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단지모시기

한국무속신앙사전
용단지모시기
용단지를 섬기는 신앙. 경상북도 안동지역에서 집중적으로 나타난다. 용단지 신앙은 용 또는 용신을 모시는 신앙이다. 용단지는 이 신을 형상화한 신체명(神體名)이며, 용신신앙을 의미하기도 한다. 안동지역에서 용신은 농경신이면서 때로는 업신이나 터주와 같은 기능도 하고 있어서 농사의 풍요와 재복을 기원하는 뜻에서 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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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단지를 섬기는 신앙. 경상북도 안동지역에서 집중적으로 나타난다. 용단지 신앙은 용 또는 용신을 모시는 신앙이다. 용단지는 이 신을 형상화한 신체명(神體名)이며, 용신신앙을 의미하기도 한다. 안동지역에서 용신은 농경신이면서 때로는 업신이나 터주와 같은 기능도 하고 있어서 농사의 풍요와 재복을 기원하는 뜻에서 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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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자
정의용단지를 섬기는 신앙. 경상북도 안동지역에서 집중적으로 나타난다. 용단지 신앙은 용 또는 용신을 모시는 신앙이다. 용단지는 이 신을 형상화한 신체명(神體名)이며, 용신신앙을 의미하기도 한다. 안동지역에서 용신은 농경신이면서 때로는 업신이나 터주와 같은 기능도 하고 있어서 농사의 풍요와 재복을 기원하는 뜻에서 섬긴다.
정의용단지를 섬기는 신앙. 경상북도 안동지역에서 집중적으로 나타난다. 용단지 신앙은 용 또는 용신을 모시는 신앙이다. 용단지는 이 신을 형상화한 신체명(神體名)이며, 용신신앙을 의미하기도 한다. 안동지역에서 용신은 농경신이면서 때로는 업신이나 터주와 같은 기능도 하고 있어서 농사의 풍요와 재복을 기원하는 뜻에서 섬긴다.
내용용단지는 집안의 농사를 비롯하여 재물을 불게 해 주고 집을 지켜 주며 가내의 평안을 도모해 주는 [가신](/topic/가신)이다. 특히 [곡물](/topic/곡물)을 비롯한 재물을 관장하는 신이기 때문에 그 자리도 이들과 직접 관련되어 있다. 흔히 용단지는 ‘용이 드는 자리’에 모신다고 한다. 용이 드는 자리는 집안에 재산이 들고 그 재산을 잘 지켜 주는 곳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용단지의 자리는 대체로 곡물이 취급되는 [부엌](/topic/부엌)이라든가 고방, [안방](/topic/안방) 위 [다락](/topic/다락)을 비롯하여 뒤뜰 [처마](/topic/처마) 밑 또는 뒤란 등이 된다. 이는 가옥 구조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다. 이러한 용단지의 자리는 용단지의 신격을 설명하는 단서가 된다. 곧 용단지는 이처럼 재물이 있는 곳에 자리함으로써 재복과 관련된 신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전통사회에서 재물의 기본은 곡물이며, 용단지는 곡물을 관장하는 농경신으로 받들어진다. 1930년대 안동의 용단지 사례도 바로 용단지의 농경신으로서의 성격을 말해준다.

용단지는 한 개, 두 개 또는 세 개를 모시는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 두 개를 모신다. 꺼칠용과 쌀용의 두 개로써 여자를 상징한다는 쌀용은 ‘안용’이라고도 한다. 이 안에는 쌀을 넣어 둔다. 남자를 상징한다는 꺼칠용 단지에는 나락을 넣어둔다. 이 용단지를 ‘건용’, ‘터용’이라고도 한다.

용단지 안의 곡물은 주로 음력 10월 추수기에 햇곡식이 나면 갈아 넣는다. 이 안에 넣은 쌀은 절대로 집 밖으로 내[가지](/topic/가지) 않으며, 밥을 짓거나 떡을 쪄 가족끼리만 먹는다. 이 곡물은 복(福)을 주는 신성물(神聖物)로서 밖으로 내가는 것은 곧 재복을 내보내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용단지에 대한 의례는 가정에 따라 크고 작은 차이가 있다. 그러나 다른 가신과 마찬가지로 설, [정월대보름](/topic/정월대보름), 추석, 동지 등의 명절과 추수 때에 올린다. 이때에는 정갈한 밥 한 그릇과 [정화수](/topic/정화수) 한 그릇, 또는 명절식을 올린다. 특히 동짓날에 팥죽을 쑤면 성주, 조왕, 삼신, 용단지 등 주요 가신에게 각각 떠 놓고 빈다. 이 가운데에서도 용단지에는 가장 큰 그릇을 떠 놓고 한 해의 농사를 기리고 이듬해의 풍년을 기원하기도 한다. 정월대보름에는 역시 명절식인 [찰밥](/topic/찰밥)[[오곡](/topic/오곡)밥]을 용단지에 올려 풍농과 집안의 안녕을 기원한다. 또는 봄에 햇[보리](/topic/보리)가 나면 용단지의 곡물을 갈아 주고 다시 가을에 햅쌀이 나왔을 때 갈아 넣은 뒤 간단히 의례를 올리는 가정도 있다. 이때에는 밥 한 그릇과 정화수 한 그릇을 떠 올리고 주부가 [수확](/topic/수확)을 기리고 농사가 잘되기를 빈다. 이 밖에 봄에 풍농을 위해서 용단지에 제를 올린다. 가뭄이 오래 들거나 홍수가 심할 때에도 임시제로서 용단지에 빌어 비가 오기를 기원하거나 비를 알맞게 조절해 줄 것을 기원한다. 이는 용이 농경신이자 수신(水神)으로도 받들어지기 때문이다. 사실상 농사에서 물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모심기 철이나 논매기 철에 용단지에 들어 있는 쌀로 밥을 지어 먹으면 그 해 풍년이 든다고 한다.

