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성당촌별신당

한국무속신앙사전
전라남도 보성군 복내면 봉천리 산 706[번지](/topic/번지)에 위치하며 [정월대보름](/topic/정월대보름)날 자시에 별신제를 지내는 장소. 2000년 12월 29일에 ‘보성군 민속자료 제34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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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보성군 복내면 봉천리 산 706[번지](/topic/번지)에 위치하며 [정월대보름](/topic/정월대보름)날 자시에 별신제를 지내는 장소. 2000년 12월 29일에 ‘보성군 민속자료 제34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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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옥희
정의전라남도 보성군 복내면 봉천리 산 706[번지](/topic/번지)에 위치하며 [정월대보름](/topic/정월대보름)날 자시에 별신제를 지내는 장소. 2000년 12월 29일에 ‘보성군 민속자료 제34호’로 지정되었다.
정의전라남도 보성군 복내면 봉천리 산 706[번지](/topic/번지)에 위치하며 [정월대보름](/topic/정월대보름)날 자시에 별신제를 지내는 장소. 2000년 12월 29일에 ‘보성군 민속자료 제34호’로 지정되었다.
참조[보성당촌별신당제](/topic/보성당촌별신당제)
참고문헌보성군문화유적학술조사 (전남대학교박물관, 1992)
한국의 [마을](/topic/마을)신앙 하 (국립민속박물관, 2007)
한국세시풍속[사전](/topic/사전) (국립민속박물관, 2007)
참조[보성당촌별신당제](/topic/보성당촌별신당제)
참고문헌보성군문화유적학술조사 (전남대학교박물관, 1992)
한국의 [마을](/topic/마을)신앙 하 (국립민속박물관, 2007)
한국세시풍속[사전](/topic/사전) (국립민속박물관, 2007)
내용[마을](/topic/마을) 제사인 별신제는 음력 [정월대보름](/topic/정월대보름)날 자시에 지낸다. 별신제를 모시는 곳은 모두 세 곳이며, 각각의 제명(祭名)은 당산제(堂山祭)·별신제(別神祭)·이사제(里社祭)이다. 제의는 당산제, 별신제, 이사제 순으로 지낸다. 제사는 유교식으로 [분향](/topic/분향)강신, [독축](/topic/독축), [초헌](/topic/초헌), [아헌](/topic/아헌), [종헌](/topic/종헌), 사신의 순서로 치러진다. 제의가 끝나면 [헌식](/topic/헌식)과 소지가 행해진다.

당산제는 귀목 앞에 마련된 제단에 제물을 진설하며, 이사제는 대나무로 얽어 만든 제단 앞에 [자리](/topic/자리)를 깔고 제물을 진설한다. 별신제는 당집 안의 [시렁](/topic/시렁) 위에 음식을 제물한다.별신제를 모실 때에도 원칙은 바닥에 자리를 깔고 제물을 진설해야 하지만 공간이 너무 좁아서 바닥에 음식을 진설할 경우 [제관](/topic/제관)들이 들어설 공간이 없다는 점과 들짐승의 해를 입을지도 모른다는 염려 때문에 시렁 위에다 제물을 차린다. 각각의 제사에 매번 새 음식을 사용한다. 당산제에서는 돼지머리를 통째로 올리고, 별신제와 이사제에는 그냥 돼지고기를 올린다. 당산제와 이사제를 모실 때에는 메와 국을 한 그릇씩 올리고 술도 한 잔씩 올리지만 별신제를 모실 때에는 밥과 국을 세 그릇씩 올리고 술도 세 잔씩 올리며절도 각각의 신위에 드린다. 즉 별신당에서 모셔지는 별신제는 교목지신, 당산지신, 이사지신이 모두 제의의 대상이 되고 있어 당촌마을 별신제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당촌 별신당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영험담](/topic/영험담)이 전한다. 예전에 마을 뒷산에 당집이 있었을 때 그 아래를 지날 때에는 반드시 말에서 내려야 하였다. 그렇지 않은 경우 돌이 굴러 내려와 말을 상하게 했다고 한다. 또한 당집 안에 있는 일곱 개의 돌에 기원하면 소원이 이루어지며, 특히 아들을 낳는다고 한다.
내용[마을](/topic/마을) 제사인 별신제는 음력 [정월대보름](/topic/정월대보름)날 자시에 지낸다. 별신제를 모시는 곳은 모두 세 곳이며, 각각의 제명(祭名)은 당산제(堂山祭)·별신제(別神祭)·이사제(里社祭)이다. 제의는 당산제, 별신제, 이사제 순으로 지낸다. 제사는 유교식으로 [분향](/topic/분향)강신, [독축](/topic/독축), [초헌](/topic/초헌), [아헌](/topic/아헌), [종헌](/topic/종헌), 사신의 순서로 치러진다. 제의가 끝나면 [헌식](/topic/헌식)과 소지가 행해진다.

