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inition | 천제ㆍ당제ㆍ[헌식](/topic/헌식)제를 총칭하는 말로, 전라남도 여수시 화정면 개도리 화산[마을](/topic/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하는 민속신앙. |
---|---|
mp3Cnt | 0 |
wkorname | 표인주 |
정의 | 천제ㆍ당제ㆍ[헌식](/topic/헌식)제를 총칭하는 말로, 전라남도 여수시 화정면 개도리 화산[마을](/topic/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하는 민속신앙. | 정의 | 천제ㆍ당제ㆍ[헌식](/topic/헌식)제를 총칭하는 말로, 전라남도 여수시 화정면 개도리 화산[마을](/topic/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하는 민속신앙. | 내용 | [마을](/topic/마을)에서 지내는 공동제의로는 천제와 당산제가 있다. 천제는 음력 삼월 초하룻날 자시(子時), 당산제는 이튿날 오후 5시쯤에 각각 지낸다. 제일이 왜 3월 1일과 2일인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지 못하고 있으며, 다만 예전부터 그렇게 지내오고 있어 따르고 있다고 한다. 1. 제당의 구성 : 천제를 지내는 곳의 위치를 사람들은 천재봉이라 한다. 천재봉은 마을 뒷산 정상 부근에 있다. 이곳에는 돌로 쌓아 만든 넓은 제단이 있다. 이곳을 상당이라고 한다. 상당 아래 산 중턱에는 기우집이 있다. 기우집은 제를 지내기에 앞서 몸과 마음을 닦고 정성을 들이는 곳이다. 당산제를 지내는 곳은 마을 옆에 있다. 이곳은 천제당이라는 당집으로, 예전에는 [기와집](/topic/기와집)이었으나 2005년에 현대적 건물인 철근 콘크리트로 중건하였다. 건물은 정면 두 칸 측면 한 칸의 콘크리트 [기와](/topic/기와)[지붕](/topic/지붕)이다. 사람들은 이곳을 하당이라고 부른다. 천제당 내부에는 제기가 보관되어 있다. 지난해에 제물로 쓴 명태 한 마리가 [천장](/topic/천장)에 매달려 있다. 그러나 천제당은 일 년에 한 번 제를 지낼 때 외에는 공개되지 않아 확인할수는 없었다. 천제당에 구리로 만든말 한 마리를 모셔 두었는데 1990년대 말에 도난당하여 그 이후로는 당집을 공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렇듯 말을 모셔 두고 제를 지내는 이유는 예전에 도감을 두고 말을 키운 목장터가 이곳에 있었기 때문에 말들이 건강하게 잘 자라도록 기원하기 위해서라고 이해된다. 상당의 신격은 동쪽은 청제지신, 서쪽은 백제지신, 남쪽은 홍제지신, 북쪽은 흑제지신, 중앙은 황제지신, 그리고 [칠성신](/topic/칠성신)이다. 하당의 신격은 당산 할아버지와 할머니이다. 상당의 신은 천신, 하당의 신은 마을신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2. 당제의 준비 : [제관](/topic/제관)을 마을에서는 ‘당주’라 한다. 당주는 음력 2월 중에 마을총회를 거쳐 결정한다. [생기복덕](/topic/생기복덕)을 보아 적당하고 부정이 없는 사람이어야 한다. 예전에는당주를 세 명 선출하였으나, 2002년부터 이장이 의무적으로 당주가 되고 한 명만 총회를 통해 선출한다. 당주는 상당과 하당을 모두 지낸다. 당주로 선출되면 제 지내기 사흘전에 모든 제물을 마련하여 기우집으로 올라간다. 기우집으로 올라가 치성을 드리면서 제 올릴 준비를 한다. 메(밥)를 지어 올릴 쌀은 먼저 일곱 되 정도 준비한다. 