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inition | 제주도지역에서 정상([정낭](/topic/정낭))에 거처하면서 집안을 보호해주는 신. 예전에 제주도 사람들의 일반 주거는 초가였다. 이에 따라 [마을](/topic/마을)은 초가들이 모여 형성되었다. 이 지역에서는 마을 사람들이 오가는 길에서 집안으로 들어오는 길목을 ‘올레’라고 하였다. 특히 마을에서 집안으로 들어오는 가장[자리](/topic/자리)에는 나무나 돌로 만든 정주목, 정주석을 세웠다. 정주목에는 곧은 낭이라는 뜻으로 ‘정살’ 또는 ‘정낭’을 설치하여 집안 출입을 제한할 수 있는 [대문](/topic/대문) 역할을 하도록 하였다. 제주도 사람들은 이곳에 집안을 지켜주는 주목, 정살(정낭)의 신(神)인 ‘올레신’이 거처하면서 집안 사람을 보호해 준다고 관념하였다. 그리고 굿을 하거나 제사를 지내는 등 일상적이지 않은 음식을 할 때에는 별도로 대접하여 위하여 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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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korname | 김동섭 |
정의 | 제주도지역에서 정상([정낭](/topic/정낭))에 거처하면서 집안을 보호해주는 신. 예전에 제주도 사람들의 일반 주거는 초가였다. 이에 따라 [마을](/topic/마을)은 초가들이 모여 형성되었다. 이 지역에서는 마을 사람들이 오가는 길에서 집안으로 들어오는 길목을 ‘올레’라고 하였다. 특히 마을에서 집안으로 들어오는 가장[자리](/topic/자리)에는 나무나 돌로 만든 정주목, 정주석을 세웠다. 정주목에는 곧은 낭이라는 뜻으로 ‘정살’ 또는 ‘정낭’을 설치하여 집안 출입을 제한할 수 있는 [대문](/topic/대문) 역할을 하도록 하였다. 제주도 사람들은 이곳에 집안을 지켜주는 주목, 정살(정낭)의 신(神)인 ‘올레신’이 거처하면서 집안 사람을 보호해 준다고 관념하였다. 그리고 굿을 하거나 제사를 지내는 등 일상적이지 않은 음식을 할 때에는 별도로 대접하여 위하여 왔다. | 정의 | 제주도지역에서 정상([정낭](/topic/정낭))에 거처하면서 집안을 보호해주는 신. 예전에 제주도 사람들의 일반 주거는 초가였다. 이에 따라 [마을](/topic/마을)은 초가들이 모여 형성되었다. 이 지역에서는 마을 사람들이 오가는 길에서 집안으로 들어오는 길목을 ‘올레’라고 하였다. 특히 마을에서 집안으로 들어오는 가장[자리](/topic/자리)에는 나무나 돌로 만든 정주목, 정주석을 세웠다. 정주목에는 곧은 낭이라는 뜻으로 ‘정살’ 또는 ‘정낭’을 설치하여 집안 출입을 제한할 수 있는 [대문](/topic/대문) 역할을 하도록 하였다. 제주도 사람들은 이곳에 집안을 지켜주는 주목, 정살(정낭)의 신(神)인 ‘올레신’이 거처하면서 집안 사람을 보호해 준다고 관념하였다. 그리고 굿을 하거나 제사를 지내는 등 일상적이지 않은 음식을 할 때에는 별도로 대접하여 위하여 왔다. | 내용 | 일만팔천의 많은 신을 모셔왔던 제주도지역에서는 이들 외에도 문전, 칠성 등 [가신](/topic/가신)(家神)이 존재한다. 이들에 대한 내력담으로는 가 전해온다. 내용은 남편인 문신과 그의 처인 조왕, 아들 일곱 형제, 그리고 첩(妾)인 변소의 신 간의 이야기로서 [계모담](/topic/계모담)(繼母談) 등으로 되어 있다. 문전(門神)의 할아버지는 해만국, 할머니는 달만국이요, 아버지는 남선비, 어머니는 여산 부인이며, 일문전(一門前)은 똑똑하고 영리한 녹디생인이다. 옛날 옛적 남선 고을의 남선비와 여산 고을의 여산 부인이 부부가 되어 살았다. 집안은 가난하여 살림이 궁한데 아들은 하나, 둘…… 일곱 형제나 태어났다. 하루는 여산 부인이 남편에게 제안하였다. “우리가 이래서는 자식들도 많아지고 살 수가 없으니, 무곡(貿穀) 장사나 해보기 어찌합니까?” 남선비는 부인의 의견을 받아들이고 곧 배를 한 척 마련했다. 쌀을 살 밑천이 마련되자 남선비는 처자 권속과 이별하여 남선 고을을 떠났다. 배는 바람 부는 대로 물결 이는 대로 흘러가 오동나라 오동고을에 닿았다. 오동나라 오동고을에는 노일제대귀일의 딸이라는 여인이 있었다. 간악하기로 소문난 여인이었다. 남선비가 독선(獨船)을 잡아 무곡 장사 왔다는 소식을 듣고, 귀일의 딸은 선창가로 부리나케 달려왔다. 남선비의 돈을 긁어내려 해서이다. 귀일의 딸은 우선 있는 아양 없는 아양부터 떨기 시작했다. “남선비님아, 남선비님아, 우리 심심소일로 장기나 두며 놀음놀이나 해보십시다.” 남선비는 매끈한 여인의 아양 소리가 싫지 않았다. 둘이 장기를 두는데 승부는 뻔한 일이었다. 남선비는 타고 간 배도 무곡을 살 돈도 모조리 빼앗기고 말았다. 이젠 갈 수도 올 수도 없는 가련한 신세가 되어 버리고 만 것이다. 남선비는 어쩔 수 없이 귀일의 딸을 첩으로 삼아 그녀에게 끼니를 얻어먹기로 했다. 간악한 첩이 남편을 잘 모실 리가 없었다. 집이라곤 나무 돌쩌귀에 [거적](/topic/거적)문을 단 [수수](/topic/수수)깡 외[기둥](/topic/기둥)의 움막이다. 