은 서낭이 탈이 났다고 말했다. 해성당의 제의에서는 본래 종이에 신위를 써 붙이고 지냈지만 최근의 언젠가부터 신위 없이 네 곳에 제물만 차려 놓고 지낸다. 3. 신위 : 해역지신이 있는 곳이 해신당이지만 제사를 지낼 때에는 토지지신, 성황지신, 여역지신을 모두 모셔와 네 분을 제향한다. 그리고 수부가 있다. 4. 제관 : 집사 한 명과 헌관 네 명으로 구성된다. 5. 제물 : 포는 대구포(명태가 많이 난 때에는 명태[포도](/topic/포도) 사용했다), 과일, 탕, 메, 국 등 간단히 몇 가지 음식만 차린다. 6. 제의 절차 : 해성당 제의를 행하기 전에 수부당에 메와 국을 미리 갖다 놓는다. 해성당 제의를 마친 다음에는 해성당에 사용한 제물 일부를 덜어내어 수부당에 갖다 놓고,제관 한 명이 대표로 술잔을 올리고 제관들이 함께 절하면 끝난다. 해성당의 제의의 헌관 네 명이 각기 1신위를 맡아 헌작하고 배례하는 것으로, 서낭제의 과정과 비슷하다. 다만 고축 과정만 생략된다. 7. 기타 : 배고사를 지내는 이들은 동네서낭당과 해신당을 동시에 들른다. 그러나 동네서낭은 생략하고 해성당만 들르는 이들도 있다. 배고사를 지내는 이들은 갈수록 감소하고 있지만 아직도 배고사를 지내는 이들이 어달동에 꽤 있는 편이다. | 참고문헌 | 동해시 서낭제 (이한길, 민속원, 2010) | 내용 | 1. 제의 일시 : 제의는 [마을](/topic/마을)에서 주관하는 서낭제가 시월과 섣달그믐날에 행해지며, 어촌계에서 주관하는 해성제는 시월 열흘날 안쪽으로 날을 받아서 행해진다. 마을에서 주관하는 제의는 시간은 주로 밤 10시쯤에 행한다. 섣달에 행하는 서낭제는 흔히 섣달그믐제사라고 하며, 해성제는 시월 [서낭당](/topic/서낭당) 제사가 끝난 뒤 열흘 이내에 행한다. 2. 당집과 당목 : 서낭당은 오래전에 지어졌으며 연대는 알 수 없으나, 1967년의(한국의 마을제당)에 따르면 마을에 처음 도착한 심씨가 건립하였다고 한다. 당집의 크기는 가로 약 650㎝, 세로 약 270㎝, 높이 약 180㎝이다. 방은 두 칸이며, 한 칸은 제당이고 다른 한 칸은 [재실](/topic/재실)로 사용한다. 그러나 4~5년 전에 제당 바깥에 별도로 재실을 건축한후로는 제당의 제실은 사용하지 않는다. 서낭당은 무당이 자주 사용하였으나 지금은 사용을 금하고 있다. 해성당은 선창가에 있으며, 추석 전에 풀을 벨 때와 제사를 지낼 때 청소하는 편이다. 3. 신위 : 서낭당의 신위는 토지지신, 성황지신, 여역지신, 해역지신 등 네 분이다. 해역지신은 해성당에 모셔져 있는 신위지만 서낭제를 올릴 때 함께 제향한다. 또한 해성당의 제의에서도 다른 세 분 신격과 함께 신위 네 분을 모두 제향한다. 서낭은 수서낭이며, 이곳 수서낭에서는 굿을 하지 않는다한다. 4. [제관](/topic/제관) : 제관은 [헌관](/topic/헌관) 네 명, 집사 한 명 등 총 다섯 명을 선정한다. 집사가 대축을 겸한다. 제관은 부정 없고 깨끗한 이로 보통 한 달 전에 선정한다. [생기복덕](/topic/생기복덕)은 보지 않지만 스스로 부정이 있으면 참여하지 않는다. 집안의 아내가 월경을 하거나 길에서 피를 보거나(차사고 혹은 개가 죽는 등) 하면 부정이 생겼다고 하여 참여할 수 없다. 제관은 [금줄](/topic/금줄)을 친 기간에는 문 밖 출입을 삼가며, 길흉사에는 아예 참석하지 않는다. 음식 장만하는 이를 ‘도가’라 이른다. 도가는 보통 한 달 전에 선정하며, 주로 [초헌](/topic/초헌)관이 된다. 어달동은 행정조직이 두 개 통으로 되어 있어 부정만 없다면 두 명의 통장이 자연스레 헌관이 된다. 