이 쌀을 매일 찧고 까불어서 싸래기나 깨진 쌀은 제외하고 온전한 낟알만 골라 두 되 정도로 추려 낸다. 이 쌀을 [무명](/topic/무명)베로 만든 자루에 넣어 매일 한 번 씻어서 말린다. 삼월 초하룻날 오후에 이 쌀을 씻어 물에 걸러 두었다가 밤 10시쯤에 상당으로 들고 올라간다. 당주는 상당으로 올라가기전에 샘에서 목욕재계를 하고 새 옷으로 갈아입는다. 상당에 도착하면 입마개를 쓰고 솥에다 시루를 올려 쌀을 쪄서 메를 짓는다. 메가 다 지어지면 조그만 공기에 메 일곱 그릇을 담는다. 제단 위에는 메 다섯 그릇, 제단 아래에는 메 두 그릇을 각각 놓는다. 메 다섯 그릇은 상당의 신격인 청제지신ㆍ백제지신ㆍ홍제지신ㆍ흑제지신ㆍ황제지신에게올리는 것으로, 방위를 보고 제물을 차려 놓는다. 그리고 메 두 그릇은 칠성신과 뒷전밥이다. 하당의 제물로는 당주 집에서 가져 온 떡ㆍ굴비ㆍ마른명태 등과 각종 전류, [메밀](/topic/메밀)범벅, 과실, 탕, 닭, 고기, 메, 국 등이다. 3. 당제의 진행 : 상당의 경우 [분향](/topic/분향)-제물진설-[헌작](/topic/헌작)-재배-소지-[헌식](/topic/헌식)-무당굿 순으로 진행된다. [축문](/topic/축문)은 기록되어 있지 않으며, 다만 제를 지낼 때 소지를 올리면서 마을의 평안과 풍농ㆍ풍어를 기원한다. 상당제가 끝나면 무당이 무당굿을 하고 마을의 매구꾼들이 매구를 친다. 마을 사람들은 이를 ‘헌식하며 논다’고 말한다. 무당은 여수에서 두 명이 온다. 이들은 3월 2일에와서 3일에 돌아간다. 이후 당산제 상에 올린 제물을 [한지](/topic/한지)에 담는다. 이때 여덟 개를 만든다. 이것을 매구를 치면서 마을 주위에 있는 8당산에 하나씩 묻는다. 당산에 제물 묻기가 모두 끝나면 당주 집으로 가서 음식을 먹고 매구를 치면서 놀다가 헤어진다. 예전에 천제와 당산제를 한 해 거른 적이 있었다. 이때 마을에 우환이 있어 다시 모시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제를 잘못 모시면 바로 우환이 생긴다고 한다. 예전에 제관이 제를 잘못 모신 후 바로 죽었다고 한다. 예전에는 당제를 지내고 헌식을 할 때 외지에서 구경을 하러 많이 왔다고 한다. 심지어 엿장수까지 왔다고 한다. 4. 용왕굿 : 당제를 지낸 이튿날인 3월 3일 오전 9시쯤 용왕님을 모시는 용왕굿이 마을 앞 바닷가에서 행해진다. 당주가 큰 상 하나를 차려내고, 각 가정에서 헌식상을 준비하여 [가지](/topic/가지)고 나와 줄을 지어 놓는다. 당주 집에서 만든 떡과 술을 각 가정에서 나온 상에 나누어 준 다음 당주와 집사가 잔을 올리고 재배한다. 다음엔 무당이 용왕굿을 한다. 마을의 이장이나 개발위원장 등도 잔을 올리고 재배한다. 오후 1시쯤엔 짚으로 만든 오쟁이를 깨끗한 사람에게 짊어[지게](/topic/지게) 하고 매구를 치면서 각 상을 한 바퀴 돈다. 이때 모든 상에서 제물을 조금씩 떼어내 오쟁이 속에 넣는다. 오쟁이를 짊어진 사람이 바닷가로 가서 바닷물 속에 오쟁이를 던져 침수시킨다. 이렇게 하는 것은 용왕님을 대접하고 풍년과 풍어를 기원하는 것이다. 이후 무당은 제물을 조금씩 떼어내 바가지에 담아 물밥을 만들어서 바닷가에 부어 놓는다. 이는 수중고혼(水中孤魂)을 달래는 의미이다. 모든 절차가 끝나면 매구를 치면서 온 마을 사람이 함께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즐겁게 논다. | 내용 | [마을](/topic/마을)에서 지내는 공동제의로는 천제와 당산제가 있다. 천제는 음력 삼월 초하룻날 자시(子時), 당산제는 이튿날 오후 5시쯤에 각각 지낸다. 