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inition | 제주도지역에서 [보리](/topic/보리)농사와 관련해 섬기는 농사신. 노적장에 위치한다. 예부터 제주 사람들은 보리농사를 주업으로 삼아왔다. 이에 따라 보리의 농경세시는 제주인들에게 생활의 중심이었다. 눌굽지신은 보리농사와 관련된 농경신의 하나였다. 이 신은 장마철에 [수확](/topic/수확)하는 보리를 장맛비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만든 보리눌과 관련이 있다. 가옥 안에 임시로 쌓아 올린 ‘눌(가리)’의 바닥을 제주도 사람들은 ‘눌굽’이라고 하였다. 이곳에 노적장(露積場)의 신이 좌정해 있다고 관념한 것이다. 이 때문에 집안에서 굿을 하는 등 일상적이지 않은 음식을 차릴 때에는 별도로 눌굽지신을 대접하여 위하여 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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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korname | 김동섭 |
정의 | 제주도지역에서 [보리](/topic/보리)농사와 관련해 섬기는 농사신. 노적장에 위치한다. 예부터 제주 사람들은 보리농사를 주업으로 삼아왔다. 이에 따라 보리의 농경세시는 제주인들에게 생활의 중심이었다. 눌굽지신은 보리농사와 관련된 농경신의 하나였다. 이 신은 장마철에 [수확](/topic/수확)하는 보리를 장맛비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만든 보리눌과 관련이 있다. 가옥 안에 임시로 쌓아 올린 ‘눌(가리)’의 바닥을 제주도 사람들은 ‘눌굽’이라고 하였다. 이곳에 노적장(露積場)의 신이 좌정해 있다고 관념한 것이다. 이 때문에 집안에서 굿을 하는 등 일상적이지 않은 음식을 차릴 때에는 별도로 눌굽지신을 대접하여 위하여 왔다. | 정의 | 제주도지역에서 [보리](/topic/보리)농사와 관련해 섬기는 농사신. 노적장에 위치한다. 예부터 제주 사람들은 보리농사를 주업으로 삼아왔다. 이에 따라 보리의 농경세시는 제주인들에게 생활의 중심이었다. 눌굽지신은 보리농사와 관련된 농경신의 하나였다. 이 신은 장마철에 [수확](/topic/수확)하는 보리를 장맛비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만든 보리눌과 관련이 있다. 가옥 안에 임시로 쌓아 올린 ‘눌(가리)’의 바닥을 제주도 사람들은 ‘눌굽’이라고 하였다. 이곳에 노적장(露積場)의 신이 좌정해 있다고 관념한 것이다. 이 때문에 집안에서 굿을 하는 등 일상적이지 않은 음식을 차릴 때에는 별도로 눌굽지신을 대접하여 위하여 왔다. | 내용 | 제주도 사람들은 대부분 화산회토(火山灰土)로 덮인 밭을 [개간](/topic/개간)하여 일구면서 자급자족하는 영농체계를 이루며 살아왔다. [마을](/topic/마을) 사람들은 영농에 관한 경험을 큰 지식으로 여기면서 [보리](/topic/보리), 조, [감자](/topic/감자), 유채, 콩 등의 잡곡을 재배하였다. 특히 보리는 한 해 전 가을철에 [밭갈이](/topic/밭갈이)를 하고 돗거름(돼지거름)을 내어 씨를 묻어 다진 다음 발아되도록 숙성시키고 밭으로 옮겨 조금씩 뜯어 파종하는 과정을 거쳐야만 얻을 수 있는 주요 작물이었다. 돗거름은 예전에 제주도지역에서 초가 내부에 마련된 돼지가 사육되는 ‘돗통’에서 만들어지는 거름을 이른다. 이 거름은 보리씨에 섞어서 한꺼번에 밭에 뿌리는 것이 특징이다. 돗거름은 일 년 내내 돗통 속에서 돼지의 오물, 생활하수 등과 섞이면서 언제나 습한 가운데 다져지고 발효 부패의 과정이 반복된 끝에 만들어진다. 보통 음력 시월 보리 파종 때가 되면 이것을 [마당](/topic/마당)에 꺼내어 넓게 펼친 다음 그 위에 보리씨를 골고루 뿌린다. 이러한 보리는 6월 초순쯤 [수확](/topic/수확)한다. 6월 초에서 말까지 이루어지는 쌀보리는 맥주맥보다 수확 시기가 조금 빠른 편이다. 수확한 보리는 젖은 상태여서 금방 [탈곡](/topic/탈곡)할 수 없었고 건조를 시켜야 했다. 이때 활용한 것이 ‘보리눌’이다. 우선 쉽게 구할 수 있는 돌을 둥근 원형으로 바닥에 둘러놓는다. 