이 집에서 남선비는 첩이 끓여 준 겨죽만 먹고 지냈다. 이런 생활을 이어가니 몇 해 안 가 눈까지 어두워졌다. 한편 여산 부인은 남편이 돈을 벌어 돌아올까, 연 삼 년을 기다리다가 끝내 소식이 없자 아들들을 불렀다. “너희 아버지가 무곡 장사를 갔는데 여태까지 소식이 없는 것을 보니, 무슨 곡절이 있는 성싶다. 깊은 산중에 올라가서 곧은 나무를 베어다가 배를 하나 지어 주면 너희 아버지를 찾아오겠다.” 이튿날 아들 일곱 형제는 깊은 산중에 올라가 곧은 나무를 베어다가 배 한척을 지어 놓았다. 여산 부인은 일곱 형제와 이별하여 남선 고을을 떠났다. 바람 부는 대로 물결 이는 대로 배를 띄워 오동나라 오동고을에 닿았다. 오동고을에 닿은 여산 부인은 남편을 찾아 헤매었으나 행방이 묘연했다. 발 가는 대로 길이 난 대로 자꾸만 가다가 [기장](/topic/기장) 밭에서 새 쫓는 아이를 만났다. “요 새 저 새 너무 약은 체 마라. 남선비 약은 깐에도 노일제대귀일의 딸 호탕에 들어 수수깡 외기둥 움막에 앉아 겨죽 단지 옆에 끼고, ‘이 개 저 개 주어 저 개!’ 쫓고 있다.” 이 소리에 여산 부인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여산 부인은 아이에게 자세히 물어 남선비 집을 찾아갔다. “지나가는 손인데 날이 저물어 부탁이니 하루 저녁 재워 주기 어쩝니까?” “아이고 설운 부인님아, 우리 집은 집도 좁고 손님 재울 수 없습니다.” 겨죽 단지를 끼고 앉아 대답하는 주인은 분명 남편인 남선비였다. 그러나 눈이 어두운 남편은 부인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자꾸 다그쳐 부탁하는 바람에 남선비는 마지못해 허락을 했다. 여산 부인은 [부엌](/topic/부엌)에 들어가 솥을 열어 보았다. 겨죽이 바닥에 바짝 눌어붙어 있었다. 우선 밥부터 해 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한 번 두 번 솥을 깨끗이 닦아 놓고, 나주영산(羅州榮山) 은옥미(銀玉米)를 씻어 놓아 밥을 지었다. 말끔히 상을 차려 남선비에게 들여가니 남선비는 첫술을 뜨고는 눈물을 주르륵 흘리는 것이다. “설운 부인님아, 이게 어떤 일입니까? 나도 옛날에는 이런 밥도 먹어 보았습니다마는 이 꼴이 되었습니다. 나도 본래 이런 사람이 아닙니다. 남선 고을 남선비가 됩니다. 무곡 장사를 왔다가 노일제대귀일의 딸 홀림에 들어 이 지경이 되고, 이젠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처지입니다.” “아이고 설운 남선비님아, 나를 모르겠습니까? 여산 부인이 됩니다.” 남선비는 깜짝 놀라며 부인의 팔목을 덥석 잡았다. 이윽고 귀일의 딸이 겨 한 되를 치맛자락에 얻어 들고 들어왔다. “이놈 저놈 죽일 놈아, 나는 어디 가서 죽을 듯 살 듯 겨 한 되라도 빌려다가 죽을 쑤어 배 부르게 먹이다 보니, 지나가는 년을 끌어들여 만단정화 이르는구나.” “설운 부인아, 그리 후욕을 하지 말고 어서 내 말을 들어 보라. 여산 고을 큰부인이 나를 찾아왔단다.” 그 말을 듣자 귀일의 딸은 방으로 들어오더니 상냥한 말씨로 [어리](/topic/어리)광을 부려 가며 큰부인 대접을 했다. “아이고 형님아, 오뉴월 한더위에 우릴 찾아오려고 얼마나 고생을 하십니까? 우선 시원히 목욕이나 하고 와서 저녁밥이나 해 먹고 놀기가 어떱니까?” 여산 부인은 순진하게 받아들이고 귀일의 딸의 뒤를 따라 [주천강](/topic/주천강) 연못으로 목욕을 나갔다. “설운 형님아, 어서 옷을 벗으세요. 제가 먼저 등에 물을 놓아 드리리다.” 귀일의 딸은 등을 밀어 주는 척하다가 여산 부인을 물속으로 와락 밀어넣어 버렸다. 여산 부인은 주천강 연못의 수중고혼이 되고 말았다. 귀일의 딸은 여산 부인의 옷을 벗겨 입고 큰부인인 척하며 남선비에게 돌아갔다. “설운 낭군님아, 노일제대귀일의 딸의 행실이 괘씸하기에 주천강 연못에 가서 죽여 두고 왔습니다.” “하하, 그년 잘 죽였다. 내 원수 갚았구나. 자 이제 우리 고향으로 돌아가자.” 남선비와 귀일의 딸은 남선고을로 향하였다. 남선비 아들 일곱 형제는 부모님을 마중하러 선창가로 나왔다. 배가 선창에 닿았다. 아들들은 부모를 맞는 정성으로 각각 다리를 놓아갔다. 큰아들은 [망건](/topic/망건)을 벗어 다리를 놓고, 둘째는 [두루마기](/topic/두루마기)를 벗어 다리를 놓고, 셋째는 [적삼](/topic/적삼)을 벗어 다리를 놓고, 넷째는 [고의](/topic/고의)를 벗어 다리를 놓고, 다섯째는 [행전](/topic/행전)을 벗어 다리를 놓고, 여섯째는 [버선](/topic/버선)을 벗어 다리를 놓는다. 그런데 영민한 막내아들 녹디생인은 칼날을 뒤로 세워 다리를 놓은 것이 아닌가. 이상히 생각한 큰형이 왜 그러느냐고 묻자 녹디생인이 대답했다. “아버님은 우리 아버님이 틀림없습니다마는 어머님은 우리 어머님 같지가 않습니다.” 그러면서 어머님이 우리 어머님인지 아닌지 알려면 배에서 내려서 집을 찾아가는 것을 보면, 또 집에 가서 우리 밥상을 차려 놓는 것을 보면 알 [도리](/topic/도리)가 있을 것이라 했다. 