당산제는 귀목 앞에 마련된 제단에 제물을 진설하며, 이사제는 대나무로 얽어 만든 제단 앞에 [자리](/topic/자리)를 깔고 제물을 진설한다. 별신제는 당집 안의 [시렁](/topic/시렁) 위에 음식을 제물한다.별신제를 모실 때에도 원칙은 바닥에 자리를 깔고 제물을 진설해야 하지만 공간이 너무 좁아서 바닥에 음식을 진설할 경우 [제관](/topic/제관)들이 들어설 공간이 없다는 점과 들짐승의 해를 입을지도 모른다는 염려 때문에 시렁 위에다 제물을 차린다. 각각의 제사에 매번 새 음식을 사용한다. 당산제에서는 돼지머리를 통째로 올리고, 별신제와 이사제에는 그냥 돼지고기를 올린다. 당산제와 이사제를 모실 때에는 메와 국을 한 그릇씩 올리고 술도 한 잔씩 올리지만 별신제를 모실 때에는 밥과 국을 세 그릇씩 올리고 술도 세 잔씩 올리며절도 각각의 신위에 드린다. 즉 별신당에서 모셔지는 별신제는 교목지신, 당산지신, 이사지신이 모두 제의의 대상이 되고 있어 당촌마을 별신제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당촌 별신당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영험담](/topic/영험담)이 전한다. 예전에 마을 뒷산에 당집이 있었을 때 그 아래를 지날 때에는 반드시 말에서 내려야 하였다. 그렇지 않은 경우 돌이 굴러 내려와 말을 상하게 했다고 한다. 또한 당집 안에 있는 일곱 개의 돌에 기원하면 소원이 이루어지며, 특히 아들을 낳는다고 한다.
역사당촌[마을](/topic/마을)은 1664년경에 문씨(文氏), 송씨(宋氏)가 이주해 정착하면서 마을을 형성하였다고 한다. 그 뒤 광주 이씨(廣州 李氏) 이중원(李重遠)이 들어와 정착하면서 그 자손이 집성을 이루고 살게 되었다고 한다. 『호구총수(戶口總數)』(1789)에서도 마을 이름을 찾을 수 있을 만큼 유래가 오래된 마을이며, 예부터 보성군에서는 ‘제일당촌’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큰 마을이었다고 한다.

언제부터 제를 모시기 시작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별신제를 모시는 당집의 상량문을 보면 “용 개국오 백육년정유정월이십사일사시 [입주](/topic/입주)동월이십육일미시상량수겸유사김홍이 [화주](/topic/화주) 김달천 귀(龍 開國五百六年丁酉正月二十四日巳時 立柱同月二十六日未時 上梁手兼有司金弘伊 化主金達天 龜)”로 되어 있어 1897년에 당집을 지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당집의 위치는 현 위치가 아니었다고 전한다. 옛 어른들에게 전해들은 바로는 옛날에는 당집이 마을에서 걸어 20~30분 걸리는 마을 뒷산에 있어 한밤중에 제사를 모시러 오르기가 힘들고, 정월이어서 날씨도 매우 추워 지금 위치로 옮겨졌다고 한다.

당집 주변에는 잘생긴 노송이 여러 그루 심겨 있고, 당집의 바로 오른쪽에는 천인정(千仞亭)이라는 정자가 있다. 마을 사람에 따르면 천인정은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정자로, 지어진 동기가 특별하다. 일제강점기 때 당집 옆에 신사(神社)를 지으려고 한다는 계획을 알고 마을의 유지들이 먼저 천인정을 지어 신사를 짓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역사당촌[마을](/topic/마을)은 1664년경에 문씨(文氏), 송씨(宋氏)가 이주해 정착하면서 마을을 형성하였다고 한다. 그 뒤 광주 이씨(廣州 李氏) 이중원(李重遠)이 들어와 정착하면서 그 자손이 집성을 이루고 살게 되었다고 한다. 『호구총수(戶口總數)』(1789)에서도 마을 이름을 찾을 수 있을 만큼 유래가 오래된 마을이며, 예부터 보성군에서는 ‘제일당촌’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큰 마을이었다고 한다.