가신은 독자적인 기능을 하거나 성격을 지니고 있지만 대체로 중층성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가운데서도 가신의 고유 기능이 있다. 용단지는 기본적으로 농경신이면서 재복신(財福神)으로서 업신과 동일시되며, 터주신의 성격을 지니기도 한다. 아울러 [조상신](/topic/조상신)으로서의 역할도 한다.

안동지역의 용단지는 특히 업신(神)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다. 용단지를 업 계통으로 보기에는 의문이 있다는 견해도 있지만 용단지를 섬기는 전승 현장에서는 용단지와 업신을 거의 동일시한다. 이들을 구별하는 경우는 거의 나타나지 않으며, 용단지를 섬기는 사람들은 용단지가 곧 업신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용단지는 집 안의 [우물](/topic/우물)에 있는 정신(井神, 우물신)과 관련되어 수신(水神)으로서의 기능도 하면서 ‘용=물’이라는 도식이 성립된다. 우물신은 가신으로서의 위상이 용단지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하다. 사실상 우물신은 수신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를 용단지와 직접 관련시키지는 않는다. 용단지와 동일하게 또한 친연성이 있는 가신으로 터주도 해당된다. 이 역시 업신에 비해서는 약하다. 가장 밀접하고 직접적으로 관련된 가신은 업신이다.

업신(神)은 광이나 [곳간](/topic/곳간)과 같은 은밀한 곳에 머물러 있으면서 재복을 준다는 가신이다. 업․업왕신(王神)․업왕․업위(位神)라고도 하지만 민간에서는 업이라는 말과 함께 지킴이․지킴․집지킴이로 불린다. 업신은 그 대상을 구렁이, 족제비, 두꺼비 등을 업으로 상정한다. 이 밖에 사람에게 붙어 다닌다는 [인업](/topic/인업)도 있다.

집에서 위하던 업구렁이라든가 업족제비가 가족들의 눈에 띄거나 집에서 나가면 재물이 사라지고 가족에게 우환이 생겨 폐가한 사례가 있는가 하면 업구렁이를 새로 받아들여 부자가 되는 사례도 있다. 그런데 안동지역의 많은 제보자가 용단지의 용이 구렁이 같은 것이며, 이것이 집에 들어와 있으면 재물이 불어난다고 한다. 용은 재산을 일으키는 집지킴이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혹시나 용이 나가면 살림이 줄어든다고 한다. 곧 재물이 나가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업신은 재복신으로 상당히 비의성을 띠고 있으며, 안동지역에서도 용단지를 각별히 외경시하여 남이 보는 것을 꺼리는 가정도 있다. 용왕업의 은거처도 업구렁이와 마찬가지로 솔갑([솔가지](/topic/솔가지)) 아래․[뒤주](/topic/뒤주)․곳간․고방․뒤꼍․용단지 안 등 어두컴컴하고 습한 곳으로 생각한다. 용왕업 역시 업구렁이와 마찬가지로 가산(家産), 가운(家運), 가택수호를 맡고 있다.

이처럼 용단지는 업신과 동일한 기능을 할 뿐만 아니라 곧 업신으로 여겨진다. 용단지와 친연성이 있는 터주(또는 터주신) 역시 집터와 더불어 재복을 맡은 신인데 용단지와 마찬가지로 단지 안의 쌀은 해마다 햇벼가 날 때 갈아 넣는다. 이때 단지 안에 들어 있던 쌀 역시 남을 주지 않고 가족끼리만 먹는다. 용단지 안에 들었던 쌀이 그렇듯이 터주단지 안의 쌀 역시 신성물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터주 역시 용단지와도 밀접하게 관련되어 터주의 대상을 업신의 대상처럼 구렁이로 여기기도 한다. 이 구렁이를 지신 또는 터신이라고도 한다.

구렁이가 터신의 성격을 드러내는 예는 『[삼국유사](/topic/삼국유사)』 권4 자장정률 조에도 보인다.