형들은 동생의 말대로 시험해 보기로 하였다. 이윽고 부모님이 내리고 그들은 집을 향해 갔다. 부모를 앞세우고 일곱 형제가 뒤를 따랐다. 눈이 어두운 남선비는 길을 알 리가 없었다. 그런데 어머니가 제대로 길을 [가지](/topic/가지) 못하고 이 [골목](/topic/골목)으로도 들어가려 하고 저 골목으로도 들어가려 하면서 우왕좌왕했다. “어머님은 어째서 벌써 길도 잊었습니까?” “애들아, 말도 마라. 너희 아버지 찾아 오느라고 하도 고생을 해서 정신이 어찔어찔하단다.” 형제들은 확실히 석연치 않은 데가 있다고 생각했다. 겨우 집을 찾아 들어가 저녁을 하여 밥상을 보는데 아버님께 놓던 상(床)은 자식에게, 자식에게 놓던 상(床)은 아버님께 가 뒤죽박죽이었다. “어머님은 어째서 밥상도 벌써 잊었습니까?” “아이고 애들아, 말도 마라. 너희 아버지 찾느라고 너무 고생해서 정신이 없단다.” 그날부터 일곱 형제는 어머님을 그리워하며 눈물로 세월을 보냈다. 귀일의 딸도 이 눈치를 알아차렸다. 그러자 아들들에게 무슨 변을 당할까 봐 걱정이 되었다. 그리하여 귀일의 딸은 일곱 형제를 없애기 위한 계략을 꾸몄다. 어느 날 귀일의 딸은 배가 아프다며 방안을 팽팽 돌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부인을 사랑하는 남선비는 부인이 사경에 이르러 가자 혼겁을 먹고 당황했다. “나를 조금이라도 살릴 마음이 있거든 요기로 요길 가다 보십시오. 대로변에 점쟁이가 있을 터이니 거기 가서 문복이나 해 보아 주십시오.” 이 말에 남선비가 점을 치러 먼 문간 바깥으로 나가니 귀일의 딸은 얼른 일어나 울타리를 뛰어넘어 지름길을 잡아 달려갔다. 그러곤 대로변에서 얼굴을 가리고 스스로 점쟁이인 체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곧 남선비가 허둥지둥 달려와 자신의 부인 병세에 대해 일렀다. 이에 귀일의 딸은 손가락을 들어 오므렸다 폈다 하며 짚어 보는 척하다가, 일곱 형제 간을 내어 먹어야 [신병](/topic/신병)에 좋다고 점괘를 내렸다. 남선비가 그 말을 듣고 집에 돌아왔는데 귀일의 딸은 이미 지름길로 먼저 와서 바닥에 뒹굴고 있었다. “아야 배여, 아야 배여! 가니 무어라고 합니까?” “일곱 형제 간을 내어 먹어야 좋겠다고 하더라.” “아이고, 할 수 없구나. 설운 낭군님아, 그러거든 아들 일곱 형제 간을 내어 주십시오. 내 살아나서 한꺼번에 세 쌍둥이씩 세 번만 낳으면 형제가 아홉 형제가 될 게 아닙니까?” 남선비는 부인의 말이 그럴싸하여 은장도를 꺼내어 슬근슬근 갈기 시작했다. 때마침 뒷집의 청태산 마구할망이 불을 빌리러 왔다가 이 광경을 보았다. “남선비야, 어떤 일로 칼을 가느냐?” “우리 집 부인이 삽시에 신병이 나서 사경이 되어가 문복을 하고 보니 아들 일곱 형제 간을 내어 먹어야 낫겠다 하기에 간을 내려고 칼을 갑니다.” 청태산 마구할망은 혼겁이 나서 밖으로 내달았다. 네거리에 가 보니 남선비의 아들 일곱 형제가 있었다. 마구할망은 이에 남선비의 일을 형제에게 알려 주었다. 형제들은 이 말을 듣고 놀라서 울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막내 녹디생인이 의견을 내놓았다. “설운 형님들아, 그리 울지 말고 여기 서 있으면 제가 어떻게 하든 간에 아버님이 가는 칼을 뺏어 오리다.” 집에 갔더니 남선비가 칼을 갈고 있었다. “아버님아, 어떤 일로 칼을 갑니까?” “너희 어머니가 신병이 나 사경에 이르므로 어디 가서 문복하였더니 너희들 일곱 형제 간을 내어 먹어야 낫는다고 하기에 간을 내려고 칼을 가노라.” “아버님아, 그거 좋은 일입니다. 어머님 신병을 고쳐야 합니다. 그런데 아버님아, 아버님 손으로 우리 일곱 형제 간을 내면 송장 일곱을 묻어야 할 게 아닙니까. 흙 한 [삼태기](/topic/삼태기)씩만 덮어 주려 해도 일곱 삼태기가 아닙니까? 그 칼을 이리 주십시오, 제가 형님들을 깊은 곳에 데리고 가서 여섯 형님의 간을 내어 오겠습니다. 어머님이 먹어 봐서 효과가 있거든 저 하나는 아버님 손으로 간을 내옵소서.” 남선비가 그러자고 하고 칼을 내 주니 녹디생인은 형님들을 데리고 눈물로 다리를 놓으며 깊은 곳으로 향하였다. 가다가다 잠깐 잠이 들었다. 그러더니 누군가 나타나 말을 걸었다. “설운 아기들아, 어서 빨리 눈을 떠 보아라. 산중에서 노루 한 [마리](/topic/마리)가 내려올 것이니 그 노루를 잡아서 죽일 판으로 누르고 있으면 알 도리 있으리라.” 눈을 번쩍 뜨고 보니 과연 노루 한 마리가 저 산에서 뛰어 내려오고 있었다. 일곱 형제는 몰려들어 그 노루를 잡았다. 그러자 노루가 말했다. “설운 도련들아, 나를 죽이지 말고 내 뒤에 보면 산돼지 일곱 마리가 내려오고 있으니 그걸 잡으십시오. 어미는 씨 전종할 것으로 남겨두고 새끼 여섯 마리를 잡아 간을 내어가면 될 게 아닙니까?” 일곱 형제는 거짓말 아니냐면서 노루 꼬리를 짤막하게 끊고 엉덩이에 [백지](/topic/백지) 한 장을 붙여 놓았다. 그래서 노루 몸뚱이가 아롱다롱하고 노루 꼬리가 짧아졌다. 