제일이 왜 3월 1일과 2일인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지 못하고 있으며, 다만 예전부터 그렇게 지내오고 있어 따르고 있다고 한다. 1. 제당의 구성 : 천제를 지내는 곳의 위치를 사람들은 천재봉이라 한다. 천재봉은 마을 뒷산 정상 부근에 있다. 이곳에는 돌로 쌓아 만든 넓은 제단이 있다. 이곳을 상당이라고 한다. 상당 아래 산 중턱에는 기우집이 있다. 기우집은 제를 지내기에 앞서 몸과 마음을 닦고 정성을 들이는 곳이다. 당산제를 지내는 곳은 마을 옆에 있다. 이곳은 천제당이라는 당집으로, 예전에는 [기와집](/topic/기와집)이었으나 2005년에 현대적 건물인 철근 콘크리트로 중건하였다. 건물은 정면 두 칸 측면 한 칸의 콘크리트 [기와](/topic/기와)[지붕](/topic/지붕)이다. 사람들은 이곳을 하당이라고 부른다. 천제당 내부에는 제기가 보관되어 있다. 지난해에 제물로 쓴 명태 한 마리가 [천장](/topic/천장)에 매달려 있다. 그러나 천제당은 일 년에 한 번 제를 지낼 때 외에는 공개되지 않아 확인할수는 없었다. 천제당에 구리로 만든말 한 마리를 모셔 두었는데 1990년대 말에 도난당하여 그 이후로는 당집을 공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렇듯 말을 모셔 두고 제를 지내는 이유는 예전에 도감을 두고 말을 키운 목장터가 이곳에 있었기 때문에 말들이 건강하게 잘 자라도록 기원하기 위해서라고 이해된다. 상당의 신격은 동쪽은 청제지신, 서쪽은 백제지신, 남쪽은 홍제지신, 북쪽은 흑제지신, 중앙은 황제지신, 그리고 [칠성신](/topic/칠성신)이다. 하당의 신격은 당산 할아버지와 할머니이다. 상당의 신은 천신, 하당의 신은 마을신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2. 당제의 준비 : [제관](/topic/제관)을 마을에서는 ‘당주’라 한다. 당주는 음력 2월 중에 마을총회를 거쳐 결정한다. [생기복덕](/topic/생기복덕)을 보아 적당하고 부정이 없는 사람이어야 한다. 예전에는당주를 세 명 선출하였으나, 2002년부터 이장이 의무적으로 당주가 되고 한 명만 총회를 통해 선출한다. 당주는 상당과 하당을 모두 지낸다. 당주로 선출되면 제 지내기 사흘전에 모든 제물을 마련하여 기우집으로 올라간다. 기우집으로 올라가 치성을 드리면서 제 올릴 준비를 한다. 메(밥)를 지어 올릴 쌀은 먼저 일곱 되 정도 준비한다. 이 쌀을 매일 찧고 까불어서 싸래기나 깨진 쌀은 제외하고 온전한 낟알만 골라 두 되 정도로 추려 낸다. 이 쌀을 [무명](/topic/무명)베로 만든 자루에 넣어 매일 한 번 씻어서 말린다. 삼월 초하룻날 오후에 이 쌀을 씻어 물에 걸러 두었다가 밤 10시쯤에 상당으로 들고 올라간다. 당주는 상당으로 올라가기전에 샘에서 목욕재계를 하고 새 옷으로 갈아입는다. 상당에 도착하면 입마개를 쓰고 솥에다 시루를 올려 쌀을 쪄서 메를 짓는다. 메가 다 지어지면 조그만 공기에 메 일곱 그릇을 담는다. 제단 위에는 메 다섯 그릇, 제단 아래에는 메 두 그릇을 각각 놓는다. 메 다섯 그릇은 상당의 신격인 청제지신ㆍ백제지신ㆍ홍제지신ㆍ흑제지신ㆍ황제지신에게올리는 것으로, 방위를 보고 제물을 차려 놓는다. 그리고 메 두 그릇은 칠성신과 뒷전밥이다. 하당의 제물로는 당주 집에서 가져 온 떡ㆍ굴비ㆍ마른명태 등과 각종 전류, [메밀](/topic/메밀)범벅, 과실, 탕, 닭, 고기, 메, 국 등이다. 3. 