(자장이) 만년에는 서울을 하직하고 강릉부에 수다사(水多寺)를 세우고 살았다. 어느 날 북대(北臺)에서 본 것과 같은 형상의 중이 다시 꿈에 나타나 말하기를 “내일 대송정(大松汀)에서 그대를 만날 것이다.”라고 하였다. 놀라 일어난 자장은 일찍 나가서 송정에 이르니 과연 문수보살이 감응하여 온지라 법요(法要)를 물으니 “태백산 갈반지에서 다시 만나자.” 하고는 마침내 자취를 감추었다. 자장이 태백산으로 가서 그를 찾으니 큰 구렁이가 나무 둥지를 사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시자에게 “여기가 갈반지다.”라고 하고 이곳에 석남원(石南院)을 세워서 대성(大聖)이 내려오기를 기다렸다.

큰 구렁이가 이미 ‘갈반지’라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므로 그가 터주로서의 성격을 보이며 그 지역을 지켜주는 지킴이, 곧 업신의 기능도 하고 있다.

이 밖에 용단지를 조상으로 여기는 경우도 있다. 안동시 풍산읍의 한 제보자는 용단지를 ‘조상’으로 여긴다. 이 댁에서는 용단지의 쌀용은 [거실](/topic/거실), 꺼칠용은 고방에 각각 모신다. 다른 가정과 마찬가지로 쌀용단지에는 쌀, 꺼칠용단지에는 나락을 넣어 두었다. 그러나 다른 가정처럼 굳이 용단지의 성별을 구별하지는 않는다.

꺼칠용단지는 제보자가 시집왔을 때부터 이미 모시고 있었다. 누구를 모시는지는 구체적으로 알 수 없지만 윗대 어른이라고 한다. 쌀용단지는 1980년대에 시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부터 섬기기 시작하였다. 시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설날에 무당을 찾아가니 시아버지를 용단지로 모시면 집안에 재수가 많다고 하여 모시게 되었다. 꺼칠용단지는 막연히 윗대조상이라고 하는 반면에 쌀용단지는 자신이 모시고 있던 시아버지를 용신으로 모셨다는 것이다.

사실상 용단지가 조상의 성격을 지녔다는 예는 지극히 드물게나마 찾아볼 수 있다. 『한국민속종합조사보고서-경북』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대구에 출가해 거주하고 있는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 출신의 제보자에 따르면 농사를 짓지 않는 대구 같은 도시에서도 한 집안에서 안방에는 [삼신단지](/topic/삼신단지), 부엌에는 용단지, 고방에는 시조단지, [마루](/topic/마루)에는 성주를 모시는 일이 있다. 시조단지는 윗대 어른이고 용단지는 중간조상으로 재수소원을 비는 것이고, 삼신단지는 시부모와 시조모를 모시는 것이라고 한다. 시장에서 햇곡식이 눈에 띄면 사다가 갈아 넣는다고 한다.

이 댁의 가신은 주로 조상을 상징한다. 이는 용단지는 시부모나 시조부모와 같은 가까운 윗대와 먼 윗대 사이의 ‘중간조상’이란 뜻으로 해석된다. 사실상 용단지가 조상이라는 말은 드문 예에 속한다. 흔히 삼신의 경우 돌아가신 시할머니가 앉고 시어머니가 돌아가시면 자리를 바꾸어 시어머니가 좌정하는 경우가 보편적이다.
내용용단지는 집안의 농사를 비롯하여 재물을 불게 해 주고 집을 지켜 주며 가내의 평안을 도모해 주는 [가신](/topic/가신)이다. 특히 [곡물](/topic/곡물)을 비롯한 재물을 관장하는 신이기 때문에 그 자리도 이들과 직접 관련되어 있다. 흔히 용단지는 ‘용이 드는 자리’에 모신다고 한다. 용이 드는 자리는 집안에 재산이 들고 그 재산을 잘 지켜 주는 곳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용단지의 자리는 대체로 곡물이 취급되는 [부엌](/topic/부엌)이라든가 고방, [안방](/topic/안방) 위 [다락](/topic/다락)을 비롯하여 뒤뜰 [처마](/topic/처마) 밑 또는 뒤란 등이 된다. 이는 가옥 구조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다. 이러한 용단지의 자리는 용단지의 신격을 설명하는 단서가 된다. 곧 용단지는 이처럼 재물이 있는 곳에 자리함으로써 재복과 관련된 신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전통사회에서 재물의 기본은 곡물이며, 용단지는 곡물을 관장하는 농경신으로 받들어진다. 1930년대 안동의 용단지 사례도 바로 용단지의 농경신으로서의 성격을 말해준다.

용단지는 한 개, 두 개 또는 세 개를 모시는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 두 개를 모신다. 꺼칠용과 쌀용의 두 개로써 여자를 상징한다는 쌀용은 ‘안용’이라고도 한다. 이 안에는 쌀을 넣어 둔다. 남자를 상징한다는 꺼칠용 단지에는 나락을 넣어둔다. 이 용단지를 ‘건용’, ‘터용’이라고도 한다.