노루를 놓아 주고 잠시 있으니 과연 산돼지 일곱 마리가 저 산쪽에서 내려오는 것이었다. 노루 말대로 어미는 씨 전할 것으로 살려 주고 새끼 여섯 마리를 잡아 간을 내었다. 일곱 형제는 산돼지 간을 돌돌 싸 가지고 [마을](/topic/마을)로 돌아왔다. “설운 형님들일랑 동서남북 중앙으로 벌려 서십시오. 대기해 있다가 나의 큰소리가 들리거든 왈칵 달려드십시오.” 녹디생인은 이렇게 형들에게 당부하고 멀리 집 주위에 둘러 세웠다. 그러고는 산돼지 간을 들고 집으로 들어갔다. 귀일의 딸은 그때까지도 배가 아프다며 뒹굴고 있었다. “어머님아, 이걸 잡수어 보십시오. 형님들 여섯 형제 간을 내어 왔습니다.” “아이고 설운 아기야, 효자로구나. 중병 든 데에 약 먹는 거 보는 법 아니다. 너는 저기 나가 있거라.” 녹디생인은 바깥으로 나오면서 창 구멍을 하나 뚫어 몰래 거동을 살폈다. 귀일의 딸은 간 여섯 개를 먹는 체하다가 [자리](/topic/자리) 밑에 묻어 놓고 피만 입술에 바르는 척 마는 척하고 있다. 녹디생인이 문을 열고 들어갔다. “어머님아, 약 다 자십데까?” “다 먹었노라.” “어머님아, 약 자시니 신병이 어떻습니까?” “조금 나아 뵌다마는 하나만 더 먹었으면 아주 활짝 나아질 듯하다.” “어머님아, 그러면 마지막으로 어머님 머리에 이나 잡아 드리겠습니다.” “그 효도 고맙다만 중병 든 데에 이 잡는 법 아니다.” “그러면 방 안이나 치워 드리리다.” “이거 무슨 말이냐? 중병 든 데에 방 안 치우는 법 아니다.” 녹디생인은 화를 벌컥 내며 달려들어 귀일의 딸의 쉰 대 자 머리를 좌우로 핑핑 감아 한쪽으로 잡아 엎질렀다. 그러고는 자리 밑에 숨겨 놓은 간 여섯 개를 한 손에 세 개씩 들고 [지붕](/topic/지붕) 용[마루](/topic/마루) 높은 곳에 올라가 “요 동네 어른들아, 저 동네 어른들아, 의붓어머니 의붓자식 있는 사람들아, 요거 보고 조심하십시오! 설운 형님들이여, 동서로 달려드십시오!” 하고 큰소리로 외쳤다. 이때를 타 형들도 모두 달려들었다. “이게 무슨 일인가?” 남선비는 달아날 길을 잃어 엉겁결에 ‘올레’로 내닫다가 거기에 걸려 있는 [정낭](/topic/정낭)에 목이 걸려 죽었다. 그래서 주목지신, 정살지신이 되었다. 귀일의 딸은 아들들이 달려드는 바람에 바깥으로 도망칠 수 없어 벽을 허위 뜯어 구멍을 뚫고 변소로 도망쳐 머리털로 목을 매어 죽었다. 변소의 신인 측도부인이 된 것이다. 일곱 형제가 달려들어 죽은 위에 다시 복수하려고 두 다리를 찢어 발겨 디딜팡(디딤판)을 마련하고, 대가리는 끊어 돗[도고리](/topic/도고리)(돼지밥그릇)를 마련하고, 머릿결은 끊어 던지니 저 바다에 가 해초가 되었다. 입은 끓어 던지니 바다의 송사리가 되고, 손톱․발톱은 끊어 던져 버리니 쇠굼벗(조개), 돌굼벗(조개)이 되고, 배꼽은 끊어서 던져 버리니 굼벵이가 되고, 항문은 끊어 던져 버리니 대전복과 소전복이 되고, 육신은 푹푹 빻아서 바람에 날려 버리니 각다귀와 모기가 되었다. 분풀이를 해 놓고 일곱 형제는 모조리 서천꽃밭에 올라갔다. 이 꽃밭은 뼈 살 꽃, 살 살 꽃, 도 환생 꽃 등 가지가지 꽃을 가꾸는 곳이다. 일곱 형제는 꽃을 몇 송이 얻어내고, 그 길로 오동나라 오동고을의 주천강 연못으로 달려가 축수를 드렸다. 그랬더니 삽시에 연못이 잦아들면서 바닥에 어머니의 뼈가 드러났다. 이 뼈 저 뼈 모아 놓아 도환생 꽃을 위에 놓고 금봉채로 한 번 후려쳤다. 그랬더니 어머니가 머리를 긁으며 살아났다. 어머님을 살려낸 일곱 형제는 집으로 돌아왔다. “어머님아, 춘하추동 사시절을 물속에서만 살았으니 몸인들 안 추울 리가 있겠습니까? 어머님일랑 하루 세 번 더운 불을 쬐면서 조왕 할망으로 앉아 얻어먹기 마련하십시오.” 그래서 어머니는 조왕 할망이 되어 들어[서고](/topic/서고), 일곱 형제는 각각 자기의 직분을 차지하여 신들이 되었다. 큰형은 동방 청대[장군](/topic/장군), 둘째 형은 서방 백대장군, 셋째 형은 남방 적대장군, 넷째 형은 북방 흑대장군, 다섯째 형은 중앙 황대장군, 여섯째 형은 뒷문전으로 들어섰다. 마지막으로 영리한 녹디생인은 일문전이 되어 들어섰다. 그 이후로 오늘날에도 명절, 기일 제사 때 [문전제](/topic/문전제)를 지내고 나서 그 [제상](/topic/제상)의 제물을 조금씩 떠서 지붕 위에 올린 다음 다시 조금씩 떠서 어머니신인 조왕에게 올리는 것이다. 그때 조왕과 변소의 신인 측도부인은 처첩 관계이기 때문에 부엌과 변소는 마주서면 좋지 않은 법이다. 부엌과 변소는 멀어야 하고, 변소의 것은 돌 하나 나무 막대기 하나라 하더라도 부엌으로 가져오면 좋지 못하다는 것은 이 때문이다. 큰굿 때 집안의 각처를 관장하고 수호하는 신에게 기원하는 제차(祭次)로 각도비념을 한다. 이때 가내의 신들을 위하면서 ‘주목, 정살지신’이라 하여 집의 출입로를 지켜 주는 신도 위한다. 서귀포시 남원읍 태흥리의 이영숙(여, 1969년생) 씨에 의하면 집안 기일 제사를 할 때면 언제나 제(祭)를 치르고 나서 제상에 올린 제물을 조금씩 떼어내 걸립하고, 지붕 위와 올레의 정한 곳을 찾아 대접하면서 위하고 있다고 한다. 