당제의 진행 : 상당의 경우 [분향](/topic/분향)-제물진설-[헌작](/topic/헌작)-재배-소지-[헌식](/topic/헌식)-무당굿 순으로 진행된다. [축문](/topic/축문)은 기록되어 있지 않으며, 다만 제를 지낼 때 소지를 올리면서 마을의 평안과 풍농ㆍ풍어를 기원한다. 상당제가 끝나면 무당이 무당굿을 하고 마을의 매구꾼들이 매구를 친다. 마을 사람들은 이를 ‘헌식하며 논다’고 말한다. 무당은 여수에서 두 명이 온다. 이들은 3월 2일에와서 3일에 돌아간다. 이후 당산제 상에 올린 제물을 [한지](/topic/한지)에 담는다. 이때 여덟 개를 만든다. 이것을 매구를 치면서 마을 주위에 있는 8당산에 하나씩 묻는다. 당산에 제물 묻기가 모두 끝나면 당주 집으로 가서 음식을 먹고 매구를 치면서 놀다가 헤어진다. 예전에 천제와 당산제를 한 해 거른 적이 있었다. 이때 마을에 우환이 있어 다시 모시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제를 잘못 모시면 바로 우환이 생긴다고 한다. 예전에 제관이 제를 잘못 모신 후 바로 죽었다고 한다. 예전에는 당제를 지내고 헌식을 할 때 외지에서 구경을 하러 많이 왔다고 한다. 심지어 엿장수까지 왔다고 한다. 4. 용왕굿 : 당제를 지낸 이튿날인 3월 3일 오전 9시쯤 용왕님을 모시는 용왕굿이 마을 앞 바닷가에서 행해진다. 당주가 큰 상 하나를 차려내고, 각 가정에서 헌식상을 준비하여 [가지](/topic/가지)고 나와 줄을 지어 놓는다. 당주 집에서 만든 떡과 술을 각 가정에서 나온 상에 나누어 준 다음 당주와 집사가 잔을 올리고 재배한다. 다음엔 무당이 용왕굿을 한다. 마을의 이장이나 개발위원장 등도 잔을 올리고 재배한다. 오후 1시쯤엔 짚으로 만든 오쟁이를 깨끗한 사람에게 짊어[지게](/topic/지게) 하고 매구를 치면서 각 상을 한 바퀴 돈다. 이때 모든 상에서 제물을 조금씩 떼어내 오쟁이 속에 넣는다. 오쟁이를 짊어진 사람이 바닷가로 가서 바닷물 속에 오쟁이를 던져 침수시킨다. 이렇게 하는 것은 용왕님을 대접하고 풍년과 풍어를 기원하는 것이다. 이후 무당은 제물을 조금씩 떼어내 바가지에 담아 물밥을 만들어서 바닷가에 부어 놓는다. 이는 수중고혼(水中孤魂)을 달래는 의미이다. 모든 절차가 끝나면 매구를 치면서 온 마을 사람이 함께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즐겁게 논다. | 의의 | 화산[마을](/topic/마을)당제는 전형적인 호남지방 남해안 지역의 마을신앙으로서 마을신의 유래가 서사적인 틀로 전승되고 있다는 점에서 신화적 가치가 있고 또 당제 후 용왕굿을 한다는 점에서 민속신앙적 가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 참고문헌 | 명소지명유래지 (전라남도, 1987) 남도설화문학연구 (표인주, 민속원, 2000) 여수시의 문화유적 (여수시ㆍ조선대학교박물관, 2000) 남도민속의 이해 (표인주, 전남대학교출판부, 2007) | 의의 | 화산[마을](/topic/마을)당제는 전형적인 호남지방 남해안 지역의 마을신앙으로서 마을신의 유래가 서사적인 틀로 전승되고 있다는 점에서 신화적 가치가 있고 또 당제 후 용왕굿을 한다는 점에서 민속신앙적 가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 참고문헌 | 명소지명유래지 (전라남도, 1987) 남도설화문학연구 (표인주, 민속원, 2000) 여수시의 문화유적 (여수시ㆍ조선대학교박물관, 2000) 남도민속의 이해 (표인주, 전남대학교출판부, 2007) | 유래 | 개도(介島)는 월항, 신흥, 화산, 여석, 모전, 호령의 여섯 자연[마을](/topic/마을)로 이루어진, 전남 여수시 화정면에서 가장 큰 섬이다. 화산은 이 가운데 가장 큰 마을이다. 