이 밖에 제의에서는 소를 잡는 등 할 일이 많기 때문에 20여 명의주민들이 참여한다. 제관들은 제일(祭日) 아침에 목욕재계하며, [두루마기](/topic/두루마기)를 즐겨 입고 [유건](/topic/유건)을 착용한다. 5. 제물 : 제사에 사용하는 제기(祭器)는 마을에서 장만한 것으로 재실에 보관하고 있다. 섣달그믐 제사에는 황소, 시월 제사에는 수탉을 각각 사용한다. 제관들은 제의 20여일 전에 미리 매매 업자를 찾아가서 희생물인 소를 선정해둔다. 이때 제관들은 깨끗하고 잘생기고 거세하지 않은 황소를 선정한 후에 매매 업자에게 깨끗하게 잘 보살펴 달라고 당부한다. 그러나 요즘 거세하지 않은 황소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제일이 다가오면 업자는 섣달그믐날 아침(8~9시)에 제당까지 황소를 차에 싣고 운반해주며, 이때 소의 무게를 달아서 값을 계산한다. 도살은 오전 10시경에 시작하며, 소가 워낙 크다 보니 도살전문가를 초빙해야 한다. 소를 잡을 때에는 먼저 술을 한 잔 부어 놓고 한다. 소를 잡으면 피를 제당 주위에 뿌린 다음 부위별로 각을 떠서 모든 부위를 4등분하며, 소의 앞발과 뒷발도 각각 4등분한다. 이렇게 준비한 희생물은 성황지신, 토지지신,여역지신, 해역지신 순으로 올리며 가장 먼저 올리는 것은 간이다. 닭의 경우 예전에는 수탉 한 마리의 머리를 잘라서 제당 근처에 피를 뿌리고 도가 집에서 그것을 삶아 4등분 했다고 한다. 지금은 네 마리를 구입하기 때문에 굳이 4등분할 필요가 없다. 섣달그믐 제의와 시월 제의의 나머지 제물은 동일하다. 어물은 방어, 대구, 열기, 문어, 명태 등을 쪄서 올린다. 주둥이와 꼬리와 비늘은 도가가 누구냐에 따라서 치는 경우도 있고 그냥 두는 경우도 있다. 어물 중 ‘-치’로 끝나는 물고기는 올리지 않는다. 어물은 접시에 차곡차곡 쌓아 놓으며, 맨 위는 문어로 덮어 마[무리](/topic/무리)하며, 모두 네 접시를 준비한다. 백설기는 한 말 정도의 쌀로 네 판을 만드는데 예전에는 도가에서 장만하였다가 지금은 떡집에서 주문해서 장만한다. 메는 네 그릇이다. 나물은 도라지·[시금치](/topic/시금치)·무채 등 세 [가지](/topic/가지)를 즐겨 사용하고, 고사리는 사용하지 않는다. 탕은 무에 쇠고기를 넣어 만든다. 과일은 [삼실과](/topic/삼실과)(곶감, 밤, [대추](/topic/대추)), [사과](/topic/사과), 배, 귤 등이다. 과줄은 사용하지만 과자는 사용하지 않는다. 두부는 전으로 만들어 올린다. 술은 제당에 구덩이를 파고 직접 담갔지만 1990년대부터는 청주를 구입해 사용한다. 제물은 가장 좋은 것으로장만하고, 제물을 구입할 때 가격 흥정을 하지 않는다. 제의 비용은 가구당 2,000~5,000원을 갹출하다가 1990년대에 마을자산인 땅을 팔아서 기금을 만들고 이것으로 충당한다. 6. 제의 절차 : 금줄은 3~7일 전에 도가가 왼새끼를 꼬아서 그 사이에 소지종이를 끼워 넣어서 준비하여 제당에 먼저 친 다음 자기 집에도 친다. 이때 [황토](/topic/황토)도 함께 뿌린다. 또마을 사람들은 큰소리가 나지 않도록(싸우지 않도록) 서로가 주의한다. 첫 술잔은 도가가 초헌관이 되어 성황지신에게 [헌작](/topic/헌작)한다. 그다음 술잔은 [아헌](/topic/아헌)관이 토지지신, 세 번째 헌관이 여역지신, 네 번째 헌관이 해역지신에게 동시에 헌작하고 배례를한다. 이런 방식으로 헌작을 다시 한 번 더 한 뒤 고축한다. [축문](/topic/축문)은 한자로 표기되어 있다. 이후 이들은 제당에서 잠시 나와 있다가 들어가서 다시 한 번 헌작하고, 소지를 올린다. 