서귀포시 남원읍 한남리의 오영종(남, 1929년생) 씨에 의하면 해마다 정초가 되면, 택일하여 올레코시를 하는데 이때 심방을 불러 위한다고 한다. 결혼 등 집안에 큰일이 있을 때도 심방을 불러 위했다고 한다. 서귀포시 성산읍 성산리의 채영아(여, 1961년생) 씨에 의하면 평시에 별도로 위하는 경우는 없었다고 한다. 기일 제사가 있을 때 제물을 문전제의 제상에 차린 다음 단헌단배(單獻單拜)로 행제한다. 제사가 끝난 후 집사(執事)가 ‘걸립’하여 지붕 위로 올려 위하고, 또 하나는 올레로 가져와서 올리는 것으로 위해 주고 있다고 한다. | 참고문헌 | 제주도무속연구 (현용준, 집문당, 1986) 제주도부락지 Ⅲ (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소, 1990) 제주전래[농기구](/topic/농기구) (김동섭, 민속원, 2004) 여성[농업](/topic/농업)인의 삶과 전통 (김동섭 외, 여성농업인중앙회, 2005) 한국의 가정신앙-제주도 (김동섭 외, 국립문화재연구소, 2008) 제주유식[마을](/topic/마을)제의 전승양상 (김동섭, 제주도, 2009) 제주민속문화이해 (김동섭, 거마문화사, 2010) | 내용 | 일만팔천의 많은 신을 모셔왔던 제주도지역에서는 이들 외에도 문전, 칠성 등 [가신](/topic/가신)(家神)이 존재한다. 이들에 대한 내력담으로는 가 전해온다. 내용은 남편인 문신과 그의 처인 조왕, 아들 일곱 형제, 그리고 첩(妾)인 변소의 신 간의 이야기로서 [계모담](/topic/계모담)(繼母談) 등으로 되어 있다. 문전(門神)의 할아버지는 해만국, 할머니는 달만국이요, 아버지는 남선비, 어머니는 여산 부인이며, 일문전(一門前)은 똑똑하고 영리한 녹디생인이다. 옛날 옛적 남선 고을의 남선비와 여산 고을의 여산 부인이 부부가 되어 살았다. 집안은 가난하여 살림이 궁한데 아들은 하나, 둘…… 일곱 형제나 태어났다. 하루는 여산 부인이 남편에게 제안하였다. “우리가 이래서는 자식들도 많아지고 살 수가 없으니, 무곡(貿穀) 장사나 해보기 어찌합니까?” 남선비는 부인의 의견을 받아들이고 곧 배를 한 척 마련했다. 쌀을 살 밑천이 마련되자 남선비는 처자 권속과 이별하여 남선 고을을 떠났다. 배는 바람 부는 대로 물결 이는 대로 흘러가 오동나라 오동고을에 닿았다. 오동나라 오동고을에는 노일제대귀일의 딸이라는 여인이 있었다. 간악하기로 소문난 여인이었다. 남선비가 독선(獨船)을 잡아 무곡 장사 왔다는 소식을 듣고, 귀일의 딸은 선창가로 부리나케 달려왔다. 남선비의 돈을 긁어내려 해서이다. 귀일의 딸은 우선 있는 아양 없는 아양부터 떨기 시작했다. “남선비님아, 남선비님아, 우리 심심소일로 장기나 두며 놀음놀이나 해보십시다.” 남선비는 매끈한 여인의 아양 소리가 싫지 않았다. 둘이 장기를 두는데 승부는 뻔한 일이었다. 남선비는 타고 간 배도 무곡을 살 돈도 모조리 빼앗기고 말았다. 이젠 갈 수도 올 수도 없는 가련한 신세가 되어 버리고 만 것이다. 남선비는 어쩔 수 없이 귀일의 딸을 첩으로 삼아 그녀에게 끼니를 얻어먹기로 했다. 간악한 첩이 남편을 잘 모실 리가 없었다. 집이라곤 나무 돌쩌귀에 [거적](/topic/거적)문을 단 [수수](/topic/수수)깡 외[기둥](/topic/기둥)의 움막이다. 이 집에서 남선비는 첩이 끓여 준 겨죽만 먹고 지냈다. 이런 생활을 이어가니 몇 해 안 가 눈까지 어두워졌다. 한편 여산 부인은 남편이 돈을 벌어 돌아올까, 연 삼 년을 기다리다가 끝내 소식이 없자 아들들을 불렀다. “너희 아버지가 무곡 장사를 갔는데 여태까지 소식이 없는 것을 보니, 무슨 곡절이 있는 성싶다. 깊은 산중에 올라가서 곧은 나무를 베어다가 배를 하나 지어 주면 너희 아버지를 찾아오겠다.” 이튿날 아들 일곱 형제는 깊은 산중에 올라가 곧은 나무를 베어다가 배 한척을 지어 놓았다. 여산 부인은 일곱 형제와 이별하여 남선 고을을 떠났다. 바람 부는 대로 물결 이는 대로 배를 띄워 오동나라 오동고을에 닿았다. 오동고을에 닿은 여산 부인은 남편을 찾아 헤매었으나 행방이 묘연했다. 발 가는 대로 길이 난 대로 자꾸만 가다가 [기장](/topic/기장) 밭에서 새 쫓는 아이를 만났다. “요 새 저 새 너무 약은 체 마라. 남선비 약은 깐에도 노일제대귀일의 딸 호탕에 들어 수수깡 외기둥 움막에 앉아 겨죽 단지 옆에 끼고, ‘이 개 저 개 주어 저 개!’ 쫓고 있다.” 이 소리에 여산 부인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여산 부인은 아이에게 자세히 물어 남선비 집을 찾아갔다. “지나가는 손인데 날이 저물어 부탁이니 하루 저녁 재워 주기 어쩝니까?” “아이고 설운 부인님아, 우리 집은 집도 좁고 손님 재울 수 없습니다.” 겨죽 단지를 끼고 앉아 대답하는 주인은 분명 남편인 남선비였다. 그러나 눈이 어두운 남편은 부인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자꾸 다그쳐 부탁하는 바람에 남선비는 마지못해 허락을 했다. 여산 부인은 [부엌](/topic/부엌)에 들어가 솥을 열어 보았다. 겨죽이 바닥에 바짝 눌어붙어 있었다. 