화산은 면소재지로부터 서남쪽으로 약 5.5㎞ 떨어져 있다. 화산마을에는 면 출장소와 농협 등 관공서가 있으며, 200여 가구가 넘는다. 주업은 [농업](/topic/농업)이다. 마을 뒤편으로는 해발 338m의 천재봉이 있다. 순천부사 관헌 아래 도감에서 관리를 두고 말을 키웠다는 터가 지금도 천재봉에 남아 있다. 또한 봉화산 정상에는 봉화대가 있다고 한다. 조선 숙종 때 개도는 나라의 말을 기르는 곳이었다. 그런데 원인 모를 병으로 갑자기 말이 죽어가는 재앙이 계속 일어났다. 말을 기르는 책임자는 심한 문책을 받고 쫓겨났다. 후임으로 이 마을에 살고 있던 이씨라는 사람이 책임자로 뽑혔다. 이씨는 곧 산봉우리에 제단을 쌓고 천지신명께 목장의 우환인 질병을 없애 달라고 빌었다. 그러자 목장의말들이 죽어가는 일이 갑자기 사라졌다. 이씨 슬하에는 복녀라는 이름의 열네 살짜리 딸이 하나 있었다. 복녀는 날마다 아버지를 도와 말을 돌보는 일을 열심히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검은 점이 박힌 백마가앞다리가 부러진 채 신음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서 깜짝 놀라 아버지에게 달려가 말씀드렸다. 아버지는 “큰일이로다. 말이란 짐승은 다리에 힘이 없으면 죽은 것과 다름이없는데 다리가 부러졌으니 이젠 쓸모없는 말이 되고 말았다. 목관에게 보고하여 폐마시켜야겠다” 하고 매우 근심스럽게 말했다. 복녀는 그 말을 듣자 아버지에게 매달려 애원하였다.“아버님 저 말을 소녀에게 맡기시면 반드시 다리를 고쳐서 명마로 만들겠습니다. 부디 제 소원을 들어주십시오.” 아버지는 “네 뜻이 정 그렇다면 열흘의 말미를주겠다. 그동안 말이 거동을 못한다면 하는 수 없이 없애야 한다” 하고 복녀에게 다짐을 받고 허락하였다. 복녀는 정성을 다해 말을 간호하고 말과 함께 기거하면서 천지신명께 하루도 빠짐없이 두 손 모아 빌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복녀가 말을 보살펴 주다가 몹시 곤하여 깜빡 잠이 들었다. 그날 밤 꿈에 산신령이 나타났다. “복녀야. 너의 정성이 하도 지극하여 너를 도우러 왔다. 내가 그 말이 낫도록 약을 알려 줄 테니 명심하여 듣거라. 네가 밤마다 지성을 드리던 제단옆 옹달샘에 가면 가재가 있을 것이다. 그 가재 세 마리를 잡아서 말에게 먹이면 반드시 효험이 있을 것이니라.” 산신령은 이 말을 남기고는 사라졌다. 깜짝 놀라 깨어 보니 꿈이었다. 심상치 않은 꿈이라고 생각한 복녀가 옹달샘에 가보니 과연 그곳에 가재가 있었다. 곧바로 가재 세 마리를 잡아서 말에게 먹였다. 그날밤 복녀는 잠을 못 이루고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 날이 새자마자 복녀는 말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있어야 할 말이 온데간데 없어 복녀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런데 갑자기 어디선가 우렁찬 말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이었다. 소리 나는 쪽을 바라보니 산봉우리 위에 점박이 말이 늠름하게 서 있는 게 아닌가. (중간 생략) 그 후부터 복녀와 애마 점박이는 잠시도 떨어져 있지 않고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뜻하지 않은 일이 생겼다. 