용단지 안의 곡물은 주로 음력 10월 추수기에 햇곡식이 나면 갈아 넣는다. 이 안에 넣은 쌀은 절대로 집 밖으로 내[가지](/topic/가지) 않으며, 밥을 짓거나 떡을 쪄 가족끼리만 먹는다. 이 곡물은 복(福)을 주는 신성물(神聖物)로서 밖으로 내가는 것은 곧 재복을 내보내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용단지에 대한 의례는 가정에 따라 크고 작은 차이가 있다. 그러나 다른 가신과 마찬가지로 설, [정월대보름](/topic/정월대보름), 추석, 동지 등의 명절과 추수 때에 올린다. 이때에는 정갈한 밥 한 그릇과 [정화수](/topic/정화수) 한 그릇, 또는 명절식을 올린다. 특히 동짓날에 팥죽을 쑤면 성주, 조왕, 삼신, 용단지 등 주요 가신에게 각각 떠 놓고 빈다. 이 가운데에서도 용단지에는 가장 큰 그릇을 떠 놓고 한 해의 농사를 기리고 이듬해의 풍년을 기원하기도 한다. 정월대보름에는 역시 명절식인 [찰밥](/topic/찰밥)[[오곡](/topic/오곡)밥]을 용단지에 올려 풍농과 집안의 안녕을 기원한다. 또는 봄에 햇[보리](/topic/보리)가 나면 용단지의 곡물을 갈아 주고 다시 가을에 햅쌀이 나왔을 때 갈아 넣은 뒤 간단히 의례를 올리는 가정도 있다. 이때에는 밥 한 그릇과 정화수 한 그릇을 떠 올리고 주부가 [수확](/topic/수확)을 기리고 농사가 잘되기를 빈다. 이 밖에 봄에 풍농을 위해서 용단지에 제를 올린다. 가뭄이 오래 들거나 홍수가 심할 때에도 임시제로서 용단지에 빌어 비가 오기를 기원하거나 비를 알맞게 조절해 줄 것을 기원한다. 이는 용이 농경신이자 수신(水神)으로도 받들어지기 때문이다. 사실상 농사에서 물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모심기 철이나 논매기 철에 용단지에 들어 있는 쌀로 밥을 지어 먹으면 그 해 풍년이 든다고 한다.

가신은 독자적인 기능을 하거나 성격을 지니고 있지만 대체로 중층성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가운데서도 가신의 고유 기능이 있다. 용단지는 기본적으로 농경신이면서 재복신(財福神)으로서 업신과 동일시되며, 터주신의 성격을 지니기도 한다. 아울러 [조상신](/topic/조상신)으로서의 역할도 한다.

안동지역의 용단지는 특히 업신(神)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다. 용단지를 업 계통으로 보기에는 의문이 있다는 견해도 있지만 용단지를 섬기는 전승 현장에서는 용단지와 업신을 거의 동일시한다. 이들을 구별하는 경우는 거의 나타나지 않으며, 용단지를 섬기는 사람들은 용단지가 곧 업신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용단지는 집 안의 [우물](/topic/우물)에 있는 정신(井神, 우물신)과 관련되어 수신(水神)으로서의 기능도 하면서 ‘용=물’이라는 도식이 성립된다. 우물신은 가신으로서의 위상이 용단지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하다. 사실상 우물신은 수신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를 용단지와 직접 관련시키지는 않는다. 용단지와 동일하게 또한 친연성이 있는 가신으로 터주도 해당된다. 이 역시 업신에 비해서는 약하다. 가장 밀접하고 직접적으로 관련된 가신은 업신이다.

업신(神)은 광이나 [곳간](/topic/곳간)과 같은 은밀한 곳에 머물러 있으면서 재복을 준다는 가신이다. 업․업왕신(王神)․업왕․업위(位神)라고도 하지만 민간에서는 업이라는 말과 함께 지킴이․지킴․집지킴이로 불린다. 업신은 그 대상을 구렁이, 족제비, 두꺼비 등을 업으로 상정한다. 이 밖에 사람에게 붙어 다닌다는 [인업](/topic/인업)도 있다.

집에서 위하던 업구렁이라든가 업족제비가 가족들의 눈에 띄거나 집에서 나가면 재물이 사라지고 가족에게 우환이 생겨 폐가한 사례가 있는가 하면 업구렁이를 새로 받아들여 부자가 되는 사례도 있다. 그런데 안동지역의 많은 제보자가 용단지의 용이 구렁이 같은 것이며, 이것이 집에 들어와 있으면 재물이 불어난다고 한다. 용은 재산을 일으키는 집지킴이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혹시나 용이 나가면 살림이 줄어든다고 한다. 곧 재물이 나가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업신은 재복신으로 상당히 비의성을 띠고 있으며, 안동지역에서도 용단지를 각별히 외경시하여 남이 보는 것을 꺼리는 가정도 있다. 용왕업의 은거처도 업구렁이와 마찬가지로 솔갑([솔가지](/topic/솔가지)) 아래․[뒤주](/topic/뒤주)․곳간․고방․뒤꼍․용단지 안 등 어두컴컴하고 습한 곳으로 생각한다. 용왕업 역시 업구렁이와 마찬가지로 가산(家産), 가운(家運), 가택수호를 맡고 있다.