우선 밥부터 해 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한 번 두 번 솥을 깨끗이 닦아 놓고, 나주영산(羅州榮山) 은옥미(銀玉米)를 씻어 놓아 밥을 지었다. 말끔히 상을 차려 남선비에게 들여가니 남선비는 첫술을 뜨고는 눈물을 주르륵 흘리는 것이다. “설운 부인님아, 이게 어떤 일입니까? 나도 옛날에는 이런 밥도 먹어 보았습니다마는 이 꼴이 되었습니다. 나도 본래 이런 사람이 아닙니다. 남선 고을 남선비가 됩니다. 무곡 장사를 왔다가 노일제대귀일의 딸 홀림에 들어 이 지경이 되고, 이젠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처지입니다.” “아이고 설운 남선비님아, 나를 모르겠습니까? 여산 부인이 됩니다.” 남선비는 깜짝 놀라며 부인의 팔목을 덥석 잡았다. 이윽고 귀일의 딸이 겨 한 되를 치맛자락에 얻어 들고 들어왔다. “이놈 저놈 죽일 놈아, 나는 어디 가서 죽을 듯 살 듯 겨 한 되라도 빌려다가 죽을 쑤어 배 부르게 먹이다 보니, 지나가는 년을 끌어들여 만단정화 이르는구나.” “설운 부인아, 그리 후욕을 하지 말고 어서 내 말을 들어 보라. 여산 고을 큰부인이 나를 찾아왔단다.” 그 말을 듣자 귀일의 딸은 방으로 들어오더니 상냥한 말씨로 [어리](/topic/어리)광을 부려 가며 큰부인 대접을 했다. “아이고 형님아, 오뉴월 한더위에 우릴 찾아오려고 얼마나 고생을 하십니까? 우선 시원히 목욕이나 하고 와서 저녁밥이나 해 먹고 놀기가 어떱니까?” 여산 부인은 순진하게 받아들이고 귀일의 딸의 뒤를 따라 [주천강](/topic/주천강) 연못으로 목욕을 나갔다. “설운 형님아, 어서 옷을 벗으세요. 제가 먼저 등에 물을 놓아 드리리다.” 귀일의 딸은 등을 밀어 주는 척하다가 여산 부인을 물속으로 와락 밀어넣어 버렸다. 여산 부인은 주천강 연못의 수중고혼이 되고 말았다. 귀일의 딸은 여산 부인의 옷을 벗겨 입고 큰부인인 척하며 남선비에게 돌아갔다. “설운 낭군님아, 노일제대귀일의 딸의 행실이 괘씸하기에 주천강 연못에 가서 죽여 두고 왔습니다.” “하하, 그년 잘 죽였다. 내 원수 갚았구나. 자 이제 우리 고향으로 돌아가자.” 남선비와 귀일의 딸은 남선고을로 향하였다. 남선비 아들 일곱 형제는 부모님을 마중하러 선창가로 나왔다. 배가 선창에 닿았다. 아들들은 부모를 맞는 정성으로 각각 다리를 놓아갔다. 큰아들은 [망건](/topic/망건)을 벗어 다리를 놓고, 둘째는 [두루마기](/topic/두루마기)를 벗어 다리를 놓고, 셋째는 [적삼](/topic/적삼)을 벗어 다리를 놓고, 넷째는 [고의](/topic/고의)를 벗어 다리를 놓고, 다섯째는 [행전](/topic/행전)을 벗어 다리를 놓고, 여섯째는 [버선](/topic/버선)을 벗어 다리를 놓는다. 그런데 영민한 막내아들 녹디생인은 칼날을 뒤로 세워 다리를 놓은 것이 아닌가. 이상히 생각한 큰형이 왜 그러느냐고 묻자 녹디생인이 대답했다. “아버님은 우리 아버님이 틀림없습니다마는 어머님은 우리 어머님 같지가 않습니다.” 그러면서 어머님이 우리 어머님인지 아닌지 알려면 배에서 내려서 집을 찾아가는 것을 보면, 또 집에 가서 우리 밥상을 차려 놓는 것을 보면 알 [도리](/topic/도리)가 있을 것이라 했다. 형들은 동생의 말대로 시험해 보기로 하였다. 이윽고 부모님이 내리고 그들은 집을 향해 갔다. 부모를 앞세우고 일곱 형제가 뒤를 따랐다. 눈이 어두운 남선비는 길을 알 리가 없었다. 그런데 어머니가 제대로 길을 [가지](/topic/가지) 못하고 이 [골목](/topic/골목)으로도 들어가려 하고 저 골목으로도 들어가려 하면서 우왕좌왕했다. “어머님은 어째서 벌써 길도 잊었습니까?” “애들아, 말도 마라. 너희 아버지 찾아 오느라고 하도 고생을 해서 정신이 어찔어찔하단다.” 형제들은 확실히 석연치 않은 데가 있다고 생각했다. 겨우 집을 찾아 들어가 저녁을 하여 밥상을 보는데 아버님께 놓던 상(床)은 자식에게, 자식에게 놓던 상(床)은 아버님께 가 뒤죽박죽이었다. “어머님은 어째서 밥상도 벌써 잊었습니까?” “아이고 애들아, 말도 마라. 너희 아버지 찾느라고 너무 고생해서 정신이 없단다.” 그날부터 일곱 형제는 어머님을 그리워하며 눈물로 세월을 보냈다. 귀일의 딸도 이 눈치를 알아차렸다. 그러자 아들들에게 무슨 변을 당할까 봐 걱정이 되었다. 그리하여 귀일의 딸은 일곱 형제를 없애기 위한 계략을 꾸몄다. 어느 날 귀일의 딸은 배가 아프다며 방안을 팽팽 돌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부인을 사랑하는 남선비는 부인이 사경에 이르러 가자 혼겁을 먹고 당황했다. “나를 조금이라도 살릴 마음이 있거든 요기로 요길 가다 보십시오. 대로변에 점쟁이가 있을 터이니 거기 가서 문복이나 해 보아 주십시오.” 이 말에 남선비가 점을 치러 먼 문간 바깥으로 나가니 귀일의 딸은 얼른 일어나 울타리를 뛰어넘어 지름길을 잡아 달려갔다. 그러곤 대로변에서 얼굴을 가리고 스스로 점쟁이인 체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곧 남선비가 허둥지둥 달려와 자신의 부인 병세에 대해 일렀다. 