소지는 처음에 축관이 동네를 위해 대표로 한 장 올린 후, 헌관들이 각자가 여러 장의 소지를 올린다. 소지를 올린 후 제사상의 음식을 골고루 조금씩 떼어내 퇴주잔에담은 다음 밖으로 나와 개울에 버린다. 여기에는 동네의 안녕을 비는 뜻이 담겨 있다. 이후 [음복](/topic/음복)을 간단히 하고는 남은 음식을 모두 도가 집으로 가져가서 주민들이 음복한다.이때 쇠고기는 반별로 무게를 달아서 분배하며, 쇠머리와 살코기 일부를 노인회에 기증한다. 쇠[가죽](/topic/가죽)은 원하는 이에게 주기도 하고 원하는 이가 없으면 제당 앞 땅을 파고 묻는다. 쇠가죽은 매매하지 않는다. 예전에는 서낭제가 끝나면 각자 설을 쇠고 난 다음 초이틀에 각 반 대표들이 도가 집에 모여 음복하고 총결산을 하였으나, 2002~2003년부터는마을 결산을 [연말](/topic/연말)에 행하고 있다. 7. 기타 : 동해시가 되기 전에는 이장, 동해시가 된 초창기에는 통장이 각각 마을의 기금을 관리하였으나 주민들은 2005년쯤 어달동 재정관리위원회를 발족시켜 마을기금을 일체 관리하게 하였다. 제사 비용은 이 위원회에서 나온다. 어달동은 어촌계가 아무리 돈이 많아도 제사 주관은 반드시 마을이 주체가 되며, 어촌계는 서낭제에 찬조금을 내기도 한다. 다음은 해성제에 관한 자료이다. 1. 제의 일시 : 시월에 어촌계가 주관하는 제의로, 서낭당 제사가 끝난 뒤 열흘 이내에 날을 받아서 해성당에서 행한다. 2. 당집과 당목 : 해성당과 여기에 부속된 수부당이 있다. 해성당은 본래 도로가에 있었으나 도로가 확장하면서 지금의 위치인 산자락으로 옮겨졌다. 해성당은 [지붕](/topic/지붕)을 덮어서는 아니 된다고 하여 지붕 없이 시멘트로 디귿(ㄷ) 자 형태로 지어 놓았다는 것이다. 수부당은 본래 해성당과 10m 정도 아래에 위치하는 도로 입구에 기묘하게 생긴 자연석이었다. 그러나 땅주인과 문제가 생겨 이것을 해성당 내부 오른쪽으로 옮겼다. 이 무렵에 땅주인과 관련이 있는 잠수부가 죽는 사건이 발생하였는데 사람들은 서낭이 탈이 났다고 말했다. 해성당의 제의에서는 본래 종이에 신위를 써 붙이고 지냈지만 최근의 언젠가부터 신위 없이 네 곳에 제물만 차려 놓고 지낸다. 3. 신위 : 해역지신이 있는 곳이 해신당이지만 제사를 지낼 때에는 토지지신, 성황지신, 여역지신을 모두 모셔와 네 분을 제향한다. 그리고 수부가 있다. 4. 제관 : 집사 한 명과 헌관 네 명으로 구성된다. 5. 제물 : 포는 대구포(명태가 많이 난 때에는 명태[포도](/topic/포도) 사용했다), 과일, 탕, 메, 국 등 간단히 몇 가지 음식만 차린다. 6. 제의 절차 : 해성당 제의를 행하기 전에 수부당에 메와 국을 미리 갖다 놓는다. 해성당 제의를 마친 다음에는 해성당에 사용한 제물 일부를 덜어내어 수부당에 갖다 놓고,제관 한 명이 대표로 술잔을 올리고 제관들이 함께 절하면 끝난다. 해성당의 제의의 헌관 네 명이 각기 1신위를 맡아 헌작하고 배례하는 것으로, 서낭제의 과정과 비슷하다. 다만 고축 과정만 생략된다. 7. 기타 : 배고사를 지내는 이들은 동네서낭당과 해신당을 동시에 들른다. 그러나 동네서낭은 생략하고 해성당만 들르는 이들도 있다. 배고사를 지내는 이들은 갈수록 감소하고 있지만 아직도 배고사를 지내는 이들이 어달동에 꽤 있는 편이다. | 참고문헌 | 동해시 서낭제 (이한길, 민속원, 20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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