이처럼 용단지는 업신과 동일한 기능을 할 뿐만 아니라 곧 업신으로 여겨진다. 용단지와 친연성이 있는 터주(또는 터주신) 역시 집터와 더불어 재복을 맡은 신인데 용단지와 마찬가지로 단지 안의 쌀은 해마다 햇벼가 날 때 갈아 넣는다. 이때 단지 안에 들어 있던 쌀 역시 남을 주지 않고 가족끼리만 먹는다. 용단지 안에 들었던 쌀이 그렇듯이 터주단지 안의 쌀 역시 신성물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터주 역시 용단지와도 밀접하게 관련되어 터주의 대상을 업신의 대상처럼 구렁이로 여기기도 한다. 이 구렁이를 지신 또는 터신이라고도 한다.

구렁이가 터신의 성격을 드러내는 예는 『[삼국유사](/topic/삼국유사)』 권4 자장정률 조에도 보인다.

(자장이) 만년에는 서울을 하직하고 강릉부에 수다사(水多寺)를 세우고 살았다. 어느 날 북대(北臺)에서 본 것과 같은 형상의 중이 다시 꿈에 나타나 말하기를 “내일 대송정(大松汀)에서 그대를 만날 것이다.”라고 하였다. 놀라 일어난 자장은 일찍 나가서 송정에 이르니 과연 문수보살이 감응하여 온지라 법요(法要)를 물으니 “태백산 갈반지에서 다시 만나자.” 하고는 마침내 자취를 감추었다. 자장이 태백산으로 가서 그를 찾으니 큰 구렁이가 나무 둥지를 사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시자에게 “여기가 갈반지다.”라고 하고 이곳에 석남원(石南院)을 세워서 대성(大聖)이 내려오기를 기다렸다.

큰 구렁이가 이미 ‘갈반지’라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므로 그가 터주로서의 성격을 보이며 그 지역을 지켜주는 지킴이, 곧 업신의 기능도 하고 있다.

이 밖에 용단지를 조상으로 여기는 경우도 있다. 안동시 풍산읍의 한 제보자는 용단지를 ‘조상’으로 여긴다. 이 댁에서는 용단지의 쌀용은 [거실](/topic/거실), 꺼칠용은 고방에 각각 모신다. 다른 가정과 마찬가지로 쌀용단지에는 쌀, 꺼칠용단지에는 나락을 넣어 두었다. 그러나 다른 가정처럼 굳이 용단지의 성별을 구별하지는 않는다.

꺼칠용단지는 제보자가 시집왔을 때부터 이미 모시고 있었다. 누구를 모시는지는 구체적으로 알 수 없지만 윗대 어른이라고 한다. 쌀용단지는 1980년대에 시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부터 섬기기 시작하였다. 시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설날에 무당을 찾아가니 시아버지를 용단지로 모시면 집안에 재수가 많다고 하여 모시게 되었다. 꺼칠용단지는 막연히 윗대조상이라고 하는 반면에 쌀용단지는 자신이 모시고 있던 시아버지를 용신으로 모셨다는 것이다.

사실상 용단지가 조상의 성격을 지녔다는 예는 지극히 드물게나마 찾아볼 수 있다. 『한국민속종합조사보고서-경북』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대구에 출가해 거주하고 있는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 출신의 제보자에 따르면 농사를 짓지 않는 대구 같은 도시에서도 한 집안에서 안방에는 [삼신단지](/topic/삼신단지), 부엌에는 용단지, 고방에는 시조단지, [마루](/topic/마루)에는 성주를 모시는 일이 있다. 시조단지는 윗대 어른이고 용단지는 중간조상으로 재수소원을 비는 것이고, 삼신단지는 시부모와 시조모를 모시는 것이라고 한다. 시장에서 햇곡식이 눈에 띄면 사다가 갈아 넣는다고 한다.

이 댁의 가신은 주로 조상을 상징한다. 이는 용단지는 시부모나 시조부모와 같은 가까운 윗대와 먼 윗대 사이의 ‘중간조상’이란 뜻으로 해석된다. 사실상 용단지가 조상이라는 말은 드문 예에 속한다. 흔히 삼신의 경우 돌아가신 시할머니가 앉고 시어머니가 돌아가시면 자리를 바꾸어 시어머니가 좌정하는 경우가 보편적이다.
역사용신신앙은 고대국가 시대부터 있었다. 『삼국사기(三國史記)』 권 제39 잡지(雜志) 제8 직관(職官) 중(中) 조에는 용왕전(龍王典)이라는 직관이 나온다. 이는 용왕의 제사를 맡는 곳으로, 곧 용신신앙의 존재를 알 수 있는 자료가 된다. 『[삼국유사](/topic/삼국유사)(三國遺事)』 권2 기이(紀異) 제2 처용랑과 망해사 조에는 ‘동해에 사는 용’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용의 일곱 아들 가운데 한 아들이 처용(處容), 처용의 형상은 사악함을 물리치고 경사스런 일을 맞이하는 상징이 되었다. 동해의 용은 이미 신격화된 존재로, 용신신앙의 흔적을 볼 수 있다.