이에 귀일의 딸은 손가락을 들어 오므렸다 폈다 하며 짚어 보는 척하다가, 일곱 형제 간을 내어 먹어야 [신병](/topic/신병)에 좋다고 점괘를 내렸다. 남선비가 그 말을 듣고 집에 돌아왔는데 귀일의 딸은 이미 지름길로 먼저 와서 바닥에 뒹굴고 있었다. “아야 배여, 아야 배여! 가니 무어라고 합니까?” “일곱 형제 간을 내어 먹어야 좋겠다고 하더라.” “아이고, 할 수 없구나. 설운 낭군님아, 그러거든 아들 일곱 형제 간을 내어 주십시오. 내 살아나서 한꺼번에 세 쌍둥이씩 세 번만 낳으면 형제가 아홉 형제가 될 게 아닙니까?” 남선비는 부인의 말이 그럴싸하여 은장도를 꺼내어 슬근슬근 갈기 시작했다. 때마침 뒷집의 청태산 마구할망이 불을 빌리러 왔다가 이 광경을 보았다. “남선비야, 어떤 일로 칼을 가느냐?” “우리 집 부인이 삽시에 신병이 나서 사경이 되어가 문복을 하고 보니 아들 일곱 형제 간을 내어 먹어야 낫겠다 하기에 간을 내려고 칼을 갑니다.” 청태산 마구할망은 혼겁이 나서 밖으로 내달았다. 네거리에 가 보니 남선비의 아들 일곱 형제가 있었다. 마구할망은 이에 남선비의 일을 형제에게 알려 주었다. 형제들은 이 말을 듣고 놀라서 울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막내 녹디생인이 의견을 내놓았다. “설운 형님들아, 그리 울지 말고 여기 서 있으면 제가 어떻게 하든 간에 아버님이 가는 칼을 뺏어 오리다.” 집에 갔더니 남선비가 칼을 갈고 있었다. “아버님아, 어떤 일로 칼을 갑니까?” “너희 어머니가 신병이 나 사경에 이르므로 어디 가서 문복하였더니 너희들 일곱 형제 간을 내어 먹어야 낫는다고 하기에 간을 내려고 칼을 가노라.” “아버님아, 그거 좋은 일입니다. 어머님 신병을 고쳐야 합니다. 그런데 아버님아, 아버님 손으로 우리 일곱 형제 간을 내면 송장 일곱을 묻어야 할 게 아닙니까. 흙 한 [삼태기](/topic/삼태기)씩만 덮어 주려 해도 일곱 삼태기가 아닙니까? 그 칼을 이리 주십시오, 제가 형님들을 깊은 곳에 데리고 가서 여섯 형님의 간을 내어 오겠습니다. 어머님이 먹어 봐서 효과가 있거든 저 하나는 아버님 손으로 간을 내옵소서.” 남선비가 그러자고 하고 칼을 내 주니 녹디생인은 형님들을 데리고 눈물로 다리를 놓으며 깊은 곳으로 향하였다. 가다가다 잠깐 잠이 들었다. 그러더니 누군가 나타나 말을 걸었다. “설운 아기들아, 어서 빨리 눈을 떠 보아라. 산중에서 노루 한 [마리](/topic/마리)가 내려올 것이니 그 노루를 잡아서 죽일 판으로 누르고 있으면 알 도리 있으리라.” 눈을 번쩍 뜨고 보니 과연 노루 한 마리가 저 산에서 뛰어 내려오고 있었다. 일곱 형제는 몰려들어 그 노루를 잡았다. 그러자 노루가 말했다. “설운 도련들아, 나를 죽이지 말고 내 뒤에 보면 산돼지 일곱 마리가 내려오고 있으니 그걸 잡으십시오. 어미는 씨 전종할 것으로 남겨두고 새끼 여섯 마리를 잡아 간을 내어가면 될 게 아닙니까?” 일곱 형제는 거짓말 아니냐면서 노루 꼬리를 짤막하게 끊고 엉덩이에 [백지](/topic/백지) 한 장을 붙여 놓았다. 그래서 노루 몸뚱이가 아롱다롱하고 노루 꼬리가 짧아졌다. 노루를 놓아 주고 잠시 있으니 과연 산돼지 일곱 마리가 저 산쪽에서 내려오는 것이었다. 노루 말대로 어미는 씨 전할 것으로 살려 주고 새끼 여섯 마리를 잡아 간을 내었다. 일곱 형제는 산돼지 간을 돌돌 싸 가지고 [마을](/topic/마을)로 돌아왔다. “설운 형님들일랑 동서남북 중앙으로 벌려 서십시오. 대기해 있다가 나의 큰소리가 들리거든 왈칵 달려드십시오.” 녹디생인은 이렇게 형들에게 당부하고 멀리 집 주위에 둘러 세웠다. 그러고는 산돼지 간을 들고 집으로 들어갔다. 귀일의 딸은 그때까지도 배가 아프다며 뒹굴고 있었다. “어머님아, 이걸 잡수어 보십시오. 형님들 여섯 형제 간을 내어 왔습니다.” “아이고 설운 아기야, 효자로구나. 중병 든 데에 약 먹는 거 보는 법 아니다. 너는 저기 나가 있거라.” 녹디생인은 바깥으로 나오면서 창 구멍을 하나 뚫어 몰래 거동을 살폈다. 귀일의 딸은 간 여섯 개를 먹는 체하다가 [자리](/topic/자리) 밑에 묻어 놓고 피만 입술에 바르는 척 마는 척하고 있다. 녹디생인이 문을 열고 들어갔다. “어머님아, 약 다 자십데까?” “다 먹었노라.” “어머님아, 약 자시니 신병이 어떻습니까?” “조금 나아 뵌다마는 하나만 더 먹었으면 아주 활짝 나아질 듯하다.” “어머님아, 그러면 마지막으로 어머님 머리에 이나 잡아 드리겠습니다.” “그 효도 고맙다만 중병 든 데에 이 잡는 법 아니다.” “그러면 방 안이나 치워 드리리다.” “이거 무슨 말이냐? 중병 든 데에 방 안 치우는 법 아니다.” 녹디생인은 화를 벌컥 내며 달려들어 귀일의 딸의 쉰 대 자 머리를 좌우로 핑핑 감아 한쪽으로 잡아 엎질렀다. 그러고는 자리 밑에 숨겨 놓은 간 여섯 개를 한 손에 세 개씩 들고 [지붕](/topic/지붕) 용[마루](/topic/마루) 높은 곳에 올라가 “요 동네 어른들아, 저 동네 어른들아, 의붓어머니 의붓자식 있는 사람들아, 요거 보고 조심하십시오! 설운 형님들이여, 동서로 달려드십시오!” 하고 큰소리로 외쳤다. 