화동에 주재하는 목관이 목장에 와서 하는 말이 대[장군](/topic/장군)이 탈 장군마를 고른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복녀가 애지중지하는 점박이가 선발된 것이었다. 복녀는 그 사실을 안 순간 눈앞이 캄캄하였다. 끌려가는 애마 점박이도 복녀의이별을 서러워하는지 [가지](/topic/가지) 않으려고 뒷걸음질치면서 우는 것이었다. 점박이와 이별한 복녀는 애마와의 추억을 되새기기 위해 그 자리에 한 그루의 느티나무를 심고는 그만 병이 나서 자리에 눕고 말았다. 아[무리](/topic/무리) 좋은 약을 써도 백약이 무효였다. 병세는 점점 악화되어 갔다. 그 후 6개월이 지난 어느 날 새벽 복녀의 아버지가 목장에 나갔다가 복녀가 심어 놓은 느티나무 곁에 숨어 있는 말을 발견하였다. 아버지가 복녀에게 급히 뛰어가서 “복녀야점박이가 왔다. 어서 일어나라”하고 아무리 소리쳐도 복녀는 대답이 없었다. 아버지는 이상한 느낌이 들어 방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복녀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그러나 복녀는 매우 온화하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애마인 점박이가 숨이 끊어질 바로 그 순간에 복녀도 영원히 애마와 함께 지낼 수 있는 저승으로 간 것이었다. 복녀의 아버지는 복녀를 끌어안고 통곡을 하면서 복녀와 점박이 말을 느티나무 아래 나란히 묻어 주었다. 그 후부터 사람들은 이 느티나무를 마녀목이라 부르게 되었고, 매년 이곳에 제사를 지냈다. | 유래 | 개도(介島)는 월항, 신흥, 화산, 여석, 모전, 호령의 여섯 자연[마을](/topic/마을)로 이루어진, 전남 여수시 화정면에서 가장 큰 섬이다. 화산은 이 가운데 가장 큰 마을이다. 화산은 면소재지로부터 서남쪽으로 약 5.5㎞ 떨어져 있다. 화산마을에는 면 출장소와 농협 등 관공서가 있으며, 200여 가구가 넘는다. 주업은 [농업](/topic/농업)이다. 마을 뒤편으로는 해발 338m의 천재봉이 있다. 순천부사 관헌 아래 도감에서 관리를 두고 말을 키웠다는 터가 지금도 천재봉에 남아 있다. 또한 봉화산 정상에는 봉화대가 있다고 한다. 조선 숙종 때 개도는 나라의 말을 기르는 곳이었다. 그런데 원인 모를 병으로 갑자기 말이 죽어가는 재앙이 계속 일어났다. 말을 기르는 책임자는 심한 문책을 받고 쫓겨났다. 후임으로 이 마을에 살고 있던 이씨라는 사람이 책임자로 뽑혔다. 이씨는 곧 산봉우리에 제단을 쌓고 천지신명께 목장의 우환인 질병을 없애 달라고 빌었다. 그러자 목장의말들이 죽어가는 일이 갑자기 사라졌다. 이씨 슬하에는 복녀라는 이름의 열네 살짜리 딸이 하나 있었다. 복녀는 날마다 아버지를 도와 말을 돌보는 일을 열심히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검은 점이 박힌 백마가앞다리가 부러진 채 신음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서 깜짝 놀라 아버지에게 달려가 말씀드렸다. 아버지는 “큰일이로다. 말이란 짐승은 다리에 힘이 없으면 죽은 것과 다름이없는데 다리가 부러졌으니 이젠 쓸모없는 말이 되고 말았다. 목관에게 보고하여 폐마시켜야겠다” 하고 매우 근심스럽게 말했다. 복녀는 그 말을 듣자 아버지에게 매달려 애원하였다.“아버님 저 말을 소녀에게 맡기시면 반드시 다리를 고쳐서 명마로 만들겠습니다. 부디 제 소원을 들어주십시오.” 아버지는 “네 뜻이 정 그렇다면 열흘의 말미를주겠다. 그동안 말이 거동을 못한다면 하는 수 없이 없애야 한다” 하고 복녀에게 다짐을 받고 허락하였다. 