이처럼 용신신앙은 삼국시대를 시작으로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조, 그리고 오늘날까지 지속적으로 전승되고 있다. 가령 기우제는 이미 고대국가 뿐 아니라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도 국가차원, 그리고 고을과 [마을](/topic/마을) 단위로 행해졌는데 그 기원의 대상신은 바로 용신이다. 오늘날에도 마을단위로 소소하게나마 기우제가 행해지고 가정에서도 농사철에 가뭄이 들면 용신에게 비를 기원한다. 비[雨]와 관련되기 때문에 용신은 수신(水神)으로, 또 물과 깊은 관련이 있는 농경신(農耕神)으로 받들어지기도 한다.

가정신앙으로서 용신신앙의 역사성은 알 수 없다. 다만 고대(古代)부터 용신신앙이 존재했다는 근거를 보면 가정신앙으로서 용신신앙 역시 역사가 오래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특히 신라시대에 처용의 형상을 그려 부적처럼 문에 붙여서 사귀(邪鬼)를 물리치고 경사스러운 일을 맞아들였다는 것은 곧 가정신앙의 한 형태이다. 이를 통해서도 가정신앙으로서 용신신앙의 오랜 역사성을 찾아볼 수 있다.

용단지라는 신체의 시원에 대해서도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용단지가 옹기로서 농경의 시작과 함께 씨앗을 [저장](/topic/저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빗살무늬토기와 관련시킨다면 삼국시대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대단히 조심스럽게 추정만 할 수 있을 따름이다.

용단지는 경상북도 안동지역을 비롯하여 인근 청송, 의성, 문경, 예천, 영주, 상주, 대구 등지에서 보편적으로 섬기며, 울진과 영덕에서도 간혹 섬긴다. 그러나 안동지역에서 집중적으로 나타난다. 『한국민속종합조사보고서-경북』에 따르면 용단지 사례가 조사된 곳은 안동지역 뿐이었다. 물론 조사지역의 한계는 있겠으나 용단지라는 명칭으로 모시는 것은 그만큼 안동지역에 집중되어 있음을 말해 준다.

안동지역의 용단지 신앙에 대해서는 1930년대 자료에도 나타난다. 조선총독부에서 발간한 『석전․기우․[안택](/topic/안택)(釋奠․祈雨․安宅)』에는 “경북 안동지역에서는 농가 각호에서 농번기 또는 명절에 성주 또는 용단지에 청수(淸水)나 음식물, 햇곡식, 햇[보리](/topic/보리) 등을 올리고 그해의 풍작을 기원하는 [농신제](/topic/농신제)(農神祭)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다. 따라서 안동 지역의 용단지모시기는 이미 1930년대 이전부터 성행한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역사용신신앙은 고대국가 시대부터 있었다. 『삼국사기(三國史記)』 권 제39 잡지(雜志) 제8 직관(職官) 중(中) 조에는 용왕전(龍王典)이라는 직관이 나온다. 이는 용왕의 제사를 맡는 곳으로, 곧 용신신앙의 존재를 알 수 있는 자료가 된다. 『[삼국유사](/topic/삼국유사)(三國遺事)』 권2 기이(紀異) 제2 처용랑과 망해사 조에는 ‘동해에 사는 용’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용의 일곱 아들 가운데 한 아들이 처용(處容), 처용의 형상은 사악함을 물리치고 경사스런 일을 맞이하는 상징이 되었다. 동해의 용은 이미 신격화된 존재로, 용신신앙의 흔적을 볼 수 있다.

이처럼 용신신앙은 삼국시대를 시작으로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조, 그리고 오늘날까지 지속적으로 전승되고 있다. 가령 기우제는 이미 고대국가 뿐 아니라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도 국가차원, 그리고 고을과 [마을](/topic/마을) 단위로 행해졌는데 그 기원의 대상신은 바로 용신이다. 오늘날에도 마을단위로 소소하게나마 기우제가 행해지고 가정에서도 농사철에 가뭄이 들면 용신에게 비를 기원한다. 비[雨]와 관련되기 때문에 용신은 수신(水神)으로, 또 물과 깊은 관련이 있는 농경신(農耕神)으로 받들어지기도 한다.

가정신앙으로서 용신신앙의 역사성은 알 수 없다. 다만 고대(古代)부터 용신신앙이 존재했다는 근거를 보면 가정신앙으로서 용신신앙 역시 역사가 오래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특히 신라시대에 처용의 형상을 그려 부적처럼 문에 붙여서 사귀(邪鬼)를 물리치고 경사스러운 일을 맞아들였다는 것은 곧 가정신앙의 한 형태이다. 이를 통해서도 가정신앙으로서 용신신앙의 오랜 역사성을 찾아볼 수 있다.