언제부터 제를 모시기 시작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별신제를 모시는 당집의 상량문을 보면 “용 개국오 백육년정유정월이십사일사시 [입주](/topic/입주)동월이십육일미시상량수겸유사김홍이 [화주](/topic/화주) 김달천 귀(龍 開國五百六年丁酉正月二十四日巳時 立柱同月二十六日未時 上梁手兼有司金弘伊 化主金達天 龜)”로 되어 있어 1897년에 당집을 지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당집의 위치는 현 위치가 아니었다고 전한다. 옛 어른들에게 전해들은 바로는 옛날에는 당집이 마을에서 걸어 20~30분 걸리는 마을 뒷산에 있어 한밤중에 제사를 모시러 오르기가 힘들고, 정월이어서 날씨도 매우 추워 지금 위치로 옮겨졌다고 한다.

당집 주변에는 잘생긴 노송이 여러 그루 심겨 있고, 당집의 바로 오른쪽에는 천인정(千仞亭)이라는 정자가 있다. 마을 사람에 따르면 천인정은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정자로, 지어진 동기가 특별하다. 일제강점기 때 당집 옆에 신사(神社)를 지으려고 한다는 계획을 알고 마을의 유지들이 먼저 천인정을 지어 신사를 짓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형태당촌별신당은 당촌(堂村)[마을](/topic/마을) 왼쪽 언덕인 당뫼에 위치하고 있다. 와가(瓦家)의 당집은 전면 2.6m, 측면 2.4m의 [맞배지붕](/topic/맞배지붕)으로 작지만 고건축물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당집 정면에는 「별신당(別神堂)」이라는 [현판](/topic/현판)이 걸려 있고, 정월에 별신제를 지내면서 걸어 놓은 [금줄](/topic/금줄)이 둘러쳐져 있다. 현판 아래에는 양쪽 [여닫이](/topic/여닫이) 나무문이 있다. [빗장](/topic/빗장)이 걸려 있지만 자물쇠를 채우지 않았기 때문에 열어서 안쪽을 들여다볼 수 있다. 당집 안에는 나무 [시렁](/topic/시렁)이 하나 놓여 있고, 바닥은 흙으로 되어 있다. 나무 시렁 위에는 [한지](/topic/한지)로 싸 놓은 다섯 개의 돌이 있고, 시렁 아래쪽에는 한지로 싸놓은 두 개의 돌이 놓여 있다. 돌은 남근 모양을 하고 있으며, 모두 한지로 싸고 왼새끼를 둘러놓았다. 마을 사람들은 이들 일곱 개의 돌을 칠성님이라고 부르면서 기자치성을 드리면 그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믿고 있다. 한편 아래의 두 개만 원래의 돌이고 나머지는 새로 마련한 돌이라고 한다. 6·25전쟁을 전후하여 돌이 사라져서 마을 어른인 이용기가 강에서 새 돌을 가져다가 모셔 두었다고 한다.
형태당촌별신당은 당촌(堂村)[마을](/topic/마을) 왼쪽 언덕인 당뫼에 위치하고 있다. 와가(瓦家)의 당집은 전면 2.6m, 측면 2.4m의 [맞배지붕](/topic/맞배지붕)으로 작지만 고건축물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당집 정면에는 「별신당(別神堂)」이라는 [현판](/topic/현판)이 걸려 있고, 정월에 별신제를 지내면서 걸어 놓은 [금줄](/topic/금줄)이 둘러쳐져 있다. 현판 아래에는 양쪽 [여닫이](/topic/여닫이) 나무문이 있다. [빗장](/topic/빗장)이 걸려 있지만 자물쇠를 채우지 않았기 때문에 열어서 안쪽을 들여다볼 수 있다. 당집 안에는 나무 [시렁](/topic/시렁)이 하나 놓여 있고, 바닥은 흙으로 되어 있다. 나무 시렁 위에는 [한지](/topic/한지)로 싸 놓은 다섯 개의 돌이 있고, 시렁 아래쪽에는 한지로 싸놓은 두 개의 돌이 놓여 있다. 돌은 남근 모양을 하고 있으며, 모두 한지로 싸고 왼새끼를 둘러놓았다. 마을 사람들은 이들 일곱 개의 돌을 칠성님이라고 부르면서 기자치성을 드리면 그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믿고 있다. 한편 아래의 두 개만 원래의 돌이고 나머지는 새로 마련한 돌이라고 한다. 6·25전쟁을 전후하여 돌이 사라져서 마을 어른인 이용기가 강에서 새 돌을 가져다가 모셔 두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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