복녀는 정성을 다해 말을 간호하고 말과 함께 기거하면서 천지신명께 하루도 빠짐없이 두 손 모아 빌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복녀가 말을 보살펴 주다가 몹시 곤하여 깜빡 잠이 들었다. 그날 밤 꿈에 산신령이 나타났다. “복녀야. 너의 정성이 하도 지극하여 너를 도우러 왔다. 내가 그 말이 낫도록 약을 알려 줄 테니 명심하여 듣거라. 네가 밤마다 지성을 드리던 제단옆 옹달샘에 가면 가재가 있을 것이다. 그 가재 세 마리를 잡아서 말에게 먹이면 반드시 효험이 있을 것이니라.” 산신령은 이 말을 남기고는 사라졌다. 깜짝 놀라 깨어 보니 꿈이었다. 심상치 않은 꿈이라고 생각한 복녀가 옹달샘에 가보니 과연 그곳에 가재가 있었다. 곧바로 가재 세 마리를 잡아서 말에게 먹였다. 그날밤 복녀는 잠을 못 이루고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 날이 새자마자 복녀는 말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있어야 할 말이 온데간데 없어 복녀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런데 갑자기 어디선가 우렁찬 말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이었다. 소리 나는 쪽을 바라보니 산봉우리 위에 점박이 말이 늠름하게 서 있는 게 아닌가. (중간 생략) 그 후부터 복녀와 애마 점박이는 잠시도 떨어져 있지 않고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뜻하지 않은 일이 생겼다. 화동에 주재하는 목관이 목장에 와서 하는 말이 대[장군](/topic/장군)이 탈 장군마를 고른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복녀가 애지중지하는 점박이가 선발된 것이었다. 복녀는 그 사실을 안 순간 눈앞이 캄캄하였다. 끌려가는 애마 점박이도 복녀의이별을 서러워하는지 [가지](/topic/가지) 않으려고 뒷걸음질치면서 우는 것이었다. 점박이와 이별한 복녀는 애마와의 추억을 되새기기 위해 그 자리에 한 그루의 느티나무를 심고는 그만 병이 나서 자리에 눕고 말았다. 아[무리](/topic/무리) 좋은 약을 써도 백약이 무효였다. 병세는 점점 악화되어 갔다. 그 후 6개월이 지난 어느 날 새벽 복녀의 아버지가 목장에 나갔다가 복녀가 심어 놓은 느티나무 곁에 숨어 있는 말을 발견하였다. 아버지가 복녀에게 급히 뛰어가서 “복녀야점박이가 왔다. 어서 일어나라”하고 아무리 소리쳐도 복녀는 대답이 없었다. 아버지는 이상한 느낌이 들어 방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복녀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그러나 복녀는 매우 온화하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애마인 점박이가 숨이 끊어질 바로 그 순간에 복녀도 영원히 애마와 함께 지낼 수 있는 저승으로 간 것이었다. 복녀의 아버지는 복녀를 끌어안고 통곡을 하면서 복녀와 점박이 말을 느티나무 아래 나란히 묻어 주었다. 그 후부터 사람들은 이 느티나무를 마녀목이라 부르게 되었고, 매년 이곳에 제사를 지냈다. |
---|
안동대학교 석사학위논문 | 동해안 세습무의 굿 전승방식과 창조적 연행능력 | 조연남 | 2004 | 국립문화재연구소 | 인간과 신령을 잇는 상징 무구-서울시·경기도·강원도 | 2005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