용단지라는 신체의 시원에 대해서도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용단지가 옹기로서 농경의 시작과 함께 씨앗을 [저장](/topic/저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빗살무늬토기와 관련시킨다면 삼국시대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대단히 조심스럽게 추정만 할 수 있을 따름이다.

용단지는 경상북도 안동지역을 비롯하여 인근 청송, 의성, 문경, 예천, 영주, 상주, 대구 등지에서 보편적으로 섬기며, 울진과 영덕에서도 간혹 섬긴다. 그러나 안동지역에서 집중적으로 나타난다. 『한국민속종합조사보고서-경북』에 따르면 용단지 사례가 조사된 곳은 안동지역 뿐이었다. 물론 조사지역의 한계는 있겠으나 용단지라는 명칭으로 모시는 것은 그만큼 안동지역에 집중되어 있음을 말해 준다.

안동지역의 용단지 신앙에 대해서는 1930년대 자료에도 나타난다. 조선총독부에서 발간한 『석전․기우․[안택](/topic/안택)(釋奠․祈雨․安宅)』에는 “경북 안동지역에서는 농가 각호에서 농번기 또는 명절에 성주 또는 용단지에 청수(淸水)나 음식물, 햇곡식, 햇[보리](/topic/보리) 등을 올리고 그해의 풍작을 기원하는 [농신제](/topic/농신제)(農神祭)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다. 따라서 안동 지역의 용단지모시기는 이미 1930년대 이전부터 성행한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참고문헌한국민속종합조사보고서-경북 (문화공보부 문화재관리국, 1974)
釋奠․祈雨․安宅 (조선총독부, 국서간행회, 1983)
[가신](/topic/가신)신앙의 성격과 여성상 (김명자, 여성문제연구 13, 효성여자대학교 여성문제연구소, 1984)
가신신앙의 역사 (김명자, 한국민속사입문, 지식산업사, 1996)
업신의 성격과 다른 가택신과의 친연성 (김명자, 한국민속학보 7, 한국민속학회, 1996)
안동지역 용단지 신앙의 양상과 용단지의 성격 (김명자, 한국의 가정신앙-하, 민속원, 2005)
한국의 가정신앙-경북 (국립문화재연구소, 2007)
지역사례경북 안동지역에서는 집안의 으뜸 [가신](/topic/가신)인 성주도 많이 모시지만 특히 용단지가 집중적으로 나타난다.

두 개의 용단지를 [대청](/topic/대청) 뒤 뒤뜰 축대 위에 나란히 모시고 있는 안동시의 한 제보자는 이들 용단지가 영감과 마누라이며, 따라서 부부용을 모시는 것이라고 한다. 용단지는 안에 [곡물](/topic/곡물)(쌀이나 나락)을 넣은 뒤 그 위에 [한지](/topic/한지)를 덮어 [실타래](/topic/실타래)로 동여맨 다음 깨끗하고 평평한 돌을 얹어 놓았다. 각별히 돌을 얹는 것은 다른 잡물이 들어[가지](/topic/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라고도 한다. 단지 안의 쌀은 주로 음력 10월 추수기에 햇곡식이 나면 갈아 넣는다. 이 안에 넣은 쌀은 절대로 집 밖으로 내가지 않으며, 밥을 짓거나 떡을 쪄서 가족끼리만 먹는다. 이 곡물은 복(福)을 주는 신성물(神聖物)이기 때문에 밖으로 내가는 것은 곧 재복을 내보내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쌀이 귀해 용단지에 있던 쌀로 밥이나 떡을 했지만 근래에는 쌀이 흔해져 [고추](/topic/고추)장을 담그거나 감주를 만들어 먹기도 한다.

명절에 용단지에 의례를 올릴 때에는 명절식을 바친다. 특히 [정월대보름](/topic/정월대보름)날에는 [찰밥](/topic/찰밥)을 지어 올린다. 이는 용이 살찌라는 뜻이며, 그러기 위해 더욱더 잘 대접한다. 용이 살찐다는 것은 풍농을 뜻하며, 재물이 불었다는 의미도 있다.

부부용을 모시는 또 다른 제보자 역시 곡물을 비롯한 재물과 관련된 곳에 용단지를 모셔 두었다. [부엌](/topic/부엌)에는 마누라를 상징하는 쌀용, 뒤꼍에는 나락을 넣은 꺼칠용을 각각 두었다. 꺼칠용은 남편을 상징한다. 이 제보자에 따르면 용왕님을 모셔야 집에 재수가 있으며, 용단지는 집지킴이라고 말한다. 이런 이유로 극진히 모시면 재물을 불게 해 주고 집안이 평안하도록 지켜 준다고 믿는다.