그리고 그 위에 넓은 나뭇[가지](/topic/가지) 등을 깔고 보리를 쌓아 올린다. 보릿단은 알곡이 붙은 쪽보다 둥치 쪽이 조금 더 굵다. 이것들이 안쪽으로 오도록 쌓아야만 중앙이 높고 가장자리가 낮은 원통형으로 쌓아 올릴 수 있다. 지역적으로 조금씩 차이를 보인다. 제주도 서귀포시 남원읍 태흥리의 이영숙(여, 1968년생) 씨에 따르면 보릿짚을 두세 겹 깔고 160㎝ 높이가 되도록 ‘보리눌’을 만들었다고 한다. 밭이 많은 집에서는 이와 같은 것을 두세 개 만들어 세워서 말렸다가 한가할 때 마당질을 하였다.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의 김성곤(남, 1964년생) 씨에 따르면 우선 마당에서 물이 올라오지 않도록 굵은 돌로 둥글게 ‘굽도리’를 둘러 놓는다. 다른 눌과는 달리 알곡을 쌓게 되는 ‘보리눌’은 알곡을 보호하기 위해 그 위에 섶이 많은 나뭇가지를 깔고 보리단을 높이 쌓았다고 한다. 식량이 부족한 철이었기 때문에 보리눌은 오래 두지 않았다. 보통 보름 정도 두었다가 마당질을 하였다. 제주시 한경면 판포리의 김성방(남, 1959년생) 씨에 따르면 둥글납작한 돌들을 모아 직경 2m 정도 크기의 원형으로 ‘눌굽’을 우선 놓는다. 그 위에 알곡의 보리가 닿지 않도록 섶이 많은 나뭇가지를 덮은 다음 알곡이 붙은 보릿단을 그 위에 키 높이만큼 쌓아 올려 ‘눌’을 만든다. 눌 위에는 새로 만든 ‘주저리’를 덮어 태풍과 함께 불어오는 비바람을 피할 수 있도록 하였다. 정성을 다하는 집에서는 보리를 탈곡하는 마당질을 할 때 ‘눌굽’에 술과 안주로 코시([고사](/topic/고사))를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일반적이라고 보기 힘들다. 한 집안의 농사와 축산에서 풍등(豐登)과 번성을 기원하는 제의의 한 가지로 ‘코시’라고 불리는 의례를 살필 수 있다. ‘반코시’와 ‘코시’로 구분되어 행제되었다. ‘코시’는 집안의 [조상신](/topic/조상신) 중에서 벼슬아치로 있었던 선령이 있으면 이를 일월신이라 하여 하룻밤 하루 동안의 시간을 두고 행제하는 의례이다. 반코시는 일월 조상신이 없는 집안에서 일반적으로 보통 지내는 고사이다. 제의를 지낼 때 [제상](/topic/제상)은 ‘상당’과 ‘하당’으로 구분해 꾸민다. 상당에는 견우성별, 삼태육성, 물배포, 국배포, 도업시, 제임신 등 높은 위격의 신을 배열한다. 하당에는 상세경 염제신농씨, 중세경 문국성, 하세경 청비, 세경장남 정이엇인 정수남 등 세경땅의 귀신들에 맞는 위격으로 자리를 배열하고 신을 모신다. 고팡(고방), 조왕([부엌](/topic/부엌)), 마두([외양간](/topic/외양간)), 눌굽(주저리의 굽자리)에도 각각 그곳 신위(神位)의 몫으로 설반을 하였다. | 참고문헌 | 남국의 민속 (진성기, 교학사, 1980) 제주도 무속연구 (현용준, 집문당, 1986) 제주도 부락지 Ⅲ (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소, 1990) 제주전래[농기구](/topic/농기구) (김동섭, 민속원, 2004) 여성[농업](/topic/농업)인의 삶과 전통 (김동섭 외, 여성농업인중앙회, 2005) 한국의 가정신앙-제주도 (김동섭 외, 국립문화재연구소, 2008) 제주 유식[마을](/topic/마을)제의 전승양상 (김동섭, 제주도, 2009) 제주 민속문화 이해 (김동섭, 거마문화사, 2010) | 내용 | 제주도 사람들은 대부분 화산회토(火山灰土)로 덮인 밭을 [개간](/topic/개간)하여 일구면서 자급자족하는 영농체계를 이루며 살아왔다. [마을](/topic/마을) 사람들은 영농에 관한 경험을 큰 지식으로 여기면서 [보리](/topic/보리), 조, [감자](/topic/감자), 유채, 콩 등의 잡곡을 재배하였다. 특히 보리는 한 해 전 가을철에 [밭갈이](/topic/밭갈이)를 하고 돗거름(돼지거름)을 내어 씨를 묻어 다진 다음 발아되도록 숙성시키고 밭으로 옮겨 조금씩 뜯어 파종하는 과정을 거쳐야만 얻을 수 있는 주요 작물이었다. 돗거름은 예전에 제주도지역에서 초가 내부에 마련된 돼지가 사육되는 ‘돗통’에서 만들어지는 거름을 이른다. 이 거름은 보리씨에 섞어서 한꺼번에 밭에 뿌리는 것이 특징이다. 