이때를 타 형들도 모두 달려들었다. “이게 무슨 일인가?” 남선비는 달아날 길을 잃어 엉겁결에 ‘올레’로 내닫다가 거기에 걸려 있는 [정낭](/topic/정낭)에 목이 걸려 죽었다. 그래서 주목지신, 정살지신이 되었다. 귀일의 딸은 아들들이 달려드는 바람에 바깥으로 도망칠 수 없어 벽을 허위 뜯어 구멍을 뚫고 변소로 도망쳐 머리털로 목을 매어 죽었다. 변소의 신인 측도부인이 된 것이다. 일곱 형제가 달려들어 죽은 위에 다시 복수하려고 두 다리를 찢어 발겨 디딜팡(디딤판)을 마련하고, 대가리는 끊어 돗[도고리](/topic/도고리)(돼지밥그릇)를 마련하고, 머릿결은 끊어 던지니 저 바다에 가 해초가 되었다. 입은 끓어 던지니 바다의 송사리가 되고, 손톱․발톱은 끊어 던져 버리니 쇠굼벗(조개), 돌굼벗(조개)이 되고, 배꼽은 끊어서 던져 버리니 굼벵이가 되고, 항문은 끊어 던져 버리니 대전복과 소전복이 되고, 육신은 푹푹 빻아서 바람에 날려 버리니 각다귀와 모기가 되었다. 분풀이를 해 놓고 일곱 형제는 모조리 서천꽃밭에 올라갔다. 이 꽃밭은 뼈 살 꽃, 살 살 꽃, 도 환생 꽃 등 가지가지 꽃을 가꾸는 곳이다. 일곱 형제는 꽃을 몇 송이 얻어내고, 그 길로 오동나라 오동고을의 주천강 연못으로 달려가 축수를 드렸다. 그랬더니 삽시에 연못이 잦아들면서 바닥에 어머니의 뼈가 드러났다. 이 뼈 저 뼈 모아 놓아 도환생 꽃을 위에 놓고 금봉채로 한 번 후려쳤다. 그랬더니 어머니가 머리를 긁으며 살아났다. 어머님을 살려낸 일곱 형제는 집으로 돌아왔다. “어머님아, 춘하추동 사시절을 물속에서만 살았으니 몸인들 안 추울 리가 있겠습니까? 어머님일랑 하루 세 번 더운 불을 쬐면서 조왕 할망으로 앉아 얻어먹기 마련하십시오.” 그래서 어머니는 조왕 할망이 되어 들어[서고](/topic/서고), 일곱 형제는 각각 자기의 직분을 차지하여 신들이 되었다. 큰형은 동방 청대[장군](/topic/장군), 둘째 형은 서방 백대장군, 셋째 형은 남방 적대장군, 넷째 형은 북방 흑대장군, 다섯째 형은 중앙 황대장군, 여섯째 형은 뒷문전으로 들어섰다. 마지막으로 영리한 녹디생인은 일문전이 되어 들어섰다. 그 이후로 오늘날에도 명절, 기일 제사 때 [문전제](/topic/문전제)를 지내고 나서 그 [제상](/topic/제상)의 제물을 조금씩 떠서 지붕 위에 올린 다음 다시 조금씩 떠서 어머니신인 조왕에게 올리는 것이다. 그때 조왕과 변소의 신인 측도부인은 처첩 관계이기 때문에 부엌과 변소는 마주서면 좋지 않은 법이다. 부엌과 변소는 멀어야 하고, 변소의 것은 돌 하나 나무 막대기 하나라 하더라도 부엌으로 가져오면 좋지 못하다는 것은 이 때문이다. 큰굿 때 집안의 각처를 관장하고 수호하는 신에게 기원하는 제차(祭次)로 각도비념을 한다. 이때 가내의 신들을 위하면서 ‘주목, 정살지신’이라 하여 집의 출입로를 지켜 주는 신도 위한다. 서귀포시 남원읍 태흥리의 이영숙(여, 1969년생) 씨에 의하면 집안 기일 제사를 할 때면 언제나 제(祭)를 치르고 나서 제상에 올린 제물을 조금씩 떼어내 걸립하고, 지붕 위와 올레의 정한 곳을 찾아 대접하면서 위하고 있다고 한다. 서귀포시 남원읍 한남리의 오영종(남, 1929년생) 씨에 의하면 해마다 정초가 되면, 택일하여 올레코시를 하는데 이때 심방을 불러 위한다고 한다. 결혼 등 집안에 큰일이 있을 때도 심방을 불러 위했다고 한다. 서귀포시 성산읍 성산리의 채영아(여, 1961년생) 씨에 의하면 평시에 별도로 위하는 경우는 없었다고 한다. 기일 제사가 있을 때 제물을 문전제의 제상에 차린 다음 단헌단배(單獻單拜)로 행제한다. 제사가 끝난 후 집사(執事)가 ‘걸립’하여 지붕 위로 올려 위하고, 또 하나는 올레로 가져와서 올리는 것으로 위해 주고 있다고 한다. | 참고문헌 | 제주도무속연구 (현용준, 집문당, 1986) 제주도부락지 Ⅲ (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소, 1990) 제주전래[농기구](/topic/농기구) (김동섭, 민속원, 2004) 여성[농업](/topic/농업)인의 삶과 전통 (김동섭 외, 여성농업인중앙회, 2005) 한국의 가정신앙-제주도 (김동섭 외, 국립문화재연구소, 2008) 제주유식[마을](/topic/마을)제의 전승양상 (김동섭, 제주도, 2009) 제주민속문화이해 (김동섭, 거마문화사, 20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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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세아문화사 | 한국무속의 연구 | 최길성 | 1978 | 집문당 | 한국무가집 4 | 김태곤 | 1980 | 아세아문화사 | 한국무속지 1 | 최길성 | 1992 | 한국구비문학회 | 동해안 별신굿의 제차 구성 방법과 그 특징 | 박경신 | 199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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