용단지에 비는 주문 내용은 곧 용단지의 성격을 말해 준다.

“이 터전에 용왕님네는 어에든동 농끼 비끼 둘러 가지고 자주자주 부까주고 한 피기 숨그거든 및가지씩 벌어주고 및천만을 벌어주고 용왕님의 덕택인 줄 아옵니다. 미련한 이 [중상](/topic/중상)은 천지분간을 모르다게 모든 것을 잘못해도 여러 가지로 용왕님 덕택으로 물리침을 하여 주시옵소서.”, “한 피기(한 포기) 심거든 및 가짓씩(몇 가지씩) 벌어주고 및 천만을(몇 천만을) 벌어주고……”라고 하는 주언에서도 용왕이 농경신이자 재복신(財福神)임이 드러난다.
참고문헌한국민속종합조사보고서-경북 (문화공보부 문화재관리국, 1974)
釋奠․祈雨․安宅 (조선총독부, 국서간행회, 1983)
[가신](/topic/가신)신앙의 성격과 여성상 (김명자, 여성문제연구 13, 효성여자대학교 여성문제연구소, 1984)
가신신앙의 역사 (김명자, 한국민속사입문, 지식산업사, 1996)
업신의 성격과 다른 가택신과의 친연성 (김명자, 한국민속학보 7, 한국민속학회, 1996)
안동지역 용단지 신앙의 양상과 용단지의 성격 (김명자, 한국의 가정신앙-하, 민속원, 2005)
한국의 가정신앙-경북 (국립문화재연구소, 2007)
지역사례경북 안동지역에서는 집안의 으뜸 [가신](/topic/가신)인 성주도 많이 모시지만 특히 용단지가 집중적으로 나타난다.

두 개의 용단지를 [대청](/topic/대청) 뒤 뒤뜰 축대 위에 나란히 모시고 있는 안동시의 한 제보자는 이들 용단지가 영감과 마누라이며, 따라서 부부용을 모시는 것이라고 한다. 용단지는 안에 [곡물](/topic/곡물)(쌀이나 나락)을 넣은 뒤 그 위에 [한지](/topic/한지)를 덮어 [실타래](/topic/실타래)로 동여맨 다음 깨끗하고 평평한 돌을 얹어 놓았다. 각별히 돌을 얹는 것은 다른 잡물이 들어[가지](/topic/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라고도 한다. 단지 안의 쌀은 주로 음력 10월 추수기에 햇곡식이 나면 갈아 넣는다. 이 안에 넣은 쌀은 절대로 집 밖으로 내가지 않으며, 밥을 짓거나 떡을 쪄서 가족끼리만 먹는다. 이 곡물은 복(福)을 주는 신성물(神聖物)이기 때문에 밖으로 내가는 것은 곧 재복을 내보내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쌀이 귀해 용단지에 있던 쌀로 밥이나 떡을 했지만 근래에는 쌀이 흔해져 [고추](/topic/고추)장을 담그거나 감주를 만들어 먹기도 한다.

명절에 용단지에 의례를 올릴 때에는 명절식을 바친다. 특히 [정월대보름](/topic/정월대보름)날에는 [찰밥](/topic/찰밥)을 지어 올린다. 이는 용이 살찌라는 뜻이며, 그러기 위해 더욱더 잘 대접한다. 용이 살찐다는 것은 풍농을 뜻하며, 재물이 불었다는 의미도 있다.

부부용을 모시는 또 다른 제보자 역시 곡물을 비롯한 재물과 관련된 곳에 용단지를 모셔 두었다. [부엌](/topic/부엌)에는 마누라를 상징하는 쌀용, 뒤꼍에는 나락을 넣은 꺼칠용을 각각 두었다. 꺼칠용은 남편을 상징한다. 이 제보자에 따르면 용왕님을 모셔야 집에 재수가 있으며, 용단지는 집지킴이라고 말한다. 이런 이유로 극진히 모시면 재물을 불게 해 주고 집안이 평안하도록 지켜 준다고 믿는다.

용단지에 비는 주문 내용은 곧 용단지의 성격을 말해 준다.

“이 터전에 용왕님네는 어에든동 농끼 비끼 둘러 가지고 자주자주 부까주고 한 피기 숨그거든 및가지씩 벌어주고 및천만을 벌어주고 용왕님의 덕택인 줄 아옵니다. 미련한 이 [중상](/topic/중상)은 천지분간을 모르다게 모든 것을 잘못해도 여러 가지로 용왕님 덕택으로 물리침을 하여 주시옵소서.”, “한 피기(한 포기) 심거든 및 가짓씩(몇 가지씩) 벌어주고 및 천만을(몇 천만을) 벌어주고……”라고 하는 주언에서도 용왕이 농경신이자 재복신(財福神)임이 드러난다.
집문당조선의 향토오락村山智順(편)·박전열(역)1992
코리아루트삼척의 민속예술김태수2000
비교민속학회강원도 민속의 지역적 정체성-산간민속을 중심으로김진순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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