돗거름은 일 년 내내 돗통 속에서 돼지의 오물, 생활하수 등과 섞이면서 언제나 습한 가운데 다져지고 발효 부패의 과정이 반복된 끝에 만들어진다. 보통 음력 시월 보리 파종 때가 되면 이것을 [마당](/topic/마당)에 꺼내어 넓게 펼친 다음 그 위에 보리씨를 골고루 뿌린다. 이러한 보리는 6월 초순쯤 [수확](/topic/수확)한다. 6월 초에서 말까지 이루어지는 쌀보리는 맥주맥보다 수확 시기가 조금 빠른 편이다. 수확한 보리는 젖은 상태여서 금방 [탈곡](/topic/탈곡)할 수 없었고 건조를 시켜야 했다. 이때 활용한 것이 ‘보리눌’이다. 우선 쉽게 구할 수 있는 돌을 둥근 원형으로 바닥에 둘러놓는다. 그리고 그 위에 넓은 나뭇[가지](/topic/가지) 등을 깔고 보리를 쌓아 올린다. 보릿단은 알곡이 붙은 쪽보다 둥치 쪽이 조금 더 굵다. 이것들이 안쪽으로 오도록 쌓아야만 중앙이 높고 가장자리가 낮은 원통형으로 쌓아 올릴 수 있다. 지역적으로 조금씩 차이를 보인다. 제주도 서귀포시 남원읍 태흥리의 이영숙(여, 1968년생) 씨에 따르면 보릿짚을 두세 겹 깔고 160㎝ 높이가 되도록 ‘보리눌’을 만들었다고 한다. 밭이 많은 집에서는 이와 같은 것을 두세 개 만들어 세워서 말렸다가 한가할 때 마당질을 하였다.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의 김성곤(남, 1964년생) 씨에 따르면 우선 마당에서 물이 올라오지 않도록 굵은 돌로 둥글게 ‘굽도리’를 둘러 놓는다. 다른 눌과는 달리 알곡을 쌓게 되는 ‘보리눌’은 알곡을 보호하기 위해 그 위에 섶이 많은 나뭇가지를 깔고 보리단을 높이 쌓았다고 한다. 식량이 부족한 철이었기 때문에 보리눌은 오래 두지 않았다. 보통 보름 정도 두었다가 마당질을 하였다. 제주시 한경면 판포리의 김성방(남, 1959년생) 씨에 따르면 둥글납작한 돌들을 모아 직경 2m 정도 크기의 원형으로 ‘눌굽’을 우선 놓는다. 그 위에 알곡의 보리가 닿지 않도록 섶이 많은 나뭇가지를 덮은 다음 알곡이 붙은 보릿단을 그 위에 키 높이만큼 쌓아 올려 ‘눌’을 만든다. 눌 위에는 새로 만든 ‘주저리’를 덮어 태풍과 함께 불어오는 비바람을 피할 수 있도록 하였다. 정성을 다하는 집에서는 보리를 탈곡하는 마당질을 할 때 ‘눌굽’에 술과 안주로 코시([고사](/topic/고사))를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일반적이라고 보기 힘들다. 한 집안의 농사와 축산에서 풍등(豐登)과 번성을 기원하는 제의의 한 가지로 ‘코시’라고 불리는 의례를 살필 수 있다. ‘반코시’와 ‘코시’로 구분되어 행제되었다. ‘코시’는 집안의 [조상신](/topic/조상신) 중에서 벼슬아치로 있었던 선령이 있으면 이를 일월신이라 하여 하룻밤 하루 동안의 시간을 두고 행제하는 의례이다. 반코시는 일월 조상신이 없는 집안에서 일반적으로 보통 지내는 고사이다. 제의를 지낼 때 [제상](/topic/제상)은 ‘상당’과 ‘하당’으로 구분해 꾸민다. 상당에는 견우성별, 삼태육성, 물배포, 국배포, 도업시, 제임신 등 높은 위격의 신을 배열한다. 하당에는 상세경 염제신농씨, 중세경 문국성, 하세경 청비, 세경장남 정이엇인 정수남 등 세경땅의 귀신들에 맞는 위격으로 자리를 배열하고 신을 모신다. 고팡(고방), 조왕([부엌](/topic/부엌)), 마두([외양간](/topic/외양간)), 눌굽(주저리의 굽자리)에도 각각 그곳 신위(神位)의 몫으로 설반을 하였다. | 참고문헌 | 남국의 민속 (진성기, 교학사, 1980) 제주도 무속연구 (현용준, 집문당, 1986) 제주도 부락지 Ⅲ (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소, 1990) 제주전래[농기구](/topic/농기구) (김동섭, 민속원, 2004) 여성[농업](/topic/농업)인의 삶과 전통 (김동섭 외, 여성농업인중앙회, 2005) 한국의 가정신앙-제주도 (김동섭 외, 국립문화재연구소, 2008) 제주 유식[마을](/topic/마을)제의 전승양상 (김동섭, 제주도, 2009) 제주 민속문화 이해 (김동섭, 거마문화사, 20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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